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웅크림 vs. 움직임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소설에서는 '뭔가를 좋게 바꾸려는 김성곤 안드레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화려한 성공담도 아니고 남다른 회생담도 아니다.

소설의 프롤로그에서는 추락한 김성곤 안드레아를 소개하고, 1부에서는 밑바닥을 치고 'Back to the Basic'을 외치며 몸을 일으키려는 변화의 시작을, 2부에선 몸과 마음을 일으키는 김성곤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3부의 김성곤은 자신을 일으켜 세운 이야기를 토대로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놓는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푸라기가 튜브가 되도록 서로 응원한다. 4부에서 김성곤은 다시 쓰러진다. 그러나 1부의 김성곤과는 다르다. 김성곤은 삶을 수용하고 멈춘 자리에서 다시 출발한다.

2. 흐림 vs. 맑음

맑은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고, 구름이 짙어지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구름이 비를 쏟아내어 가벼워지고 나면 어느새 흩어져 다시 말간 하늘이 드러난다. 세상의 모든 곳이 다 같이 맑거나 흐릴 수 없듯이, 세상 사람들은 제각각 맑을 날을, 흐린 날을 지난다. 그런 날을 지나는 것은 사람의 됨됨이나 자격의 문제라기보다는 때마침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김성곤이 흐린 날을 지나든 맑은 날을 지나든, 그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맑은 날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 사람, 흐린 날 언뜻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 같은 사람, 비 오는 날 우산이 되어주는 사람... 사람들은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마음을 움직이게 해주었다.

3. 그 vs. 그, 나 vs. 나

김성곤 안드레아는 같으나 다른 사람이다. 독자와 처음 부딪힌 남자(32쪽)와 나중 부딪힌 남자(266쪽)는 같은 사람이기도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지푸라기 프로젝트가 튜브가 될 때까지 애썼던 그의 움직임은 '변화' 그 자체였다. 비록 또다시 실패하여 쓰러져 웅크린 채였으나, 김성곤은 이해할 수 없는 삶 앞에 겸허히 머리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삶에 대적하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대신에, 삶과 동등한 입장에서 악수를 나누기로 했다(260쪽).

김성곤 안드레아의 고군분투는 마치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평범하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이야기일 뿐인데,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김성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를 따라 마음과 몸을 움직여 변화하기 시작한다.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되는 것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중 되는 것부터. 운동이든 공부든, 책을 읽는 거든. 혼자 정해서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것부터."(2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씨 하나를 샀다 - 2022 문학나눔 선정도서 시인수첩 시인선 53
이서화 지음 / 여우난골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슬비 내리는 아침에 이 시집을 꺼내 읽었다.
비 오늘 날씨가 마음에 들어 ‘날씨‘라는 낱말이 든 시집이 눈에 띄었고, 여러 시 중에서 오늘 아침 날씨와 딱 알맞은 시 〈부슬부슬〉에 눈길이 머물렀다.
흩날리는 비의 모양새, 여름비가 실어오는 냄새, 여름꽃과 벌레와 익어가는 과실과 장독대 풍경까지 〈부슬부슬〉의 시어에 감도는 것 같은 표현이 좋다.

시 〈흔들리는 채광〉에서는 여름 햇살의 내음이 묻어난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아름답다.

​흔들리는 이파리에서
즐거운 햇살이 와르르 쏟아진다

나는 아침 동 틀 무렵,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못 알아듣기 때문에 듣기 좋은 소리일지도 모르지만—새 소리는 참 듣기 좋다. 시 〈귀로 듣는 새〉에서 ‘귀로 듣는 새‘라는 표현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이지만
귀로는 너무나 익숙한 새
내 귀와 친한 그 새를
귀로 듣는 새라고 한다

〈책들은 말더듬이〉에서는 이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만나는, 더듬더듬 도착한 낱말과 문장들. 그 수고로움과 아름다움에 감사한다.

세상 어느 필자치고
빈 종이 앞에서
더듬지 않은 적 있을까

고작 한 장 채우는 일
그중에서도 여백이니 행간이니
다 챙기면서도 하루를
훌쩍 넘기거나 이틀을 넘긴
그 더듬더듬 도착한
문장의 배열들

〈실뜨기〉에서는 손과 손을 건너다니는 실을 말에 빗댄 표현이 참 좋다.

손과 손을 건너다니는 말,
바람의 언어다

실뜨기를 끝낸 뒤 마음에 무늬가 남는다는 표현도 마음에 남는다.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경험한 후에 마음에 남는 수만 가지의 무늬가 떠오른다.

실뜨기를 끝낸 두 사람
실은 어디에도 없지만 마음에는
수만 가지의 무늬가 남아 있다.

〈수소문〉 중 ‘누구에게나 간절해서 무수한 조각을 찾아 맞추는 일‘, ‘뒤를 찾으면 앞이 없고 팔을 찾으면 귀가 없는 그런 수소문‘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공감했다.

이 밖에도 〈얼지 않는 밥〉에서 ‘아침은 각각의 빛으로 오고 저녁은 비스듬한 문틈으로 사라진다‘라는 표현이 마음에 남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7-1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들은 타고나는걸까요. 아침이 오고 저녁이 사라지는 표현 참 예쁩니다 *^^*

행간 2022-07-19 20:47   좋아요 1 | URL
저도 아름다운 시어와 문장에 포옥 빠졌어요. 따뜻한 댓글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기품의 룰
가토 에미코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경로로 나에게 온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이다. 몇 년에 한 번씩 꺼내어 읽어보는데, 읽을 때마다 천방지축 내 모습이 겹쳐서 흠칫한다. 십수 년이 지나도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나의 기품은 진전이 없지만, 때때로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는 이 책이 도움이 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몇몇 단어와 표현이 보이지만, 성숙한 내면과 자세에 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의 속성 (300쇄 리커버 에디션, 양장) - 최상위 부자가 말하는 돈에 대한 모든 것
김승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 이 책 목차 배열의 기준은 뭘까? 목차의 섹션 분류에 체계가 없는 듯하여 조금 아쉬움

⇒ 기타 의견으로는 파트 1은 돈, 파트 2는 경제, 파트 3은 저자 자신, 파트 4는 창업과 관련한 분류라는 분석이 있었다.

· 돈을 버는 테크닉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는 돈에 대한 마음가짐을 중시한다. 부자의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를 생각하며 읽었다.

· 일상의 규칙성, 꾸준함, 질문하고 탐구하는 자세,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쌓아 올리는 저력을 강조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허기진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식과 책의 역할을 연결하였다. 음식처럼 마음의 허전한 구석을 채워주는 공간으로, ‘북스 키친‘, ‘책들의 부엌‘이라고 이름 지은 점이 매력적이다.

· 맛, 내음, 촉감 등 여러 감각을 세밀하게 묘사한 문장이 돋보인다. 이러한 감각이 등장인물의 추억과 사연을 불러들인다.

· 맛과 향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독자는 책을 읽으며 그 감각에 사로잡힌다.

· 소양리 북스 키친에서 책이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우리가 또 다른 책에 연결되는 모습 같다. 그리고 책이 주는 위로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 소양리 북스 키친의 사계절은 순환하는 삶의 패턴 - 행운과 불운, 오르막과 내리막, 흥망성쇠, 희망과 낙담 - 을 담고 있다.

· 《책들의 부엌》에서 만난 책과 음악은 그 자리에서 또는 머나먼 시간을 돌아 독자에게 닿는다. 책에 소개된 재즈 연주곡이 아름다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