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 3 - J Novel Next
분코로리 지음, 마타논키 그림, 원성민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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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지난날, 납작 얼굴 '니시노'가 다 죽어가는 여자애를 구해준 이유가 뭘까. 세상사 아무런 관심 없던 사내놈이 골목길에서 세상 하직하게 생긴 어떤 여자애를 보다 못해 구해줬는데요. 골목길에서 세상 하직하게 생긴 여자애의 이름은 '로즈(표지)'라고 합니다. 주인공 니시노와 마찬가지로 이능력자인데 능력은 괴력, 니시노는 학교에서 카스트 상위를 차지할 만큼 외모를 가진 그녀이기에 구해줬을까? 단순한 변덕일까. 1~2권에서 뭔가 이유가 나온 거 같긴 한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 뭐 어쨌건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부는 박 씨를 얻었는데 니시노도 뭘 얻긴 얻습니다. 구해준 당사자(로즈)라는 선물을, 흔히 우리네 민담이라든지 만화라든지에서 보면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고 눈이 맞아서 맺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이런 일은 거의 다 해피엔딩인데 이 작품의 니시노는 과연?

 

남녀 불문하고 기피 대상인 납작 얼굴에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 입장에서 절벽 위의 꽃을 손에 넣었다는 건 부러워 마지않는 축복받을 일이죠. 상대가 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 남자 나이 16살, 인생에 있어서 미래를 설계해야 될 나이에 접어든 그에게 있어서 필요한 건 무얼까. 그건 노년에 쓸쓸하지 않으려면 반려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에게 다가온 로즈는 이상향이었죠. 그녀가 정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가정하에서. 되지도 않는 성격으로 청춘을 구가하겠다는양 인맥을 쌓고 인연을 만들어 인생을 좀 펴보려고 했던 게 그(니시노)에게 있어서, 예능인 강호동이 1박 2일 찍으면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살아야 된다고. 그래서 하늘이 노했던 거겠죠. 옜다 관심이라며 던져준 게 하필이면 로즈였다는 게 니시노의 입장에서는 불운이 아니었을까요.

 

스토커물에서 자주 등장하잖아요.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준 남자에게 들러붙어 광기를 보여주는 여자(혹은 남자, 여기선 로즈니까 여자), 이 사람만이 내 사랑의 전부이고, 세상의 전부이고, 다른 이성과의 만남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나만 바라봐 줘야 하고, 내가 원하는 걸 해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은 심리를 가진 사람을 스토커라고 하죠. 왜 하필 니시노는 그날 골목길에서 로즈를 구해줬는가.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겠죠. 상대(로즈)가 일반인이라면 에이전트답게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버리겠지만 뒷세계 동업자에다 영향력 또한 있는 걸물이다 보니 어찌할 수가 없어요. 경고를 하지만 그때뿐이고, 아니 스토커가 경고한다고 그만둘게요 하는 거 보셨나요.

 

나를 구해준 멋진 사람, 뒷세계 일을 하다 보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자주 있을 텐데도 단순히 구해줬다고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영화 스피드를 보면 사건으로 만난 인연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역설하기도 하는데 로즈는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관철 시킬 수 있을까. 첫눈에 반한다는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학교에서 남자 인물 카스트 1위를 구가중인 타케우치(바람둥이)의 어프로치는 안중에도 없는 걸 보면 적어도 로즈는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성격은 아닌 듯한데요. 일단 일편단심 니시노를 향한 콩깍지가 껴서 아무것도 안 보이긴 한데, 이번에 그래도 니시노를 왕따시키는 관련으로 위에는 위가 있다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어서 사랑이라는 파탄적인 성격도 그렇고 정상적인 판단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질이 더 안 좋기도 합니다.

 

왜냐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스토커는 삼류이고, 일류 스토커는 주변의 이목을 끌지 않는 정상적 생활로 상대를 몰아붙이니까. 생각해보세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고고한 장미처럼 우아하게 행동하지만 둘이 되었을 때는 본모습이 튀어 나오기도 하고, 혼자가 되었을 때 광기를 보여준다면 얼마나 소름이겠어요. 내가 보지 않은 건 믿으려 하지 않는 인간 습성을 보더라도 피해자가 주변에 말해도 소용이 없겠죠. 그 짓을 로즈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진화해서 2권에서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반장 '시미즈'를 약점 잡아 꼬봉으로 들이고 난 후엔 그녀(시미즈) 앞에서도 광기를 보여주는 게 여간 소름이 아닐 수 없어요. 공항에서 니시노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겠다는 그녀(로즈), 이게 로즈 본모습이라는 걸 알아버린 반장 시미즈(1)에게 있어서 이보다 지옥은 없었을 듯.

 

이번 이야기는 미남 타케우치가 어떻게든 로즈와 거사를 치르겠다는 일념 하에 진행한 해외여행을 다루고 있습니다. 온 동네를 쏘다니며 DNA를 뿌려대는 미남과 그 DNA를 받겠다고 우왕좌왕하는 여학생들이 가관이죠. 늘 생각하지만 회복술사(지금은 19금)도 그렇고 발행 출판사인 제이노블의 수완이 좋다고 할까요. 이런 이야기는 적어도 15세 이상 관람가일 텐데 전연령가로 내는 걸 보면. 아무튼 타케우치의 야심에 휩쓸려 로즈도 동행하게 되죠. 그러나 온통 그녀의 마음속엔 니시노뿐이었다는 것에서 타케우치는 참 안습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본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떤 얼굴을 할까. 불행 중 다행인 건 그래도 대놓고 니시노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거군요. 그랬다간 로즈에 의해 목뼈가 부러졌을 테니(실제로 임무를 하며 대상의 목을 부러트림).

 

어쨌건 로즈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타케우치의 머릿속엔 온통 꽃밭으로 치장이 되어 있지만 그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행에 따라오기로 한 니시노가 안 보이자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로즈가 압권이죠. 일류 스토커가 보여주는 스토커 짓이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그 일환 중 하나가 공황에서 니시노를 생각하며 자위라고 하니 말 다했죠. 그렇게 기어이 니시노의 행적을 쫓으며 그와 함께하겠다는 일념을 관철하고 마는 그녀의 성격은 무섭고도 소름 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짠하기도 합니다. 대체 니시노의 어딜 좋아서 쫓아다니는 걸까. 콩깍지라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타케우치는 또다시 안습, 전편에서 로즈나 니시노와 엮여서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걸 진작에 알았으면서도 또 엮여선 불운을 맛보게 되는 그에게 애도를.

 

사실 니시노는 임무 중에서 오가는 대화하든가 자기 인생에 관련이 없는 인간과의 대화는 참으로 스무스하게 한다는 말이죠. 근데 그게 안되는 게 학교에서 생활이랄까요. 왕따 당하는 이유는 상판도 상판이지만 중2병같은 시니컬한 말투 때문인데 이걸 임무 때처럼 고칠 생각을 안 해요. 누가 지적 좀 해주면 고치지 않을까 싶은데 애초에 아무도 상종을 안 해주니 본인이 알리가 없어요. 로즈는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하고 있지, 반장은 어디 벌레라도 보는 듯하지. 타케우치는 일방적으로 라이벌로 생각해서 그의 말투는 안중에도 없지.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은 니시노가 두려워 진언을 못하지(니시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능력자거든요.). 간신히 친구가 된 기타리스트는 그의 꼬봉이 되어서 헤벌쭉하는 중이지. 주변에 제대로 된 인간들이 없어요. 같은 반 여학생들은 타케우치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동성 여자애의 발톱을 뽑아 버리겠다고 그러질 않나.

 

그렇게 타쿠우치가 준비한 사심 가득한 여행은 파탄을 향해가고, 결국 니시노는 로즈의 계략에 넘어가고 마는데...

 

맺으며, 2권에 이어 과연 분코로리 답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흥미진진합니다. 등장인물 개개인 모두가 감정 표출에 있어서 브레이크가 없어요. 그렇담 추천작인가? 음... 좀 미묘하긴 합니다. 로즈의 일방통행은 소름 돋죠. 다나카에 나오는 음습한 소피아가 그러는 거처럼 그녀(로즈)도 뭔가 섞는 걸 마다하지 않는, 그러면서 겉으로는 정상인 행세를 하면서도 니시노에게 들러붙는 게 송진(소나무 진액) 저리 가라입니다. 하필 송진에 비유한 건 송진은 분비될 때 끈적 거리지만 한번 굳으면 꽤 딱딱해지죠. 그래서 안에 뭔가가 가둬지면 호박(보석의 일종)이 되어버리는, 그리고 한번 불붙으면 활활 타오르고 검은 연기를 마구 내뿜게 되죠. 로즈에게선 그런 게 엿보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교훈, 왕따를 주도하는 인물이 정작 자신이 왕따 당하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기분?이라는 메시지적인 것도 있다는 것이군요. 니시노를 왕따시켰던 반장 시미즈가 로즈에 의해 똑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을 때는 위에는 위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닐까 했습니다.  


 

  1. 1, 니시노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게된 표면적인 주범, 진범은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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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오라토리아 12 -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외전,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하이무라 키요타카 외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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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이번 12권을 표현하라면 부제목이 딱 어울리지 않을까 싶군요. 동네에서 매너 있고 자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살인마더라라고 한다면 얼마나 소름이 돋을까요. 철저한 내면 연기로 주변을 속이고 뒤로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들을 죽이는 걸 일상으로 삼고 있던 사람, 그래도 감 좋은 사람은 이웃이 가진 위화감을 느끼고 경계는 했더랬죠. 하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요. 게다가 이웃은 피에로까지 준비해두면서 철저한 위장한 덕분에 꼬리를 쉽게 잡을 수가 없었죠. 불의에 맞서고 도시의 미증유의 사태에도 힘을 보태는 통에 주변의 의심은 깊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만큼 이웃은 용의주도하였고, 그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고 말아요.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이 난 시점에서 이웃이 가진 위회감의 정체를 밝혔지만 때는 늦어 버렸습니다.

 

뭣 때문에 손을 내밀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친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파티 브레이커로 모험가들에게서 멸시의 대상이 되어 오로지 혼자 다니는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녀가 애처로워 손을 내밀었는지도 모릅니다. 들판에 혼자 핀 고고한 들꽃처럼, 다가오는 걸 거부하듯 가시로 무장한 검은 장미처럼, 놔두면 언제가 무너지고 고독하게 혼자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내밀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내밀어진 그 손은 얼마나 따뜻했던가.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절망만을 안고 살아가던 그 검은 머리칼의 소녀가 내밀어진 손을 부여잡고 새로운 길을 걸었다면 미래는 바뀌었을까. 만약 좀 더 일찍 그녀와 만났더라면, 그런 부질없는 소망은 손바닥 사이로 빠져나가버린 물처럼 둘의 사이에 종말을 고합니다.

 

위 두 문단은 이번 12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사이코패스인 이웃에 충격을, 알고 보니 절망만을 안고 살아가던 소녀가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의 따뜻함을 잊지 못해 망설임과 방황 그리고 결단이라는 끝맺음. 이블스 잔당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 [로키 파밀리아]를 위시한 연합군은 1차전에서 대패를 해버렸습니다. 적이 남긴 함정은 많은 모험가의 생명을 앗아가버렸죠. 특히 검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엘프 '피르비스'의 사망은 독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감이 좋은 사람은 이미 이전부터 그녀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행적이라는 복선을 알아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위화감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피야는 그녀(피르비스)의 진실을 알아가려 하죠. 친구가 죽었다는 충격을 딛고 일어서 진실과 마주한 그녀가 벨 못지않은 영웅전설을 만들어 가는 게 이번 이야기의 포인트라 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 스포주의라고 해뒀지만 그래도 스포 한다고 항의하는 분들이 계셔서 요즘은 핵심 인물에 대한 스포일러를 자중하려다 보니 리뷰가 자꾸 두리뭉실 해지는데요. 이번에도 그래요. 이블스 잔당을 이끌고 뒤에서 오라리오 붕괴를 주도했던 신(神)의 존재는 이름만 밝히면 누구나 다 아는 존재이죠. 그래서 이번 리뷰를 어떻게 써야 되나 두 시간 넘게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군요. 이미 피르비스가 언급된 점에서 감이 좋은 분들은 눈치챘지 싶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선악을 가르는 히이로물에서 알고 봤더니 악당은 사실 선한 사람이었고 시대와 현실이 악으로 물들게 했을 뿐이라는 성선설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는 필자가 매우 싫어하는 주제인데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악당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줄만 했습니다.

 

뭔 말이냐면, 그냥 혼돈의 도가니를 즐기기 위해 도시를 붕괴 시키고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희열을 느끼는 사이코가 악당이라는 거죠. 여기에 이유나 명분은 없어요. 그래서 죽으면 찝찝한 악당이 아닌 죽어서 시원한 악당이 나온다는 거죠. 하지만 여기서 명확히 해야 될 점은 이블스 잔당을 뒤에서 조종했던 어떤 신(神)만이 그렇다는 것이고, 레피야가 진실을 찾아 도달했던 어떤 인물의 경우는 좀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년 전 던전에서 맞이한 절망만을 안고 죽지 못해 살아가던 그 존재는 레피야를 만나 빛을 보게 되었지만 모든 게 늦어버린 상황. 여기서 갈리는 게 성선설로 그 존재를 살릴 것인가 아니면 죽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레피야를 후자를 선택하죠. 그 선택의 기로는 처절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지막 레피야가 목놓아 우는 모습의 일러스트는 먹먹하기 짝이 없었군요.

 

피의 축제를 즐기기 위해 십수 년 전부터 시나리오를 구상해왔던 어떤 신이 일으킨 미증유의 사태, 던전의 도시 오라리오가 붕괴할지도 무른다는 위기감에 모든 모험가들이 나서서 치르는 대규모 전투, 외전에서는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던 [프레이야 파밀리아]까지 나서지만 사태는 녹록지가 않습니다. 벨을 위시한 [헤스티아 파밀리아]까지 투입되고, 제노스와 오라리오 외부에서까지 전력이 투입되는 등 이제까지 등장했던 등장인물들이 총망라되어 사력을 다하지만 흑막이 준비한 진짜배기는 사람들을 경악 시키기에 충분했군요. 모든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갈 찰나에 우리가 바라는 영웅은 누구인가. 흑막이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던 단 한 사람, 시대가 영웅을 바랄 때 우리가 생각하는 그가 나타난다. 이걸 두고 전문 용어가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

 

맺으며, 3부 최종 편이라고 합니다. 원래 12권에서 외전은 끝내려나 했나 본데 작가가 아쉬웠는지 후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찾아온답니다. 요정 각성 편이라는 걸 보니 아이즈의 이야기는 아닌 거 같고, 이번에 대단한 활약을 보인 데다 성장통을 겪은 레피야 혹은 방황의 류가 아닐까 싶더군요. 둘 다 엘프라는 요정이니까. 레피야의 경우 벨에 필을 받은 로키가 벨처럼 스테이터스를 S까지 올리고 나서 랭크업 시키려고 묵혀 두었는데도 레벨 4로 올린 거 보면 앞으로 집중 성장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하지만 활약은 많이 하는데 임팩트가 와닿지 않아 각성 편에 쓰일 주제로는 적합해 보이지는 않았군요(물론 필자 주관적인 생각). 그렇다면 이블스와 인연이 깊은 류가 아닐까 싶었는데요. 이번 흑막 신(神)이 류가 과거에 속했던 파밀리아를 언급하기도 했고(보면 이런 이야기가 복선이 되는 경우가 있음), 이번에 이블스를 완전히 소탕하기도 했으니 이제 본모습을 찾으려 하지 않을까 싶었군요. 근데 류는 또 다른 외전인 파밀리아 크로니클에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어서 아닌 거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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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전생 9 - 이세계에 갔으면 최선을 다한다, Premium Extreme Novel
리후진 나 마고노테 지음, 한신남 옮김, 시로타카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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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이전에도 필자가 언급한 적이 있지 싶은데요. 이 작품은 필자와 코드가 맞지 않다는걸요. 이유는 지조 없는 개방적인 성(性) 관련 부분은 뭐 여타 작품과 비슷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의 방구석 폐인 시절의 성격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못하겠더군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거나 매번 자신의 마음을 우선시해서 타인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은 피해자라는 모습은 어떻게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파심에서 쓰지만 필자는 지금까지 라노벨만 근 500여권을 읽었습니다. 그중에 문제성이 짙은 주인공도 있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어딘가 일그러져있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군요. 그래서 적응이 힘들다고 할까요. 물론 다른 작품의 주인공처럼 똑같이 타인을 포용하고 선인 군자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런 주인공이 있는 것도 괜찮겠죠. 그저 필자와 코드가 안 맞을 뿐이군요.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주인공 루데우스가 어릴 적 옆집 쿼드 엘프 '실피'와의 재회 후편이 되겠습니다. 이미 훨씬 이전부터 부록 형식으로 실피에 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왔고, 8권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였으니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초장부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으셨겠죠. 모르는 건 이 작품의 주인공뿐. 실피는 참 안타까운 히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그녀는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했고, 자신을 구해준 주인공에게 의존하게 되었지만 너무 중증으로 치달아서 헤어지게 되는 원인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보다 어릴 적이라서 자각은 없다지만 주인공에게 성희롱도 당했는데 이거에 대한 트라우마는... 언급이 없는걸 보니 개의치 않는 건지, 이후 그녀는 전이 사건에 휘말려 아슬라 왕궁에 떨어졌고 왕녀 아리엘에게 주워져 피츠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줄곧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 왔을 테죠. 어릴 적 파울로(루데우스 아버지)에 의해 찢어진 후 7년이 되던 해에 드디어 해우는 하였으나 나는 알아보는데 저쪽은 날 못 알아봅니다. 어릴 적 괴롭힘당하던걸 구해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법 등을 가르쳐준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보다는 날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그의 곁에 있으면서도 1년이라는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 버리죠. 어떻게 보면 첫사랑을 다시 만났다는 두근거림이라는 풋풋한 청춘 드라마의 한 페이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저쪽은 시간이 흘러도 날 알아볼 낌새조차 없고, 실피라는 말조차 없어요. 참 불쌍하죠. 에리스에게 차인 것만 씁쓸한 추억처럼 되뇌고, 9권에서는 거의 언급이 없지만 록시교라는 신흥종교를 만들 정도로 록시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제일 처음 만난 이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으니 이 무슨 불합리한가. 사라도 언급하면서 말이지.

 

그럴 경황이 없었다고 서술은 하고 있는데, 결국은 다른 히로인은 다 뇌내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실피만 쏘옥 빠진 이유로는 궁색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은 보다 못한 실피가 행동으로 나서면서 관계가 급진전되어 가죠. 루데우스가 마법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프루세나와 리니아에 이어 나나호시(사일런트)까지 그의 주변에 장착되면서 겉몸이 달아버린 실피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행동에 나섰긴 한데, 정작 문제점인 루데우스는 줄곧 남자인 걸로 알고 있었던 그녀(실피)와의 접점을 이어갈수록 ED가 치료되어 간다는 걸 알아가죠. 여기까지도 그녀가 남자냐 여자냐로 고민만 할 뿐(1) 그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미 색안경을 껴버린 필자로써는 이 부분에서 안 좋은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요컨대 ED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 되었든 이용하려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6개월 전이었다면 그랬을 거라는 독백도 있었고, 뭐 그래도 그녀와 1년 동안 만나면서 피츠(실피)가 남자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호감을 가지게 되었고 계속해서 인연을 쌓다 보니 아랫도리가 반응을 보이더란 말이죠. 그래서 갈등하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죠. 하지만 실피가 먼저 행동에 나서면서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그제서야 그녀와 마주 보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좋은 결말이라 할 수 있는데 뒷맛이 개운하지가 않더군요. 이것은 실피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맺어진 것뿐 주인공으로서는 뭔가 한 게 있나 하는 의문점이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피가 홀딱 벗고 나서야 겨우 알아보고 실피?라고 말하는 주인공이란...

 

어쨌건 하나의 인연은 완성이 되었군요. 위에서 주인공을 비난투로 언급은 하였습니다만.

뭐 그래도 책임은 지려고 하니까 자기중심적에 욕망에 이끌려 살아도 그리 나쁜 놈은 아니겠죠.

 

맺으며, 이세계 전이자 '나나호시(사일런트)'의 등장으로 8년 전 전이 사건의 내막이 조금 밝혀지지만 일부러 리뷰에선 언급을 안 했습니다. 외에도 마왕이 찾아오고 마법 대학에서 루데우스의 소문이 살을 더해 부풀면서 경외의 대상이 되는 등 이야기는 매우 많지만 이것도 일부러 언급을 안 했습니다. 왜냐면 필자는 9권에서 하차할까 해서군요. 분명 수작이긴 한데 주인공이 필자와 맞지가 않았습니다. 주인공 성격이 감정이입에 방해를 한다고 할까요. 이번 9권에서는 그런 성격이 많이 고쳐지는 듯하고 12권쯤부터는 흥미를 더해간다고는 합니다만. 나중에 시간이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손대보도록 하죠. 

  1. 1, 공식적으로 실피는 마법대학에서 피츠라는 가명을 쓰고 있으며 남자로 분장하고 있어서 주인공 루데우스 포함 다들 남자로 오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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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녀전기 11 - Alea iacta est, Novel Engine
카를로 젠 지음, 한신남 옮김, 시노츠키 시노부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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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에서 타냐가 들고 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감자'입니다. 몇 년째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는 있는데, 옆 나라와 국지전이 아닌 여기 집적 저기 집적 거리는 통에 온 사방이 적으로 가득 찼어요. 물자는 진작에 바닥에 나버렸고, 식량 사정은 최악을 달리고 있죠. 그래서 타냐는 어엿한 소녀로 자랐지만 영양실조인지 군에 들어올 때 나이(9살) 그대로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존재X가 그녀의 키를 성장하지 않게 손을 쓰지 않았다면 영양실조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손에 든 저 감자는 옆 나라와 비교해서 먹을만한 게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죠. 물자를 최우선으로 돌리고 있는 군의 실정이 저런데 민간인은 표현이 안 되어 있지만 아사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제국은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2차대전 독일 군부 상층부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죠. 전쟁을 지속했다간 남는 건 없고 모두 파멸뿐이라는 생각에 엘리트들이 일으킨 반란, 이 작품은 2차대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서 유사하게 흘러갑니다. 타냐를 비롯해 어떤 고위 장성(이름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이하 온건파)은 확전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전쟁 지속 강경파를 축출하고 싶어 하는데요. 피폐해질 데로 피폐한 국내 사정과 젊은이는 다 산화해버리고 어린아이와 노인들 밖에 없는 나라에서 전쟁 지속은 그야말로 기름을 드럼통째로 짊어지고 불에 뛰어드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죠. 이쯤에서 종전을 맺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글쎄 이넘의 강경파가 물자 부족으로 뭘 잘못 처먹었나 느닷없이 남쪽 동맹이자 중립국인 '이르도아 왕국'을 치자며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르도아 왕국은 아직 뭔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꿈자리가 사납다고, 그나마 남쪽(이르도아 왕국)에서 조금이나마 물자가 보급되면서 산소호흡기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주제에 마지막  숨구멍까지 막아버리자고 하니 타냐로써는 미칠 노릇이죠. 게다가 강경파는 '자네, 승진할 생각 없나?' 이럽니다. 유능함의 끝은 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독으로 돌아온 꼴이 되어 버렸죠. 침몰 중인 배에서 뛰어내려 다른 배로 갈아타듯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타냐로써는 기분 좋은 제안일 리가 없어요. 전쟁 초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하자니 이미지가 안 좋이 질 거 같고, 다른 회사에 가서도 이전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이력으로 쓸려면 좋은 이미지로 나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보니 발을 뺄 시기를 자꾸 놓쳐만 갑니다.

 

그래서 결행, 일단 내가 살고 봐야죠. 회사 생활하면서 제일 짜증 나는 부류가 사람이 어쩌다 한번 실적을 높이면 그 기준에 맞춰버리는 상사가 아닐까요. 데이터로 보여주는 국내 물자 사정을 들이밀어도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데 앞으로도 해봐라라고 하니 미치고 졸도할 노릇. 강경파가 그렇다고 '무타구치 렌야(자세한검색 해보셈)'도 아니라는 것에서 더욱 짜증이 밀려올 뿐입니다. 사람이 악에 받치면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죠. '밤길 조심해라.' 그렇게 요단강 건너까지 친히 모셔다드립니다. 이제 종전을 맞이할 수 있겠지. 근데 나비 쫓아 낭떠러지로 쫓아가본 적이 있나요. 발밑을 신경 안 쓰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은 결과 목숨이라는 비싼 대가를 요구하죠. 강경파를 없앴더니 온건파가 왜 설레발을 치냐고요. 나도 남쪽(이르도아 왕국)을 좀 쳤으면 좋겠는데...

 

분명 얻어맞고 시작한 전쟁인데 왜 자꾸 말릴까. 때린 놈이 벌을 받아야지 왜 자위적 차원에서 반격한 피해자가 되려 나쁜 놈이 되어 온 사방에서 두들겨 패냐고요. 세상에 이렇게 부조리한 것도 없을 테죠. 법에 정당방위의 요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보통 국가라면 과도한 반격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아닌 나라도 있겠지만) 타냐의 제국엔 이런 법률이 없나 봅니다. 난 한 놈만 팬다는 신조에 따라 제일 처음 내게 싸다구 날린 놈만 줘팼으면 되었을 텐데 꿈자리가 사납다고 눈에 뵈는 게 없이 광역 싸다구를 날렸으니 다구리 당해도 어쩔 수가 없죠. 문제는 광역 싸다구 날린 거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안 하더라는 거. 종전을 기약하며 강화를 모색하러 갔더니 '너 님 미친 거 아님?'이라는 소리를 들어 버립니다. 뺨 한대 맞은 것에 불과한데 반격이랍시고 상대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고도 반성의 기미기 없으니 주변의 시선이 고을 리가 없어요.

 

그렇게 타냐와 그녀의 부대는 새로운 전선에 투입됩니다. 여기서 강경파의 확전을 그토록 꺼려 해놓고 그녀는 왜 발을 담그는 걸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엔 필자의 몸 상태가 안 좋아 이야기의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한 측면도 있지만 확전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나 거부감 없이 선봉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더니, 그녀와 그녀의 부대는 거지도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제국 내 물자 상황은 보리 죽도 못 먹을 정도로 처참한데 남쪽으로 내려오니 흰 빵에 고기에 원두 등 눈에 돌아갈 지경인 거죠. 출동이 떨어져 나가야 되는데, 군율 하면 타냐만큼 빡신 상관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부대원들이 입에 뭔가를 욱여넣기 바쁜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노가다하는 타냐는 웃겨 죽습니다.

 

맺으며, 고도의 정치적 이야기라든지 이데올로기 등 범인(凡人)으로써는 허들이 높은 이 작품에서 그나마 타냐와 그녀의 부대원들이 부대끼는 이야기로 숨통이 트이곤 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 타냐는 별로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읽는데 좀 시간이 많이 걸려 버렸군요. 그래도 후반에서 타냐가 꼼쳐둔 초콜릿을 부대원에 빼앗기게 되자 시무룩해지는 것이나,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나(직설적으로 표현은 안 되어 있고 이 작품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신사적으로), 노가다하는 모습에서 조금이지만 유쾌하기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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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4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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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10년 동안 답답해서 어떻게 참았을까. 이 작품에서 비극의 히로인이라고 하면 '샬롯'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국에 속하는 '휴잭'이라는 왕국에서 왕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녀, 그러나 10년 전 몬스터 떼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고 말아요. 어떻게 도망치기는 했으나 노예상에 붙잡혀 인생 끝장나게 생겼고, 마침 정령에 이끌려온 주인공 '데닝'에 의해 구해지죠. 안도도 잠시, 이제 왕녀로서의 생활은 끝이 나고 그의 종자로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참 못 볼 꼴 많이 봅니다. 온갖 망나니 짓을 저지르는 주인(데닝) 때문에 마음고생이 끊이질 않고, 그(주인)가 집안에서 눈 밖으로 나버리는 바람에 도매금으로 자신(샬롯)도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월급도 깎여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등 차라리 노예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고생을 많이 했더랬죠.

 

근데 그 멸망해버린 휴잭의 수호룡 흑룡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인생은 졸부 인생으로 바뀌어 갑니다. 드래곤 왈: 그녀(샬롯)의 먼 조상의 목숨을 대가로 나라를 지킨다는 계약을 하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나라가 멸망했네? 지키고자 했던 나라에 가보니 사람은 없고 몬스터만 바글 거리는 게 아니꼬워서 한바탕 브레스로 긁어주고 마침 바람에 실려온 그녀(샬롯의 조상?)의 향기(?)를 쫓아 마법 학원에 왔더니 조상하고 비슷하게 생긴 여자애가 자기를 퇴치하겠다는 양 꼼지락거리며 앞으로 나온다. 먼 조상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분함, 조상만이 아니라 대대손손 위기 때마다 자손의 목숨을 대가로 나라를 수호하겠다고는 했는데 지금은 나라가 멸망해버렸으니 저 왕녀(샬롯)를 어떻게 해야 하나.

 

주인공 데닝은 그런 흑룡을 무찌르고 일약 스타덤에 올라버렸습니다(다짜고짜는 아님, 자세한 건 스포일러). 그동안의 온갖 말썽쟁이 칠흑 돼지라는 오명을 벗어 버리고 구국의 영웅으로 등극하죠. 이미지는 떨어질 땐 고속도로지만 다시 올리려면 걸어서 63빌딩입니다. 주인공 데닝은 걸어서 63빌딩을 올랐어요. 근데 여기까진 좋으나 왜 커밍아웃을 해가지고 '샬롯'의 심기를 건드리는가. 그동안 그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철저히 비밀로 해왔던 그녀의 비밀을 하필 드래곤을 쓰러트리고 이실직고 하는가. 비밀을 말할 때는 진솔하게 서로 마주 보며 차분하게 하는 것, 그동안 자신의 비밀을 비밀로 했다고 단단히 삐져버린 샬롯은 주인과 종자라는 입장을 망각하고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하는데요. 그동안 돼지 시다바리 하면서 서러웠던 걸까요. 자, 이제 왕녀라고 밝혀졌으니 에헴 나도 왕녀 취급 좀? 이럽니다.

 

전쟁의 기운이 날로 커져만 가는군요. 북쪽 도스톨 제국은 고만고만한 나라들을 집어삼키며 대륙 맹주로 부상하기 시작하고 남방에 위치한 다리스(주인공이 사는 나라)등 다른 나라들은 연합해서 대응을 하려 하지만 녹록지가 않아요. 그런 와중에 지금은 멸망해버린 휴잭(샬롯의 나라)에 도스톨 제국 군인으로 보이는 먼치킨이 한 명 들어와 있는데 조사 좀이라는 퀘스트가 주인공에게 내려집니다. 주인공은 알고 있어요. 그 먼치킨으로 인해 도스톨 제국은 머지않은 미래에 전쟁을 일으키고 다리스 등이 휘말려 세계대전이 된다는 것을. 자, 세계의 운명이 주인공 어깨에 달려 있음요. 이쯤 샬롯과는 냉전 중이고, 관계는 최악을 치달아 갑니다. 뭐, 나름대로 생각은 하고 있었다지만 애초에 샬롯도 데닝에게 비밀로 해놓고 정작 데닝이 비밀로 한 것에는 삐지는 발암 1기가 시작돼요. 

 

뜬금없지만 이 작품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발암적 요소를 안고 있어서 보고 있으면 찌릿찌릿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 발암적 요소는 불쾌하다는 게 아니라 순진하고 순수한 애들을 보는 거 같은 그런 발암류랄까요. 마치 내 마음을 몰라줘서 삐지는 여친 같은, 몇몇 히로인을 예로 들면 알레시아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도는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보는 거 같죠. 지동설은 먹히지가 않아요. 요컨대 지구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그렇게 돌아야만 하죠. 하지만 속마음은 남들과 어울리고 싶은 지동설을 믿고 싶은데 그놈의 고집과 프라이드가 허락하지 않아요. '카리나'는 내가 왕녀다라며 남의 마음과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내가 하라면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주인공을 사자 우리에 집어넣으려 하죠. 그런 주제에 방구석 폐인이고.

 

그리고 진 히로인 '샬롯'은, 우선 손에서 마법 지팡이를 내려놓고 말하자. 그녀는 마법계에 있어서 요리계의 이승기죠. 그녀는 마법을 쓰면 안 돼요. 근데 억척같이 마법을 쓰려 합니다. 노력파라서 어느 정도 성과는 내는데, 결과가 좋지만은 않아요. 마법의 매개가 되는 정령들이 그녀를 외면할 정도니 말 다했죠. 그리고 왕녀라는 신분이 밝혀지자마자 왕녀 취급 좀이라느니 태도가 돌변해서 주인(데닝)과 맞다이 까려고 하지 않나, 지금은 몬스터가 득실거려서 군대도 소용없는 휴잭(샬롯의 나라)에 가겠다고 떼를 쓰니 난감함이 쓰나미로 몰려옵니다. 가겠다는 그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어요(자세한 건 스포일러). 주인공 데닝에게 있어서 여난이죠. 알레시아는 주인공 데닝이 판 무덤(그녀와 약혼했으면서 차버렸거든요.)이기도 해서 까임 당해도 자업자득이긴 한데.

 

아무튼 전쟁 밖에 없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도스톨 제국이 휴잭에 잠입시킨 먼치킨을 제거하기로 하고 데닝과 샬롯이 파견됩니다. 진정한 오크 돼지가 뭔지 보여주마라는 듯 주인공 데닝은 오크로 분장해서 싸돌아다니는데 이건 별로 재미없으니 넘어가고, 막상 휴잭에 들어가 보니 몬스터 마경이라고 해서 사람들의 기피의 대상이었던 땅은 어째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밝혀지는 휴잭을 점거한 몬스터들의 진의, 인간의 말을 하는 픽시 '에어리스'와의 만남으로 샬롯은 심경의 변화를 보이는데... 그제서야 어릴 때 자신을 구해준 게 누구이며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샬롯.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을 지적해주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눈치 못 채죠. 에어리스와의 생활 덕분에 여전히 발암 1기에서 2기로 올라가려는 알레시아와 대조적으로 어른으로 한 단계 성장을 보이게 되는 샬롯이랄까요. 이런 성장을 정말 좋아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

 

맺으며, 발암 제조기 알레시아 덕분에 개그가 사망하지 않고 간신히 인공호흡하고 있는데 조금 더 개그를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더군요. 사실 좀 무미건조해요. 주인공 데닝의 '나는 알고 있다. 미래 어떻게 되는지'같은 독자로서는 알고 싶지 않은 스포일러를 까데기 하는 통에 재미가 반감되고, 사실 주인공이 미래를 알고 있고 그 미래를 주인공이 바꿔 간다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긴 한데 걸핏하면 알고 있다고 해서 눈에 좀 거슬려요. 게다가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죄다 둔감해서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게 있죠. 이 부분은 나중에 알아채고 진실된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같은 클리셰를 집어넣으려고 했나 본데 이건 이젠 개도 거들떠 안 보는 주재라는 것. 돌려 말하면 그만큼 풋풋한 청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히로인들에게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니 불쌍하기도 하고, 호구스럽기도 하고, 부자연스럽기도 하더라고요. 현실에서 삐진 여친 달래려고 사과했더니 뭐가 미안한데?라고 나오는 여친에게 어떤 대응을 보여야 할까 같은 게 있다고 할까요.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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