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녀전기 11 - Alea iacta est, Novel Engine
카를로 젠 지음, 한신남 옮김, 시노츠키 시노부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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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에서 타냐가 들고 있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감자'입니다. 몇 년째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는 있는데, 옆 나라와 국지전이 아닌 여기 집적 저기 집적 거리는 통에 온 사방이 적으로 가득 찼어요. 물자는 진작에 바닥에 나버렸고, 식량 사정은 최악을 달리고 있죠. 그래서 타냐는 어엿한 소녀로 자랐지만 영양실조인지 군에 들어올 때 나이(9살) 그대로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존재X가 그녀의 키를 성장하지 않게 손을 쓰지 않았다면 영양실조가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손에 든 저 감자는 옆 나라와 비교해서 먹을만한 게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죠. 물자를 최우선으로 돌리고 있는 군의 실정이 저런데 민간인은 표현이 안 되어 있지만 아사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임에도 제국은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2차대전 독일 군부 상층부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죠. 전쟁을 지속했다간 남는 건 없고 모두 파멸뿐이라는 생각에 엘리트들이 일으킨 반란, 이 작품은 2차대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서 유사하게 흘러갑니다. 타냐를 비롯해 어떤 고위 장성(이름 자체가 스포일러라서, 이하 온건파)은 확전을 막기 위해 어떻게든 전쟁 지속 강경파를 축출하고 싶어 하는데요. 피폐해질 데로 피폐한 국내 사정과 젊은이는 다 산화해버리고 어린아이와 노인들 밖에 없는 나라에서 전쟁 지속은 그야말로 기름을 드럼통째로 짊어지고 불에 뛰어드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죠. 이쯤에서 종전을 맺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글쎄 이넘의 강경파가 물자 부족으로 뭘 잘못 처먹었나 느닷없이 남쪽 동맹이자 중립국인 '이르도아 왕국'을 치자며 설레발을 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르도아 왕국은 아직 뭔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 꿈자리가 사납다고, 그나마 남쪽(이르도아 왕국)에서 조금이나마 물자가 보급되면서 산소호흡기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주제에 마지막  숨구멍까지 막아버리자고 하니 타냐로써는 미칠 노릇이죠. 게다가 강경파는 '자네, 승진할 생각 없나?' 이럽니다. 유능함의 끝은 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독으로 돌아온 꼴이 되어 버렸죠. 침몰 중인 배에서 뛰어내려 다른 배로 갈아타듯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타냐로써는 기분 좋은 제안일 리가 없어요. 전쟁 초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대놓고 거부하자니 이미지가 안 좋이 질 거 같고, 다른 회사에 가서도 이전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이력으로 쓸려면 좋은 이미지로 나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보니 발을 뺄 시기를 자꾸 놓쳐만 갑니다.

 

그래서 결행, 일단 내가 살고 봐야죠. 회사 생활하면서 제일 짜증 나는 부류가 사람이 어쩌다 한번 실적을 높이면 그 기준에 맞춰버리는 상사가 아닐까요. 데이터로 보여주는 국내 물자 사정을 들이밀어도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데 앞으로도 해봐라라고 하니 미치고 졸도할 노릇. 강경파가 그렇다고 '무타구치 렌야(자세한검색 해보셈)'도 아니라는 것에서 더욱 짜증이 밀려올 뿐입니다. 사람이 악에 받치면 상대에게 이런 말을 하죠. '밤길 조심해라.' 그렇게 요단강 건너까지 친히 모셔다드립니다. 이제 종전을 맞이할 수 있겠지. 근데 나비 쫓아 낭떠러지로 쫓아가본 적이 있나요. 발밑을 신경 안 쓰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은 결과 목숨이라는 비싼 대가를 요구하죠. 강경파를 없앴더니 온건파가 왜 설레발을 치냐고요. 나도 남쪽(이르도아 왕국)을 좀 쳤으면 좋겠는데...

 

분명 얻어맞고 시작한 전쟁인데 왜 자꾸 말릴까. 때린 놈이 벌을 받아야지 왜 자위적 차원에서 반격한 피해자가 되려 나쁜 놈이 되어 온 사방에서 두들겨 패냐고요. 세상에 이렇게 부조리한 것도 없을 테죠. 법에 정당방위의 요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보통 국가라면 과도한 반격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아닌 나라도 있겠지만) 타냐의 제국엔 이런 법률이 없나 봅니다. 난 한 놈만 팬다는 신조에 따라 제일 처음 내게 싸다구 날린 놈만 줘팼으면 되었을 텐데 꿈자리가 사납다고 눈에 뵈는 게 없이 광역 싸다구를 날렸으니 다구리 당해도 어쩔 수가 없죠. 문제는 광역 싸다구 날린 거에 대해 일말의 반성조차 안 하더라는 거. 종전을 기약하며 강화를 모색하러 갔더니 '너 님 미친 거 아님?'이라는 소리를 들어 버립니다. 뺨 한대 맞은 것에 불과한데 반격이랍시고 상대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고도 반성의 기미기 없으니 주변의 시선이 고을 리가 없어요.

 

그렇게 타냐와 그녀의 부대는 새로운 전선에 투입됩니다. 여기서 강경파의 확전을 그토록 꺼려 해놓고 그녀는 왜 발을 담그는 걸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엔 필자의 몸 상태가 안 좋아 이야기의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한 측면도 있지만 확전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나 거부감 없이 선봉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더니, 그녀와 그녀의 부대는 거지도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제국 내 물자 상황은 보리 죽도 못 먹을 정도로 처참한데 남쪽으로 내려오니 흰 빵에 고기에 원두 등 눈에 돌아갈 지경인 거죠. 출동이 떨어져 나가야 되는데, 군율 하면 타냐만큼 빡신 상관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부대원들이 입에 뭔가를 욱여넣기 바쁜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노가다하는 타냐는 웃겨 죽습니다.

 

맺으며, 고도의 정치적 이야기라든지 이데올로기 등 범인(凡人)으로써는 허들이 높은 이 작품에서 그나마 타냐와 그녀의 부대원들이 부대끼는 이야기로 숨통이 트이곤 하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 타냐는 별로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읽는데 좀 시간이 많이 걸려 버렸군요. 그래도 후반에서 타냐가 꼼쳐둔 초콜릿을 부대원에 빼앗기게 되자 시무룩해지는 것이나,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나(직설적으로 표현은 안 되어 있고 이 작품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신사적으로), 노가다하는 모습에서 조금이지만 유쾌하기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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