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공작으로 전생했으니까, 이번엔 너에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5 - Novel Engine
아이다 리즈무 지음, nauribon 그림, 박경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있어요. A라 지칭해보죠. 이 A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학원물에서 흔히 나오는 이지메 당하는 학생을 보다 못해 나서서 구해주는 같은 히어로 같은 사람이라고 할까요. 자, 이걸 다르게 해석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인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힘(혹은 능력)은 개똥도 없으면서 조난자를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같이 조난 당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필자 주관적). 순화해서 언급해보자면 흔히 이런 사람을 일컬어 발암이라고 하죠. <- 동일인물 A가 있어요. 가지 말라고, 현실을 직시 시켜줘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A는 무작정 나섭니다. 이것은 용기일까 만용일까. 여기서 웃긴 건 자기(A) 힘으로 사람을 구한 게 아니라 이중 조난 당할까 봐 옆에서 말리던 사람들이 힘을 보태줘서 조난자를 구하게 되는 경우인데요.


여기서 A의 능력으로 조난자를 구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했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A의 용기를 찬양하죠. 이게 정녕 올바른 사회관일까? 힘을 빌려달라며 모두를 설득해서 조난자를 구한 거라면 당연히 A의 용기라 할 수 있습니다. 자, 학원물에서 이지메를 당하던 학생을 구해준 A는, A의 용기에 의해 이지메 당하던 학생이 구해진 걸까? 필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왜? 불량아들은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서 떠난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 예로 동인지 등을 보면 참담함으로 이어지는 걸 종종 볼 수가 있죠. 이제 이걸 이 작품에 대입시켜 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슈야 뉴케른'이고, 시점은 주인공 '데닝'이죠. 이번 5권은 여성 히로인들에 이어 처음으로 주인공 이외의 남자 등장인물 '슈야'가 메인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그러니까 이번 발암은 '슈야'라는 소리랄까요. 아무튼 데닝은 초일류 마법사이지만 전면에 나서서 사건들을 해결하려 하지 않아요(대부분 뒤에서 해결). 하지만 그냥 그저 그런 마법사인 슈야는 그냥 덮어놓고 나섭니다. 자, 여기서 감이 왔을걸요.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힘은 개뿔도 없으면서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설레발을 치는 슈야와 이걸 또 용기랍시고 포장을 해대는 데닝 포함 주변 인물들. 이번 5권은 앞서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마냥 항암제로는 도저히 치료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어요(필자 주관적). 슈야는 괜스레 데닝을 라이벌로 인식하고 그의 업적(무려 드래곤 슬레이어)에 조바심을 내며 나도 강해지겠다고 다짐합니다. 사실은 어릴 적부터 그는 전장에서 공을 세워 훈장을 받겠다는 둥 강해지려는 동기가 조금 불순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에겐 힘이 없어요. 능력도 없고요. 이상만 높을 뿐이죠. 그래도 뭐, 억척같이 노력해서 성장하는 거라면 칭찬받아 마땅할 겁니다. 하지만 그(슈야)는 자신 스스로 강해지기보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슈야)과 함께하고 있는 '엘드레드'라는 불의 대정령의 힘을 이용해 모험가 생활을 이어가죠. 여기서 또 갈리는 게 불의 대정령이 슈야의 용기에 감명해 힘을 빌려주는 거라면 어느 정도 슈야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명 개연성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불의 대정령은 슈야가 어찌 되든 상관없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슈야는 자심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죠. 이걸 모두 알고 있는 데닝은 슈야에게 엘드레드(불의 대정령)를 버리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슈야는 라이벌인 데닝의 말을 들을 리가 없어요. 이미 이쯤 오면 슈야는 정신이 딴 데 가 있거든요.


미궁 도시 '제네라우스'가 몬스터 대군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데닝은 이 침공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슈야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똑똑히 알고 있고요. 그래서 미궁 도시 방어전과 슈야를 구하기 위해 데닝도 미궁 도시로 오죠. 슈야는 침공 받는 도시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힘은 개뿔도 없으면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이 도시는 나를 필요로 한다며 착각하고, 강해지려 찾아와서, 강한 파티에 가입도 하는데, 웃긴 게 강한 파티를 이끌 정도면 눈썰미 정도는 있을 텐데 자신들이 끌어들인 놈의 미숙한 점도 눈치 못 챈 건지 그냥 재미로 끌어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슈야를 부추기기만 하니 그가 기고만장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을 테죠. 그래서 그 대가(슈야를 부추긴)는 죽음으로 갚아라라는 복선은 초장에 나왔고 결국 회수되고 마니 희극이 따로 없었습니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데닝은 슈야를 말리려 했죠. 하지만 스포일러(1)는 할 수가 없는지라 대놓고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통에 오히려 슈야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슈야는 적선 받는다고 마음 상했는지 몬스터 대군 속으로 욱 나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망각하고, 자신 때문에 눈물짓는 여자(알레시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주변보다 오로지 앞만 보고, 강해지겠다며 노력이라기보다 방종을 해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힘이 없더라도 주변을 이끄는 카리스마까지는 아니어도 그의 행동으로 인해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면 진정한 영웅물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독선이라고 하죠? 주변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도래하는지 안중에도 없는, 결국 늪에 조난자 구하러 갔다가 같이 빠져요.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으로 움직인 결과는 비참할 따름입니다.


결국은 데닝이 우려하던 대로 흘러가버립니다. 이번 이야기에는 시사하는 게 세 개가 있어요. 상대편이 뭔가를 호소하면 듣는 척이라도 해라. 그리고 용기와 만용을 헷갈려 하지 말자. 마지막 하나는 만용을 용기라 포장하지 마라. 앞뒤, 똥오줌도 못 가리면서 나대면 고통받는 건 주변 사람이다. 4개네. 울부짖는 슈야의 일러스트는 왜 이리 꼴불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 죽고 나서야 자신의 미숙함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랄까요. 하지만 버스 떠난 뒤에 손들어봐야 노빠구입니다. 이런 놈을 미래에는 구국의 구세주라고 칭하니 얼척이 없어요. 그리고 더 얼척이 없는 일도 일어나요. 작가가 줏대가 없는 게 악으로 정했으면 그대로 밀고 가던가 알고 보면 착한 놈은 또 뭔지 사람을 무진장 죽인 적 우두머리 정체는 사실... 보고 있자니 뭐 어쩌라는 심정.


맺으며, 이 작품도 하차합니다. 필자 주관적이지만, 온통 발암 천지입니다. 이렇게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그리는 것도 참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죠. 데닝은 이런 발암 종자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살이 쪽 빠져서 더 이상 돼지가 아니게 되어버렸군요. 역설적이게도 살이 빠지니 훈남(이 작품 기준)이 되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놈의 '나는 알고 있다'라고 자꾸 스포일러를 해대는 것도 꼴불견이고 알고 있으면 빠릿하게 해결을 하던가 속으로 지껄인다고 상대가 알아주나? 상대가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데닝이 속으로 지껄이는 걸 어찌 알고 수궁해준단 말인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발암입니다. 그나마 고급 발암이라면 참고 보겠는데 이건 뭐...


  1. 1,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속이라는 설정입니다.
    데닝은 애니메이션을 현실에서 다 봤기에 앞 일을 다 알 고 있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드 아트 온라인 22 - J Novel
카와하라 레키 지음, abec 그림, 박용국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하세요.




이야기는 BD와 DVD에 첨부되었던 특전 부록을 서적화한 것입니다. 요컨대 외전이라는 소리죠. 총 4화로 구성되어 있고요. 데스게임 SAO 시절 키리토와 아스나가 결혼 직전에 있었던 로그 하우스 관련과, 아스나가 변태에게서 구출된 직후의 ALO 시절, ALO에서 숨겨진 퀘스트 '무지개 다리'를 모두와 진행하던 나날, 그리고 본편 통틀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마더스 로자리오'에 등장했던 유우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특징은 본편에서 못다 한 이야기랄지 보충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순서대로 언급해보자면 우선 키리토의 경우 그는 어릴 적 부모와 사별하고 이모 댁에 얹어 살면서 정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살았더랬죠. 이모는 나름대로 키리토를 잘 키웠던 모양이지만 친부모에 대해 숨긴거라든지에서 본인은 사랑(혹은 사람의 정)이라는 감정에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래서 자신은 타인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요컨대 모작품의 누구처럼 마음에 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까요. 이 감정의 발로가 SAO가 데스 게임이 되었을 때 혼자 다른 마을로 가게 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또한 아스나를 만나 깊은 관계가 되지 않은 채, 늘 그녀(아스나)는 보다 높은 곳에 올라 사람들을 이끌어야 된다며 자신의 감정에 아스나가 들어오지 못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줄곧 보여 왔더랬습니다. 여담이지만 외전인 프로그레시브에서는 보다 친밀한 관계로 발전은 합니다만. 외전은 외전이니. 그러던 것이 데스게임이 되고 1년하고도 반이 지났을 무렵에 또다시 아스나를 만나 어쩌고 저쩌고하는 과정을 거치고 아스나에게 프러포즈를, 숲속에서 발견한 로그 하우스 앞에서 하려고 했는데 그 로그 하우스가 어디로 간겨같은 상황이 벌어지죠.


상대를 믿는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의심을 하지 않는다. 분명히 집이 있었는데 없어요.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미심쩍어 하는 게 보통이죠. 숲속에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꾸밀 아담한 집이라는,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날 놀리나 싶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아스나의 반응은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고, 전적으로 그의 말을 믿는 모습에서 배려란 무엇인가를 보여줘요.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마주 보는 거라 하죠. 마주 보고 진실된 마음을 전하는 것. 집이 없어진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밝은 햇살이 내리비치는 로그 하우스 앞에서 그녀와 마주 보며 그토록 찾고 싶었던 것을 그녀를 통해 얻게 됩니다. 마음을, 이렇게 하나의 감정은 정립이 되었으나 여전히 또 하나 해결해야 될 감정이 남아 있는데요.


키리토가 아스나와 해어지고 27층에서 만난 검은고양이단과 그 단에 소속된 사치라는 여성 플레이어. 사치는 어쩌면 키리토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정에 굶주리고 사랑에 의구심을 품고 살았던 그가 사치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렸던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 테죠. 그래서 레벨을 속이고 같이 다녔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런 키리토에게 천벌을 내리듯 검은고양이단과 사치는 얼마 뒤, 그 사건은 키리토의 마음에 삶과 죽음이라는 각인을 새겨주고 더욱 마음을 닫아 버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결국 검은 고양이단과 '사치'의 죽음은 그를 솔로 플레이어로 나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버렸죠. 키리토가 타인의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어쩌면 사치의 죽음이 원인이었을 테죠.


데스 게임에서 벗어나 ALO에서 살아가던 키리토와 아스나, 어느 날 아스나에게 이상 현상이 일어나요. 유체이탈 같은 정신이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듯한 현상을 겪죠. 프로그램상 이상은 없어 보이는데, 이 현상을 추적하면서 그 끝에 사치가 있다는 걸 알아가요. 키리토가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사치의 죽음, 응어리 맺힌 한을 풀길 없이 살아왔던 세월, 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본편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들이죠. 삶과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으면서 본편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욕먹고 있는 키리토 입장에서는 억울한 누명을 벗게 해주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가슴 먹먹하게도 합니다. 어쩌면 사치는 키리토의 마음에 아스나보다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할까요.


세 번째 에피소드는 무난하게 흘러가니 패스하고 네 번째 에피소드는 마더스 로자리오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비기닝 같은 이야기입니다. 미리 언급하자면 마더스 로자리오를 읽기 전에 이 외전을 먼저 읽는 걸 추천한다고 할까요. 그러면 감정이 복받쳐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을지도 몰라요. 아직은 유우키의 언니 '란'이 살아 있고, 슬리핑 나이츠의 리더 '메리다'가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에이즈가 발병하기 전에 학교를 다니던 유우키가 소문으로 인해 절망을 안게 되고 그로 인해 병이 발명함으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어 버리는 안타까운 이야기. 하지만 그에 지지 않고 모두가 나를 멀리해도 언니와 함께 가상 세계에서 힘껏 살아가는 걸 선택한 유우키의 용기가 구구절절하게 흐릅니다.


본편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유우키는 아스나에게 용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준 인물이라 할 수 있죠. 인생에 방향점을 제시해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런 유우키도 사실 마음의 벽을 쌓고 타인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활 속에서 어느 날 매사 적극적이고 활달한 메리다를 만나 타인과 부딪혀서 마음을 여는 게 무엇인지 자신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가는 장면 장면들은 마음을 울리게 합니다. 또한 똑똑하고 야무지게 행동하는 언니에게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자 마음을 터놓고 있는 언니와 함께, 언니와 함께라면라는 부분은 본편(마더스 로자리오) 시점에서 본다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하죠. 


본편에서 언니는 이미... 촛불은 마지막으로 타오를 때 가장 빛을 낸다고 하죠. 유우키가 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언니와 메리다를 먼저 보냈으면서도 본편에서 활달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얼까. 본편 유우키의 마지막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웃으면서 갈 수 있다고, 이 외전은 그 편린을 보여줍니다. 단란했던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도 같은 병으로 먼저 보내고, 언니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길잡이를 해줬던 메리다까지.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 나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맺으며, 조금은 마음이 먹먹해지는 에피소드였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22권으로 하차를 결정했군요. 이유로는 번역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쉼표 남발로 맥을 끊기 일쑤였고, 엔터를 처서 줄 바꾸기가 싫었는지 상황이라던가 대사를 이어 붙이다 보니 문맥이 요상하게 되어 버렸더군요. 요컨대 '어쩌고 저쩌고 되었고, 어쩌고 저쩌고 되었고,' 같은 문맥이 더러 보인다고 할까요. 보통은 어쩌고 저쩌고 되었다. 하고 나서 다시 어쩌고 저쩌고 되었다 같이 이야기를 붙이던지 엔터를 처서 다음 줄에 쓰든지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고소당할 각오로 써보자면 2류 소설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고 할까요. 예전 한창 인터넷 아마추어 소설이 도서로 나왔을 때를 보는 듯한. 대체 왜 역자를 바꿨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이래서 역자 바꿀 때 신중해야 하건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와 환상의 그림갈 14 + - 여전할 수는 없어,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으니 주의 하세요.

 

 

 

어디서 흘러 들어왔는지조차 잊어먹고, 떨어진 대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도 모를 때. 나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하고 진지하게 고찰하면 이런 작품이 태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누가 도와주길 바라고,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길 바라는 새끼 새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끈질긴 생명력으로 잎을 피우는 잡초처럼 밟혀도 밝혀도, 시궁창을 기어도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인가. 이 작품은 사람의 생명력이란 덧없이 연약하면서도 강하다는 걸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어리바리한 사람들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을 먹어도 새끼 새처럼 올망졸망 따라오는 사람들을 내치지 못해 결국 어미새가 새끼 새를 길러내듯 길잡이 역할을 했던 사람의 최후. 세상은 착한 사람부터, 용기 있는 사람부터 죽어 나간다고 하죠.

 

이번 +(플러스)의 이야기는 외전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세계로 전이하면서 반드시 인간으로 전이한다는 개념을 비꼬듯 인간 외의 생물, 가령 판타지에서 흔히 등장하는 잡몹 고블린으로 전이(혹은 환생)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고블린으로 전이한 주인공 일행이 정석적으로 전이한 주인공 일행(1)과 마주하게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라고 해도 그렇게 진지한 고찰은 없고, 고블린으로 전이해도 인간으로 전이해도 배 굶는 건 똑같다는 개그가 들어가 있을 뿐이군요. 오히려 고블린 일 때가 더 처절해서 풀을 뜯어먹고 날 버섯을 먹고 그러다 아무거나 주워 먹고 배탈 나는 전형적인 거지 팔자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서글플 따름입니다.

 

그리고 다음 단편은 시호루와 유메가 각각 직업 길드에 들어가서 의용병으로써의 기술과 스킬을 배워가는 7일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시호루는 자칭 마법사로써 세계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나잇살 제대로 먹은 영감에게 매번 성희롱(추행)을 당하면서도 도망가기 보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런 남자는 조심해야 된다는 진리를 알아 가죠. 아마 전세에서 시호루는 왕따 당하고 있었지 않았나 싶은 게 그 나이대의 전형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뚱뚱하고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의 기분보다 남의 눈치를 살피는 등 있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보다는 유감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은 참 안타깝게 합니다. 이 성격은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아서 하루히로 파티가 어두침침해지게 만드는데 일부분을 일조함에도 본인은 자각을 못하고 있으니.

 

유메는 사차원 그 이상을 보여줘서 온통 잿빛투성이뿐인 이 작품에서 한줄기의 빛과도 같게 합니다. 귀가 어두운지 아니면 마음이 항상 4차원 속에 살아서 그런지 사람 말을 사차원적으로 풀이하는 통에 듣는 사람을 황당케 하죠. 길드에 가면서 버젓이 문이 있는데도 힘들게 담을 기어오른다던지. 7일간 자신을 가르쳐줄 사부의 권위 따윈 기르는 개에게 줘버리는 성격은 좋게 말해서 넉살에 좋다고 할까요. 권위를 울부짖는 사부의 마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비집고 들어가서 앉아 버리는 대범함이랄지 상냥함이랄지 천연 기질이랄지 유메의 사차원은 사람을 물어 버린다는 늑대개조차 온순하게 만들어 버리죠. 그렇게 7일간 사부와 지내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 들어내면서 이러다 끝에 맺어지는 건 란타가 아니라 사부가 아닐까 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지는 게.

 

음... 그리고 '마나토', 하루히로 일행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될 길을 제시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길잡이 역할을 해줬던,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첫 이미지는 전세에서 아마 사기꾼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림갈로 날려 오면서 기억을 모두 잃었지만, 사람은 기억을 잃어도 몸에 밴 습관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죠.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그런 느낌. 덤으로 남을 믿지도 않고, 기억도 없는 낯선 곳에 떨어져 그래도 살아 보려고 노력을 해보고 싶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진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재로 보이는 사람들은 지들끼리 뭉처서 떠나버린 시점에서 마나토는 자신이 살려면 어찌해야 될까.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찌끄레기만 모인 하루히로 일행이었다는 것.

 

그래도 지끄레기 인생이어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될까, 리더를 자처해서 이들을 이끌게 되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게 이놈들 의욕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시키는 것만 하고 시키지 않으면 안 하는, 굶어죽게 생겼는데도 아무것도 안 하니 내(마나토)가 나설 수밖에요. 모욕을 당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고블린을 잡으러 가서 개고생을 하고 그럼에도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나날, 파티는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그래도 잘 살아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하나하나  성격을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가던 어느 날, 조금은 무리해도 좋겠지. 하나뿐인 속옷을 빵꾸나도록 세탁해 입는 것도 지겨웠는데(이건 본편의 이야기), 마침 돈 좀 있어 보이는 고블린 두 마리를 잡아 보겠다고 했던 게 분수를 초과했던 거겠죠.

 

언제나 파티에서 분란만 일으켰던 똥 덩어리 '란타'가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늘 입만 열었다 하면 성희롱에 타인을 멸시하고 깎아내리고 욕하고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흐름을 타는 갈대보다 대쪽같은 대나무가 되어 부러지지도 못하고 꺾여버릴 거 같았던 그 란타가요. 그는 다룽갈에서 나와 어디더라 사우전드 벨리던가에서 기어이 하루히로 파티와 갈라져버렸더랬죠. 사실 란타는 입은 험해도 참 올곧고 올바른 성격이랄까요. 남의 눈치를 살피는 시호루와는 정반대로 누구나 입 밖으로 꺼내길 꺼리는 상황을 대신 말해서 상황을 직시하게 만들고 그럼에 자신이 모든 비난을 짊어지었던. 원래는 주인공이 해야 될 대사들을 란타가 대신해줬다고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듣는 사람에게 잘 전달 되도록 조리 있게 말해야 되는데 너희는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속을 벅벅 긁는 투로 말하니 좋아질 리가 없었죠.

 

그런 란타가 사우전드 벨리에서 찢어진지 1년 만인지 3년 만인지(본문에서 1년과 3년을 언급하는데 어느 시점인지는 안 나와서 헷갈림)만에 등장해서는 엄청 성장한 모습을 보이지 뭡니까. 단순히 실력적으로가 아니라 성격적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마치 나루토가 소년 시절에서 갑자기 나뭇잎 마을 촌장이 된 모습이랄까요. 입만 열었다 하면 똥만 내뱉었던 성격(2)은 둥굴어져서 타인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란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는 사우전드 벨리를 떠나 하루히로 일행과 마찬가지로 오르타나로 여행 중인데요. 이세계는 혼자서 여행해도 안전하다 할 만큼 그리 녹록한 게 아니죠. 그런 여행이 란타로 하여금 성장하게 한 것일까요. 여행의 일부분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직시하고 자신의 마음에 무언가를 묻는 장면은 정말 가슴 먹먹하게 하였습니다.

 

맺으며, 앞의 내용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동안 똥 덩어리 혐오감 일색이었던 란타가 사람이 되어 돌아온 부분은 정말 이 작품에 있어서 최대의 백미가 아닐까 했습니다. 스포일러라 조심스러운데, 파토라는 오크와 인간 사이의 혼혈의 아이가 나와요. '구모'라고 인간에게도 오크에게도 멸시를 당하는 종족이죠. 구모는 오크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힘들게 살아가야 되는데 그런 구모의 아이와 란타가 만나요. 이미 예상은 했습니다만. 란타를 쫓아온 건지 아이를 쫓아온 건지 오크의 추적자들이 쏜 화살에 아이가 맞아 버립니다. 가망은 없어요. 예전의 란타였다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의사도 약도, 회복술사도 없어요. 그저 화살을 맞은 아이를 들쳐 업고 여행길에 오르죠. 그는 아이에게 희망에 찬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그저 평소대로 이야기를 하죠. 그리고 아주 맛있게 구워진 물고기를 먹여 줍니다. 또 그리고 언덕에 올라 노예로 지냈다면 못 보았을 풍경을 보여주려 하죠. 하지만 아이는...

 

필자가 이렇게 가슴 먹먹해지기는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이것이 란타에게 있어서 성장의 원동력이었을까. 이런 죽음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복선, 그는 빌어먹을 세상이라고 욕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을 테니까요. 그저 자신은 자신의 마음에 잘 따르고 있냐고 반문하고 있을 뿐. 정말로 란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크엘프라고 일컬어지는 회색 엘프와의 여행, 그 회색 엘프와의 여행 종착점에서 본 또 다른 인생을 보며 란타는 또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이 남자가 사는 법은 강자에겐 꼬리를 살랑살랑, 약자에겐 매도를 퍼부으며 늘 자신만을 생각하던 모습에서 타인을 위해 움직일 때. 그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는 걸 여행 중에 깨달은 것인지 란타도 조금은 이성이 다가올 여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정말로 하루히로 일행의 여행보다 란타의 이 단편이 100배는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더군요. 덕분에 마나토의 최후가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마나토의 최후도 참 먹먹하게 만드는...


 

  1. 1, 그러니까 한 명의 주인공을 분할해서 고블린도 주인공이고, 인간의 모습으로한 주인공도 출연 시켜서 둘(자신)이 마주보게 하는 것
  2. 2, 노파심에서 쓰지만 나루토가 이렇다는 소리가 아님, 성격적으로 성장하였다는 뜻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블린 슬레이어 11 - L Books
카규 쿠모 지음, 칸나츠키 노보루 그림, 박경용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날, 동굴에서 죽을 운명이었던 나 자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이유는 무얼까. 겨우 어른으로 성장하여 첫 모험을 떠난 날, 가볍게 들뜬 마음으로 들어간 동굴에서 나만 살아온 사실은 주박이 되어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 옥죄어 온다. 정확히는 무도가 소녀도 살았지만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된 소녀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자신은 계속 모험가 일을 하는 현실. 여신관을 보고 있으면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여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녀가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나날 속에서도 그만두지 못하고 나아가기만 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지키고, 치유하고, 구하라.' 지모신의 교리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모험가의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일까. 그날, 고블린 슬레이어에게 구해진 이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모험가로써 경력을 쌓은 그녀는 어엿한 중견 모험가로 성장 하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선 어떤 것을 해야 할까요. '자만하지 않는다. 성실히 임한다.' 자, 여신관의 주위에 온통 은등급뿐이죠. 작중엔 별로 표현은 안 되어 있지만, 그렇다면 신입 등 생각이 꼬인 사람들이 그녀의 위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일목 묘연해집니다. '은등급이 떨어트리는 고물을 주어먹을 뿐 니가 하는 게 뭐가 있냐고.' 하지만 그녀(여신관)의 승급이 결정됩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모험가 중 높은 등급을 가진 사람 중에 소위 말하는 양아치가 없다는 게 특징인데요. 제대로 올바른 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렇다는 건 여신관의 평가도 제대로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여신관)의 노력의 결과. 그날, 동굴에서 죽을 운명이었던 그녀는 비록 도움을 받았을지언정 자기 발로 분명히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여신관에게 여상인이 찾아옵니다. 언제였더라. 5권 때였군요. 가끔 편지를 주고 받기도하는 여상인의 정체는, 판타지이긴 한데 중세 시대를 표방하는 이 세계에서 귀족가의 딸로 태어나 부족함이 없는 삶에 뭔 불만이 있었는지 모험가를 하겠다며 집안 대대로 전해져오는 가보(검)을 들고 뛰쳐 나왔다가 고블린에게 된통 당해버렸던 영애 검사인데요. 한때 좌절하여 집에 틀어박히나 싶었는데 어느새 일어서서 상인을 하고 있었군요. 처음부터 이쪽 계통으로 나갔으면 대성을 하였을 텐데라는 느낌으로 어용상인(왕궁에 직납하는 상인)까지 꿰차선 승승장구 중이랄까요. 그러나 왕과 검의 처녀(지고신의 대주교, 금등급, 세계를 구한 영웅)까지 그녀(여상인)를 각별히 여길 만큼 성공한 인생이라지만, 그 한 번의 잘못으로 여상인은 여신관보다 더 어리면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생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여신관과 여상인, 그리고 둘의 공통점은 고블린 슬레이어. 시작은 같았어도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에게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설친다며 어리석다고 비난도, 쓸데없는 다정함도 없는 그에게서 그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 갔었습니다. 만약 여신관이 좀 더 일찍 고블린 슬레이어를 만났더라면 미래는 바뀌었을까. 처음 파티 그대로 조금식 성장하는 나날, 고블린 슬레이어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신들이 굴리는 주사위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는 게 여신관에게 있어서 행운일까 불행일까. 그리고 여상인에게도. 이번 이야기는 어쩌면 신들이 굴리는 주사위의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면, 어쩌면 여상인도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에 끼여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구성입니다.

 

여상인이 가져온 의뢰. 동쪽 국경을 넘은 어떤 나라에서 고블린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며 조사를 명 받았는데 이들에게 호위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길을 떠나는 고블린 슬레이어 파티, 사방 세계로. 그동안 다크 계열을 표방하였다면 이번 이야기는 어딘가 몽한적인 느낌을 선사하는데요. 필자의 감성이 말라 버려서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종적이 대거 출연하고, 사막을 건너면서 신기루를 보는 듯한. 신화를 노래하고 그 신화를 따라 발자취를 남기는, 그동안 고블린은 몰살이라며 눈에 뵈는 게 없이 나댔다면 이번엔 모험이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파스텔풍 여행길을 보여주고 있군요. 특히 여신관과 여상인이 보여주는 우애 깊은 자매 같은 모습은 흐뭇하게 합니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때 보다 빨리 여상인도 고블린 슬레이어를 만났다면 미래는 바뀌었을까 싶을 정도로...

 

맺으며, 입만 열었다 하면 고블린 고블린 거리는 고블린 성애자 비중이 줄어 버렸습니다. 대신에 여전히 여신관의 압도적인 성녀 포스는 대단했는데요. 보기에도 끔찍한 고블린들이 흘린 오물 속에서 신음하는 여자들을 일일이 챙겨주고 보다듬어주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웠군요. 그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여상인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모습 또한 애절하게 합니다. 노력한다. 자만하지 않는다. 성실히 임한다. 그리고 구한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죠. 여신관이 딱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는데요. 승급했다고, 살아 돌아왔다고 우쭐해하지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할 때 주변의 평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 그리고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밑천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며 착실히 성장해가는 여신관이 참으로 눈부시다 할 수 있었습니다. 여상인 또한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자신이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실천하면서 성장이란 이런 건가 싶었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험가가 되고 싶다며 도시로 떠났던 딸이 S랭크가 되었다 4 - L Books
모지 카키야 지음, toi8 그림, 김성래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저씨, 숲에서 또 딸을 줍는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일찌감치 모험가의 길에서 탈락해 고향으로 돌아와 유유자적 살아가던 아저씨에게 찾아온 두 번째 인연. 숲의 이변을 감지하고 감시하던 때에 주변 모든 걸 집어삼키며 부풀어 오른 마력의 덩어리를 어떻게 처리를 했더니 그 중심에 무뚝뚝한 어린 소녀가 있더라는 말씀. 그 소녀는 마왕이 되겠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마왕이 되다 만 잔재라고 할까요. 이 소녀가 어디서 어떻게 숲으로 흘러왔는지는 모릅니다. 자의적으로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숲의 기운을 흩트렸는지도 소녀는 분간도 못하고 있었더랬죠. 아저씨는 동료들과 간신히 마왕이 될뻔한 마력을 없애긴 했지만 남겨져버린 잔재, 어린 소녀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합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암울한 미래 밖에 선사하지 않는 마왕이라는 잔재를 훗날을 위해 이 어린 소녀를 죽어야만 할까.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나는 마왕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몰라(이하 우리 딸)'이라는 작품을 보면 숲에서 주은 여자아이를 정성껏 기르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이 작품도 참으로 유사하게 흘러가죠. 그러나 이 작품이 다른 점이라는 부녀 관계에서 부부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는 건데요. 이 작품의 특징은 출생이야 어떻든 소중한 생명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정성껏 기르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긍지가 무엇인지 보여주려 하죠. 사실 손바닥만 한 마을이고, 주변에 다른 마을이 없는 오지 중에 오지의 숲에서 아이가 버려져 있다면 의심부터 해봐야 하잖아요. 우리 딸에서 라티나는 아버지의 인도를 받았고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움직였다지만 이 작품의 히로인 안젤린의 경우는 갓난아기 때 발견이 되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작가 후기에서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언급함)은 참으로 간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정체도 모르는 아이를 주워다 길렀으니까요. 그것이 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간으로 길러낸 것에서 아저씨의 인품을 알 수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요. 그러나 안젤린 때는 마치 뻐꾸기처럼 몰라서 길렀다지만, 이번에 두 번째로 맞이한 딸은 눈앞에서 마왕의 잔재라는 걸 알면서도 대려다 기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토'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죠. 미토는 아저씨를 아빠라 부르며 매우 잘 따르고 있습니다. 아저씨도 안젤린과 마찬가지로 미토를 친딸처럼 예뻐 하며 기르기로 작정을 하면서 흐뭇한 전개가 예상되지만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고 역설하지 시작합니다. 이전부터 '솔로몬'이라는 사교가 등장하며 미토와 더블어 안젤린도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는 복선이 나와 버렸거든요.

 

아무튼 아저씨는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추수를 서두릅니다. 미토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손에 닥치는 대로 입에 넣기에 바쁘고 그때마다 아저씨는 타이르는 게 여느 가족물에서 볼법한 훈훈함이 있습니다. 손녀(망나니 여엘프) 찾아 삼만리를 단행했던 노엘프 '그라함'은 어느새 톨네라 마을에 녹아들어 미토를 돌보는 모습은 손주를 대하는 할아버지 그 자체여서 이 역시 흐뭇하게 하고요. 미토는 그라함을 할부지라 부르며 잘 따르는 게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그런데 조금 더 이런 흐뭇함을 보고 싶은데 작가는 이야기를 진전 시키려는지 조금식 안젤린의 출생에 관련해서 진실에 다가서려 하는군요. 1년 전 마왕을 무찌른 공로를 치하한다며 공작가에서 훈장을 준다며 오라는데 이제 와서 훈장이라니 뭔가 안 좋은 냄새가 나지만 천민 취급 당하는 모험가 입장에서는 귀족이 오라는데 안 갈 수도 없어요.

 

역시나 도착하니 정치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고, 안젤린은 휘말려 고초를 겪죠. 모험가라 괄시하면서 자신의 치적을 위해 안젤린을 이용하는 더러운 귀족과 그런 귀족과는 다르다는 듯 다가오는 리젤로테라는 어린 소녀와의 인연. 그리고 뜻하지 않게 아버지의 옛지인을 만나면서 아버지(아저씨)에게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젊었을 적 다리를 잃고 방황의 끝에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와버린 아저씨는 늘 가슴 한켠에 가시가 박혀있는 듯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모험가에 대한 미련일까요. 은퇴했다고 믿었던 마음은 나이를 먹어서도 칼을 놓지 못했고 늘 단련에 매달리고 있었더랬죠. 노엘프 그라함을 만나 다시금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아저씨는 가슴에 박힌 가시 제거라는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딸이 살고 있는 올펜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 에피소드에서 아저씨와 안젤린에게 구원받았던 샤를로테 소녀와 벡이라는 소년을 다시 만나는데...

이로써 아저씨는 결혼도 안 했으면서 가족이 자꾸만 늘어 갑니다.

 

맺으며, 뭔가 틀이 잡혀가는 4권이었습니다. 미토와 솔로몬이라는 사교의 등장으로 이 세계에서 마왕의 출현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금 더 밝혀지게 되었군요. 결국은 안젤린의 정체가 마왕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인데요. 미토가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의 마왕은 무언가의 매개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야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톨네라라는 손바닥만 한 마을에서 누군가가 출산을 했다면 소문이 났을 테고 안젤린이 마을 출신이라면 금방 부모를 찾았을 텐데도 그렇지 않다는 건 다른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무언가의 목적을 위해 가져다 놨다는 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미토도 그렇고 아저씨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군요. 이점이 좀 설정 구멍이랄까요. 여기서 문제는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생각하면 구심점이 될 남자 주인공이 좀 빈약하다고 할까요. 물론 아저씨도 좋은 사람이긴 한데 우리 딸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기미가 전혀 없는지라, 복선 떡밥 그대로 회수된다면 안젤린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느끼게 되겠죠. 그때 혼란을 격을 안젤린을 누가 붙잡아 줄까 하는 걱정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