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연금술사는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2 - J Novel Next
노노하라 우사타 지음, OX 그림, 이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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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처음에 주인공 마리엘라가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야 중성적인 외모에 머리도 짧지 여성으로 특징적인 모습은 거의 없다시피 했거든요. 마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열에 아홉은 가던 길에서 멈추고 되돌아볼 정도로 뛰어난 외모가 아닌 열에 아홉은 그냥 지나친다는 평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주인공이자 히로인이 바로 마리엘라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만의 좋은 점이라던가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요. 마리엘라가 미궁 도시로 와서 처음으로 구매한 노예 지크와 흑철 수송대의 링크스가 바로 그렇습니다. 처음엔 주종 관계였던 전자와 거래 관계였던 후자의 위치는 어느덧 역 하렘의 포지션을 잡아가고 있어요.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고기 방패로 운명을 다할 예정이었던 지크는 그녀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이제는 완전히 회복하여 그녀의 보디가드가 되어 있는데요. 범죄자 노예였던 자신을 그저 평범하게 바라봐 주는 그녀의 성품에 이끌려 지금은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근데 나날이 그녀를 향한 마음이 커져서 조금 얀데레 같은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링크스와의 관계에서 지금은 연적 비슷하게 대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기도 하죠. 거기에 더블어 가사를 도맡아 하면서 메이드 역을 자처하고 있기도 하고요. 조금 오글 거려요. 과묵하면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음흉한 것이 아닌 주종 관계를 뛰어넘어 이성으로써의 사모...

 

링크스는 그녀와 처음 만난 날 아무렇지 않게 포션을 써대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상사의 명령에 보호 목적으로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시대는 포션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멸종해버려서 포션이 금값 그 이상이거든요. 옆 나라 가면 살아있는 연금술사가 있긴 한데 그 지방을 벗어나서는 포션을 만들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마리엘라가 있는 지방은 그녀 외엔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보시면 돼요. 그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위기감이 없는 그녀를 보호 할려고 지크와 흑철 수송대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책벌레의 하극상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돈이 될만한 걸 만드는 존재를 감추고 보호하는, 그와 관련해서 일어나는 해프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쓰러 내리게도 하고 안타깝게도 하는데요. 마인에게 벤노와 페르디난드가 있다면 마리엘라는 흑철 수송대의 사람들과 지크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공통점은 두 히로인들을 외부의 검은 마수로부터 지켜준다는 것,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가만히 내버려 둘 세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종막엔 배를 갈라 해부하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마인이나 마리엘라나 위기감은 코딱지만큼이나 없어요. 누구 때문에 고생하는 줄 아냐며 매일을 구박받지만 붕어 3초 머리인지 곧 그런 건 안중에도 없게 되죠.

 

이번에도 그래요. 마리엘라는 지크의 우려를 가볍게 무시하고 미궁 토벌대에 대량의 포션을 납품하면서 결국 그녀의 존재가 발각되고 말아요. '아그위너스 가(家)' 200년 전 연금술사의 맥이 끊긴 이 지방에서 유일하게 포션을 공급하는 그 귀족은 그녀의 존재를 어렴풋이 특정하게 되면서 마리엘라에게 위기가 찾아오죠. 단순히 그녀를 포섭해서 알만 낳는 기계로 만드는 거라면 그나마 나은데 그 이면엔 추악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마인에게 영주가 있다면 여기도 영주 비슷한 존재가 있어요. 점점 더 책벌레의 하극상과 유사한 관계를 보여줘서 흥미가 돋더군요.

 

결국은 마인이나 마리엘라나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의 뒤치다꺼리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연명한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주인공이 이끄는 이야기기 보다 이런 작품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도 미궁 토벌과 아그위너스 가(家)에서 일어난 아포칼립스적 이야기들은 마리엘라와 동떨어져 진행이 돼요. 그 중심엔 포션이 자리 잡고 있어서 마리엘라도 관여될 듯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관찰자 입장에서 그녀는 이런 일들을 지켜볼 뿐이죠. 요컨대 이 작품의 제목처럼 살아남은 그녀는 마을에서 조용히 살면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담히 관찰해간다 할 수 있어요.

 

맺으며, 그녀의 스승에 대한 복선이 풀리나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작가가 배신을 때립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을 들어 주려는 작가의 배려가 아니었나 했습니다. 여기서 그녀의 정체가 까발려진다면 진짜로 배가 갈라질지도 모르거든요. 스승이 발견된다면 더욱, 물론 몇몇 사람은 그녀가 진짜배기 연금술사라는 걸 알아 버리긴 했지만 그녀를 보호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서 배가 갈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하더군요. 그러니까 히로인 모르게 마을 단위로 역하렘이 형성 중이랄까요. 그녀는 그럴 리 없다고 하고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리뷰를 건선 건성 써서 재미없나 하실 텐데,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6.5점을 주겠습니다. 전생물 치트는 아닌데 이세계 사람으로 치트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서 점수가 많이 깎였습니다. 분명 200년 전의 그녀는 별 볼일 없는 연금술사였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포도알이 양분을 다 빨아먹어서 커진 듯한 괴리감 때문에 읽는데 좀 고역스러웠군요. 물론 스승에게서 지옥훈련받았다고 서술되곤 하는데 즉석에서 갖다 붙이는 설정같이 느껴져서 더욱 점수를 깎고 있어요. 그래도 3권이 나온다면 구매는 해볼렵니다. 스승에 관련된 복선이 아직 풀리지 않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흥미진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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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포 현자의 이세계 생활 일기 3 - L Novel
코토부키 야스키요 지음, John Dee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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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도 문화적으로 이세계 침공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동안의 이세계물 설정이야 조금식 다를지언정 근본은 현실의 사람이 이세계로 넘어가 치트를 얻고 현실의 지식을 전파하거나 뭔가를 만들어 낸다. 같은 거죠. 이 작품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아요. 온라인 게임에 신(神)이 심어 놓은 자폭기에 휘말려 이세계로 떠내려간 중년 아저씨 '제로스'는 전형적인 일본인이라는 컨셉을 유지한 채 쌀과 된장 같은 지구에서 먹던 음식을 찾아내거나 지구의 물품을 마법식으로 제작이라는 자기 편할 대로 만들어 냅니다. 농경시대 때의 탈곡기를 만들기도 하고 냉장고도 만들고 맥주도 만들고 오토바이도 만들고... 그 마법이라는 게 참 편리하네요.

 

사실 몇몇 개는 원리만 알면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과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어요. 그예로 오토바이가 되겠군요. 작중에서는 친구 거 만져봤다고 하는데 만져만 보고 만들 수 있으면 현실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가며 고생할 필요가 없겠죠. 한마디로 이 작품은 공과를 깔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뭐 가볍게 읽는 도서에서 설정이 괴팍하다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껏 노력을 들여 만들었고 그걸 읽는 사람들에게 나무야 미안해로 귀결 시키는 건 좀 아니잖아요. 비단 이 작품만 그러는 건 아니긴 합니다. 중2병으로 찬란한 역사를 쓰고 있는 제목이 흔으로 시작하는 모 작품도 있으니까요. 공교롭게도 같은 출판사네...

 

좌우지간 자신은 좋은 뜻으로 행하였다곤 해도 거기서 불러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될까. 마법을 못 써서 반푼이 무능이라고 놀림당하던 세레스티나를 졸지에 대마왕급으로 격상 시켜 놨으니 세레스티나가 겪어야 될 불운은? 아저씨는 어차피 이세계의 고대 때 있던 마법을 쓰게 해줬는데 뭐가 문제? 이러고 있습니다. 니들 그거 연구하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이 시대의 엘리트들이 총망라되어서 연구를 해도 못 풀던 것을 아저씨가 풀어서 무능아가 쓰도록 해줬으니까요. 이것은 마법으로 먹고사는 이세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 그런데 떠돌이 마법사에게 배웠다는 말에 얼렁뚱땅 넘어가는 이세계 지적(知的) 클래스...

 

그런데 이세계 마법에 관련해서 복선이 있어요. 수백 년 전 사(4)신 전쟁 때 고대의 마법이 일부러 파훼 되었다는 것, 이걸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보통 이세계 전생물에서 특징 중 하나인 이세계 주민의 지적(知的) 수준이 낮다.를 피해 갈려는 의도가 있는게 아닐까 해서인데요. 종종 이세계 전생물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을 보다 보면 지구인은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인종이고 이세계 주민은 덜떨어진 존재들이다 같이 은근히 선민사상을 엿보이는 게 있죠. 사실 이 작품도 이런 부분에서 크게 비켜가진 못합니다. 그예로 냉장고 개발이 있는데 얼음 마법은 있으면서 그걸 응용하는 방법은 모르는, 그래서 아저씨가 개발한 냉장고는 잘 팔리고 있습니다.

 

어쨌건 세레스티나는 더 이상 안 나오나 했는데 학원 라이프를 구가하고 있군요. 그동안의 무능아 딱지를 떼고 졸지에 신동으로 올라선 그녀, 그렇담 이제부터 날 깔보던 놈들을 밟아줄 차례이건만 그런 건 없네요. 그래도 이복 오빠 츠베이트와 마법&귀족간 파벌 판도를 바꿔가고 있으니 조만간 쓰레기들, 그러고 보면 이세계 전생물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분리수거가 안 되는 쓰레기들의 등장이죠. 귀족 사상에 물들어 타인을 업신여기고 밟고 그러다 쓰레받기에 쓸려가 소각되는 그런 일이 조만간 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게 몇 년을 설움을 당해왔을 텐데 눈에 띄는 복수극을 보여주지 않아 카타르시스가 없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중학생 '이리스'에 이어 새로운 전생자 등장, 악당이 되겠군요. 어차피 아저씨에게 썰려 나갈 테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언급해보자면 지금은 세계대전이라는 복선만 뿌리고 있다는 것만, 방패 용사처럼 이세계를 게임으로 여기고 싸돌아다니는 거 같더라고요. 힘은 아저씨와 거의 동급이어서 어쩌면 최종 보스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가 아저씨의 슬로우 라이프이니까 크게 터트리진 않겠죠. 사실 칙칙한 아저씨가 보여주는 슬로우 라이프 따위 누가 보고 싶겠습니까. 아저씨가 활약하는 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고 필자가 이세계 전생물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까운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동방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일본식 문화를 집어넣은 것인데요. 단순히 음식까진 봐줄만해요. 무녀복이나 일본도도 만들면 되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요(물론 이것도 들어가 있음). 그런데 하오체를 쓰는 정신 나간 사무라이 엘프는 도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피가 나를 부른다'라며 중2병 대사를 작렬 시키며 무라도 썰려는 엘프녀를 보고 있으니 갑갑하더라고요. 얘는 대체 어디서 왔는가! 전이나 전생해서 왔다면 십분 이해하겠는데 이세계 토종이거든요. 그것도 격세유전이라네요. 난장판을 총체적으로 엮으면 이리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온갖 설정을 갖다 붙이는 판타지이고 이세계라도 세계는 넓디넓을 테니 일본에 해당하는 동방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죠. 하지만 굳이 이세계에까지 일본식으로 갖다 붙일 필요가 있었나 하는, 국ㅃ..도 좀 어지간히 해줬으면 좋겠더군요. 여기서 더 웃긴게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니라 여타 작품들의 주인공들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판타지니까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의문을 나타내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도 좋잖아요? 좀 험하게 언급해보자면 작가의 능력이 결국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닭들이 무슨 사무라이 집단처럼 나와서 깽판을 처대는 장면은 과연 이걸 돈 주고 구입해서 볼 가치가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합니다.

 

맺으며, 세계대전 복선이나 귀족들 간 알력 등 이세계물에서 갖추어야 할 설정은 제대로 들어가 있긴 한데 작가의 한계가 보이더군요.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는데 간장 만드는 엘프(종족 자체가)라니 듣도 보도 못한 설정은 참 산박했습니다. 정신 나간 사무라이 엘프에 이러다 일본 선조는 엘프다 해도 믿겠더군요. 비단 이것만 아니라 아저씨의 슬로우 라이프가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이긴 한데 다리 놓으러 가서 춤은 왜 추며, 궁금하지도 않은 마법 강좌를 뭣 땜에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차피 나중에 재사용 되지도 않는 데다 굳이 독자가 그걸 암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마법식이라는걸요. 하렘은 아니지만 몰려드는 여자들하며, 읽다 보면 영문을 모르게 돼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얼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하죠. 더욱 문제인 건 답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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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사는 기도하지 않아 1 - Extreme Novel
스도 렌 지음, 니리츠 그림, 정혜원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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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강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싫으신 분은 뒤로 하기나 페이지를 닫아 주세요.

 

 

 

세상 살아가면서 참 알다가 모를게 인연인 거 같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이 사람과 인연으로 맺어질까 같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게 분명한 하루를 지나 오늘 찾아온 낯선 사람과의 인연, 이 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무엇일까. 이 사람과 무엇을 하고, 어떤 대화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지낼까 하는 두려움과 기대 그리고... 이 작품은 170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영국 하면 떠오르는 건 잿빛 하늘, 이 작품의 이야기도 잿빛으로 물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노예제도가 남아 있는 시절, 그리고 도박이 횡행하는 시절에서 주인공 라자루스는 매일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도박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요.

 

그에겐 3가지 철칙이 있어요. '이기지 않는다', '지지 않는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슬럼가에서 자란 라자루스는 도박사 양아버지에게 주워져 그도 도박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양아버지에게서 도박 기술 외에 물려받은 3가지 철칙, 모난 돌이 정 맞고 튀어나온 못이 망치를 맞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그는 도박에서 눈에 띄게 이기지 않고 그렇다고 굶을 수는 없으니 지지 않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더랬죠. 그러던 어느 날철칙 중 하나가 깨어집니다. 무심결에 대박을 터트리는 바람에 졸지에 템즈강 바닥에 처박힐 신세가 되어 버린 그는 도박에 이겨 받은 돈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받기로 하고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다음날 그의 집에 찾아온 의문의 남자와 이국에서 온 듯한 소녀 하나, 하루하루를 도박으로 연명하던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면 여기가 아닐까 했습니다. 어제 도박장에서 딴 돈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사버린 그에게 배달된 노예 소녀 '릴라' 원래 고위 귀족에게 배달되어야 할 그녀가 여기에 온 까닭은 무얼까. 철저하게 귀족의 취향에 맞도록 개조된 그녀에게선 기계를 연상시킬 만큼 무기질적으로 다가옵니다. 명령하기 전에는 그 자리에서 이끼가 펴도 움직이지 않는 그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라자루스는 '아무래도 좋아'를 뱉어낼 뿐입니다. 첫 만남은 최악, 그러나 이것이 인연으로 이어질지는 지금은 몰랐겠죠.

 

그녀는 말을 못합니다. 글을 못 씁니다.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런 그녀가 인생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그와 어울릴 거란 물과 기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언제든지 찾아오기 마련이죠. 의사소통이 안 되어 글을 가르치고, 겨울을 나기 위해 옷을 사주고, 있을 곳을 마련해주고, 뭣보다 괴로운 일을 시키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그녀는 수동적이라 할 수 있어요. 명령 이외엔 그 무엇도, 앉으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몇 시간이고 서 있었던 그녀. 라자루스의 동작 하나하나에 움찔움찔. 그녀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어 왔을지 쉽게 상상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한번 내린 눈은 언젠가 녹기 마련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까지 잡혀와 귀족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개조당한 그녀가 간직했던 차가운 마음, 그녀의 마음은 라자루스의 의미 없는 행동 하나에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듯 점차 그녀가 간직했던 눈은 조금식 녹아 가요. 글을 배우고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서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아가죠. 투덜 거리면서도 월급(작중에선 주급)을 주고 옷을 사주고 동물원도 데려가 주는 등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활에서 그녀는 조금식 마음을 열어 가죠. 이게 참 극적인데요. 처음엔 농담도 통하지 않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의문을 표시하는 등 꽤 귀엽게 발전해가는 게 이 작품의 최대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그녀에 대해 늘어놓는 건 주인공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도박의 세계에서 그녀는 그가 살아야 될 이정표로 작용해가죠. 처음엔 없는 사람 취급하다가, 그야 그렇잖아요. 도박에서 이겼지만 죽지 않기 위해 뭔가를 샀을 뿐인데 배달된 게 그녀이거든요. 사람과의 얄팍한 인연 밖에 없던 그에게 갑자기 자신의 테두리 안에 뭔가가 들어왔으니 대처할 수 있을 리 없죠. 하지만 괜히 나이 먹은 게 아니라는 듯 그녀에게 이거저거 도박이라던가 사회에서도 조금식 알려주기 시작해요. 그쯤 그녀는 글자로 의사소통하며 꾸준히 쫓아가려 노력도 하죠.

 

그동안 도박밖에 몰랐던 그, 그녀의 출현으로 이거저거 사람들과의 인연을 늘여 가게 되죠. 그래서 그녀가 다시 도박장에 회수되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그녀가 얼마나 한 사람의 인연에 깊게 개입하게 되었고 그러인해 잿빛뿐이던 사람의 마음에 얼마만큼의 컬러를 선사했는지, 참 극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처절 하디시피 그녀를 돌려받기 위해 일생일대의 도박에 나서는 그, 그리고 그녀를 되찾았을 때의 감동은 말이 없더라도 충분히 전해질만큼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좋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차가움뿐이었던 마음을 밀어내고 자리 잡은 그 사람의 온기,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에게선 목숨을 걸 가치가 있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맺으며, 뭐랄까. 기본적으로 도박에 대해 많이 나오지만 인간관계를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참 센티멘털하게 하더군요. 특히 릴라가 귀족의 취향에 맞춰 개조되는 부분은 이 작품이 얼마나 잿빛투성이인지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합니다. 그래서 절대영도를 자랑하는 얼음과 누구도 들이지 않을 거 같은 어둠이 만나 조금식 변화를 보이며 양지로 올라서는, 서로 공통된 아픔이 없더라도 상처를 보다듬어 주며 서로의 온기를 찾아가는 장면은 이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했습니다. 그동안 금상이니 대상이니 무슨 상을 받았다는 작품치고 제대로 된 작품을 못 봤는데 이 작품만은 예외로 인정할만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필력이 좋아요. 표현력이랄까요. '바꿀 수 없는 신념이란 뾰족한 금속과도 같아 사람을 상처 입힌다(비슷할 겁니다.)'라든지 도박사 지인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에게 다가가던 릴라를 사신으로 표현한 부분에선 소름이 돋았군요. 필자는 그것보다 사실 릴라가 변해가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다들 기피하는 얼음공주가 자신의 본모습을 봐주는 사람들과 인연을 쌓으며 조금식 녹여가는 마음을 표현하는 작품은 찾아보면 많을 겁니다. 이 작품도 그런 계열이긴 해요. 뭐 본질은 도박이지만요. 그래도 필자는 인연에 더 무게를 두고 봤습니다. 참, 3가지 철칙 중 하나는 직접 보시라고 언급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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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빨로 연명합니다! 2 - S Novel+
FUNA 지음, 스키마 그림, 김용기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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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지옥이라는 게 있어요. 모래밭에서 깔때기 모양으로 함정을 파놓고 거기에 걸려드는 개미나 기타 벌레를 잡아먹는 곤충이요. 한번 빠지면 엔간해서는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학명 개미귀신이라 불리는 명주잠자리 유충이 파놓은 덫,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카오루는 개미귀신이라 할 수 있어요. 1권에서 이미 악마로 정평이 난 그녀와 엮이는 날에는 좋을 꼴을 못 보죠. 명성은 땅에 떨어지고 없는 죄까지 까발려져서 폐가망신하기 일 수입니다. 그 예로 처음 이세계로 소환되었을 때 그녀를 눈독 들인 남작가에서 벗어나기 위해 포션을 만드는 기계라 속인 시계가 고장 났다고 구라 처서 사람 하나 인생을 조져 놓았죠.

 

망아지 페르난 왕자의 등살 때문에 브란코드 왕국을 탈출한 카오루, 그녀는 그저 자신이 있을 곳과 지킬 수단만 있으면 족했습니다. 하지만 이세계의 상황을 오판해서 포션을 남발하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죠. 그리고 발모어 왕국에 온 그녀, 여기서도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귀족끼리 서로 견제시킬 목적으로 포션으로 어떤 귀족을 치료해주고 여신의 친구(혹은 사도)라고 칭한 게 그만 그녀의 발목을 잡기 시작하는데요. 그녀가 이세계로 오면서 받은 능력은 포션 만들기. 하필 포션이 진귀한 세계에서 포션을 다루는 소녀입니다. 그 포션의 힘은 기력이 쇠해 죽어가는 소에게 낚지를 먹여 벌떡 일어나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죠.

 

그럼 당연히 눈독 들이는 사람이 있겠죠? 얘가 참 영악한 게 아무 생각 없이 까발렸던 자신의 주둥이를 원망하기 보다 이걸 기회로 자길 노리는 사람들끼리 싸움을 붙여 버려요. 좀 더 정확히는 견제인데요. 발 없는 소문은 순식간에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요. 별 힘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이대로 놔둘 정도로 이세계는 형편 좋지만은 않습니다. 너도나도 달라붙어서 그녀(포션과 여신의 친구라는 지위)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독점하려고 하거나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해부까지 하려고 드니 그녀로써는 위기가 아닐 수 없었죠. 그래서 손 안 대고 코 풀기로 한 그녀는 귀족들 서로가 견제하면서 나를 지키도록 지략을 짜내었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갑니다.

 

우왕 여신님!!!! 이러며 쫓아오는데 식겁 안 할 사람 있을까요.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여신의 친구라는 타이틀을 이용하기로 하는데요.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건? 허세와 허세 그리고 배짱만 있으면 됩니다. 사실 친구라는 건 거짓말이 아니긴 한데, 허세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입니다. 감히 여신을 단일 종교로 숭상하는 세계에서 여신의 친구가 말하는데 꼬투리를 잡을 인간은 없어요. 기고만장해 하는 인간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천벌을 보여줬고, 이젠 여신의 영약이라 칭하는 포션을 대량 생산해서 팔아재끼기 시작하니 이젠 카오루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주변국들에서도 날뛰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전쟁입니다. 드디어 그녀의 존재는 세계를 파멸로 이끌기 시작하죠. 이쯤 되면 악마라는 수식어는 버리고 마왕급으로 격상 시켜야 합니다. 이웃나라에서 6만의 대군을 이끌고 카오루가 머물고 있는 나라로 쳐들어와요. 그녀를 잡기 위해서요. 그녀를 얕본 거죠. 거기에 중립국인 성국(종교 나라)도 그녀를 모시기 위해 움직이는데... 그럼 그녀가 할 일은? 이제 마왕의 실력을 보여줄 차례라는 겁니다. 지금 누굴 건드렸는지 무덤에서 똑똑히 봐두는 게 좋을 거다. 나라가 멸망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 게 아니라 나라가 망해요. 괜히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팩폭 당하고 쫄딱 망해버리게 돼요. 누가? 이웃나라들이...

 

카오루는요. 정론만 들이밉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때론 정론이라도 두리뭉실 애둘러 말해야 할 때도 있잖아요. 얘는 그게 없어요. 그러니까 빵이 사람 숫자만큼 있고 모두 공평하게 나눠야 하는데 넌 왜 두 개? 하필 두 개 가져간 사람이 키왕짱 권력가입니다.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못하는데 그걸 지적하는 사람, 상대는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시전하지만 그딴 건 모르겠고 공평하게 나누지? 싫으면 신벌이나 받으라고 합니다. 여신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러면 안 되잖아? 하니까 여신이 단일 종교인 이세계에서 상대는 거기에 대놓고 반론했다간 이단자가 되어 버리죠. 그렇게 나라 하나를 공중분해 시켜버립니다. 난 여신 친구란 말이다!!

 

필자가 설명을 잘 못해서 대충 빗대어 봤는데 뭐 비슷할 겁니다. 요컨대 그녀와 얽힌다기보다 그녀의 성질을 건드리면 폐가망신한다는 거죠. 말 한마디에 나라가 망해요. 다만 내 편일 경우 살뜰히 보살펴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슬럼가 대모(?)가 되기도 하였죠. 지금도 열혈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기도 하고요. 이번에 정이 조금 든 프란세트라는 여기사가 전쟁에서 죽음 직전까지 몰리자 꼭지가 돌아서 원래는 살상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지옥에서 온 나찰이 되어 버려요. 그냥 조용히 포션이나 팔면서 살려고 했던 그녀, 연약한 여자인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강구했을 뿐인데 어째서 세계대전이 일어나는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리고 몇 년 뒤 그녀는 신랑감을 찾아 세계를 유랑하는데....

 

맺으며, 1부가 1권하고 2권 중간까지군요. 중간 이후는 2부의 시작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런 작품이 재미있나를 논하자면 재미있을 리가 없죠. 흥미는 끌지만요. 이세계를 넘어가면 아무리 히키코모리 돼지 오타쿠라도 치트를 얻고 하렘을 만들고 무쌍을 찍는다를 이 작품은 포션으로 대체했을 뿐입니다. 거기에 여신까지 끌어들이고 그에 준하는 능력도 있으니 이보다 더한 치트가 있을까 싶군요. 신검을 포션 병으로 만들고, 전투 마차도 포션 병으로 만들고, 지구본도 포션 병으로 만들고, 응용력을 이용해서 사실상 그녀의 능력은 무한대라 할 수 있어요. 니트로글리세린인가 뭔가로 폭탄을 만드는 것에선 이게 어딜 봐서 포션이란 말인가를 되뇌게 만들었군요.

 

그래서 그녀의 고생이라면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뿐인데 이것도 여신의 친구 내지는 사도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그녀의 성질을 건들면 나라가 멸망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 적령기를 넘겼음에도 남자가 없어요. 보통은 여자 주인공이라도 역하렘이 만들어지곤 하잖아요. 이 작품은 그런 게 없어요. 얘와 엮이면 좋은 꼴을 못 보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지에서도 그녀의 악마 기질은 그치질 않아요. 언변으로 그게 누가 되었든 들었다 놨다 마구 휘두르는데 이세계 사람들은 생각하는 걸 포기한 걸까요. 이 정도면 그 뭐시냐 현실 지구 사람은 똑똑하고 이세계 사람들은 무지하다는 걸 말하는 거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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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 오라토리아 10 -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외전, S Novel
오모리 후지노 지음, 하이무라 키요타카 외 그림, 김민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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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고정관념이란 참 무섭죠. 까마귀의 색은 검은색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까마귀는 흰색이라고 부르짖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미친놈이라 하겠죠. 그렇다면 진짜로 흰 까마귀가 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멜라닌 색소 부족으로 돌연변이 까마귀는 있는가 봅니다만. 여기선 그런 개체 말고 온전한 흰색 까마귀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 전까진 믿으려 들지 않겠죠. 판타지에서 나오는 몬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습격하는 몬스터가 있으면 그걸 잡는 모험가가 있고, 이런 관계가 형성되면 몬스터는 사람을 해치고 모험가는 몬스터를 잡는다는 통념이 성립되어 버리죠.

 

그걸 뒤집으려 하면 사람들은 악이라 정의합니다. 착한 몬스터가 있다고 해봐야 믿을 사람이 있을까. 벨은 악이 되고자 합니다. 인간의 말을 하고 인간의 감정을 가진 몬스터 '제노스'를 만나버린 벨은 인간과의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 가요. 하지만 통념을 뒤집는다는 건 악이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영웅에서 악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그럼에도 소년은 자신이 품은 신념을 믿고 나아가죠. 모든 몬스터와의 공존은 힘들더라도 '제노스'들과는 공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소년은 이 시대에 영웅이라 불리는 핀, 그리고 아이즈를 만나 그게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달아 갑니다.

 

소년을 가로막는 [로키 파밀리아]와의 일전, 이것은 공존 이전에 감정의 문제로 발전하게 되죠. 몬스터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 이들 앞에서 몬스터와의 공존을 부르짖을 수 있을까? 하나같이 그런 아픔을 안고 모험가가 되어 몬스터를 잡는 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으로 호소해야 그들의 마음에 닿을까. 이번 10권은 이런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믿고 있었던 가치관과 고정관념 그리고 통념에 비춰 몬스터는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일 뿐, 대화의 상대는 아니라고 여기죠. 그럼에도 벨을 필두로 한 [헤스티아 파밀리아]는 작은 걸음을 시작합니다.

 

결코 인간을 습격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 가려는 제노스들의 눈물 나는 여정, 그리고 그걸 가로막는 [로키 파밀리아]와 모험가들, 그 과정에서 벨이 인간들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고찰이 시작됩니다. 착한 심성과 눈부신 성장을 하며 모험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벨의 한순간 추락은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로키 파밀라아]에도 적잖은 파문을 던져요. 그 옛날 던전에서 미노타우로스와의 일전을 지켜봤던 [로키 파밀리아]의 수뇌진들이 받은 충격은 크다 할 수 있겠죠. 그렇기에 소년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말리기 보다 당혹감과 이질감에 곤혹스러워합니다. 그들이 믿어왔던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벨이 깨버렸거든요.

 

벨에 의해 흰색 까마귀도 있다는 걸 알아 버렸습니다. 고결한 흰색, 하지만 울음소리에서 오는 거부감은 그 새가 까마귀라는 걸 재인식 시켜주죠. 하지만 착하고 올곧기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언가 뜻이 있을 거라 여기기 시작하는 사람들. 하지만 경계가 무너지면 망하는 건 우리 인간 쪽이기에 [로키 파밀리아]는 이도 저도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통념에 따라 몬스터는 가차 없이 토벌해야 되는 대상이라면 '제노스'들 또한 그러해야 함에도, 흰색 까마귀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 지금 무엇이 올바르고 아닌지를 모르게 되어버립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헤스티아 파밀리아]와 제노스들을 압박해가는 [로키 파밀리아], 그리고 거길 비집고 들어오는 '이블스'잔당과의 전쟁은 [로키 파밀리아]로 하여금 어느 한쪽이라는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이제서야 언급하지만 이번 외전 10권은 본편 11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요. 본편이 벨의 시각에서 진행이 된다면 외전은 [로키 파밀리아]의 시각에서 진행돼요. 이번 10권도 그렇습니다. 이미 엔딩이 정해져 있기도 하죠. 그래서 작가는 벨이 [로키 파밀리아]에 끼치는 영향에 중점을 뒀더군요. 벨은 통념을 깨부수며 남들이 노할 때 난 예스한다는 것처럼 몬스터와 인간도 공존이 가능하다는 걸 역설해가죠. 당연히 [로키 파밀리아]는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하고요. 하지만 그의 필사적인 노력과 '제노스'들이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는 모습에서 점차 통념이 깨어지게 돼요.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좋지가 않다고도 역설하는데요. 던전엔 '제노스'만 있는 것이 아닌 일반 몬스터도 있고 이 몬스터들은 제노스와 달리 인간을 공격을 하죠. 제노스를 알아버린 모험가는 과연 몬스터들을 공격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명확한 답은 없어요. 그걸 판단하는 건 본인이 되겠죠.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날아오는 칼에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해준 제노스를 바라보는 엘프 모험가는 무얼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친구가 되고 싶었다는 제노스를 공격한 자신은 마물 이하가 아닐까. 고뇌하는 엘프에게서 우려와 희망이 교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분명 첫걸음은 힘들어도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하죠.

 

결국 던전에서 만남을... 어쩌고 하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나 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서 제목이 큰 스포일러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벨은 던전에서 만남을 이뤘습니다. 그게 원래의 계획인 여자가 아닌 것엔 유감이지만 뭐 릴리와 아이즈를 만났으니 아주 유감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영웅의 탄생이랄까요. 타산과 의도를 벗어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걸 바라보며 또 다른 영웅이 되고 싶었던 핀은 벨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베이트에 이어 핀도... 묵념, 그리고 아이즈는 이 작품에서 제일 많이 바뀌게 된 존재가 되었다고 할까요.

 

영웅을 바랐던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 영웅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찾아 나섰죠. 어릴 적 몬스터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고 부모님을 잃었던(이게 좀 헷갈리는데) 그녀는 몬스터에 대한 반감이 누구보다 높았습니다. 몬스터라면 그게 누가 되었든 죽이려 드는 아이즈, 하지만 벨을 감싸는 비네에게서 어릴 적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쯤 오면 시사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겉모습이 다르다고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걸, 까마귀의 색이 검다 해도 속까지 검지 않다는 걸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죠. 색이 혐오스럽다 하여 배척하는 건 옳지 않다고, 아이즈는 그렇게 무너져 갑니다.

 

맺으며, 외전이 본편보다 더 재미있는 건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번 10권은 이미 엔딩을 알고 있음에도 재미도에 있어선 최고군요. 특히 제노스를 둘러싸고 겪는 갈등과 해소 그리고 이해를 정말 잘 풀어 놨습니다. 요점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죠. 비율 문제이긴 한데 인간 중에서도 나쁜 놈들은 얼마든지 많고, 몬스터는 쓰러트려야 할 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도 있다는 것, 인간과 마찬가지로 선악 구분을 하는 게 좋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벨의 영향을 받아 핀과 아이즈의 심경 변화는 눈여겨볼만했고요. 그리고 제노스로인하여 영웅의 탄생을 알리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종반을 향해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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