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따위가 마왕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며 용사 파티에서 추방되었으니 왕도에서 멋대로 살고 싶다 2 - S Novel+
kiki 지음, 킨타 그림, 조민경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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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꿈도 희망도 없는 '다크 판타지'


표지: 내가 있을 곳, 여행의 종착지, 햇빛이 들어오는 이곳이 내가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사실은 표지가 스포일러를 대놓고 하고 있다.


2권 스토리: 플럼은 노예로 전락한 뒤 '데인'이라는 슬럼가의 두목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던 와중에 눈이 꿰매진 10살 소녀 '잉크'를 줍게 된다. 그녀(잉크)의 인생은 한마디로 기구함 그 자체다.


포인트: 자신의 존재로 인해 주변이 위험해진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특징: 마왕이 귀엽게 그려졌다. 작가가 뭘좀 안다고 할까.



스포일러 주의



 

이번 이야기는 조금 진부한 이야기다. 인간 병기로 만들어져 세상으로 던져진 인간이 착한 사람들을 만나 세상의 따뜻함을 알고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걸 인식하며 안식을 얻은 순간, 병기로서 각성하여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니게 되는 이야기. 이 작품에서 병기로 개조된 인간은 어린 소녀다. 그 소녀는 심성이 매우 착하다. 평소엔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거 같은 성격에 주변을 보는 눈치도 빨라 사람들과 동화되는 능력도 좋고 활달한 성격에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미소를 짓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이렇게 인연이 있어 만났고, 이렇게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유대를 쌓아간다. 가족이란 꼭 피가 이어진 사람들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이번 2권은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언제까지고 평범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럼을 시작으로 이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플럼은 영웅(용사)로 뽑혀 마왕을 무찌르러 가다 쓸모없다며 버려지고 노예로 팔렸다. 밀키트는 주인에게 학대를 당한 끝에 노예의 밑바닥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렸다. 플럼은 입에 풀칠을 하려고 모험가가 되었지만 슬럼가 두목 데인에게 찍혀 괴롭힘의 나날이다. 첫 모험에서 던전에 들어갔던 그녀는 교회의 비밀 연구를 알게 된다.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반인륜적인 인체실험을 동반한 실험을 목격함으로써 교회에도 찍히고 쫓기게 된다.


그런 와중에 잉크를 만난다. 이게 우연일까?


모든 게 복합적으로 이어진다. 교회는 플럼을 쫓는다. 비단 실험이 들켜서가 아닌, 그녀가 왜 영웅(용사)로 뽑혔는지 밝혀지면서다. 덩달아 교회의 더러운 이면도 함께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악은 마족이고 인간은 선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마족을 멸하고 싶어 하고, 마족은 인간과 엮이길 거부한다. 마족은 개미 한 마리 못 죽인다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인간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점을 이용해 인간은 마족을 멸하려 든다. 그 결과가 교회다. 교회는 인체실험을 하며 어떻게든 마족과의 전쟁에서 이기려 든다. 그 부산물이 '잉크'다. 잉크는 실험에서 도망친 아이다. 그 잉크를 주운 게 플럼이고.


교회와 대적하게 된 플럼이 교회의 비밀 실험의 산물인 잉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것이 이번 2권의 핵심이다. 원래 플럼은 밀키트와 왕도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했다. 영웅이고 용사고 모든 걸 잊고 그저 둘이서 부족하나마 쥐 죽은 듯이 살고 싶었다. 그런데 교회의 치부를 알게 되고, 교회가 자신을 노린다는 걸 알게 되고, 잉크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데인도 괴롭힘의 강도를 높인다. 플럼은 스트레스로 머리털 다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날을 보낸다. 그런 와중에 교회의 비밀을 캐러 다니던 플럼의 쥐꼬리만한 숫자의 지인들이 행방불명되기 시작한다. 괴생명체의 습격으로 도시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중심에 '잉크'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플럼은 알게 된다.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되는가' 시종일관 이런 물음을 던진다.


플럼은 잉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잉크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끼친다는 걸 싫어도 알아가게 된다. 인간병기로 키워진 소녀는, 병기는 소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이 된다. 그 피해는 작지 않다. 플럼의 지인은 행방불명이 되었고, 도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똑똑하고 활달한 소녀는 자신의 죄를 싫어도 알아가게 된다. 자신의 의지로 이렇게 된 게 아닌데도, 그렇기에 소녀는 울지 않는다. 살고 싶다고 매달리지 않는다. 본심은 그게 아닌데도. 교회에 쫓기며 피폐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행방불명이 되는 그 중심에 잉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플럼은 잉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잉크를 죽이면 모든 게 돌아올까? 그녀(플럼)의 입에선 매몰찬 소리가 나온다. 플럼은 교회에 쫓기고, 지인들이 행방불명 되면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잉크는 인간으로서 있고 싶어 한다. 이 의미가 가지는 무게는 결코 작지 않다.



맺으며: 이 작품은 히로인을 음습하게 괴롭힌다. 당사자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는 게 아닌 주변을 괴롭힘으로써 정신적으로 몰아붙인다. 그래서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플럼은 한계에 다다르고 절망을 안게 된다. 그럼에도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 '밀키트'가 있기에..라는 희망을 던지면서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이게 상당히 가슴 먹먹하게 한다. 그런 테두리에 옛 동료 '에타나'가 들어오고, 이번엔 잉크가 들어오게 된다. 절망뿐인 세계에 지킬 것이 늘어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세상에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주 인상적이다. 


근데 바꿔 말하면 플럼은 주변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밀키트와의 관계는 의존증을 넘어서 집착 수준이다. 왜 이런 건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상황에서 서로가 비슷한 처지의 인간을 만났다. 끌리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 서로의 온기에 기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침범 당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같은, 작가가 사디스트인지 이런 점을 파고드는 실력이 있다고 할까. 이번엔 이런 점을 부각시켜 플럼을 엄청나게 굴린다. 그런 와중에 교회와 적이 된 시점에서 교회와 관계가 있는 잉크와의 만남은 과연 또 어떤 결말을 보여줄 것인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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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패스 트래블러 OCTOPATH TRAVELER - 여덟 명의 여행자와 네 개의 샛길, J Novel Next
부리/키바 지음, 이쿠시마 나오키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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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판타지, 여행, 그것뿐인 이야기


표지: 여유로운 여행을 하며 새로운 도시를 구경하는 두근거림을 잘 표현하고 있다.


스토리: 제각각 사연을 품은 여덟 명의 여행자가 만나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내용이다.


포인트: 여행이란, 자신의 발로 걷고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는 것.


특징: 각자 품고 있던 사연을 해결해 나가는 게 흥미롭다.



스포일러 주의



원작은 동명의 게임이다. 그 일부를 글로 표현해 놓은 것으로 딱히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각자 품고 있던 사연을 담담하게 풀어가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게임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서 게임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보다 여행을 하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새로운 곳의 두근거림과 마물과의 조우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되는지 등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상인 트레사의 장사 기질과 교수 사이러스의 가르침 등 교과서적인 교훈 등을 잔잔하게 풀어간다고 할까.


눈여겨볼 것은 깜깜한 밤의 바다를 표현한 것이나 고향 등을 표현한 부분에서는 아련함이 묻어난다는 것이다. 역마살이 끼여 여행을 떠난 것은 좋으나 사람의 본질은 언제나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초반엔 이런 아련함을 보여주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만화 카페 알파를 엿보는 듯해서 가슴 한켠에 먹먹함을 느꼈기도 했는데, 본질적으로는 카페 알파와는 전혀 다른 장르다. 세기말적인 분위기는 아닌데 어딘가 그런 분위기가 묻어나는 듯한?


그도 그럴게 여덟 명 중 일부는 여행 목적이 복수를 위함이라고 하니까. 부모의 원수나 스승의 원수 등 갚아야 될 복수를 가슴에 안고 여행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피의 비를 뿌리는 것이 아닌, 목적은 그것이라도 수단은 그것이 아닌지라 그런 삭막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여행하는 이들은 언제나 배움의 연속이라는 걸 표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할까. 배움에서 얻는 것이 있고, 그것을 얻음으로써 조금식 성장해가는, 그런 여정을 그리며 서로에게 이끌리고 여행의 최종 목적보다는 같이 있기에 재미있다는 걸 강조하기에 이른다. 


살아오면서 얻은 지식으로 동료들을 지키고 치료하는 사람도 있고, 다 큰 어른이라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보여준다. 살아가는 목적이 장사인 사람도 있고, 지인에게 배신 당해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다. 이런 여러 색 일색인 사람들이 모여 여행을 한다. 색이 다른 여덟 명이나 모여 있으면 트러블이라도 생길법한데, 서로가 배려하고 상처를 보다듬어 주면서 균열은 보이지 않는 게 흥미롭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뿐인 이야기여서 잔잔하고 파스텔적인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은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맺으며: 사실 여행이라고 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바라고 이 작품을 접하면 실망할 것이다. 판타지답게 마물은 나오지만 메인은 아니다. 메인은 어디까지나 여덟 명이 여행을 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해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는 걸 그린다. 서로에게 이끌리고 목적보다는 여행 그 자체에 재미를 느껴 이 여행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이 작품엔 있다. 물론 복수라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지만 이건 메인이 아니다. 어디까지고 이 작품은 여행을 그리고 이끌림이 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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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좀비를 죽였는가 - L Novel
세츠겟카 지음, 후유키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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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좀비가 나온다고 다 아포칼립스는 아니다. 모럴해저드는 좀 있다.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 찾아가자. 정신병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표지: 뭔가 사연이 있는 히로인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근데 필자는 표지를 보고 좀비를 피해 대탈출극을 찍는 걸로 오해하였다. 표지에 낚이는 일은 없도록 하자. 주인공과 히로인 둘 다 제정신이 아니다.


줄거리: 자신을 좀비 먹이로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사람을 좀비에게 잃은 주인공이 타인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격지 않게, 그리고 좀비에게 복수를 위해 어떤 시설에 잠입한다. 거기서 좀비 먹이로 던져진 히로인 '크리스틴'등 일단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처한 현실을 보게 되는데...


포인트: 타인의 인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네가 뭔데 간섭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특징: 통제받는 좀비는 좀비가 아니다.




특대 스포일러 주의, 장문 주의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은 필수불가결이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큰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의 치료비 등 막대한 돈은 필요한데 나오는 구멍은 없다. 그럴 때 급전으로 쓰라고 좀비가 존재한다. 작중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작금의 현실과 빗대어 보자면, 장기를 팔아서 급전을 마련하는 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비들에게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남은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의 미래를 책임진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과연 그 목숨의 대가로 남은 가족은 수긍하며 잘 살 수 있을까? 살아만 있으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피폐한 삶을 연명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소중한 가족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자기희생을 존중할 생각은 없는가? 공양미 300석에 팔려간 심청이는 과연 불효녀인가?


근미래, 인구의 증가로 좀비는 필수불가결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떤 실험을 시행하는 기관에서 좀비에게 던져질 생먹이를 모집한다. 지원자에겐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된다. 물론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런 설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어딘지도 모를 공간에 던져진 사람들이 좀비를 피해 도망 다닌다는 이야기다. 만화 브툼이나 영화 쏘우처럼 누군가에게 붙들려와 부조리한 행위에 말려든 가련한 사람들의 인생극을 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주인공 '베르나르도'가 나서서 사람들을 인솔하며 좀비에게 대항해 나가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가진 막다른 인생을 보여준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과, 가족을 잃어 자포자기가 된 사람 등 사연은 제각각이다. 그런 사람들을 돌보며 베르나르도는 이 시설에서 탈출을 기도하게 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주인공 '베르나르도'는 소중한 사람을 좀비에게 잃은 후 다신 자기와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시설에 잠입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생먹이로 던져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복수극도 있지만 일단 1권에서는 이런 이야기다. 어쨌거나 여기서 문제는 '이런 시설에 자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거다. 자기 목숨을 바친다는 건 그만큼 각오가 섰다는 것이고,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절박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희생함으로써 남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하는 각오는 용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목숨에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그런 인간들이 목숨을 바친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근데 뭔 권리로 주인공은 이런 사람들을 막아서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사람을 구한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 인터넷에 이런 콩트가 나온 적이 있다.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의감을 발휘해 장애인들을 고용한 기업을 향해 장애인들을 혹사시킨다며 여론을 형성하였고, 그 여론 때문에 결국 기업은 장애인들을 다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기업은 장애인들을 혹사 시키지도 않았고, 장애인들도 전혀 혹사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음에도 여론에 밀려 장애인들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인권을 부르짖었던 사람은 대중의 추앙을 받았지만 장애인들은 나 몰라라 방치되었음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을 구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구하고 나서 그 뒤의 일을 책임지지 않는 건 불의보다 더한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베르나르도는 절박한 마음으로 시설에 들어와 좀비의 먹이가 된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


베르나르도는 이런 말을 한다. '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기뻐할까?'


필자는 이런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네가 뭔데 남의 감정과 삶에 개입하는가.' 좀비에게 희생되면 등급에 따라 천문학적인 보상이 따른다. 실제로 그 보상 덕분에 살아난 사람도 있다. 물론 가족의 희생으로 자포자기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생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면 그것이 썩었다고 해도 잡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잡는 것에 대한 아픔과 노력과 각오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베르나르도도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려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구하고 나서의 일은?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행동은 악에 지나지 않는다.


글이 길어지는데, 어쨌거나 이 작품의 문제점을 더 언급해보고자 한다. 추리물에서 사망 플래그로 자주 쓰이는 '결정적인 단서'를 자주 언급하면서 읽는 이를 짜증 나게 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알려주는 대목에서 방해가 들어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건 좋으나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솔직히 좋지 않다. 걸핏하면 방해를 해대서 이야기의 맥을 끊는다. 가족 관련 문제도 좀 심각하다. 복선이 조금 투하되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게 하는데 접목시키는 장면이 최악이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복선은 거의 보여주지 않고 일행 중에 범인이 있다는 둥 어설프게 추리물을 모방하는 모습에서 좀비물이면 좀비물답게 가던지, 격투물도 아니고 좀비가 싸움질에 특화되어 있는 등 여러 가지 장르를 짬뽕 시켜 놓으니 이야기를 따라가질 못하겠다.


맺으며: 문제점은 더 있다. 주인공 베르나르도는 아는 게 없다. 좀비헌터로서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잠입했다면서 시설에 대해, 생먹이로 던져진 사람들의 진짜 목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시설을 운용하는 단체도 누군인지 모르고, 좀비중에 특출한 개체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대체 아는 게 뭘까 하는 게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런 제에 입만 살아선 '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기뻐할까?'라는 말을 던진다. 애초에 각오를 다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을까? 산 채로 좀비에게 뜯기는 기분을, 그런 아픔을 겪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각오란 타인의 저울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그런 놈이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했으면 능력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다.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솔해서 같이 싸우자고 한다. 요컨대 고기 방패다. 조무래기 좀비는 잘 해치우면서 조금 등급이 높은 좀비는 어떻게 하질 못한다. 멀뚱히 서서 다른 사람이 대항하는 걸 보고만 있다. 결국 다른 사람의 희생정신으로 물리치게 만드는 최악의 주인공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런 주제에 입만 살았고 그런 주인공을 따르는 게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다. 혼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신의 인생을 이런 무책임한 주인공에게 맡겨도 되나? 베르나르도를 전적으로 믿고 그의 명령에 따라 죽을지도 모르는 좀비와 싸운다니. 애초에 죽으러 들어왔으니 그만큼 각오가 되었긴 하겠지만 오늘 처음 잡아보는 총으로 잘만 싸운다. 대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자아내게 한다. 언제부터 베르나르도가 명령하는 게, 그에게 허가를 받는 게 당연하게 되었는가도 있다. 웃긴 것도 정도껏이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무책임하게 빚만 남겨두고 죽는 것보다야, 가족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것보다 자기희생으로 가족을 구하려는 마음을 존중할 생각은 없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존중할 생각 없다면 그에 따른 책임, 즉 사람을 구하고 뒷일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에서 언급한 인권을 부르짖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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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의 까마귀 2 - J Novel Purple
시라카와 코우코 지음, 아유코 그림 / 서울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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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동양풍 다크 판타지, 역하렘


표지: 이번 이야기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다. 부엉이는 오련낭랑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고, 까마귀는 오련낭랑을 형상화한 이미지다. 그 중간에 수설이 끼여있다. 이번 2권에서 제목의 까마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진다.


2권 줄거리: 나라의 시조 오련낭랑과 그 시조를 모시는 오비의 진짜 정체가 드러난다.


포인트: 행동엔 결과가 따른다. 뒷일을 책임질 수 없다면 아무리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서지 말자. 그렇다고 몰인정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라면 112나 119에라도 신고해줘라.


특징: 동양풍 사극과 서양풍 공포물의 절묘한 조합이 인상적이다.



특대 스포일러 주의

 



어디로 걸어가야 될지 모르는 길을 걷고 있다. 이 길은 다른 이들과 같이하는 걸 허락되지 않는다. 어릴 적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이 몸, 이정표를 들려주던 사람은 있었다. 이 길을 쭈욱 가면 된다고 했던 사람,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수설'은 언제나 혼자서 걸어왔다. 앞으로도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겠지. 이제 와서 외로움이 있을까 보냐. 자신도 언젠가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받은 이정표를 누군가에게 물려줄 날이 올까. 문득 하늘을 보니 비가 내린다. 우산을 가져오는 걸 깜빡했다. 비를 피할 곳은 없다.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오비'란 그런 존재다. 인생에 있어서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걸어가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비에게 있어서 이런 바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황제 고준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했다. 우산을 씌워주고자 했다. 벗의 맹세를 하고, 커플링까지 하며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데 부단한 노력을 한다. 수천 명이나 되는 후궁이 있으면서 고준은 왜 수설에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황태후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준 은인이니까. 권력을 바라는 후궁의 외척(외가)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고준에게 있어서 수설은 안식처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보다 오비로서의 운명을 안고 가야만 하는 수설이 가여웠으리라. 오비는 오비로 선택된 순간 자신의 바람과 다른 운명을 살아가야만 한다. 평생을 후궁에 갇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다. 황제의 승은은 금기시나 다름없다. 그런 삶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할 수 없겠지. 거기에 나라의 시조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로서의 고초도 있다.


수설은 자신의 행동에 고뇌를 되풀이한다. 고통을 받는 이가 있어서 무심코 손을 내밀었더니 구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행동엔 결과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시녀' 구구와 '홍교'는 그렇게 수설에게 구출이 되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 두 시녀를 거둬들인 건 좋으나 원래 오비는 혼자서 살아가야 될 운명이다. 그렇게 살다 후대에게 오비의 능력을 물려주고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진다. 이 나라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오비란 그런 존재다. 오비는 그 비밀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거기에 수설은 전(前) 황조의 자손이다. 지금의 황조는 전 황조의 피의 비를 뿌린 끝에 거머쥔 자리다. 정체가 들통나면 수설 또한 성치 못할 것이다. 다행히 고준이 전 황조의 자손을 뿌리 뽑는데 제동을 걸어줘서 한시름 놓았긴 하다.


아무튼 수설은 또다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배우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는 정(情)이 많다. 입은 구시렁 거려도 도움을 바라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게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이라고 해도. 그렇게 또 한 사람이 수설의 곁에 서게 된다. 이것으로 인해 구원받는 사람은 있다. 정작 자신(수설)은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걸 알고 있기에 고준은 그녀를 무척이나 신경 써준다. 어느덧 수설의 마음에 고준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매일 먹을 것을 들고 와 마음을 어지럽히고, 아무리 오비라지만 힘은 한계가 있기에 고준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러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겠지. 이놈, 저놈 거리며 황제의 위엄은 개나 줘버린 듯한 입놀림을 해도 소꿉친구 대하듯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고준을 미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정립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오비란 시조 오련낭랑을 모시는 무녀다. 대대로 후궁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오련낭랑의 넋을 달래주는 존재다. 그래서 오련낭랑과 제일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오련낭랑의 존재는 무엇일까. 사람 얼굴에 몸은 까마귀라고 한다. 그래서 오비의 차림새는 까마귀에 가깝다. 작중에서 오련낭랑은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신(神)은 죽지 않는다. 그럼 그 신(神)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이 작품의 최대 흥미 포인트이다. 수설과 고준의 관계는 그다음이다. 왜냐면, 오비 아니 수설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게 오련낭랑이기 때문이다. 오련낭랑은 신(神)이다. 하지만 신(神)은 아니다. 그렇게 떠받들여지고 있을 뿐. 이번에 오련낭랑의 정체가 밝혀진다. 오비란 태초 나라가 건국될 때 오련낭랑관 관련된 사건의 피해자다.


그 오련낭랑을 찾아 누군가가 온다. 사태는 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수설은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 대항하나 수세에 몰린다. 그때 고준은 몸을 날린다. 작중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수설의 머리엔 '왜?'라는 말이 떠올랐으리라. 처음엔 밉상스러운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매몰차게 대해도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으며 찾아와줬다. 먹을 것을 내주고, 수정을 깎고 나무를 깎아 노리개를 만들어 줬다. 벗이라고 말해줬다.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수설에게 있어서 어느덧 우산을 받쳐주는 이가 생겼다. 오련낭랑을 모시며 편한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태초 1대 오비가 저지른 정신 나간 짓은 후대 오비들을 올가미에 몰아넣었고, 수설 또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누설이 용납되지 않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도, 자신의 핏줄에 대해서도, 편한 날은 없었다. 그런 때에 고준은 자신의 짐을 덜어주고 몸을 날려 자신을 지켜 주었다.

 

오련낭랑은 여기에 있다. 오련낭랑은 신(神)이 아닌 죄인이다. 오비의 정체는 무엇이고 지금까지 해온 일들은 무엇일까. 오비로서의 생활만을 해온 수설에게 있어서 시녀들과 고준이 끼친 영향은 크다. 영원히 동토로 남을뻔한 자신의 마음에 햇빛을 비춰주고 있다. 싫지만은 않다. 한편으로는 오비로서의 책무도 다해야 하는 고뇌도 있다. 그러나 지켜야 될 사람이 늘어갈수록 수설은 오련낭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넘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햇빛을 비춰주는 이들이 오히려 수설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녀(수설)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쓰면 쓸수록... 사람과 인연을 맺는데 서툴기 그지없는 수설에게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다. 그때 웃으며 이별을 할지, 아니면 모두의 힘을 합쳐 헤쳐 나갈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맺으며: 수설을 향한 황제 고준의 애틋한 마음이 많이 묻어나는 에피소드입니다. 후궁을 많이 거느린 황제 입장에서 오비만 신경 쓰는 부분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고준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아무튼 오련낭랑의 정체와 오비의 임무에 대해 밝혀지면서 이보다 부조리한 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수설은 그 피해자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그리고 오비가 단명한다는 것도 밝혀졌고요. 이로써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수설의 핏줄에 대해 고준은 알게 되었고, 오비라는 직책과 핏줄로 인해 이들이 맺어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번 이야기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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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마왕 2 - J Novel Next
마지마 분키치 지음, 토요타 사오리 일러스트, 김경훈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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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다크 판타지, 하렘은 물 건너갔다.


2권 줄거리: 스노바가 코핀을 침공한 이유가 밝혀진다. 신념을 가진 바보를 다루는 건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쉽다. 나라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고 반목하며 자신이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졌던 왕녀는 자신의 손으로 나라를 멸망 시킨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어쭙잖은 정의는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포인트: 바보를 고치는 약은 없다.


특징: 꼭 보면 바보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스포일러 주의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외부에서 적을 찾으면 된다. 이건 정치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는데 있어서 유용한 수단이다. 외부의 적이란, 간단한 이야기다. 없는 죄를 다른 나라에 뒤집어 씌워 침공하거나, 그냥 쳐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이건 양날의 검이다. 침공으로는 내부의 불만을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는 있으나, 새로운 불안 요소도 반드시 생긴다. 바로 점령지의 백성들이다. 당연히 점령지 사람들은 좋은 대우를 받기란 어렵다. 침공과 점령의 가장 큰 이유는 수탈이니까. '스노바'는 그런 역사를 가졌다. 많은 나라를 침공해 점령지로 삼게 되면서 핍박받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스노바'가 만약 광대한 땅을 점령하면서 유화정책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미래에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불가능하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가진 나라를 유지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피점령국은 점령국에게 간섭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에게 사상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면, 이들의 말 한마디에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니까.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백성들의 안위 또한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게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억압하는 나라 당사국의 왕녀라면 더욱 그렇다. '스노바'는 북쪽에서 강대한 나라다. 필연적으로 주변에 피를 몰고 다닌다. 그런 때에 왕녀가 지금까지 나라(國)가 해온 일을 부정하고, 이제라도 모든 것을 버리고, 억압한 나라의 백성들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 시작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는 건 자명하다. 이것은 사실 피점령국에게 있어서 훌륭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울만한 일이다. 그러나 당사국은 개떡같은 일이 된다. 점령을 진행하면서 필연적으로 피는 흘리게 되어 있다. 


황제는 자신의 딸의 교육 목적으로 나라의 사상과 정반대되는 교사를 붙이는 바람에 왕녀는 사상교육을 잘못 받게 된다. 이것은 교사의 사상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황제의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때 '스노바'라는 왕국의 미래는 정해진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교육은 이렇게 중요한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이 되겠다. 이로써 왕녀에 의해 두 개의 나라가 고통받게 된다.


이제 와 자신의 딸이 황제인 자신에게 면전에서 대놓고 당신(아빠)은 잘못하고 있으니 사죄해야 된다고 할 땐 모든 게 늦었다. 차라리 눈 감고 단두대로 보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튼 모든 일엔 절차가 있다. 잘못이 있으면 모두와 상의하여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그걸 독단으로 어린애처럼 발을 동동 굴리며 떼쓰듯 잘잘못을 지적해봐야 바뀌는 건 없다. 이런 일방적인 사상에 물든 왕녀라는 폭탄이 굴러다니고 있다. 당연히 이용하려는 무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훗날 자신을 장군이라 스스로 칭하는 '유크'를 찾아간 왕녀는 자신의 신념을 밝힌다. 머저리가 여기에 있다고 광고한다.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일에 가담한다. 유크는 피점령국의 아픔을 알고 있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다툼이 없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왕녀는 기둥서방에게 붙들렸다.


핍박받고 있는 나라의 백성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왕녀와 전쟁을 없애고 싶다는 유크의 만남은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는 스노바 왕성 지하에서 어떤 것을 깨우기 전까지는 몰랐겠지. 왕국의 미래를 바꾸고 싶었다. 핍박받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 황제의 머리가 단두대에서 잘리기 전까진 말이다. 유크에 의해 새로운 공포정치가 시작된다. 사탕발림으로 왕녀를 꾀었던 유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주변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다. 왕녀의 핍박받는 사람이 더 이상 없었으면 했던 바람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자에 의해 피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고 한다. 어쭙잖은 신념은 새로운 공포와 아픔을 불러올 뿐이다. 왕녀의 행동으로 인해 가족은 모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스노바는 절망에 빠져간다.


요점은 스노바의 왕녀는 사리사욕에 빠진 유크에게 속아 넘어간 거라 하겠다. 백성들을 지키려 했던 스노바 왕녀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백성들이 더욱 궁지에 몰려가는 걸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당연히 정치의 정자도 몰랐던 유크에 의해 나라는 엉망이 되어가고 내부는 불만이 쌓여간다. 그걸 풀기 위해 유크는 코핀을 침공한다. 여기서 왕녀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한다. 조금식 반격의 실마리를 잡아가는 코핀의 왕녀 '루키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것이 '자신'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잘 알고 있다. 어리석은 바보는 지나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모든 일엔 절차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봤자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속죄는 할 수 있겠지.



코핀의 왕녀 루키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유크는 그녀에게 노예처럼 돼지 낙인을 찍지 않으면 코핀을 멸망 시켜버리겠다고 한다.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놈이 힘만 믿고 예의는 내다 버린다. 루키나는 아버지 황제가 전쟁으로 죽고 왕위를 물러 받았지만 왕의 위엄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어떻게 해야만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나라엔 매국노들이 득실거리고, 수호신이 사라지면서 백성들의 삶은 나날이 팍팍해진다. 자신은 매일 같이 수모를 당한다. 이대로 계속 스노바에게 저항을 할 것인가, 아니면 개돼지처럼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기로에 선다. 왕녀는 코핀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돼지처럼 낙인이 찍힌다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는 긍지는 사라진다. 그렇다고 철저히 항전을 하자니 힘이 없다. 


현시대의 마왕의 자리를 꿰찬 '더스트'는 '애시'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 눈이 돌아갔었다. 그 옛날 마을과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끝에 금단의 주술에 손을 댄 것이 마왕의 꼬리표를 달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나라에서 추방되어 초원 끄트머리에서 살아가던 그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자신을 추방한 나라를 저주하고 있었을까.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손을 댄 주술을 남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천년 전의 마왕도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금단의 주술에 손을 댄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마왕은 타인을 해치며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마왕이 아니다. 그저 조금 별났을 뿐, 희생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딱 좋은 재료였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마왕은 불쌍한 존재다.


더스트는 쫓겨난 신분인데도 '유크'와 맞서 싸우기로 한다. 쫓겨나는 자신을 끝까지 믿어 주었던 사람들을 위해, 어느 날 자신의 보금자리로 날아든 '애시'를 지키기 위해. 하지만 그의 몸은 마치 '허리케인 죠'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상태다. 이 작품은 결코 아름다운 엔딩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어머니를 살리지 못했다. 아버지는 딴 살림을 차렸다. 마을을 지키지 못했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애시' 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아닌 게 아니라 애시의 일러스트가 정말 보호욕을 자극할 정도로 잘 뽑혔다. 문제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더스트의 사망 플래그다. 


맺으며: 마왕이라고 다 미친놈은 아니며, 나쁜 존재는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을 뿐이라는 설정은 로맨틱하게 느껴질 판이다. 사실 이 작품에서 마왕이라면 사람의 이해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를 일컫는다. 천 년 전 마왕도 그렇다는 대목과 그런 마왕을 토벌해야 하는 용사의 고뇌가 잘 묻어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인간은 악이고 마왕은 선하다는 느낌을 들게 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악의에 차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루키나나 애시는 그 흐름의 피해자들이고. 더스트는 이들을 지켜가고 싶어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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