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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좀비를 죽였는가 - L Novel
세츠겟카 지음, 후유키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8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르: 좀비가 나온다고 다 아포칼립스는 아니다. 모럴해저드는 좀 있다.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 찾아가자. 정신병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표지: 뭔가 사연이 있는 히로인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필사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근데 필자는 표지를 보고 좀비를 피해 대탈출극을 찍는 걸로 오해하였다. 표지에 낚이는 일은 없도록 하자. 주인공과 히로인 둘 다 제정신이 아니다.
줄거리: 자신을 좀비 먹이로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중한 사람을 좀비에게 잃은 주인공이 타인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격지 않게, 그리고 좀비에게 복수를 위해 어떤 시설에 잠입한다. 거기서 좀비 먹이로 던져진 히로인 '크리스틴'등 일단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처한 현실을 보게 되는데...
포인트: 타인의 인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네가 뭔데 간섭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특징: 통제받는 좀비는 좀비가 아니다.
특대 스포일러 주의, 장문 주의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은 필수불가결이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큰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의 치료비 등 막대한 돈은 필요한데 나오는 구멍은 없다. 그럴 때 급전으로 쓰라고 좀비가 존재한다. 작중 세상은 그런 세상이다. 작금의 현실과 빗대어 보자면, 장기를 팔아서 급전을 마련하는 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비들에게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남은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의 미래를 책임진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과연 그 목숨의 대가로 남은 가족은 수긍하며 잘 살 수 있을까? 살아만 있으면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피폐한 삶을 연명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소중한 가족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자기희생을 존중할 생각은 없는가? 공양미 300석에 팔려간 심청이는 과연 불효녀인가?
근미래, 인구의 증가로 좀비는 필수불가결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떤 실험을 시행하는 기관에서 좀비에게 던져질 생먹이를 모집한다. 지원자에겐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된다. 물론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이런 설정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어딘지도 모를 공간에 던져진 사람들이 좀비를 피해 도망 다닌다는 이야기다. 만화 브툼이나 영화 쏘우처럼 누군가에게 붙들려와 부조리한 행위에 말려든 가련한 사람들의 인생극을 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 주인공 '베르나르도'가 나서서 사람들을 인솔하며 좀비에게 대항해 나가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가진 막다른 인생을 보여준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과, 가족을 잃어 자포자기가 된 사람 등 사연은 제각각이다. 그런 사람들을 돌보며 베르나르도는 이 시설에서 탈출을 기도하게 된다는 게 주요 골자다.
주인공 '베르나르도'는 소중한 사람을 좀비에게 잃은 후 다신 자기와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시설에 잠입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생먹이로 던져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복수극도 있지만 일단 1권에서는 이런 이야기다. 어쨌거나 여기서 문제는 '이런 시설에 자진해서 들어온 사람들'이라는 거다. 자기 목숨을 바친다는 건 그만큼 각오가 섰다는 것이고,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절박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희생함으로써 남은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하는 각오는 용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목숨에 굉장한 집착을 보인다. 그런 인간들이 목숨을 바친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근데 뭔 권리로 주인공은 이런 사람들을 막아서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사람을 구한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따른다. 인터넷에 이런 콩트가 나온 적이 있다.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정의감을 발휘해 장애인들을 고용한 기업을 향해 장애인들을 혹사시킨다며 여론을 형성하였고, 그 여론 때문에 결국 기업은 장애인들을 다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기업은 장애인들을 혹사 시키지도 않았고, 장애인들도 전혀 혹사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음에도 여론에 밀려 장애인들은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인권을 부르짖었던 사람은 대중의 추앙을 받았지만 장애인들은 나 몰라라 방치되었음에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을 구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구하고 나서 그 뒤의 일을 책임지지 않는 건 불의보다 더한 악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베르나르도는 절박한 마음으로 시설에 들어와 좀비의 먹이가 된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다.
베르나르도는 이런 말을 한다. '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기뻐할까?'
필자는 이런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네가 뭔데 남의 감정과 삶에 개입하는가.' 좀비에게 희생되면 등급에 따라 천문학적인 보상이 따른다. 실제로 그 보상 덕분에 살아난 사람도 있다. 물론 가족의 희생으로 자포자기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생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면 그것이 썩었다고 해도 잡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잡는 것에 대한 아픔과 노력과 각오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베르나르도도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하려는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구하고 나서의 일은?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행동은 악에 지나지 않는다.
글이 길어지는데, 어쨌거나 이 작품의 문제점을 더 언급해보고자 한다. 추리물에서 사망 플래그로 자주 쓰이는 '결정적인 단서'를 자주 언급하면서 읽는 이를 짜증 나게 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알려주는 대목에서 방해가 들어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건 좋으나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솔직히 좋지 않다. 걸핏하면 방해를 해대서 이야기의 맥을 끊는다. 가족 관련 문제도 좀 심각하다. 복선이 조금 투하되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게 하는데 접목시키는 장면이 최악이다.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죽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역시 복선은 거의 보여주지 않고 일행 중에 범인이 있다는 둥 어설프게 추리물을 모방하는 모습에서 좀비물이면 좀비물답게 가던지, 격투물도 아니고 좀비가 싸움질에 특화되어 있는 등 여러 가지 장르를 짬뽕 시켜 놓으니 이야기를 따라가질 못하겠다.
맺으며: 문제점은 더 있다. 주인공 베르나르도는 아는 게 없다. 좀비헌터로서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잠입했다면서 시설에 대해, 생먹이로 던져진 사람들의 진짜 목적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시설을 운용하는 단체도 누군인지 모르고, 좀비중에 특출한 개체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대체 아는 게 뭘까 하는 게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런 주제에 입만 살아선 '너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이 과연 기뻐할까?'라는 말을 던진다. 애초에 각오를 다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있을까? 산 채로 좀비에게 뜯기는 기분을, 그런 아픔을 겪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각오란 타인의 저울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그런 놈이 사람들을 살리겠다고 했으면 능력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없다.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솔해서 같이 싸우자고 한다. 요컨대 고기 방패다. 조무래기 좀비는 잘 해치우면서 조금 등급이 높은 좀비는 어떻게 하질 못한다. 멀뚱히 서서 다른 사람이 대항하는 걸 보고만 있다. 결국 다른 사람의 희생정신으로 물리치게 만드는 최악의 주인공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런 주제에 입만 살았고 그런 주인공을 따르는 게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다. 혼란의 극치를 보여준다.
자신의 인생을 이런 무책임한 주인공에게 맡겨도 되나? 베르나르도를 전적으로 믿고 그의 명령에 따라 죽을지도 모르는 좀비와 싸운다니. 애초에 죽으러 들어왔으니 그만큼 각오가 되었긴 하겠지만 오늘 처음 잡아보는 총으로 잘만 싸운다. 대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자아내게 한다. 언제부터 베르나르도가 명령하는 게, 그에게 허가를 받는 게 당연하게 되었는가도 있다. 웃긴 것도 정도껏이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 작품은 무책임하게 빚만 남겨두고 죽는 것보다야, 가족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것보다 자기희생으로 가족을 구하려는 마음을 존중할 생각은 없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존중할 생각 없다면 그에 따른 책임, 즉 사람을 구하고 뒷일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에서 언급한 인권을 부르짖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