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 스킬 【지도화】를 손에 넣은 소년은 최강 파티와 함께 던전에 도전한다 1 - L Novel
카모노 우동 지음, 시즈키 히토미 그림, 이경인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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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입견이란 참 무섭다. 한번 어떠한 마음을 먹어 버리면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건 작가는 왜 독자로 하여금 '선입견'에 빠지게 만들었을까다. 한두 권으로 끝나지 않는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건 비단 소설류만이 아닌 어느 매체를 봐도 당연시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스킬로만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계에서 쓰레기 스킬을 받아 모두에게 괄시를 당하면서도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이거 또 무능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강한 능력을 손에 넣는 먼치킨 이야기 아닌가 하는 건데 사실 반은 맞다. 나머지 반은 주인공 나름대로 인생의 쓴맛을 경험한 끝에 노력하여 성장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자,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위에서 선입견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 '노트'의 성격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일단 그는 15세가 되면 누구나 받는 스킬을 그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가 받은 스킬은 [지도화]라는 주변 반경 1킬로 내 지형지물만 알 수 있는, 일상에선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라는 것이다. 얼핏 측량에 있어서 군사적으로 도움이라도 될까 싶지만 이미 [세계지도]와 [지도]라는 상위 호환 스킬이 존재해서 사실상 [지도화] 스킬은 세간에선 쓰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도화]를 받아버리면 다른 스킬은 받을 수가 없다. 요컨대 무능력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열악하고 불쌍한지 초반에 집중적으로 부각 시킨다. 이쯤 되면 뭐 어디에나 있는 이세계 무능력 먼치킨 설정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어느 정도 맞기도 하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설정이 추가된다. 바로 주인공 '노트'의 성격이다. 노트는 같이 생일을 맞이한 소꿉친구 '미야'와 같이 스킬을 받게 되는데, 미야는 이 세계에선 거의 사기라고 해도 무방할 용사급 스킬을 받아 버린다. 미야는 하프엘프로서 어릴 적부터 주인공과 같이 지내온 이 작품의 히로인이다. 아무튼 여기서 첫 번째 주인공의 성격이 나온다. 원래 다른 사람이 스킬을 받을 땐 참관하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개인 정보니까. 그런데 주인공은 신전(다른 명칭이지만 설명하기 쉽게)에서 나가지도 않고 미야가 스킬을 받는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그래놓고 미야가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신뢰라고 지껄인다. 이미 여기서부터 둘의 파탄은 예정되어 있다는 알기 쉬운 복선이랄까. 


떡줄 사람은 생각도 생각도 안 하는데 미야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그녀는 나를 좋아할거라는 스토커 기질도 보인다. 하지만 미야가 용사급 스킬을 받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약간은 갸륵한 마음도 있다. 이래서 필자에게는 이 작품이 계륵 같은 존재다. 아무튼 그런 미야가 남친을 먹여 살리겠다며 같이 모험을 하자고 한다. 보통 이렇게 여친이 다정하게 나오면 남친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남친은 떠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노력해서 여친에 어울리는 남친이 된다는 것이다. '용사의 스승님'이라는 작품을 보면 남친은 능력이 없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여친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어떠한가. 그때는 어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로 사랑하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여 살리는 건 당연한 걸까? 주인공 노트는 미야의 다정함에 기대어 아무것도 안 한다. 파탄이라는 복선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6개월 뒤 미야는 이별을 선택한다. 모험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미야가 다 하겠다고는 했지만, 정말 여친에게만 모든걸 맡겨두면 '기둥서방'이랑 뭐가 다를까 싶다. 적어도 식사 당번이라도 해야 되지 않나? 주인공 노트는 일찌감치 의욕이 꺾인 상태다. 여친은 세계에서 10여 명 밖에 없다는 스킬을 가졌고, 자기는 노력해도 그녀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니 자괴감도 몰려온다. 그렇다고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중요한 건 알고 있으면서 노력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미야가 6개월이나 참았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의욕을 놓아놓고, 마치 미야가 날 배신했다고 여기는 거다. 거기에 미야가 한마디 해줬다면 개심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잘못을 미야에게 돌리는 남탓은 어이가 털리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렇담 버림받았다면 두고 봐라는 식으로 시궁창을 기듯 노력을 해서 일어서는 거라도 있어야 하는데 미야가 떠나고 6개월 동안 술이나 퍼마시며 동네방네 미야가 자기를 버렸다는 식으로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꼬라지에선 학을 떼게 한다. 뭐 이딴 쓰레기 주인공이 다 있나 싶다. 만나는 사람마다 미야가 날 버렸다고 광고하고 다닌다. 뒤끝이 정말 장난 아니다. 이 성격은 후에 [어라이버즈]라는 나름 최강 파티에 주워지고도 바뀌지 않는다. 여기서도 미야가 날 배신했다고 떠벌린다. 이렇게 주인공 성격이라는 선입견이 초반에 생성되어 버린다.


그러니 중후반 주인공이 [어라이버즈]에 주워져 피나는 노력을 해도 쓰레기라는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게 된다. 그래서 뭔가 조금이라도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눈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질 수밖에 없게 된다. 작가는 초반에 뭔 생각으로 주인공 성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분명히 작품은 쓰레기 스킬을 받아 [어라이버즈]에 주워져 원석이 보석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 성격이 고착화되면서 도저히 빛나는 성장물로 비치지 않는다는 거다. 문제는 [어라이버즈]에 주워졌을 때도 이들이 6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서 자신을 단련 시켜주고 있음에도 거기에 기대어 성장을 게을리한다는 거다. 파티원 '에린'의 지적을 듣고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지만 이미 이미지가 바닥인 시점에서 뭘 어떻게 잘못을 깨달아도 와닿지 않게 된다.


불평불만도 많고,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하면 남 탓하기 바쁘고, 뒤끝도 장난 아니고, 날 위해 고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하는 행동과 자기 때문에 남들이 고생하는데도 안중에도 없는 자기 위주에 잘못을 깨달았으면 고쳐야 하는데도 그 순간만 바뀌어야지 다짐하면서 후에 또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그걸 지적하면 불만스럽다는 마음가짐은 좋게 봐주려야 봐줄 수가 없다. 스킬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세계고, 스킬이 모든 걸 말하는 세상이라서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마인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불편하게 한다. [어라이버즈]에 주워져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면 정말 죽을 둥 살 둥 노력이라도 좀 하던가. '에린'에게 정말 가시 돋친 독설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앞으로 나아가는,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푸념도 전부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성장물이라는 개념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만큼 수작인 작품도 없을 것이다. 그야 소꿉친구에게 버림받았고, 스킬이 모든 걸 말하는 세상에서 쓰레기 스킬을 받게 되어 사람들에게 괄시를 당하면서도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시궁창이다. 아무도 나의 가치를 알아주려 하지 않고, 짐꾼으로도 잘 쓰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일이 잘 풀려 임시라지만 파티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인생을 겪는다면 나라도 자포자기하겠지. 날 버리고 간 여친이 원망스럽기도 하겠고. 그러다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파티를 만났고 성장이라는 가능성을 알게 되어 단련한 끝에 보석이 되는 이야기니까. 여느 이세계 무능력 먼치킨과는 격을 달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 이 작품이라 하겠다. 문제는 주인공 성격이 다 말아 먹고 있다는 것이고.


맺으며: 이 작품은 무능력자의 클리셰 범주에 들어가긴 하나 한가지 명확히 해야 할 건 주인공 스스로 강해졌다기보다 주변의 단련으로 성장하는 타입이라는 거다. [어라이버즈]에 주워지기 전까진 이런 단련 방법도 있다는 걸 아예 모르고 있었고, 이 세계의 상식에 얽매여 자신은 인생의 패배자라고 여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후부턴 응용 등을 동원해 나름 자기 혼자서도 강해져 나가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라이버즈] 파티원들의 도움으로 강해져 간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아무튼 주인공이 [어라이버즈]에 들어가 단련 끝에 보석이 되면서 주인공을 차버렸던 소꿉친구 '미야'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스킬도 가공하기 나름이라고 무능력의 클리셰 범주이긴 하나 던전에서 매핑과 색적(몹 찾기)과 함정 해체 등 던전 공략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던전에서 분명 소꿉친구 미야도 던전에 들락날락할 테고 공략에 애를 먹다가 우연히 주인공의 소문을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시추에이션이 그려진다고 할까.


어쨌거나 중후반 이후는 주인공 노트의 성격도 많이 바뀌어서 모든 방면으로 긍정적이 되고, 나름 책임감도 짊어지려 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니 초중반 쓰레기 같은 주인공의 성격만 이겨낸다면 이 작품은 꽤 괜찮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초반 선입견이 생겨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중후반 새로운 파티원 모집하는 내용도 필자와 맞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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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여행 8 - S Novel+
시라이시 죠우기 지음, 아즈루 그림, 이신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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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돈이란 기회가 있을 때 벌어두는 게 상책이다. 조화를 동화 한 닢에 사다가 행운을 불러오는 꽃이라 속이고 금화 한 닢에 내다 팔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배짱은 덤이다. 그래서 인스턴트 오믈렛을 데워서 금화 한 닢에 판다고 천벌을 받지는 않는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정처 없이 여행을 하며 고급 숙소에 묵고 싶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얼마나 처량하겠는가. 노숙은 죽어도 싫거든.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히로인인 '일레이나'는 걸핏하면 사람들 등을 처가며 돈을 번다. 근데 그렇게 돈을 벌어도 어째서인지 모이질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담 그녀는 악당인가? 가끔은 천벌도 받는다.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와준답시고 수고료를 삥 뜯는 게 문제지만, 내밀어진 손은 외면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은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그녀가 무료봉사로 도와주게 된다면 사람들 버릇이 나빠지겠지. 더구나 그녀는 마녀다. 판타지의 모험가처럼 의뢰비를 받고 처리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무료봉사를 한다고 소문이 난다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삥 뜯는 듯한 수고료는 어쩌면 현실미를 가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이런 부분은 꽤 유쾌하게 풀어낸다. 가령 이쪽 도시에서 저쪽 도시로 옮겨주는데 금화 30개 내놔라고 당당히 말한다.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시세를 부를 만큼 그녀의 배짱은 우주 최강급이다. 의뢰인과 같이 여행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은 했지만 여행을 통한 유대는 개뿔, 의뢰비 내놔라고 당당히 손 내미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번엔 불로불사를 살아가는 여자가 나온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도 반드시 살아나는 사람을 만나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 대한 푸념을 매시간 듣는 것도 고역이다. 그런 불사신과 여행을 하다가 역병이 도는 어느 도시에서 도착한다. 거기서 뜻하지 않게 불로불사자도 쓰기 나름이라는 사용처를 알게 되고, 일레이나는 멋지게 그녀를 이용해 돈을 버는데 성공한다. 


일레이나를 이렇게 놓고 보면 돈에 찌든 악녀 같은 이미지지만 사실은 기브  테이크를 잘 지킨다. 이번을 예로 들면, 불로불사로 살아오며 주변의 시선과 악의적으로 접근하는 악당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시피 하는 그녀를 지인에게 소개해줘 해결책을 제시하는 애프터서비스를 잊지 않는 면모도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악당임에도 악당 같지 않은 현실미를 보여준다. 가끔은 진짜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다 천벌도 받지만. 사실 도와주기만 하고 얻는 게 없다면 일레이나가 여행을 이렇게 길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람 도와주는데 미친 판타지 용사와는 다르게 받을 건 확실하게 받는 그런 현실적인 요소가 있다고 할까.


아무튼 이번 에피소드에선 일레이나가 여행을 하며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일레이나에게 영향을 받아 마녀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있고, 도움을 받아 잘 살아가는 사람도 나온다. 운 하나는 정말 좋아서 가짜 마녀 행세를 하면서도 들키지 않는 사람도 나오고, 일레이나와 백합 찍으려고 혈안이 된 여자 애도 나온다. 근데 문제는 죄다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현실과 이상을 망각해서 진짜 범죄단체에 쳐들어가 놓고 일반 카페로 착각해서 소란을 일으킨다던지. 모르면 용감해진다고, 근데 또 잘 해결된다. 그래서 약간은 재미가 없다. 이렇듯 이 작품은 가벼운 이야기들로 충만하다.   


하지만 이전에도 언급했지 싶은데, 이 작품은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한다고 할까. 앞에선 가벼운 이야기로 이게 뭔 의미가 있나 하는 이야기를 펼쳐 놓고 뒤에선 정말 어두컴컴한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가령 이번에 쌍둥이의 이야기를 예를 들자면, 자녀를 키우는데 있어서 내리사랑은 공평하지 않으면 아이의 정서 발달에 악영향일 끼친다는 교훈을 던진다는 거다. 한 아이에게만 집중적으로 편애를 한다면 남은 한 아이는 어떻게 될까.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고를 치고, 그러다 부모에게 혼나고, 그럴수록 아이는 삐뚤어질 수밖에 없는. 궁극적으로 혼나는 것조차 부모의 관심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대목은 소름이 돋는다. 결과 애정결핍에 걸린 아이는 편애를 받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간혹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에피소드도 있다.


일레이나는 스승을 만난다. 그동안 그녀의 스승은 간간이 언급되어 왔다. 게으르고 나비나 쫓아다니는 쓰레기 같은 스승이라고 매도하지만 지금의 일레이나로 있게 해준 고마운 인물이다. 일레이나는 과거의 스승을 만난다. 지금은 멸망해버린 어느 도시에서. 홀로 남겨진 소녀를 본 순간 일레이나는 단숨에 알아차린다. 그녀가 자신의 스승이란걸. 이렇게 인연은 갑작스럽게 연결이 된다. 지금의 그 소녀는 아직 마법을 쓰지 못한다. 악연 밖에 없던 지난날의 스승과의 인연도 돌이켜보면 좋은 나날이다. 그래서 일레이나는 그녀에게 마법을 가르치며 여러 뜻깊은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소녀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만 한다. 일레이나와 함께했던 기억은... 스승은 일레이나를 가르치며 줄곧 비밀을 지켜왔다. 그리고 지금 소녀는 과거로 돌아가고 일레이나는 현재의 스승과 만난다.


맺으며: 중반 쌍둥이 에피소드는 애정결핍이 불러오는 참극이라는 시리어스가 따로 없다. 부모의 잘못으로 자식은 상처를 받아 가고 삐뚤어져가는 모습을 참으로 적나라하게 그려 놨다. 후반 일레이나가 과거의 스승을 만나는 대목에서는 조금은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이렇게 가끔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풀어놓곤 해서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앞에서는 고양이 카페라는 의미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더니 후반엔 이렇다. 그래서 필자는 이 작품은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돈 버는데 혈안이 되기도 하고, 사기도 치고, 그러다 천벌도 받는 현실적이면서 유쾌함이 있는 반면에 앞에선 가볍게 애피타이저를 던져놓고 중후반엔 사람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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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환상의 그림갈 16 - 이별의 이유조차 우리는 알지 못한 채로, NT Novel
주몬지 아오 지음, 이형진 옮김, 시라이 에이리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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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 연합에 함락된 오르타나를 탈환하기 위한 원정군과 하루히로 일행은 결사의 사투 끝에 탈환에 성공한다. 사실 원정군이 죽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버림말로 이곳으로 보내졌고, 이들을 이끄는 장군 또한 그런 점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부하들은 직속을 빼곤 오합지졸 그 이상을 보여주는 놈팽이들 밖에 없는, 가지고 있어봐야 문제만 일으키는 놈들 밖에 없으니 왕국으로서는 오르타나를 탈환하면 그것으로 족하고, 이 과정에서 이들이 죽는다면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하루히로 팀이 함락된 오르타나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황야를 우왕좌왕하다가 이들(원정군)의 눈에 띈 것에서 운이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없기로 유명하다.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볕이라도 드는데 이 작품은 볕 드는 구멍마저 막아 버린다.


이번 에피소드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어쩌면?을 들 수가 있다. 하루히로의 스승은 전쟁통 속에서 만난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조언과 가르침을 선사해주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듯이 꽃이 피면 언젠가 지는 것도 자연의 섭리다. 하루히로의 스승이라고 무적은 아니다. 스승의 죽음은 하루히로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기억을 잃지 않았고 좀 더 강했다면 잘해나갈 수 있었을까? 그래서 어쩌면 스승은 죽음을 가장해 하루히로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흐름도 좋겠는데 작가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늘 그래왔듯이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그리기 시작한다. 죽음이란 늘 도처에 깔려 있었다. 친한 사람도, 친하지 않는 사람도... 거기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이번 이야기는 오합지졸로 오르타나 탈환에 성공한 원정군을 이끄는 장군의 반란을 그리고 있다. 어차피 왕국에서 버려지다시피 했는데 변경에서 내가 왕이 된들 누가 탓하겠냐다. 문제는 여기에 하루히로 팀이 엮이게 된다는 거다. 원정군에게 붙잡히듯 보호받을 때부터 장군을 신뢰하지 않아 놓고 탈환 후 일찌감치 도망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놈의 우유부단함이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이용 가능한 건 뭐든지 이용하려는 장군의 손아귀에 붙잡혀 하루히로는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원래는 원정군과 의용병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하지만 하루히로는 할 수밖에 없다. 왜냐면, '인질'​이 잡혀 버렸으니까. 이 작품은 은근히 19금적인 요소를 깔고 있다. 이번 하루히로 팀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야 여성진이 3명이나 있고, 이번 원정군은 사회의 쓰레기들만 모여 있으니까. 


장군은 고블린과 동맹을 맺고 싶어 한다. 나라를 건국하고자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주변의 정세와 안정이다. 그래서 장군은 인간에게 위협적인 고블린과 손을 잡으려 한다. 이 얼마나 얼빠진 일인가 싶다. 하지만 무역 도시 '베레'의 경우를 보더라도 마물과 인간은 공존이 가능하다. 문제는 하루히로 팀이 없는 곳에서 해줬으면 하는 거고, 흐름은 하루히로 팀을 놔줄 생각이 없다. 인질이 잡혀버린 하루히로 팀은 원정군을 절대 믿지 못함에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보통은 이 시점에서 주인공 버프를 받아 인질을 구출하고, 장군에게 한방 먹이는 카타르시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은 했다고 해도 하루히로 팀의 본질은 '찌끄레기'다. 먼지가 합쳐진다고 더스트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래도 발버둥은 처봐야 되지 않겠나 싶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거린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지렁이는 지렁이일 뿐이다.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루히로는 유메와 란타를 만난다. 기억이 온존했다면 아무리 똥 덩어리 란타라도 반가웠을 것이다. 비참함이란 무얼까. 자신만 살자고 도망간 란타는 여행 중에 내면적 성장을 이뤘다. 유메는 몇 개월(아니 1년인가) 뒤에 만나자는 약속을 이제야 이뤘다. 하지만 눈물 나는 상봉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 옛날 오르타나에서 같이 생활했던 기억은 이미 저편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하루히로에겐 천군만마를 얻은 거나 다름없다. 유메와 란타는 기억을 잃지 않았고, 실력적으로 성장을 이뤘으니 많은 도움이 되리라. 장군의 싸움 실력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설익은 감이 홍시를 흉내 낸다고 팔릴 리가 없듯이 성장을 이뤘다고 풋내 나는 찌끄레기들이 어디 가겠나 싶다. 하루히로는 인질을 구출해 도망 가려는 계획은 잡는다. 그게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모른 채.


어쨌거나 작가 후기를 보면 최종장에 들어섰다고 언급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제법 급진전을 보인다. 입만 열었다 하면 깐족거림으로 사람 미치게 만드는 히요무가 본격적으로 출연하고, 열리지 않는 탑(1권에서 하루히로등 아이들이 처음으로 나왔던 곳)의 주인이 등장하면서 이 작품 최대의 미스터리 기억 소실의 전말이 어느 정도 드러난다. 결국은 하루히로 팀은 이리저리 이용당하는 것뿐이라는 참으로 비참함을 보여준다는 거다. 하루히로는 감으로 어느 정도 좋아 대충 때려 맞춰 가면서 이 시국을 타파하고 싶지만 힘이 없다. 이들에게 힘을 보태줘야 할 살아남은 의용병들도 이들 편이 아니다. 세상에서 고립되어 하루히로는 인질을 구출하고 안정된 삶을 얻을 수 있을까. 지렁이는 있는 힘껏 머리를 휘둘러 본다. 그러나 더욱 세게 밟힐 뿐이다.


맺으며: 작가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나 보다. 희망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절망만이 존재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인질이 잡혔을 때 결국 살아서 돌오긴 힘들 것이라는 암울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흘러간다. 하지만 어쩌면 인질을 잡힐 수밖에 없겠다는 그동안의 흐름도 없잖아 있었다. 기억이 소실되면서 감정도 리셋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전에 내가 누굴 좋아했는지도 까먹게 된다.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하는 하루히로를 보다 보면 이성으로서 연심을 키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인질이 누구인지 밝힐 순 없지만 아마 다음 에피소드는 대립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 말은 이번 에피스도에서 기승전결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번 에피소드는 많이 불편하게 만든다고 할까. 120여 페이지를 고블린과의 동맹을 위해 쓸데없이 지출하고, 그나마 의미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누가 찌끄레기 아니랄까 봐 선택에 있어서 소심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은 짜증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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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이끄는 이세계 여행 5 - L Novel
아즈미 케이 지음, 마츠모토 미츠아키 그림, 정금택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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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과 마족간의 전쟁에 끼여 죽다가 살아난 주인공은 드디어 학원 도시 '롯츠갈드'에 도착한다. 역시 이세계물에서 학원 라이프는 빠질 수가 없나 보다. 이런 시추에이션 뒤에는 젊은이의 요람에서 풋풋한 만남도 있고, 능력 배틀에서 무능력자인 주인공이 사실은 능력자인데 뭔가 문제라도?라듯이 두각을 나타내 귀족이나 왕족 영애의 눈에 띄어 우리 사귀어요 같은 클리셰가 시작된다고 할까. 그러나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아고 싶어 하는 게 본심이다. 사실 이런 부분은 무능력자가 능력자라는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무능력이라는 괴롭힘 당하는 포지션을 보이면서 사실은 능력자라는 소문을 다 퍼트려 놓아 화제의 중심에 스스로 놓아놓고 들어오는 골은 다 쳐내듯 다른 사람에겐 눈길도 안 주는 어쩌면 가장 질 나쁜 주인공 축에 속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도 얼추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원래 정착하기로 했던 도시에서 상점을 열려고 했으나 나라의 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개설 조건 때문에 학원도시로 이주하기로 한 주인공은 꿈에도 염원하던 상점을 열게 된다. 그리고 학원에 학생으로 잠입해서 이세계에 대해 그리고 부모님에 대해 조사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래서 이전에 신세를 졌던 대상인의 추천으로 입학에 성공은 하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학생이 아닌 선생님 코스를 밟게 된다. 알고 봤더니 추천장 오류로 발생한 해프닝이다. 여기서 이 작품이 다른 이세계물과 차별을 두는 게 이 대목이다. 학생으로서 학원 라이프를 즐기며 청춘을 구가하는 게 아닌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뭐 돼봐라라는 작가의 심술이 느껴진다고 할까. 궁극의 마법을 추구하다 '리치'가 되어 버린 어느 마법사를 두들겨 팬 끝에 3번째 시종으로 거둬들인 '시키'를 종자로 삼아 학원에 입성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기서 여느 이세계물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이세계인들의 지적 능력은 뒤떨어져 있다. 여신은 외모지상주의만 추구할 뿐 이세계인들 안에 든 지식과 능력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은 이세계 끝 황야에 떨어져 노력이라고 부르는 개고생한 끝에 능력자로서 개화를 이뤘다. 그러니 주인공과 이세계인들 능력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인공은 날로 먹으며 강해진 것이 아닌 몸을 밑천 삼아 노력한 끝에 능력을 일궜다는 소위 성장형 캐릭터라는 것이다. 여느 이세계물처럼 별다른 노력도 없이 스킬을 뻥튀기해가며 강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만의 독특한 노력 법이 생기기 마련이고 주인공은 이런 점을 바탕으로 해서 제자들을 가르쳐 간다는 거다. 제자들은 당연히 처음은 못생긴 데다 인간 언어도 못하고 쭉정이 같은 주인공이 반가울 리가 없다. 이런 점(못마땅)들이 이런 작품들의 클리셰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은 새로운 관점과 기존 클리셰가 짬뽕이 되어 있다고 할까. 남은 건 실력을 보여줘서 스승의 미덥지 못한 겉모습이 아니라 가르치는 실력을 겸비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러면 걸러지는 애들도 있고,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선생의 겉모습이 아니라 능력을 보고 주인공을 선택하는, 즉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흐름이 된다. 이렇게 주인공은 제자들을 받아 교사로서 학원 라이프를 이어가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얽히게 된다. 가령 교사들 간 알력 다툼에 휘말려 암살이라는 흉악한 일도 당하지만 애초에 살아온 경험치가 틀리다. '소피아'라는 인간족 최대 실력자하고도 무승부를 이룬 주인공을 이겨낼 인간은 이세계엔 없다.


그러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 주인공은 이세계 기준으로 정말로 못생겼다. 얼마나 못생겼으면 여신이 마물하고만 번식하며 살아가라고 매도할 정도다. 한때는 가면을 쓰고 다녔다(지금은 벗었다). 그럼에도 못생김 아우라는 숨기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이성 다운 이성은 그의 곁엔 없다. 토모에, 미오는 마물이다. 정말로 마물하고 번식할 판이지만 애써 가족(토모에,미오)과 그러는 거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그런 주인공에게 드디어 햇빛이 든다. 학원 도시에서 오픈한 상점은 높은 매출을 자랑하며 순풍에 돛 단 듯 잘 나간다. 교사로서의 실력도 인정받아 몇 명뿐이지만 콧대가 높던 귀족 애들도 제자로서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니 팔자 피고 싶어 하는 여학생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얼굴보단 돈이라는 마인드로 똘똘 뭉친 여학생들의 닥돌이 시작된다.


보통 이세계물에서 포인트라면 하렘의 완성을 꼽는다. 근데 이 하렘이라는 게 주인공이 뭘 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호감도 게이지가 상승해서 멋대로 하렘이 완성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는 거다. 이 작품은 그 정도의 길을 비튼다고 할까. 이 작품에서 하렘의 본질은 '돈'이다. 상점의 성공으로 부를 이룬 주인공을 호구 잡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의 미친듯한 돌격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결국은 여느 하렘들은 허구라는 현실미를 들이민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굴이 전부는 아니다. 여자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얼굴만으로 이런 현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돌진하는 여학생들이 유쾌하게만 비춰진다.


어쨌거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신에게서 버림받았지만 운 하나는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토모에(드래곤)와 미오(검은 거미)를 주워 최강의 패를 손에 넣었고(이 둘을 이길 자는 이세계에서 주인공 외엔 없다), 현실의 비닐하우스 격인 아공을 만들어 각종 과일과 무기류를 만들어 내다 팔면서 떼돈을 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여신이 악담으로 던진 마물하고만 살아라고 했던 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토모에와 미오만이 아니라 드워프나 리저드맨등 여러 아인들을 아공에 이주 시켜 노예로 부려 먹고 있기도 하니까. 상점에서도 인간족보단 아인들을 부려먹고 어떻게 보면 주인공도 좀 악랄한 기질이 있다. 은근히 노동법 위반도 보이고. 하지만 주인공과 같이 있으면 아인들도 꽤 강해지니까 서로 윈윈하는 구석도 있다. 애초에 아인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있지만.


맺으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조금 독특한 면을 보인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건 좋아하면서 그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가령 처음 도시에서 대상인의 딸들이 저주를 받아 오늘내일하는 걸 고쳐주게 되었는데, 이번 학원에서 그 딸들이 제자로 들어오게 된다. 근데 그 딸들 이 학원에서 평판이 좋지가 않다. 또한 주인공은 이전에 모험가들을 도와주고 아공에 들였다가 그 모험가들이 일으킨 폭력으로 인해 아공의 주민이 죽게 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건 어느 정도 반성을 했긴 한데 그렇다면 자신의 길라잡이로서 이후의 행동에 지침이 되어야 하건만 그새 잊어버린다는 거다. 이번에도 학원에 잠입한 마족을 잡아내지만 풀어주게 되면서 또 뼈아픈 일을 겪게 된다. 이렇듯 주인공의 선행으로 누군가가 도움을 받게 된다면 그 도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곤란을 겪게 된다는 거다. 역시 완벽한 주인공은 없다.


아무튼 작은 복선은 바로 푸는 반면에 긴 복선은 몇 권에 걸쳐 풀어가다 보니 기억력이 붕어 머리인 필자로서는 복선 풀이가 쉽지 않다. 이번에도 복선이 제법 깔리고 있다. 주로 주인공을 노리는 복선이고, 때론 여신과 싸우는 마족과의 복선도 제법 투하되고 있다. 작가가 잊어먹지 않고 이후에 잘만 풀어준다면 매우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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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자격을 박탈당한 아저씨지만, 사랑하는 딸이 생겨서 느긋이 인생을 즐긴다 3 - L Books
오노나타 마니마니 지음, 후지 초코 그림, 송재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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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라비를 맡길 곳을 찾아 쫓겨나듯 도망치듯 떠난 도시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저씨는 뜻밖의 상황과 마주한다. 언제는 모험가 자격이 되지 않는다며 비아냥 일색이었던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서 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이 쇠약해져 오늘내일하는데도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구명줄마저 잘라버린 인간들이 손바닥 뒤집듯 아저씨는 환영하고 있다. 아마 1권에서 드래곤인가 뭔가 쓰러트려서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임팩트 깊은 인상이 남아 있지 않는 거 보면 드래곤 퇴치가 결정적이었지 않나 싶다. 천둥 벼락으로 엘프 마을이 불타는 걸 진화해주기도 하고, 쫓겨난 뒤 뭔가 선행을 많이 한 거 같다. 근데 그동안 용사 파티와 같이 다니면서 선행은 하지 않은 건가. 아저씨가 37살이 될 동안 용사 파티원 중 한 명으로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을 텐데 이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고작 드래곤 퇴치와 선행 좀 했다고 갑자기 영웅 취급? 이렇듯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자기들 편한 데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도시로 돌아온 아저씨가 그동안 용사와 매듭짓지 못했던 일들을 해결하고, 딸 라비에게 모든 걸 쏟는 걸 그리고 있다. 아저씨는 용사 파티에서 쫓겨나고 라비 덕분에 알게 된 자신이 저주받은 이유가 뭘까 늘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도시에서 쫓겨나고 멀지 않은 미래에 HP(생명력)가 소진되어 객사할 운명이었다. 근데 마침 저주받아 펜릴로 변해 있었던 라비를 구해주면서 비로소 자신도 저주받았다는 사실, 그 저주를 건 장본인이 용사라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면 용사에게 있어서 아저씨는 스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저주를 받으면 복수해주는 게 순리건만 아저씨는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이렇듯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저씨의 성품은 보통 착한 게 아니다. 그저 아들과도 같았던 용사를 만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고 이유나 들어보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용사를 찾던 중 누군가에 의해 라비가 납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라비를 거둬들일 때부터 이미 딸바보가 되어 있었던 아저씨다. 역린을 건드린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줄 차례다.

근데 납치범에게서 뜻하지 않게 용사의 상태를 듣게 된다. 보통 저주란 되돌려지면 그 파괴력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아저씨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었다. 그리고 그 저주는 시행자에게 되돌아갔다. 보통 이러면 쌤통이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죽으라고 자신에게 저주를 걸었던 용사의 상태를 걱정하게 된다. 사실 이런 부분이 여간 찌증이 아니다. 목숨이 달려있는 악행을 당하고도 분해하지 않는 성격을 어떻게 봐줘야 하는가. 딸 라비의 교육상 어른들의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딸 또한 선량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라며 애써 선한 마음을 포장하는 모습은 위선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읽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 라비를 납치하고, 다시 아저씨로 하여금 저주를 받으라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친 납치범마저 용서해주는 모습에서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할 정도였다. 죽어가는 용사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장면에서는 이 정도면 착한 마음이 아니라 그저 호구에 병sin같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용사와의 관계는 일단락되긴 하는데 여전히 용사가 아저씨에게 저주를 건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기승전결까지 무시하게 되면서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아무튼 라비가 납치되면서 머물던 여관이 박살 나버려 책임감을 느끼고 자기가 수리비를 내겠단다. 보통 이런 장면에서는 시한폭탄 같은 아저씨를 내쫓는 게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가 이 도시로 돌아올 마음을 먹은 이유가 도시 모든 사람이 아저씨를 깔보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중 한 사람이 여관 주인이었고, 이렇게 상처 입히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역설하기도 한다.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여관 재건에 돌입하고, 아저씨는 라비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것만 보여주고, 상처 입히는 사람도 있다면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가게 해준다. 문제는 너무 딸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모든 게 라비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흐뭇하고 사랑스럽다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 지리멸렬하고 따분할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제목이 무엇보다 와닿는다. 더 이상 모험가의 길은 걷지 않게 되고 그저 품에 들어온 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받치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라비를 통해 세상을 달리 보게 되고 그렇게 해서 모험가로써가 아닌 인간으로서 아저씨는 성장을 해간다. 라비는 그런 아저씨의 가르침으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배워가는 그런 이야기다. 아무튼 이런 생활 속에서 무지렁이 같은 아저씨의 성품이 짜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교훈을 던지기도 한다. 마치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준 흥부처럼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좋은 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부서진 여관을 재건하면서 빠듯한 예산 때문에 고심이 많던 아저씨에게 엘프들이 내미는 손은 박 씨를 물어다 준 제비와 같다. 이렇듯 교훈적인 이야기가 상당히 들어가 있다. 그래서 카타르시스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바란다면 이 작품은 맞지 않을 것이다. 또한 폭력엔 폭력으로 맞서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 죄가 돌아온다는 메시지도 들어 있다.   

맺으며, 그냥 육아 프로그램이다. 아저씨가 라비를 키우기 위해 뭣이 중한디를 실천해가는 그런 이야기다. 그렇게 선한 마음으로 똘똘 뭉친 아저씨의 가르침을 받고 라비는 성장을 한다. 호기심이 많아 이거저거 물어보고 새로운 것에 신기해하고 사물의 원리를 알아간다. 얼핏 귀엽고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연상될 테지만 사실 그런 거 없다. 작가의 필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복선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하고, 접하게 되는 일들엔 감정적(부정적인 삼정은 아님)이 되는 일이 많다. 주변이나 자연에 대한 사물 표현에 있어서 1차원적이다. 분명 판타지이고 중세 시대를 표방하고 있건만 은행이니 병원이니 현대적 언어 등을 보자면 어휘력에서도 좀 빈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중심을 라비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애 숨통을 조이는 듯한, 딸바보는 사실 아이의 자주성에 제약을 걸게 되고 그걸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느낌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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