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노기사 3 - J Novel Next
시엔 Bis 지음, 사사이 잇코 그림, 이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기사 '발드'는 어쩌면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을 테죠. 눈앞에 있는 왕태자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내 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바람. 기사로써 주인을 모시며 40여 년을 살아왔던 노기사에게 단 하나 가슴에 남는 아픔이자, 말괄량이 같은 주인 집 딸이 정략결혼에 팔려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슬픔. 노기사의 나이 29살 때의 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소녀가 갓난 아이를 안고 돌아왔을 때, 어쩌면 노기사의 전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명이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지러운 난세에 집안을 지키기 위해 사모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정략결혼으로 집안의 평화를 지키고자 떠났던 소녀와 그 소녀를 어릴 때부터 보아온 노기사의 엇갈림은 가슴 아프게 하였더랬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녀가 안고 있었던 아이는 파르잠 왕국의 왕자였다는 게 밝혀지고, 아이는 왕국에 거둬졌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노기사의 청혼을 끝끝내 마다한 채 눈을 감게 되죠. 노기사는 길을 떠납니다. 58살이라는 노구를 이끌고 죽을 자리를 찾아 정처 없는 여행길을요. 여행길은 순탄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인연이 닿아 여러 사람을 만나 어울리고 술을 마시며 강산을 노래하고 삶을 이야기하며 여행의 참다움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만나면 혼내주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고, 기사 서임을 받을 때 그가 맹세했던 백성을 위해 살겠다는 그 마음을 잃지 않은 채 말이죠. 그의 성품에 이끌려 같이하게 되는 사람도 늘어만 갔습니다. '드리아텟사'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주군인 공주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시련을 돌파하기 위해 머나먼 땅을 찾아왔건만 그만 동료들의 마수에 걸리고 말죠. 절체절명의 순간 '발드'와 발드를 따르는 동료들에게 구해진 이후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어 버려요. 어쩌면 드이라텟사는 연심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르잠에 도착한 발드에게 끊임없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의 방에 노크도 없이 쳐들어가 허둥대는 모습이란.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귀부인들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입방아에 올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귀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노기사도 손녀 같은 그녀를 어찌 사모할 수 있겠냐고 하지만 시중을 드는 자는 그런 일은 흔하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다는 말에 대꾸하지 않는 모습에서 심상찮음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있었으니... 영감님 운에 연애 운은 없나 봅니다.


소녀가 안고 있었던 아이가 장성하여 왕태자가 되었고, 조금 있으면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 옛날 정략결혼으로 팔려가 갖은 고초를 겪나 했더니 운명의 장난처럼 시집 간 그곳에서 피신 온 파르잠 선대 국왕과 친해졌었던 소녀, 사실은 불륜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정식 혼례는 안 치른 거 같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거니. 그것 때문에 파양 당한 건 아니지만, 친정으로 돌아온 이후 소녀가 안고 있던 아이는 노기사가 스승이 되어 참으로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성인이 되어 왕국으로 불려가 정식 왕태자가 되었고, 지금 왕의 위엄을 보이며 노기사를 맞아들이게 되었죠. 그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군요. 자, 스승이기도 하고, 아들 같은 왕태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부터 노기사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주변국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파르잠 왕국을 전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기 시작하고, 노기사는 왕태자의 명령을 받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원하기 시작하죠. 마수와 싸우고, 인심을 더럽히는 악당을 소탕하는 등 젊었을 때는 못다 했던 일들을, 촛불을 마지막에 가장 밝게 빛난다는 것처럼 나이 60이 되어도 쇠한 곳 없이 달리고 달려 아들 같은 왕태자의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참으로 눈부시기까지 합니다. 노기사의 뜻에 찬동하여 같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반대로 시기하여 적대하는 사람도 늘어나는등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마냥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풀리지만은 않은 모습도 보이기도 하죠. 정통 판타지답게 음습한 자들이 등장하고 그걸 타파하는 등 작가가 스파이스 조절을 잘한 다고 할까요. 몰입도가 꽤 좋습니다.


맺으며, 사실 저런 이야기보다 먹방이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음식을 접하고 처음 먹어보는 맛에 황홀해하고 목 넘김이 좋다는 둥, 보기와 다르게 진미라는 둥, 무례한 놈이 있어 혼내주고 싶은데 그놈 요리 실력이 매우 좋아 언제나 놀아나는 등 그런 노기사를 보고 있으면 흔치않게 웃음이 묻어나죠. 이 작품은 노기사의 방랑을 주제로 하고 있어서 어쩌면 기사들의 이야기와 먹방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하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방랑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먹방은 방랑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죠. 그러다 보니 입은 고급이 되어가고, 늙어서 조심해야 될 건 콜레스트롤이건만 사양 않고 먹어대는 모습에서 영감 제명에 못 살 거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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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포 현자의 이세계 생활 일기 6 - L Novel
코토부키 야스키요 지음, John Dee 그림, 김장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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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하세요.





아저씨는 이세계에 떨어지고 신세를 졌던 공작가(家)의 자제 '츠베이트'의 호위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철천지 원수였던 친누나를 만나 법률이 느슨한 이세계라면 죽일 수 있겠다며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지만 작가가 기승전결을 팔아먹는 바람에 물 건너 가고 말았죠. 아저씨는 사람들을 괴롭히던 정령(페어리)들을 소탕하고 거대한 크리에이터를 만드는 등, 여전히 자신으로 인해 이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안중에도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냉장고를 만들어 보급하더니 이번엔 세탁기를 만들겠다고 설치는데 어째서 원심분리기가 되는지 모르겠고, 남자가 35세 넘어서까지 동정이면 흑마법사가 된다더니만 이걸 인증이라도 하듯이 40살이 넘은 아저씨가 동정으로 밝혀졌을 땐 뜨악!!!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뭐, 40살 넘어서도 동정일 수 있겠죠.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관심 있는 분야가 다 다를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저씨는 친누나에게 시달림 받은 끝에 여자 알레르기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야 누나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번에 수녀 '루세리스'와 여행하면서 보인 반응을 보면 딱히 여자를 싫어하는 건 아닌 듯하였습니다. 근데 40 넘은 아저씨가 동정티를 내니 참 뭐랄까 기분 나쁘다고 해야 할지, 징그럽다고 해야 할지. 분위기상 루세리스와 맺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였는데도 숟가락을 뜨지 않는 만행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 하는데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제 개도 거들떠 안 볼 소재인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조우는 작가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을 들게 하였습니다.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루세리스가 보살피고 있는 고아 4인방과 뭘 잘못 먹어 사무라이의 길을 들어선 엘프녀의 성장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기르던 치킨(꼬꼬)들과 맨날천날 대련을 하며 실력을 기르던 아이들이 느닷없이 실전을 치르고 싶다는군요. 그래서 장비를 맞춰주고 인솔자가 되어 숲으로 들어가 동물들을 잡아대는 아이들을 뒤를 봐주게 되죠. 이때 수녀 루세리스와도 같이 가는데요. 이전부터 루세리스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아저씨는 기회가 생겼음에도 누가 동정 아니랄까 봐, 그런 아저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루세리스 또한 무슨 절차를 그리 찾아대는지 보고 있자니 풋풋함이 솟아난다기보다 짜증이 솟구치게 되더라고요. 필자의 감성은 메말랐습니다. 아저씨가 하다못해 20대였다면 감정이입이라도 했을 텐데, 40대 아저씨가 이러니...


그래도 이 여행에서 시사하는 건 꽤 있었습니다. 실력을 믿고 설치다간 제명에 못 산다는 것, 파티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남은 사람들도 괴롭다는 것, 사냥은 철저한 정보전이라는 것등, 자기들끼리 진지한 의견을 모으고 군더더기 없는 행동에서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인 아저씨와 루세리스보다 똑똑하고 현명하게 다가옵니다. 칠칠치 못한 어른들보다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면 이 작품은 분명 대성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요. 근데 문제는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있을텐데도 처음부터 아이들을 성공만 시키는 건 우려스럽다고 할까요. 이 부분을 메꾸기 위해 아저씨 나름대로 훈련을 시키는 거 같았습니다만. 그보다 아저씨를 자기 앞가림이라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누가 동정 아니랄까 봐 이번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닥돌이라니 차여서 우주로 날아가버렸으면 좋겠건만.


그건 그렇고, 아저씨 드디어 용사 일행과 조우합니다. 친누나와 버금갈 정도로 철천지 원수인 4신(死 아님)을 신봉하는 [메티스 성법신국]에서 소환한 용사들 또한 아저씨에게는 달갑지가 않았죠. 게다가 용사들이 하는 짓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게 아니라 이웃나라를 침공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니, 본말 전도를 몸소 실천 중인 용사들이 기꺼울 리가 없었어요. 이세계에 용사로 소환되었다는 기쁨에 눈에 뵈는 게 없는 학생들의 만행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인격이 덜 발달한 아이들에게 칼과 권력을 쥐여주면 큰일 난다는 메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까요. 내가 선이라며 떼로 몰려가 떼로 몰살 당해놓고도 정신 못 차리는 용사들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히죠. 그런 용사들과 아저씨가 만났습니다. 아저씨의 성격은 말보다 주먹, 예의를 모르는 자에겐 가차가 없어요.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찮습니다. 고대부터 꾸역꾸역 용사들이 소환되면서, 쉽게 표현하자면 차원의 벽에 구멍이 생겨 이세계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나와 버렸습니다. 이게 다 4신 때문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4신은 만악의 근원이 되어 가죠. 이세계를 창조했다면서 망가트리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는 상황이랄까요. 이세계를 한번 멸망 시켰다는 사신(邪神, 간사한 신?)의 부활도 가깝고(왠지 아저씨가 하는 실험에서 탄생할 거 같은 복선이 나왔죠), 느긋하게 이세계를 만끽하려던 아저씨는 싫어도 4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뭐, 원래 4신을 철천지 원수로 대했던 아저씨니까 싫어하진 않을 테죠. 


맺으며, 좀 아쉬웠습니다. 용사들과 만나 피 터지게 싸우나 했더니 훈계나 하고 자빠진 아저씨라니 실망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주변 인물에 왜 이리 포커스를 맞추는지 모르겠더군요. 주변인들이 나와서 앞으로의 복선이나 이야기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장면들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굳이 써서 지면을 갉아먹는 건 대체. 뭔가의 상황을 놓고 늘어놓은 설명도 지리멸렬하고, 그러다 보니 기승전결은 내다 버리게 되고, 강자의 오만함에서 오는 자신감인지 아저씨가 만나는 사람마다 훈계질 하는 모습은 인터넷 비속어인 꼰X를 연상 시키기도 했군요. 거만함이랄까요. 이러니까 주변에 여자가 없지. 루세리스도 애들만 아니었으면 아저씨와 엮일 일도 없어요. 진히로인일 거 같았던 '세레스티나'는 거의 완전히 공기가 되어 버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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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1 - S Novel+
쥬몬지 아오 지음, 다쿠로 그림, 주승현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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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마리아, 재와 환상의 그림갈로 유명한 '주몬지 아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이세계 전생을 다루고 있고, 재와 환상의 그림갈에서 작가 특유의 찌끄레기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일행)의 이야기가 성공을 거두자 이 작품에도 기용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말은 그냥 자기만족만이 존재하는 이세계 치트물에 식상한 분들이라면 권하고 싶을 정도로 작품 내 캐릭터 취급이 좋지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재와 환상의 그림갈처럼 이 작품 또한 캐릭터들을 한계까지 시궁창에서 굴리는 게 특징이라 할 수 있죠. 거기에 주변 인물에 대한 과감 없는 리타이어는 때론 충격에 빠트리기도 하고요. 여느 이세계물과 다르게 주몬지 작가의 이세계물은 암울하고 어딘가 잿빛투성이로서 읽고 있으면 덩달아 같이 음울해지는 묘한 매력을 안고 있죠.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 하는 일은 죽는 것입니다. 29살 SE(시스템 엔지니어)로서 사축의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 날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이를 구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죠. 오늘도 트럭이 열 일하나 했는데, 트럭 다음으로 많이 이세계로 보내는 스포츠카에 치여 죽는 불운이란. 그나마 똥차가 아닌 것만 해도 어디겠습니까만 은. 그리고 눈을 뜬 곳은 예상대로 이세계, 신(神)을 통해 치트를 부여받고 이제부터 무쌍을 찍는 인생이라든지, 방대한 현대의 지식으로 우매한 이세계인들을 구원한다든지, 그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었으면 동정인 채로 비명횡사한 일은 억울하지는 않았겠죠. 작가가 재와 환상의 그림갈을 집필 중인 주몬지 아오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마을 사람 A도 못된 상황을 살아간다는 소리죠.


자, 지금부터 주인공은 4번의 환생을 거칩니다. 아니 29살 동정까지 합치면 5번인가요. 그때마다 주인공 앞에 어떤 인물이 나타나죠. 에버라스티아 제국의 황녀 '린제리카', 통칭 해체 공주, 그녀는 주인공이 18살 될 때마다 나타나요. 그리고 가차 없이 열등종이라며 베어버리죠. 그 어떤 종족으로 태어나도 반드시 나타나면서 뭔가의 끈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낳죠. 하지만 아쉽게도, 견우와 직녀처럼 애타는 사랑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주인공은 죽임 당하는 쪽, 해체 공주는 죽이는 쪽. 이유를 물을 사이도 없이 댕강댕강 썰려나가니 주인공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죠. 그런 윤회 사이에 주인공은 있을 장소와 좋아하는 사람을 잃어 가야만 했습니다. 여느 이세계 치트물처럼 먼치킨이라는 능력이라도 있으면 해체 공주와 맞서기라도 할 텐데 그런 건 일절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5번째 윤회를 마치고 18살이 된 어느 날, 여전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몸뚱이로 용병 일을 하던 주인공 앞에 어떤 소녀가 찾아오면서 그는 해체 공주에 대한 반격의 서막을 올리게 되죠. 그러나 그 과정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마왕의 숨겨둔 자식이라는, 윤회를 거치며 어쩌다 왕의 서자라는 포지션을 운 좋게 차지하게 되었지만 졸지에 정략결혼이라는 도구가 되어 머나먼 타국으로 데릴사위로 떠나야 되는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날려갈 뿐인 낙엽처럼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못 쓰는 아주 지독한 삶을 살아가야만 하죠. 하지만 그는 만납니다. 비로써 5번의 환생을 거치고 총합 119년이라는 인생을 살아오며 반드시 지켜야 될 여자를 만나죠. 첫 번째 생에서 그토록 지키고 싶었건만 지킬 수 없었던 미샤와는 다르게, 이번엔 반드시...


주인공이 맞서야 될 적, 해체 공주가 속한 나라, 에버라스티아 제국은 대군을 이끌고 동부 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해 출정합니다. 파죽지세로 쳐들어오는 제국군을 맞아 손쓸 사이도 없이 동부 대륙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종이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전장으로 향하죠. 충분한 전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공이 먼치킨인 것도 아닌 상황에서 주인공이 내려야 할 결단은 무엇일까. 무엇을 내치고, 무엇을 끌어안아야만 할까. 모두를 지킬 수 없다면 이용할 수밖에 없는, 비정한 모습으로 그는 악인을 자처하며 제국과 처절히 맞서 갑니다. 4번의 인생(29살 동정 빼고) 모두 개입하여 18살을 넘기지 못하게 했던 해체 공주와 에버라스티아 제국, 흡사 개미와 코끼리의 대결에서 주인공에게 승산은 있을 것인가.


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려 합니다. 다만 앞으로는 해체 공주라는 복선과, 주인공이 윤회하는 이유 등에 집중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요. 그리고 주인공은 119년이라는 슈퍼 동정을 뗄 수 있을까. 또한 허접 종이 몸뚱이로 제국의 대군을 맞아, 해체 공주라는 시련을 맞아, 이번에야말로 19세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그가 노력할수록, 사람의 가치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가치란 용맹함에서 찾는 것이 아닌 얼마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을 감수하는지, 찌끄레기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면서 주변인들이 차츰 모이는, 사람의 가치,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맺으며, 역시 주몬지 아오답다  정도로 필력이 좋습니다. 작가의 특유의 잿빛투성이 음울함은 여전히 혀를 내두르게 하는데요. 거기에 박차를 가하듯, 전쟁포로에 대한 처우 같은 시리어스한 장면들도 꽤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가족 되는 사람들의 종말은 꽤나 안타깝게 하죠. 그렇기에 더욱 주인공을 몰아넣음으로써 흥미도를 높이는 재주가 있다고 할까요. 어쨌건 의문을 의문으로 자문자답하듯하는 비굴한 진행방식이라든지 제국군이 쳐들어오면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 등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군요. 아무튼 내용적으로 언급해보자면, 기승전결이 꽤 좋습니다. 하나를 놓고 고민하며 질질 끄는 것이 아닌, 가령 제국의 침공을 과감 없이 보여주고, 주인공이 각 나라를 돌며 협력을 요청하는 장면 장면들에서도 시간을 빼앗지 않습니다. 어쭙잖은 러브라인을 삭제하고(작가의 전매특허), 대신에 올곧은 사랑과 시선을 주인공과 히로인(여러명 나오지만 여기선 정략결혼 당사자)에만 집중 시킴으로서 질척거림이 없다는 게 뭣보다 좋았군요. 다만 등장인물이 많아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데 실패한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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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라운드 아서스 1 - 쓰레기 아서와 악당 멀린, L Novel
히츠지 타로 지음, 하이무라 키요타카 그림, 최승원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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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을 집필한 '히츠지 타로'의 차기작이 되겠습니다. 일러스트는 어마금과 던만추(소드 오라토리아)를 그렸던 '하이무라 키요타카'이고요. 일단 작가의 전작인 변마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올 1월 기준 300만 권이 팔렸다고 하니) 이 작품(아서스)도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죠. 거기에 '하이무라 키요타카' 보여주는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일러스트는 작품의 내용과 상당히 어울리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아서 왕 계승전]에 참가한 11명의 아서왕 후보자들이 각축을 벌인다는 이야기인데요. 요컨대 왕의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을 낸다는, 성배가 왕으로 바뀐 것뿐 Fate(이하 페이트) 시리즈와 아주 유사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왕이 되면 세계를 주무를 수 있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인데요.


위에서 페이트 시리즈와 유사하다는 이유가, 우선 서번트에 해당하는 '짹'이라는 영령을 소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페이트 시리즈와 차별을 둘려는지 이 작품의 영령은 시대의 영웅이 아닌, 아서 왕과 관련이 있는 인물에 한정 시켜 놓았다는 것뿐이지만요. 그 이외에 스킬이라든지 엑스칼리버라든지, 페이트를 먼저 접하신 분이라면 적응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죠. 페이트를 접해보지 못하신 분이라면, 음... 상당히 중2병스러워서 읽는 내가 이불 킥하고 싶을 정도로 오글 거린다고 할까요. 가령 남주 '린타로 등장씬이라든지, 스킬 명 쓸 때라든지, 세계관 소개를 읽다 보면 영웅물이나 모험물을 좋아하는 10대 소년들이 매우 좋아할 만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 사실 이 부분 때문에 중2병이라는 느낌을 매우 많이 받죠(필자 주관적). 


아무튼, 히로인 '루나 아르투르'도 [아서 왕 계승전] 참가자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계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스파르타 교육을 받은 영재이지만(가정 교육이 편중됨)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떠맡다 보니 의욕은 개뿔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실력은 아래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꼴찌를 달리고 있죠. 이쯤에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꼴찌의 반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보다 창창한 실력자들이 즐비한 계승전에서 질게 뻔한데도 나가는 이유가 뭘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게 또 다른 포인트이기도 하죠. 문득, 이세계 치트물을 많이 보신 분은 그녀가 힘을 숨겨놓은 실력자라거나, 무능이라고 해놓고 무능의 대표적인 스킬로 먼치킨이 되어 간다는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실 텐데요.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하겠습니다.


루나의 등장은 매우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계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왕 후보자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무기 '엑스칼리버'를 군자금 모은답시고 팔아 버립니다. 주객이 전도된다는 건 이런 건가 싶은, 칼이 없으면 싸우질 못하는데, 싸우겠다고 팔아버리는 만행을 저질러 주죠. 자신의 '짹'인 '케이 경'을 소환해서 코스프레를 시켜 아이돌화한 후 돈벌이에 동원합니다. 학생회장에 당선되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건 예사고(이때 남주 '린타로'가 휘둘리는 장면은 압권이죠), 돈을 벌기 위해 빵을 도매점에서 떼와 파는 등 이제까지 못 봤던 히로인의 기행이란 기행은 모두 루나에게 갖다 붙여놓은 것마냥 생각의 틀을 벗어낫게 함으로써 매우 황당함을 선사하는데요. 남주 '린타로'와의 만남에서도 그에게 내 발을 핥아라며 의기양양하는 모습에서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싶은 게요.


그리고 남주 '린타로', 전생의 기억을 가진 자칭 '치트용사' 그는 계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후보자로써 참가하는 게 아닌 조커로서 여주 루나의 진영에 가세하게 되는데요. 최약의 루나에 붙으면 뭔가 재미있을 거 같았는데 실상은 그녀에게 휘둘리게 되면서 후회막급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되죠. 가령 수업 시간에 루나를 저격해 악의적인 문제를 낸 선생에게 대항하고자 그녀는 린타로를 재물로 바쳐 버립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에 적응 못하는 린타로를 도와주려는 루나의 배려가 느껴지는데, 알고 보면 이게 질이 매우 나빠요. 뭔지는 직접 보고 느끼시길 바라고요. 학생회장이라는 사리사욕을 위해 주변 모든 걸 이용하면서 악의 독재자, 쓰레기라는 소리를 달고 사는 게 루나의 지금 포지션이죠. 읽다 보면 부제목인 '쓰레기 아서와 악당 멀린'은 진짜 잘 지었다는 느낌이 들게 됩니다.


근데 문제는 그녀의 사리사욕이 학생들에겐 긍정적으로 다가간다는 괴리감을 선사한 다는 것입니다. 쓰레기 선생을 퇴출시키기도 하고, 식당 메뉴를 개선하기도 하고, 학교 온 곳을 돌아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데 태어났으니까 인생을 산다기 보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활약은 매우 눈부시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전염이 되어 학생들도 밝은 모습이라는 괴리감. 항상 긍정적이 되어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 되겠지, 린타로 같이 고리타분한 사람에겐 지옥이지만 별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밝은 사람은 없다는 모습들을 보이죠. 사실 이런 부분들은 90년대에나 먹힐만한 개그 일색이랄지, 가령 실수했네? 혓바닥 내밀며 자기 손으로 머리 콩 하는 장면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장면들을 자주 보여주는 가벼움이 좀 있습니다. 진지한 면이 없다고 해야겠죠.


하지만 그녀가 계승전에 참가한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되면서 왜 그녀가 쓰레기 짓을 할 수밖에 없는지 하는 안타까움이 슬금슬금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유 없는 반항은 없다고 했던가요. 린타로 마저 그녀의 쓰레기 짓을 참지 못하고 결별을 선언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솔직히 발암 그 이상은 아닌 상황까지 가게 돼요. 하지만 다른 계승전 참가자들과 전투를 벌여 가면서 엑스칼리버를 팔아버린 이유, 학생회장이 되려는 이유, 루나는 분명 최약이지만, 그녀를 통해 왕으로서 진정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조금식 서술하면서 초반 분위기를 날려 버리게 되죠. 그녀가 쓰레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랄지, 미소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졸지에 그녀를 욕했던 사람들만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데요. 작가가 뒤통수치는 실력이 대단하다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마음을 숨기고 밝은척하는 히로인이라는 클리셰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긴 합니다만.

결국 소년물의 클리셰를 보여주며 끝을 맺는데...


맺으며, 일단 이야기 구성 자체는 매우 탄탄합니다. 작가가 아서 왕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는지 방대한 자료를 풀어 놓더군요. 문제는 중2병스럽다는 것이지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0대나 20대에게 먹힐만한 이야기고 나이 좀 들은, 필자 같은 고령(?)의 독자와는 안 맞을 수 있습니다. 이상보다는 현실이 많이 보이게 되더군요. 하지만 남의 공을 가로채고 불법을 저지르면서 태연하고, '짹'을 코스프레 시켜서 아이돌로 만들어 돈벌이 시키는 극악 무도함, 루나의 제기 발랄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습은 요즘같이 희망이 필요한 시대에 웃음을 선사하기엔 충분했습니다... 만은, 진지하게 살아가지 않는 모습에서 조금은 짜증을 불러오기도 했군요. 이게 다 복선이었다고 중반 이후부터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혀를 차게 만들기도 하는, 그래서 이번 리뷰도 쓰는데 고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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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티아 이담 2 - 열사의 레퀴엠, V Novel
타케오카 하즈키 지음, 루나 그림, 김정규 옮김 / 길찾기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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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하시고, 글이 매우 깁니다. 





딱히 보답받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고,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길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환되었으니 도와주기로 했을 뿐, 11살의 나이에 이세계로 떨어져 대뜸 마신을 쓰러트리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슈안'이 걸핏하면 놀려댔던 것도 사실 모르는 땅에 떨어진 '리히토'의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도록 분명 신경을 쓴 것이겠지.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검술 스승 '라나'의 가르침과 백발 노승의 지혜의 주머니는 그(리히토)의 마음을 이끌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마신의 성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며 '이슈안'이 돌아오지 못하는 구멍에 떨어지기 전까진. '살려줘'라는 그녀의 마지막 말은 '리히토'에게 PTSD'를 안겨주기엔 충분하였으리라.


그리고 6년 후, 주인공 리히토는 어째서인지 또다시 6년 전 그 땅에 다시 불려 와 있었습니다. 마신의 부활, 또다시 동료를 모아 마신을 봉인하기 위해 길을 떠나나 6년 전 동료는 더 이상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돌아오지 못하는 구멍에 빠졌을 '이슈안'만이 그와 여행을 함께 하였죠. 그리고 6년 전의 마음을 이어 그녀에게 연심을 품어가는 리히토에게 들이밀어진 진실, 부활한 마신을 쓰러트리는 장소에서 운명의 여신은 리히토에게 가혹한 시련을 내렸습니다. 6년간 줄곧 그녀(이슈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살아왔던 그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는. 가짜 '이슈안'을 내 손으로 성불 시키는 것, 여행을 하며 현실을 부정해봤고, 가짜의 달콤한 말에 기댈 뻔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떠나보내야 할 시간.


이로써 부활한 마신을 다시 봉인하게 되었습니다. 공허한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요.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운명의 여신은 시련을 뛰어넘은 자에게 보답을 내리기로 합니다. 이제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나 자신의 마음을 죽이며 살아갈 일만 남았던 그에게 내려지는 단 하나의 보답. 6년 전 구하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했던 그녀(이슈안)의 생환, 개선하여 민중의 열열한 환영이 무엇이더냐, 공주와 맺어지는 미래 따윈 없어도 된다. 금은보화 따위 없어도 된다. 그저 그녀가 옆에만 있어준다면, 6년이나 마음속에 맺혀져 있었던 응어리를 풀게 된 리히토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정신이 11세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진. 이슈안에게 6년이라는 공백은 리히토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하게 될까.


마신을 무찔렀으니 왕이 치하하겠다며 부릅니다. 왕은 용사의 활약을 칭송의 말로 바꾸어 만인에게 퍼트리고 두둑한 보상을 내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제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준 용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원래라면 그래야 정상적인 사회일 겁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말은 기본이죠. 하지만 바라지 않은 도움은 민폐일 뿐이라는 것마냥 주인공 리히토에게 들이밀어진 현실은? 어디서 굴러먹던 야만인일까라는 시선 일색이라는 것에서 이세계는 제대로 된 세계는 아니라고 역설하기 시작하죠. 아니 그전에 용사 일행의 생활상을 보여줬던 1권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겪지 않은 일에서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지 알지 못합니다.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깡촌에서 벌어진 싸움 따위 내 알 바는 아니죠.


그래서 '제멋대로인 세상'인 것입니다.

마신은 용사만이 무찌를 수 있음에도...


하지만 주인공 리히토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습니다. 왜? 눈앞에 놓인 진상품의 물품 속에서 게임기를 발견해버렸거든요. 이것은 원래의 세계에 있던 물건, 그리고 이 게임기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미치바 쿄코'의 것이기에. 그녀가 이세계에 와 있나? 원래의 세계에서 도서위원으로 함께 활동하며 리히토의 마음을 붙잡아줬던 유일한 존재인 그녀가 어째서 이세계에? 얄궂게도 운명의 여신은 또다시 그에게 시련을 던집니다. 리히토처럼 용사의 힘을 가지지 못한 그녀가 이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찾지 않으면,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물리게 되죠. 그래서 길을 떠납니다. 뜬금없지만 이슈안의 애절한 마음을 모른 채 말이죠. 가짜와 사랑의 속삭임까지 주고받은 주제에 진짜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리히토 덕분에 대환장 파티가 시작됩니다. 


괴리감일까요. 가짜와의 사랑을 진짜에게 대입 시키려니 괴리감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조금 멀리하게 되고,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이슈안과의 대립. 심약한 주인공 리히토 때문에 고구마가 트럭째 몰려 오기도 하죠. 결단을 내리는데 우유부단한 모습, 그리고 당초 이 여행의 목적은 미치바 쿄코를 수색하는 것이었으면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녀를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갈피를 못 잡는다고 할까요. 가짜와 지냈던 시간과 진짜와 지내는 시간 사이에서 소실한 감정, 가짜에게 속삭였던 마음을 진짜는 알리가 없기에 오는 괴리감, 이것만 해도 벅찬데 새로운 히로인 '우르스라'의 등장으로 리히토의 마음을 더욱 갈피를 못 잡게 합니다. 어찌 보면 참 현실적인 용사라고도 할 수 있죠. 용사라고 마냥 마음이 강한 존재가 아니라는 메시지랄까요.


맺으며, 사실 이 작품은 1권에서 끝내야 했습니다. 1권에서는 그나마 주인공 성격에 문제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2권에 들어서서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더라고요. 야만인이라든지 공을 가로챈 나쁜 놈 등 온갖 비아냥을 들어도 헤실헤실 웃기나 하고, 이슈안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아 이야기를 난잡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히로인 우르스라를 만나 그녀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움직이면서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우르스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미덥지 못한 모습이라던지, 마신을 쓰러트려 더 이상 세상의 혼돈은 없다고 기개 있게 말을 전달하면 좋으면만 우물우물하니 누가 믿어주나. 


제일 황당한 건 우르스라를 책임질 거 같은 행동을 보였으면서 이슈안과 다시 만났을 때 저뇬은 아무것도 아니고 자기가 멋대로 따르는 거라는 뉘앙스를 보였다는 것, 끝까지 미치바 쿄코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 뭐 이런 주인공이 다 있나 싶더군요. 아무튼 이런 주인공도 목숨이 노려지는 복선이 투하되었군요. 제발 판타지의 틀을 깨서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PS: 1권 리뷰를 잘못 쓰는 바람에 이번 2권 리뷰는 망해버렸군요. 1권에서 주인공 리히토와 이슈안의 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번 2권 리뷰 중반부까지를 1권 리뷰에 썼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2권 히로인 우르스라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언급하지 못했군요. 꽤나 애절하게 하는데... 이걸 다 말아먹는 주인공도 주인공이고... 그러고 보면 아닌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 작품도 은근히 주인공 하나에 히로인이 꽤 들러붙는군요. 이슈안과 우르스라, 그리고 3권에서 나올 미치바 쿄코, 덤으로 이번에 통역으로 등장한 토토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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