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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의 노기사 3 - J Novel Next
시엔 Bis 지음, 사사이 잇코 그림, 이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기사 '발드'는 어쩌면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을 테죠. 눈앞에 있는 왕태자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내 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바람. 기사로써 주인을 모시며 40여 년을 살아왔던 노기사에게 단 하나 가슴에 남는 아픔이자, 말괄량이 같은 주인 집 딸이 정략결혼에 팔려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슬픔. 노기사의 나이 29살 때의 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소녀가 갓난 아이를 안고 돌아왔을 때, 어쩌면 노기사의 전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명이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지러운 난세에 집안을 지키기 위해 사모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정략결혼으로 집안의 평화를 지키고자 떠났던 소녀와 그 소녀를 어릴 때부터 보아온 노기사의 엇갈림은 가슴 아프게 하였더랬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소녀가 안고 있었던 아이는 파르잠 왕국의 왕자였다는 게 밝혀지고, 아이는 왕국에 거둬졌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노기사의 청혼을 끝끝내 마다한 채 눈을 감게 되죠. 노기사는 길을 떠납니다. 58살이라는 노구를 이끌고 죽을 자리를 찾아 정처 없는 여행길을요. 여행길은 순탄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인연이 닿아 여러 사람을 만나 어울리고 술을 마시며 강산을 노래하고 삶을 이야기하며 여행의 참다움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만나면 혼내주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고, 기사 서임을 받을 때 그가 맹세했던 백성을 위해 살겠다는 그 마음을 잃지 않은 채 말이죠. 그의 성품에 이끌려 같이하게 되는 사람도 늘어만 갔습니다. '드리아텟사'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주군인 공주와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시련을 돌파하기 위해 머나먼 땅을 찾아왔건만 그만 동료들의 마수에 걸리고 말죠. 절체절명의 순간 '발드'와 발드를 따르는 동료들에게 구해진 이후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어 버려요. 어쩌면 드이라텟사는 연심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르잠에 도착한 발드에게 끊임없이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의 방에 노크도 없이 쳐들어가 허둥대는 모습이란.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귀부인들이 그녀의 그런 모습을 입방아에 올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귀엽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요. 노기사도 손녀 같은 그녀를 어찌 사모할 수 있겠냐고 하지만 시중을 드는 자는 그런 일은 흔하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다는 말에 대꾸하지 않는 모습에서 심상찮음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쟁자가 있었으니... 영감님 운에 연애 운은 없나 봅니다.
소녀가 안고 있었던 아이가 장성하여 왕태자가 되었고, 조금 있으면 국왕의 자리에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 옛날 정략결혼으로 팔려가 갖은 고초를 겪나 했더니 운명의 장난처럼 시집 간 그곳에서 피신 온 파르잠 선대 국왕과 친해졌었던 소녀, 사실은 불륜이라고도 할 수 있죠. 정식 혼례는 안 치른 거 같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거니. 그것 때문에 파양 당한 건 아니지만, 친정으로 돌아온 이후 소녀가 안고 있던 아이는 노기사가 스승이 되어 참으로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성인이 되어 왕국으로 불려가 정식 왕태자가 되었고, 지금 왕의 위엄을 보이며 노기사를 맞아들이게 되었죠. 그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군요. 자, 스승이기도 하고, 아들 같은 왕태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부터 노기사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주변국의 심상찮은 움직임은 파르잠 왕국을 전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기 시작하고, 노기사는 왕태자의 명령을 받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원하기 시작하죠. 마수와 싸우고, 인심을 더럽히는 악당을 소탕하는 등 젊었을 때는 못다 했던 일들을, 촛불을 마지막에 가장 밝게 빛난다는 것처럼 나이 60이 되어도 쇠한 곳 없이 달리고 달려 아들 같은 왕태자의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참으로 눈부시기까지 합니다. 노기사의 뜻에 찬동하여 같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반대로 시기하여 적대하는 사람도 늘어나는등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것마냥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풀리지만은 않은 모습도 보이기도 하죠. 정통 판타지답게 음습한 자들이 등장하고 그걸 타파하는 등 작가가 스파이스 조절을 잘한 다고 할까요. 몰입도가 꽤 좋습니다.
맺으며, 사실 저런 이야기보다 먹방이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가는 곳마다 그 지방의 음식을 접하고 처음 먹어보는 맛에 황홀해하고 목 넘김이 좋다는 둥, 보기와 다르게 진미라는 둥, 무례한 놈이 있어 혼내주고 싶은데 그놈 요리 실력이 매우 좋아 언제나 놀아나는 등 그런 노기사를 보고 있으면 흔치않게 웃음이 묻어나죠. 이 작품은 노기사의 방랑을 주제로 하고 있어서 어쩌면 기사들의 이야기와 먹방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하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방랑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먹방은 방랑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죠. 그러다 보니 입은 고급이 되어가고, 늙어서 조심해야 될 건 콜레스트롤이건만 사양 않고 먹어대는 모습에서 영감 제명에 못 살 거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