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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했더니 드래곤의 알이었다 1 - Lezhin Novel
네코코 지음, NAJI 야나기다 그림, 김보미 옮김 / 레진노벨(레진엔터테인먼트)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이세계 전생물이 범람하는 작금의 시대에 성별 역전은 흔한 소재이고 하다 하다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어 자판기도 모자라 칼로도 환생하더니 이젠 드래곤의 알로도 환생을 하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필자는 히키코모리든 평범한 학생이든 할아버지든 하나같이 이세계로 넘어오면 먼치킨이 되어가고 하렘을 형성하고 고생과 밑바닥 인생은 개나 줘버리며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들의 홍수 속에서 이 작품은 어떤 차별을 두었을까 하는, 이세계 전생물을 접하면서 끊임없이 기대를 품어 왔습니다. 그리고 좌절을 겪어야만 했고요.
그래서 이 작품도 일말의 기대는 하였지만 사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칭호 '멍청이' Lv.1을 획득했습니다.
주인공은 생전의 기억이 없고 눈을 떠보니 드래곤의 알인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여?라며 두리번 거리다 발을 헛디뎌 구르다 HP가 까이자 멍청이라는 칭호를 획득하고, 현실을 외면하면서 4차원적인 생각에 빠지자 칭호 '그냥 바보' Lv.1을 획득했습니다.라며 시스템 콜, 자칭 '신의 목소리'는 신랄하게 주인공을 비꼬기 시작하면서 이거 흔한 이세계 전생물이지만 뭔가 다른게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오기 시작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기존 전생물의 틀은 이어가지만 상황적으로 매우 신랄하게 웃겨 주기도 하고 비참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같은 음식이라도 스파이스를 어떻게 가미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진리를 이 작품이 여실하게 보여 줍니다.
악어가 알에서 깨어나 새끼일 때 먹이사슬에서 제일 아래이듯이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 드래곤도 그에 못지않은 상황에 처합니다. 그동안의 이세계 전생물은 허구라는 것처럼 굼벵이 같은 벌레에게 쫓겨 다니며 죽을 위기를 겪고, 인간의 정이 그리워 마침 숲으로 들어온 모험가에게 다가갔다가 죽을뻔하면서도 자신을 보호해줬던 '마리아'라는 소녀가 성체 드래곤에게 죽을 위기에 빠지자 필사적으로 그녀를 구출해 마을에 데려다줬더니 마을 사람은 그(주인공)을 퇴치하려는 모습에서 비로써 자신과 인간은 섞여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아가는 장면은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칭호 '볼품없는 용사' Lv.1을 획득했습니다.
부가 설명: 자그마한 용기. 그것은 착하기만 한 누군가를 언젠가 용사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이것은 소녀 마리아를 마을에 대려다 주고 얻은 칭호...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정말 눈물 콧물 없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힘이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그저 인간이 그리워 필사적으로 소녀를 구해주고 마을에 남고 싶었지만, 어쩌면 마을에서 자신을 받아 줄지도 몰라 했지만 현실은 화살을 얻어 맞고 도망가야 되는 신세. 그럼에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주인공, 레벨업을 해도 회복되지 않는 HP, 맛 좋은 어린 드래곤을 노리는 상급 몬스터들 속에서 홀로 숲에서 혼자 악착같이 살아가야 되는 상황, 너 님은 맛있는 존재라고 좋은 식자재라고 대놓고 식품 취급하는 신의 목소에도 기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필사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강해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주인공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진화..
레벨업을 통해 한계까지 성장했을 때 나타나는 분기, 마치 포켓몬처럼 혹은 온라인 게임에서 전직하는 것처럼 주인공도 차츰 진화해 나가지만 어째 시궁창을 벗어나질 못 합니다. 어쩌다 '인간화'라는 스킬이 있다는 것에 혹해서 세계에 재앙을 뿌릴 수 있는 존재로 전직하면서 힐을 사용하지 못해 더욱 난처해지기도 하고, 그래도 나름 강해져서 굼벵이이나 늑대 같은 것도 손쉽게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상급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에서 주인공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갑니다. 그러는 사이 '뻥쟁이'나 '악의 길, 치킨 러너' 같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스킬도 입수하면서 배꼽을 잡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
인간화라는 스킬을 얻기 위해 사도의 길을 가면서까지 인간의 정이 그리웠던 주인공, 백마법을 쓸 수 있는 계통으로 전직해 마을로 가면 사람들이 반겨줄까 할 정도로 그는 인간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 중에 만난 '흑 도마뱀, 배넴 프린세스' 프린세스라는 이름에 유추해볼 때 아마 암컷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 흑도마뱀의 독공격을 받아 빈사 상태에 놓였어도 살기 위해 악착같이 전투를 벌여 가며 유인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흑도마뱀을 주인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구해주게 되고, 마침 힘을 다해 기절한 주인공을 바라보며 어쩐 일인지 마음을 돌린 흑도마뱀은 그를 치료해주면서 친구가 되어 갑니다.
필자는 흑 도마뱀을 보면서 얘도 어쩌면 이세계로 전생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주인공과 똑같습니다. 서로가 말이 통하지 않아 보디랭귀지로 의사소통 중이긴 한데 사냥에선 죽이 척척 맞고 집(동굴)에서 둘이 지내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인간들의 그것과 같아서 훈훈하기까지 하였군요. 이거 먹어도 돼?라며 눈을 반짝인다거나 턱밑을 간지러 주자 기분 좋은 표정을 한다거나... 처음엔 서로가 죽일 듯이 싸웠지만 어느새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까지 발전하게 되면서 그때야 주인공은 깨닫습니다. 자신은 그저 누군가가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존재가 필요했다는 것을...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줬으면 좋겠다고... 그게 한낱 마물일지언정 흑 도마뱀이 주인공에게 가족 그 이상이 되어 가는 모습에서 울컥하기도 하였군요.
맺으며
이세계 전생물의 전매특허인 먼치킨 하렘의 공식을 이 작품은 철저히 깨부수고 있습니다. 물론 2~3권쯤 가면 주인공도 성장해서 그 누구도 대들지 못할 드래곤으로 성장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타 작품은 1권부터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에 이 작품은 시궁창부터 시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같이 살아갈 동료를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면서 읽는 사람을 애잔하게 합니다. 세상살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처럼 방심하면 순삭 당하는 곳에서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히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본격적인 성장물의 정도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의 포인트는 주인공의 기구한 삶도 있지만, 츤데레같은 [신의 목소리]가 신랄해서 몰입도를 상당히 올려 주기도 합니다. 여느 이세계 전생물처럼 머릿속에서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여지없이 이 작품의 주인공 머릿속에서도 울리고 있었는데요. 그게 [신의 목소리], 주인공이 좀 얼빵한 짓을 하면 여지없이 뚱딴지같은 칭호를 붙여 버리고 너 님은 식자재라는 둥 좀 불리하다 싶으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닙니다.
인간일 때의 기억은 없지만 본능과 몸에 밴 습관이 있는지 우연히 발견한 동굴을 치장해서 집으로 삼고, 전골을 해 먹기 위해 드래곤 손가락으로 부단하게 노력하기도 하고, 진흙을 뭉쳐 도자기를 굽고, 말려놓은 고기를 훔쳐 가는 원숭이에 화를 내기도 하고 어딜 보나 인간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기죽지 않고 꼼지락 살아가는 주인공이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