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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의 혼잣말 15 - 카니발 플러스
휴우가 나츠 지음, 시노 토우코 그림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25년 4월
평점 :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2년의 의무 복무가 끝났음에도 아직도 궁에서 일하는 마오마오. 황제가 황태후라는 과거를 청산하면서 의붓아버지도 궁에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붓아버지는 황태후 시절 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육형을 당하고 쫓겨나 유곽에서 마오마오와 함께 약을 팔며 근근이 살아갔었죠. 의붓아버지는 움막에서 벗어나 비로소 제대로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문제는 마오마오. 황후와 상급 비(리화)의 총애를 받고, 왕제(진시)의 여친으로 거의 공식화되었고, 친아버지는 황제도 어쩌지 못하는 국방 장관이고, 황제도 눈여겨보고 있는(마오마오는 왕자 둘을 낳는데 일조해 줌) 그녀가 왜 아직도 말단 궁녀로 지내는가죠. 왜긴 왜겠어요. 독에 미치고 약초에 환장하는 그녀가 높은 자리에 올라 그것과 멀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작중에서 표현되었나는 모르겠고, 일단 필자의 주관적인 느낌).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기생(창x)이어서 핏줄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한 게요. 예전에 진시와 맺어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했죠. 아무튼 그런 것보다 마오마오는 오늘도 의무실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습니다. 침대를 정돈하고, 약초를 빻고 혐오하는 사람이 찾아오자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을 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던 마오마오에게 약사 시험을 치르라고 하는데...
이번 15권은 국운이 걸린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리고 마오마오에겐 일생일대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죠. 궁에서 내로라하는 약사와 수술이 가능한 의관들을 모집해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여기서 마오마오의 의붓아버지의 위치를 볼 수 있기도 하죠. 마오마오도 불려가 시험을 칩니다. 참고로 혈연 찬스는 없습니다. 그런데 시험 내용을 보니 심상찮습니다. 천연두와 수두(홍역)의 이야기가 나오죠. 천연두는 조선시대 때 인구 20%를 삭제한 아주 무서운 역병입니다. 나라에 역병이라도 돌기 시작했나 했더니 그냥 지나가는 얘기였군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차츰 아주 높으신 분이 맹장염에 걸렸다는 게 밝혀집니다. 맹장염은 의술이 발전한 현대에서는 감기 정도의 하찮은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수술을 해야 하는 중대한 병이기도 하죠. 그러나 본 작품의 시대 배경은 잘해야 우리네 조선시대쯤 됩니다. 수술은 큰일이죠. 마취는 더더욱 문외한 시절입니다. 마오마오와 의붓아버지 등 내로라하는 의관들이 총동원되어 방법을 찾습니다. 못 찾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수술이 실패하면 관련자 모두 멸족입니다. 마오마오도 예외는 아니게 되었죠. 하지만 인맥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 두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인맥은 진짜 중요하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였군요.
이쯤에서 또다시 진시의 처우가 대두됩니다. 진시의 태생은 많이 꼬여 있습니다. 이걸 아는 자는 극히 일부이고, 마오마오도 추리를 통해 진실에 도달했으나 입이 찢어져도 말 못 할 비밀이 되었죠. 당사자인 진시는 자신의 진짜 태생을 모릅니다. 그래서 마오마오는 안타까워하죠. 진시 본인이 알고 있는 족보가 틀렸음을. 황제는 그런 진시를 차기 황제로 삼으려 합니다. 진시는 그게 싫어서 옆구리를 불에 달군 낙인을 찍어 흠이 있는 사과가 되었었죠. 그 싫은 이유에 마오마오가 있습니다. 진시는 마오마오만 바라보기 위해 황제의 자리를 마다하려 하죠. 이번에도 황제의 권유에 진시는 마오마오 단 한 사람만을 보겠다며, 그걸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순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줍니다. 본인 앞에서 고백? 사실 황제가 되면 수천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려야 하니까 마오마오 한 사람만 편애할 수 없게 되거든요. 하지만 이뤄질 수 있을까? 진시가 황제가 된다면 마오마오는 비가 되어 평생을 후궁에 갇혀 살아야 합니다. 황후가 되면 좀 자유로울 수 있으나 마오마오는 황후가 될 순 없겠죠. 마오마오와 자유롭게는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진시는 황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녀를 자유롭게 해줘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마오마오의 생각은? 사실 마오마오의 마음과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죠.
맺으며: 이번 15권을 요약 하라면, 마오마오의 마음이 조금 더 열렸다입니다. 사실 둘이 있을 때는 허물없는 사이 된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원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겸상(식사 자리)도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일개 궁녀가 황족이랑 같은 식탁에 앉는다?) 여전히 이성으로서의 선은 결단코 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 왔었죠. 하지만 황제와 독대한 자리에서 진시의 마음이 변하기는커녕 고백에 가까운 말에 마음의 벽이 조금은 허물어진 듯하군요. 황제의 자리보다 자신을 선택해 주었으니. 물론 선택했다고 맺어졌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넘어야 될 산을 하나 넘은 듯한? 그래서 그런지 에필로그에서 보여준 둘만의 시간은 백년해로하는 부부처럼, 여기서 마오마오가 진시의 각오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음을 담담히 내비치는 장면은 흐뭇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전부터 흥미롭게 읽어온 작품이다 보니 언제 나올지 모를 e북을 기다리지 못하고 종이책을 구매했는데 역시 이번 15권도 기대에 부응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라의 중대사의 중심에 서서 한발 삐끗하면 일족 전체가 멸족 당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치르고, 나 좋다고 쫓아오는 사람이 이제는 싫지만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성의 느낌으로 손을 잡는다든지 조금만 더 진전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던 15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