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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은폐된 여인 막달라 마리아와 진실의 수호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 비밀의 문을 여는 암호 「다빈치 코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류의 미술사에 가장 거대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 중 한사람이다. 혹 그의 이름은 모를지라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걸작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이「모나리자」와 다빈치의 자화상을 컴퓨터로 합성해 보았더니 놀라울만치 흡사한 얼굴 구조임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혹자는 「모나리자」가 다빈치의 여성형(자화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밖에도 「모나리자」를 둘러싸고 왈가왈부되는 얘기들은 수없이 많다. 눈썹이 없는 이유, 신비로운 미소의 의미, 인물의 등뒤로 펼쳐진 배경에 대한 해석, 여인의 신분 등등.
불어로 붓꽃은 ‘fleur-de-lis'라고 쓴다. 영어로 풀이하자면 ’리자의 꽃(flower of Lisa)'. 바로 모나리자이며 붓꽃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단체 중 하나인 시온 수도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는 한때 ‘리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명화 모나리자와 시온 수도회, 거기다 이집트의 여신이라…뭔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 같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또 하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하는 예수의 폭탄선언에 우왕좌왕하며 배신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려는 12사도의 모습이 치밀한 구도와 다양한 동작으로 묘사된 드라마틱한 명화이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사도 요한이고 그 바로 옆에 있는 인물은 베드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고 당황하고 있는 다른 사도들에 비해 그 자태가 매우 고요할 뿐만 아니라 유난히 여성스럽고 아름답게 묘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요한의 어깨를 짚고 일어나려는 베드로의 손은 어쩐지 칼날처럼 날카롭게 요한의 목을 향해 세워져 있어 위협적으로 보인다.
이런 가정은 어떨까. 만약 사도 요한이라고 알고 있던 이 사람이 실은 막달라 마리아라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13사도 중 하나이자 수제자였다면? 실은 왕족의 후예로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인간의 아들 예수와 결혼한 그의 부인이자 예수가 자신의 사후 교회의 반석으로 삼고자 했던 핵심 인물이라면?
세상의 호사가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 기독교를 연구해온 사람들 중에도 신의 아들 예수의 신성이 땅에 떨어지고 여성의 손에 교회의 권한이 옮아가는 것을 두려워한 로마 카톨릭이 예수의 가계(家系)를 은폐하고 막달라 마리아의 위상을 계획적으로 실추시켜온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 또 고귀한 예수의 혈통을 수천년간 비밀리에 지키면서 막달라 마리아에 얽힌 비의를 수호하며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가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시온 수도회가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보티첼리,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장 콕토 등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단체의 수장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많은 예술작품들 속에 마치 암호처럼 흩어져 있는 신비롭고 모호한 상징들이 바로 교회의 박해를 피해 은밀히 전해 내려온 막달라 마리아와 성배의 비밀을 표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주목하고 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을지 모르지만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가계에 대한 얘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허구와 상상, 진실의 경계를 오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왔다. 성배가 구체적 물체가 아니라 무한한 지식의 상징이거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피를 담은 잔이 아니라 예수의 핏줄, 즉 그 후손을 가리킨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5~8세기 경 프랑스(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가 예수의 직계라는 설도 있다. 기독교적 상징으로 가득찬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내 최고 권력자로 등장하는 메로빙지언(Merovingian ; 메로빙거가의 사람)이란 인물도 이 같은 속설에 대한 반영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들은 현존하는 카톨릭과 기독교의 권위 아래서 어리석은 이단이거나 한낱 허황된 망상으로 치부되고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사람들의 상상력을 한껏 북돋워주는 흥미로운 가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흥미로움에 제대로 불을 붙이는 치밀하고 논리적인 소설 한편이 등장했다.
영화「패션 오브 크리이스트(Passion of Christ)」가 개봉하기도 전에 일부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나 예수와 유대인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영화 상영 금지를 주장하는 등 한동안 기독교계가 떠들썩했었다. 하지만 엄청난 논란에도 불구하고-혹은 그 논란의 여파로-이 영화는 전세계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영화에 이어 최근에는 한 권의 책이 또다시 기독교 안팎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논란의 진원지는 댄 브라운(Dan Brown)이 쓴 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작년 초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8백만부 이상 팔리며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들어섰고 전세계 40여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며 올 여름 한국에도 상륙해 외국소설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책이 발간된 지 일년 만에 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거나 오류를 지적하는 서적 십여권이 출판됐거나 발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타임(Time)이나 뉴스위크(Newsweek), ABC TV 등 미국 유수의 언론사들이 이 책에 대한 커버스토리나 특집프로를 다루기도 했다.
「다빈치 코드」에 이렇게 큰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 책이 2천년에 걸쳐 항간에 떠돌며 전해내려온 기독교의 야사(?)와 보수적 신자 및 교황청에 대한 음모론을 다루고 있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 책의 내용 일부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빈치 코드」의 내용은 그럴 듯 하다. 책을 한장한장 넘기다보면 수많은 자료 조사와 역사적 고증 및 현장답사를 거쳤을 것이 분명한 작가의 노력이 고스란히 눈에 보인다.
「다빈치 코드」는 「장미의 이름」과 흡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에서 발생한 수도사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숨겨졌던 종교적 비의와 음모가 서서히 드러나는 일종의 추리 소설이다. 「다빈치 코드」 또한 루브르 박물관에서 기괴하게 살해당한 박물관장의 죽음을 서막으로 수천년간 보수적인 카톨릭 교단의 눈을 피해 명맥을 유지하며 예술작품을 통해 카톨릭의 비이성적 마녀재판, 이교도 공격, 막달라 마리아 이래 지속돼 온 여성에 대한 불평등 등을 비판해온 비밀단체와 그들이 죽음으로 수호한 예수의 진실이 무엇인지 파헤쳐나가는 지적인 추리 소설이다. 성당기사단이나 장미 십자회, 시온 수도회, 오푸스 데이 등 기독교 관련 단체에 얽힌 갖가지 음모론을 비롯해 피보나치 수열, PHI 숫자, 아나그램, 타로카드의 그림, 서양 중세 예술사 등 서구사회를 관통하는 몇가지 과학적, 문화적 배경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은 이 책의 내용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런 배경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다빈치 코드」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긴박감 넘치게 읽힌다.
특히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묘사나 예술 작품들에 대한 독특한 해석,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명화들에 숨겨진 기묘한 상징들에 대한 설명은 지루할 틈도 없이 독자들을 책으로 빨아들인다. 주인공이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 파리의 거리와 뒷골목들에 대한 묘사도 현장감이 넘친다.
한편의 영화를 보듯 액션과 논리적 추리를 오가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다. 앞서 책의 내용을 너무 많이 언급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수많은 조각의 하나일 뿐,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문득 파리로 달려가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혹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머리속을 뒤적이며 루브르 박물관에서 눈에 담았던 모든 것들에 얼마나 큰 상징이 담겨있었는지 놀라며 기억을 되새기려 애쓸 지도 모른다.
물론 「다빈치 코드」는 픽션이다. 그러나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룩해온 인류의 문명과 소실된 역사의 진실, 심지어 과학의 세계까지도 애초에 인간의 상상력에 기대어 왔음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