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연명 이후로 국화를 좋아했다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그렇다면 연(蓮)을 좋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송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가 애련설(愛蓮說) 말미에 한 말이에요. 은자와 군자의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던 그에게 모란은 그다지 호감가는 꽃이 아니었어요. 애련설」에는 모란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드는지 구체적 언급이 없어요. 다만 "모란을 사람으로 치면 부자에 견줄 수 있다"라는 독단과 "많은 세인들이 좋아한다"라는 점만을 언급하고 있죠. 그런데, 부자와 같기에 또 많은 이들이 좋아하기에 호감가지 않는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에요. 더구나 그가 유학자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죠. 왜냐구요?

 

 

주돈이가 지극히 존숭했을 맹자는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은 항산(恒山, 일정한 경제력)이 없으면 항심(恒心, 도덕심)도 없다." 우리 속담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란 말과 상통하는 맹자의 언급은 경제, 달리 말하면 물질적 안정이 사람의 도덕심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본 거에요. 결코 부를 배격하지 않은거죠. 유학의 이상인 평천하(平天下)는 부와 도덕이 충만한 세상이지 부를 배격한 형해화된 도덕사회가 아니예요. 주돈이의 부를 배격하는 듯한 태도는 결코 유학자다운 태도라고 할 수 없어요. 다수가 좋아하기에 기피하는 태도도 그래요. 맹자가 지도자에게 늘 강조했던 것은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들과 함께 즐김)'이에요. 홀로 즐기지 말라고 누누히 강조했죠. 유학자는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 사람이 다수가 좋아하는 것을 기피하고 고고함을 혹호하는 것은 결코 유학자다운 태도라고 할 수 없어요. 주돈이가 모란을 비호감으로 여긴 것은, 그 자신 철저한 유학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자기 모순적인 행동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어요. 모란은 주돈이에게, 나아가 유학자들에게 상찬받아 마땅할 꽃이지 결코 홀대받을 꽃이 아니예요.

 

사진은 모란을 그린 그림의 화제예요. 본문은 '부귀옥당 함정대우(富貴玉堂 含情對友)'라고 읽고, 낙관은 '시을유하덕숭산방주인 덕산(時乙酉夏德崇山房主人 德山)'이라고 읽어요. 본문은 '부귀 가득한 좋은 집, 살뜰한 정을 품고 벗을 대하네'라고 풀이해요. 낙관은 을유년 빼고는 특별히 풀이할 것이 없군요. 을유년은 서기 2005년이에요. 하(夏)는 여름이란 뜻이고요. 냉면집에서 찍은건데, 돈도 많이 벌고 손님들에게 친절한 음식점이 되라는 의미로 쓴 화제 같아요. 기원 덕분인지,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더군요.

 

화제를 대하면서 문득 모란에 대한 통념 - 부정적 의미의 - 을 뒤집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론(異論, 다른 주장)을 펴봤는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모란이든 국화든 연이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최선을 다해 피고 질 뿐인데 왜 쓸데없이 인간의 가치를 적용시켜 호불호를 가리는지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모란, 국화, 연, 미안허이. 부족한 인간을 용서하게나.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富는 宀(집 면)과 畐(가득할 복)의 합자예요. 집에 재물이 가득하다란 의미예요. 부유할 부. 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富貴(부귀), 貧富(빈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貴는 貝(조개 패)와 蕢(삼태기 궤)의 합자예요. 삼태기에 재물[貝]을 담아 지불해야 할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란 의미예요. 귀할 귀. 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貴賓(귀빈), 尊貴(존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含은 口(입 구)와 今(이제 금)의 합자예요. 뱉거나 삼키기 전 잠시[今] 입안에 물고 있다는 의미예요. 머금을 함. 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含有(함유), 包含(포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對는 丵(풀무성할 착)과 士(일 사)와 寸(마디 촌, 법도 방법의 의미)의 합자예요. 다양한[丵] 일[士]에 다양한 방법[寸]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예요. 대할 대. 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對答(대답), 對話(대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음식점에 사군자(四君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액자를 걸어놓는 경우가 있어요. 음식점에는 어울리지 않는 액자라고 보여요. 세속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내용의 그림을 지극히 세속적인 곳에 걸어놓았기 때문이죠. 모란을 그린 액자로 바꿔야 할 거예요. 효험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림의 내용과 장소가 어울리기는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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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신경 안써, 너도 그래?" (I really don't care, do u?)

 

 

한동안 세간의 화제가 됐던 문구예요. 미 대통령 영부인 멜라니아가 불법 이민자 아동 격리 수용소를 방문할 때 입었던 재킷 후면에 써있던 문구죠. 방문하는 장소가 부정적 여론이 예민한 장소였던만큼, 이 문구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죠. 둔감하다, 잔인하다 등등. 하지만 이는 침소봉대한 해석이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불법 이민자 아동 격리 수용을 철회했는데, 여기엔 멜라니아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고 하죠.

 

 

하지만 불법 이민자 아동 격리 수용소를 방문하면서 입은 재킷은 확실히 부적절한 의상이었어요. 재킷의 문구와 상반되는 문구, "나는 정말 신경이 쓰여! 너는?" (I really care, do u?) 이라는 문구의 옷을 입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부적절한 의상이었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지요.

 

 

사진은 티셔츠 문구예요. 이웃집 아이가 입고 있는 티셔츠에서 찍었어요.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흉 볼 문구는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만일 그렇지 않은 내용인데 입고 다녔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니….

 

 

문구는 '막망초충(莫忘初衷)'이라고 읽어요. 첫 마음을 잊지 마세요, 란 뜻이에요. 세상 살다보면 첫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게 돼죠. 그럼에도 이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것이 결코 그른 말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럴 거예요. 비록 실천을 못해도. 아내는 결혼 초에 신영복 씨의 '처음처럼'이란 문구가 좋다며 조그만 족자로 된 것을 사다가 방에 걸어 놓았어요(아래 사진). 결혼 초의 아름다운 생각을 끝까지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겠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 둘은 과연 그 약속을 지켰는지….

 

 

한자를 자세히 알아 볼까요?

 

莫은 풀 사이로 해가 지는 모양을 표현한 거예요. 艹와 大( 艹의 변형)는 풀을, 日은 해를 그린 거예요. 저물다란 뜻이에요. 저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없다, ~하지 말라'는 부정과 금지의 뜻이 연역됐어요. 말 막. 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莫大(막대), 莫重(막중)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忘은 心(마음심) 亡(도망할 망)의 합자예요. 마음에서 도망간 상태, 곧 잊혀졌다란 뜻이에요. 잊을 망. 忘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忘却(망각), 勿忘草(물망초)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初는 衤(衣의 변형, 옷 의)와 刀(칼 도)의 합자예요. 옷감을 자르기 위해 칼을 댔다는 뜻이에요. 처음 초. 初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最初(최초), 自初至終(자초지종)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衷은 衣(옷 의)와 中(가운데 중)의 합자예요. 속 옷이란 뜻이에요. 衣로 뜻을 나타냈어요. 中은 음을 담당하면서(중 충)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속 옷은 겉옷과 몸의 중간에 입는 옷이란 의미로요. (속)마음이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속옷(마음) 충. 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衷心(충심), 衷情(충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옷이나 문구는 그 사람을 표현하는 또 다른 메시지이죠. 공자는 "볼품없는 옷차림과 형편없는 음식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와는 도를 논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옷과 음식에 있어 무척 신경을 썼어요. 『논어』「향당」편에는 이런 공자의 면모가 자세히 나와 있죠(속설에는 공자의 부인이 이런 까따로움을 못견뎌 도망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공자는 옷이 주는 메시지를 잘 이해했던 사람이라고 보여요.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의상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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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없었다면 그의 의술은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다."(이이화, 『인물한국사』)

 

『동의보감』저자 허준은 양반가의 서자였어요. 출사(벼슬길에 나아감)에 한계가 있는 신분이었죠. 그가 의술을 접하게 된 배경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런 신분적 한계가 큰 이유였을 거라고 짐작해 볼 수 있어요. 이 짐작은 틀리지 않을 거예요. 출사에 한계가 없는 양반가의 자제라면 굳이 의술을 평생의 업으로 택할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베스트셀러였던 『소설 동의보감』도 이런 점에 착안, 그의 신분적 고뇌를 밀도있게 다루고 있지요.

 

허준이 내의원에 들어가기 전의 상황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요. 20대부터 의명(의원으로서의 명성)을 떨쳤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이 알려져 있지 않은 기간이 사실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어요. 진정한 의인(의사)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이 거듭난 시간이 있었기에 후일 『동의보감』같은 명저를 쓸 수 있었다고 보여요. 앞서 언급했던 『소설 동의보감』도 이런 점에 착안, 그가 진정한 의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지요. 첫머리 이이화의 언급은 허준의 거듭난 의인으로서의 모습을 간명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진은 경옥고(무병장수를 위한 한약의 일종)에 대한 동의보감내용 일부예요. 읽어 볼까요? 전정보수조진양성반노환동/보백손제백병만신구족오장영일/발백부흑치락갱생행여분마/일진수복종일불기갈공효불가진술/일료분오제가구탄환오인/일료분십제가구노체십인/약이십칠세복기수가지삼백육십/약육십사세복기수가지오백년(塡精補髓調眞養性返老還童/補百損除百病萬神俱足五藏盈溢/髮白復黑齒落更生行如奔馬/日進數服終日不飢渴功效不可盡述/一料分五劑可救癱瘓五人/一料分十劑可救勞瘵十人/若二十七歲服起壽可至三百六十/若六十四歲服起壽可至五百年)

 

이런 뜻이에요: 정기와 골수를 채우고 보해주며 타고난 심성을 조화롭게 배양시켜 늙은이를 다시 어려지게 만든다. / 온갖 부족함과 병을 채우고 없애주어 정신과 오장을 튼튼하고 충실하게 만든다. / 흰 머리를 다시 검어지게 만들고 빠진 이가 다시 돋게 하며 걸을제 달리는 말과 같게 만든다. / 하루에 수차례 복용하면 종일토록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나니 (경옥고의 약효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한 경옥고 재료를 다섯 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중풍 환자 다섯 사람을 치료할 수 있고 / 한 경옥고 재료를 열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결핵 환자 열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 / 만약 27세에 복용을 시작한다면 수명이 360에 이를 수 있고(이렇게도 번역해요: 만약 27년을 먹으면 360세를 살고) / 64세에 시작한다면 수명이 500에 이를 수 있다(이렇게도 번역해요: 64년을 먹으면 500세를 살 수 있다).

 

경옥고가 얼마나 좋은 약인가를 설명한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 설명중에 눈여겨 볼 대목이 있어요. "한 경옥고 재료를 다섯 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중풍 환자 다섯 사람을 치료할 수 있고 / 한 경옥고 재료를 열재로 나누어 사용한다면 결핵환자 열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 이 부분은 경옥고 설명에서 빼도 괜찮을 대목이에요. 이 대목 앞 뒤 부분은 경옥고를 복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개인적 효과를 기술한 것이고, 이 대목은 그와 다소 동떨어진 설명이거든요. 이 대목이 빠져야 수미쌍관한 설명이 돼요. 허준은 왜 군더더기 같은 이 대목을 넣은 걸까요?

 

허준 당시 경옥고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요? 극소수였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들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나누어 먹으시오. 그러면 가련한 처지에 있는 다섯 명의 중풍 환자와 열명의 결핵 환자를 고칠 수 있소이다." 이런 무언의 질책을 담아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라 보여요. 그리고 이는 그의 거듭남과 상관이 있을 것 같구요.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때문에 삽입한 대목이라 본건데, 견강부회한 생각일까요?

 

사진은 아내가 수술 받은 후 선물받은 경옥고 포장 내용이에요. 이 포장에는 이 내용 외에도 '귀한 분만 드시는'이란 문구가 삽입되어 있어요. 아내에게 위 추측 내용을 말하며 나눔의 정신을 발휘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빙긋이 웃기만 하더군요. (한심하단 뜻이겠죠? ㅠㅠ)

 

 

낯선 한자의 뜻과 음을 자세히 살펴 볼까요?

 

塡은 土(흙 토)와 眞(참 진)의 합자예요. 빈 곳을 메운다는 뜻이에요. 土로 뜻을 나타냈어요. 眞은 음(진→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참된 것이란 바로 빈 곳 없이 충실한 상태를 이름이란 의미로요. 메울 전. 塡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充塡(충전, 무엇이 빠진 곳이나 빈 공간을 채움), 塡輔(전보, 메워 기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髓는 骨(뼈 골)과 隋(墮의 약자, 떨어질 타)의 합자예요. 골수(뼈 속에 차있는 누른 빛의 기름 같은 물질)란 뜻이에요. 骨로 뜻을 나타냈어요.  隋는 음(타→수)을 담당해요. 隋는 후에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어요. 골 수. 髓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腦髓(뇌수), 精髓(정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溢은 氵(水의 변형, 물 수)와 益(더할 익)의 합자예요. 그릇의 물이 흘러 넘친다란 뜻이에요.  氵로 뜻을 나타냈어요. 益은 음(익→일)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그릇에 물을 더하여 넘치게 됐다란 의미로요. 넘칠 일. 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海溢(해일), 充溢(충일)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奔은  大와 卉(풀 훼)의 합자에요. 풀 밭 위를 내달린다란 뜻이에요. 大는 달려가는 사람의 모양을 그린 거예요. 달릴 분. 奔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奔走(분주), 出奔(출분) 등을 들 수 있겠네요.

 

服은 배를 운행시킨다는 뜻이에요. 月(舟의 변형, 배 주)로 뜻을 나타냈어요. 나머지는 움을 담당해요. 행할 복. 입는다, 먹는다란 뜻으로도 많이 사용하는데 모두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입을(먹을) 복. 服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服從(복종), 服用(복용), 衣服(의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劑는刂(刀의 변형, 칼 도)와 齊(가지런할 제)의 합자예요. 가지런히 절단한다란 뜻이에요. 자를 자. 약재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뜻이에요. 약재 제. 劑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催眠劑(최면제), 湯劑(탕제, 달인 후 짜서 먹는 한약)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癱은 疒(병 력)과 難(어려울 난)의 합자예요. 중풍이란 뜻이에요. 疒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難은 음(난→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병이 중풍이란 의미로요. 중풍 탄. 癱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癱瘓(탄탄, 중풍)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瘓은 疒(병 력)과 奐(클 환)의 합자예요. 중풍이란 뜻이에요.  疒으로 뜻을 나타냈어요.  奐은 음(환→탄)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몸을 마음대로 굽힐 수 없기에 늘 뻗뻗하게 늘어진 상태로 지내야 하는 병이 중풍이란 의미로요. 중풍 탄. 瘓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癱瘓(탄탄, 중풍)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瘵는 疒(병 력)과 祭(제사 제)의 합자예요. 앓는다란 뜻이에요.  疒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祭는 음(제→채)을 담당해요. 앓을 채. 瘵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凋瘵(조채, 쇠하여 앎음)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선조는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볼품없는 캐릭터가 돼죠. 그런데 허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더없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돼요. 중인 신분의 허준에게 벼슬아치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렸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허준이 여러 의학 서적을 쓸 수 있도록 지시하거나 배려했고 왕실 소장의 값진 도서를 다량으로 제공했기 때문이에요.『동의보감』도 이런 선조의 지시와 배려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지요(물론 그 이전에 허준 자신이 그런 의학서를 쓰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겠지만요).어느 한 인물을 평가할 때는 늘 명과 암을 함께 봐야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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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 독경 소리 그치자(琳宮梵語罷)

하늘 빛은 맑기가 유리와 같네(天色淨琉璃)

 

김부식과 정지상은 정치적 견해차가 심한 사이였어요. 결국 김부식은 정지상을 죽이는데, 명분은 그가 묘청의 난에  연루됐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세간에는 이와 다른 이야기가 전해요. 김부식이 정지상을 죽인 건 과거 정지상이 그의 요구를 묵살한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거예요. 그 요구는 다름아닌 저 시구를 자신에게 달라는 거였어요. 하지만 정지상은 매몰차게 거절했고, 김부식은 이에 앙심을 품었다가 후일 그를 묘청과 관련지어 죽였다는 거예요. 시화집 『백운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이 시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어요. 적어도 시에 있어선 정지상이 김부식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

 

김부식이 탐했던 정지상의 시구는 산사의 고요하고 맑은 풍경을 청각과 시각을 빌어 표현했어요. 고요한 풍경은 독경 소리가 멈춘 순간을 통해, 맑은 풍경은 유리를 통해 표현했지요. 고요하고 맑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고요하고 맑은 풍경을 더없이 잘 표현했어요. 김부식이 탐할만한 시구예요.

 

정지상의 시구에서 유리는 '맑음'의 상징으로 사용됐어요(보다 정확하게는 '푸름'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지금도 여전히 유리는 맑음의 상징으로 사용되죠. 그런데 유리가 맑음의 상징 뿐 아니라 '강함'의 상징도 된다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유리 섬유의 가장 놀라운 속성은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같은 굵기의 강철 가닥에 버금갈 정도로 강하다 … 유리에서 뽑아낸 경이로운 신물질인 유리 섬유는 가정용 단열재, 옷, 서핑보드와 호화요트, 헬멧, 컴퓨터 칩을 연결하는 회로판 등 온갖 곳에서 사용된다." (스티브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설명이 없다해도 방탄 유리 등을 생각하면 유리가 강함의 상징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요. 유리를 '맑음'의 상징으로만 쓰는 것은 시정할 필요가 있어요.

 

사진은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 에단 헌트(톰 쿠르즈 분)가 인도 뭄바이에 있는 무기 중개상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에요. 에단은 일부러 무기 중개상에게 정보를 흘려 러시아 정보당국자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고 자신이 러시아 정보당국과 마찬가지로 핵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코발트를 막으려했다는 것을 보여주죠. 그런데 이 무기 중개상과 만나는 장면의 소품에 한글 '유리'와 같은 의미의 한자 '파리(玻璃)'가 등장해요. 파리는 유리의 이칭(異稱)이에요.

 

왜  유리와 파리란 명칭의 소품이 등장한 건지 궁금하더군요. 무기 거래가 불법적인 일이니 그 무기를 운반하는 상자를 위장하기 위해 이런 명칭을 붙인 상자를 쓴 거라고 간단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아요.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장면은 에단이 세계 최고층 빌딩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에서 유리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인데, 이 장면과 관련지어 등장한 것 아닌가 싶어요. 그 빌딩을 지은 것이 한국 업체(삼성물산)이니 거기에 사용된 유리도 한국 제품일 가능성이 농후하여 그 연계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한글 '유리'라는 이름의 소품이 등장한 것 아닌 가 싶은 거죠(이 소품을 한국 영화 팬들에 대한 서비스라고만 보기엔 왠지 부족한 감이 있어 추측을 해봤는데, 억측일까요?). 그런데 한자 '파리'는 중국에 대한 단순 서비스로 등장한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별다른 연관성을 찾을 수 없거든요.

 

그나저나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는 유리가 맑음보다 강함의 상징(?)으로 나와요. 에단이 부르즈 할리파 유리 벽면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그렇고, 이동 뒤 중앙 서버 장치가 있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특수총으로 유리 벽면에 흠집을 내고 온 몸을 부딪혀 유리를 깨려 하나 쉽사리 깨지지 않아 애먹는 장면이 그래요. 「미션 임파서블 4 고스토 프로토콜」에서 유리의 또 다른 면모를 읽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괜한 생각일까요?

 

한자의 뜻과 음을 자세히 살펴 볼까요?

 

玻는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皮(波의 약자, 물결 파)의 합자예요. 맑고 깨끗한 물결같은 옥이란 의미예요. 유리 파. 과거에는 유리도 옥의 일종으로 여겨 王(玉)이 주된 의미로 들어갔어요. 玻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玻璃(파리, 유리)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璃는 王(玉의 변형, 구슬 옥)과 离(離의 합자, 떠날 리)의 합자예요. 유리란 뜻이에요. 王은 뜻을, 离는 음을 담당해요. 유리 리. 璃는 황금색 점이 있고 야청빛이 나는 유리예요.  璃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琉璃(유리)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유리는 이산화 규소가 500도를 넘는 고열에서 용해되어 만들어진 거예요. 유리의 맑음과 강함은 상상 이상의 고열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요. 맹자는 하늘이 훌륭한 인물을 낼 때는 반드시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겨준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물질이나 사람이나 탁월한 존재가 되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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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꾸라지는 뼈가 단단해서…."

 

봄 무렵, 한 추어탕 집에 갔다가 미꾸라지 튀김을 시켰을 때 주인이 한 말이에요. 주인은 한마디 더 덧붙였어요. "손님이 굳이 원하시면 해드리지만 권하고 싶지 않네요." 순간, 살짝 당황했어요. 장사하는 입장이면 기를 쓰고 한 접시라도 더 팔아야 할텐데 이와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내 속으로 감탄했어요. '흠, 장사할 줄 아시는 분이구나!'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죠.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다. 목전의 이익에만 골몰하다 정작 큰 이익을 놓치는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반대 의미가 될 거예요. 작은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는다. 소기대득(小棄大得). 목전의 이익에 골몰하지 않아야 큰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가 되겠죠. 전 추어탕 집 주인의 행동이 소기대득의 행동이라고 봤어요. 왜냐구요? 그날  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거든요. '그래, 이 집은 이제 내 단골 집이야!' 당장은 미꾸라지 튀김 한 접시 못팔아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충성 고객 하나를 확보했으니 장기적으론 이득되는 행동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소기대득의 행동을 한 것이지요. 장사할 줄 아는 분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죠?

 

며칠 전 이 집을 들렸는데 벽면 한 쪽에 전에 없던 구호가 붙어 있었어요. 정선상략(正善上略). 정직과 선함이 최상의 전략이다. 가게에 걸맞는 구호란 생각이 들더군요. 아울러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큰 그림을 그리며 장사하고 계시구나.'

 

앞으로 이 가게를 주목해 봐야 겠어요.

 

한자를 좀 자세히 살펴 볼까요?

 

正은 止(그칠 지)와 一(한 일)의 합자예요. 올바른 기본[一]을 항상 견지한다[止]는 의미예요. 바를 정. 正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正直(정직), 端正(단정)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善은 羊(양 양)과 言(말씀 언)의 합자예요. 말하는 것이 양처럼 순하다는 의미예요. 착할 선. 善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善行(선행), 善心(선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略은 田(밭 전)과 各(각각 각)의 합자예요. 농지[田]를 구획짓고[各] 경작한다는 의미예요. 田은 뜻을, 各은 뜻과 음(각략)을 담당해요. 다스릴 략. 생략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 의미에서 유추된 뜻이에요. 구획짓고 경작함에 따라 번거로운 일이 줄어들게 됐다란 의미로요. 略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戰略(전략), 省略(생략)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인터넷에서 정선상략 문구를 검색하다 이 문구가 아토미라는 다단계 판매회사의 올해 경영 방침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혹 추어탕 집의 정선상략 구호는 이 회사에서 건네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토미를 통해 식재료를 공급받다보니 이 구호를 붙이게 된 것 아닐까 싶었던 거죠. 이게 사실이라면, 이 구호를 건네 받으며 주인되는 분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떻게 이렇게 우리 식당과 잘 어울리는 구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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