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연명 이후로 국화를 좋아했다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그렇다면 연(蓮)을 좋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모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송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가 애련설(愛蓮說) 말미에 한 말이에요. 은자와 군자의 삶을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던 그에게 모란은 그다지 호감가는 꽃이 아니었어요. 애련설」에는 모란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드는지 구체적 언급이 없어요. 다만 "모란을 사람으로 치면 부자에 견줄 수 있다"라는 독단과 "많은 세인들이 좋아한다"라는 점만을 언급하고 있죠. 그런데, 부자와 같기에 또 많은 이들이 좋아하기에 호감가지 않는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에요. 더구나 그가 유학자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죠. 왜냐구요?

 

 

주돈이가 지극히 존숭했을 맹자는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은 항산(恒山, 일정한 경제력)이 없으면 항심(恒心, 도덕심)도 없다." 우리 속담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란 말과 상통하는 맹자의 언급은 경제, 달리 말하면 물질적 안정이 사람의 도덕심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본 거에요. 결코 부를 배격하지 않은거죠. 유학의 이상인 평천하(平天下)는 부와 도덕이 충만한 세상이지 부를 배격한 형해화된 도덕사회가 아니예요. 주돈이의 부를 배격하는 듯한 태도는 결코 유학자다운 태도라고 할 수 없어요. 다수가 좋아하기에 기피하는 태도도 그래요. 맹자가 지도자에게 늘 강조했던 것은 '여민동락(與民同樂, 백성들과 함께 즐김)'이에요. 홀로 즐기지 말라고 누누히 강조했죠. 유학자는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 사람이 다수가 좋아하는 것을 기피하고 고고함을 혹호하는 것은 결코 유학자다운 태도라고 할 수 없어요. 주돈이가 모란을 비호감으로 여긴 것은, 그 자신 철저한 유학자였던 것을 감안하면, 자기 모순적인 행동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어요. 모란은 주돈이에게, 나아가 유학자들에게 상찬받아 마땅할 꽃이지 결코 홀대받을 꽃이 아니예요.

 

사진은 모란을 그린 그림의 화제예요. 본문은 '부귀옥당 함정대우(富貴玉堂 含情對友)'라고 읽고, 낙관은 '시을유하덕숭산방주인 덕산(時乙酉夏德崇山房主人 德山)'이라고 읽어요. 본문은 '부귀 가득한 좋은 집, 살뜰한 정을 품고 벗을 대하네'라고 풀이해요. 낙관은 을유년 빼고는 특별히 풀이할 것이 없군요. 을유년은 서기 2005년이에요. 하(夏)는 여름이란 뜻이고요. 냉면집에서 찍은건데, 돈도 많이 벌고 손님들에게 친절한 음식점이 되라는 의미로 쓴 화제 같아요. 기원 덕분인지,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더군요.

 

화제를 대하면서 문득 모란에 대한 통념 - 부정적 의미의 - 을 뒤집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론(異論, 다른 주장)을 펴봤는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모란이든 국화든 연이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최선을 다해 피고 질 뿐인데 왜 쓸데없이 인간의 가치를 적용시켜 호불호를 가리는지 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모란, 국화, 연, 미안허이. 부족한 인간을 용서하게나.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富는 宀(집 면)과 畐(가득할 복)의 합자예요. 집에 재물이 가득하다란 의미예요. 부유할 부. 富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富貴(부귀), 貧富(빈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貴는 貝(조개 패)와 蕢(삼태기 궤)의 합자예요. 삼태기에 재물[貝]을 담아 지불해야 할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란 의미예요. 귀할 귀. 貴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貴賓(귀빈), 尊貴(존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含은 口(입 구)와 今(이제 금)의 합자예요. 뱉거나 삼키기 전 잠시[今] 입안에 물고 있다는 의미예요. 머금을 함. 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含有(함유), 包含(포함)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對는 丵(풀무성할 착)과 士(일 사)와 寸(마디 촌, 법도 방법의 의미)의 합자예요. 다양한[丵] 일[士]에 다양한 방법[寸]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예요. 대할 대. 對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對答(대답), 對話(대화)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음식점에 사군자(四君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액자를 걸어놓는 경우가 있어요. 음식점에는 어울리지 않는 액자라고 보여요. 세속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내용의 그림을 지극히 세속적인 곳에 걸어놓았기 때문이죠. 모란을 그린 액자로 바꿔야 할 거예요. 효험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림의 내용과 장소가 어울리기는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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