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벗들이여, 책 좀 많이 사주소."
딱 이런 말투는 아니었지만 이와 유사한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누가 이런 허접한(?) 말을 했냐구요? 김훈 선생이 『자전거 여행』에서요. 선생이야 이런 구차한 문구까지 들먹이며 얘기 할 필요도 없는데, 선생까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책이 잘 안팔린다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거겠죠? (그러나 이런 절박한 호소 덕분이었을까요? 『자전거 여행』은 많이 팔렸죠. 물론 이에는 선생의 필력과 산뜻한 편집이 더 큰 몫을 했겠지요.)
저명한 저자의 산뜻하게 편집된 책 조차 이렇게 안 팔릴 정도인데 그에 상대가 안되는 책이야 말해 뭐할까요? 제가 『길에서 주운 한자』라는 책을 냈는데 판매가 부진해서 전전긍긍(?)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거예요. (사실 판매에 비중을 두기보다 책을 냈다는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긴했지만 책 판매가 부진하니 좀 그래요. 하하하.)
제 책은 호불호가 갈려요. 한자에 다소 익숙한 분들은 책 내용에 호감을 표한 반면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비호감을 표해요. (사실 저는 한자 초심자를 대상으로 책을 썼는데 예상했던 것과 빗나간 셈이에요.) 그리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결점은 미흡한 편집과 질 낮은 종이의 사용 그리고 다소 산만한 내용이에요. 다행히 문체를 그다지 흠잡지는 않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책에 한없는 애정과 긍지를 갖고 있어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쁜 법이라죠?) 한자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어 봤지만 많은 경우 실속없는 내용에 과도하게 칼라 만이 난무하거나 혹은 깊은 고민없이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것으로 내용을 채웠거나 혹은 과도하게 전문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었어요.
제 책은 이런 단점을 극복해보려 노력한 책이에요. 일상에서 취재한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자료의 내용에 대한 성찰과 함께 취재 자료에 나온 한자에 대해 상세한 자원 설명을 곁들이고 있어요. 취재한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진 않았지만 -- 이 때문에 내용이 산만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것 같아요 -- 이리저리 조합해 보면 그 나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지요.
제가 제 책에서 가장 긍지를 갖는 점은 한자에 대한 자원 설명이 비교적 정확하다는 점이에요. 제가 자원 설명에서 주로 참고한 자료는 『형음의 종합 대자전』이란 중국 원서인데, 이 책은 임어당(林語堂, 중국의 저명한 문인이자 언어학자) 선생이 서문을 쓸 정도로 자원 설명에 관한 한 권위를 인정받는 책이에요. 그런데 의외로 시중에 나와있는 책들 중에 이 책을 참고한 책이 별로 없더군요.
그러나 제가 진짜 긍지를 느끼는 부분은 단순히 이 책을 참고하는데 그치지 않고 제 생각을 덧붙였다는 점이에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의 뜻과 한자 제작 당시의 뜻이 서로 다를 경우 그 의미의 변천이나 연관성을 설명해야 하는데 『형음의 종합 대자전』에서는 한자 제작 당시의 뜻만 소개하고 이후의 다른 의미들은 그냥 병렬식으로 소개만 하고 있어요. 일례로 曲을 『형음의 종합 대자전』에서는 단순히 대나무나 풀 등을 엮어 만든 그릇을 의미한다고만 소개하고 이 글자가 '굽다'라는 의미로는 왜 사용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부가 설명이 없어요. 그저 '굽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소개만 하고 있지요. 이 부분에서 저는 '굽다'란 의미는 그릇들의 둥그런 모양에서 연역된 의미라는 설명을 덧붙였어요. 이런 연역 설명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글자의 원뜻과 변화된 뜻을 연결지을 수 있기에 한자를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좋은 설명이라고 볼 수 있어요. 간혹 견강부회한 설명도 있지만 대부분 원뜻에 기초하여 풀었기 때문에 특별히 무리한 설명은 없어요.
『길에서 주운 한자』는 쉽게 빨리 읽을 수도 있고 천천히 오래 읽을 수도 있어요. 취재 자료에 대한 성찰 부분은 쉽게 빨리 읽을 수 있지만 자원 설명에 대한 부분은 다소 시간을 투자하여 천천히 읽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천천히 읽어야 하는 것은 꼭 한자 초심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한자에 익숙한 분들에게도 해당돼요. 한자를 많이 알더라도 그 한자의 구성 원리를 알고 있는 분은 많지 않기 때문이죠. 속도가 강조되는 시대에 천천히 읽기를 요구하는 책이 있다는 것은 좀 별스런 것이지만 때로는 그런 별스런 것이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고 봐요. 천천히 읽기를 통해 성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성찰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한자를 새롭게 본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있는 독서 행위가 아닐까 싶어요.
『영어 실력 기초』란 책이 있어요. 안현필 선생이 쓰신 영어 참고서죠. 장정도 허술하고 편집도 답답하기 그지없으며 무엇보다 정말(!) 오래된 책이예요. 하지만 영어의 기초를 닦는데는 여전히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닌 좋은 책이죠.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저는 그 중의 하나로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진심과 성실성을 들어요. 이건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이 책을 접해봐야 알 수 있어요. 음, 『길에서 주운 한자』를 감히 이 책에 비견하진 못하겠어요. 그러나 제 책에도 나름의 진심어린 성실성이 담겨 있어요. 이건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제 책을 접해봐야 알 수 있어요. ^ ^
"벗들이여, 책 좀 많이 사주소." 『길에서 주운 한자』. ^ ^
오늘 제 책 선전의 핵심어는 '판매'와 '성실'이에요. 이것을 한자로 좀 자세히 알아 볼까요?
販은 貝(조개 패)와 反(뒤집을 반)의 합자예요.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의미예요. 팔 판. 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販路(판로), 販促(판촉)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賣는 出(날 출)과 貝(조개 패)의 합자예요.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내놓고 판다는 의미예요. 팔 매. 賣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賣買(매매, 사고 팔다), 賣渡(매도, 팔아 넘김) 등을 들 수 있겠네요.
誠은 言(말씀 언)과 成(이룰 성)의 합자예요. 말과 행실이 일치하도록 노력한다란 의미예요. 정성 성. 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精誠(정성), 誠意(성의)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實은 宀(집 면)과 貫(꿸 관)의 합자예요. 돈 꿰미가 집에 가득하다란 의미예요. 實의 일반적 의미인 '충만하다' 혹은 '참되다'란 의미는 본뜻에서 연역된 거예요. 찰 실. 참 실. 實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充實(충실), 實相(실상)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정리 문제를 풀어 보실까요?
1. 다음의 한자를 허벅지에 열심히 연습하시오.
販 팔 판 賣 팔 매 誠 정성 성 實 찰 실
2. ( )안에 들어 갈 알맞은 한자를 허벅지에 써 보시오.
充( ) ( )渡 ( )促 ( )意
3. 자신의 책을 광고한다고 가정하고 광고 카피를 작성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