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통치론 나의 고전 읽기 5
박치현 지음, 존 로크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박치현님이 쓰신 이 책 한 권으로 고등학교 때 배웠던 3년간의 윤리를 몇 시간 동안에 훑어본 기분이 들었다. 처음엔 '통치론' 제목부터 눈에 들어와 어렵다고만 느꼈다. 그래서 산세베리아 옆에 항상 안 읽은 책 몇 권을 놓아두는 습관대로 위에 얹어 두고 집안일만 해댔다.

 몇 주 후 맨 끝의 표지 안쪽을 봤더니 저자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띄였다. 서울에서 태어나 집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없었던 관계로 신림동 근방에서 수시로 이사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이 신선한 표현을 보고 저자가 참 딱딱한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군 싶었다. 그리고 또 며칠 후 오늘 맘의 자유를 얻어 애들이 집안을 이리저리 뛰놀고 다녀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책 덕분에 나와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난 아이들이 약 세 시간동안 무한한 자유를 누렸던 셈이다.^^

 프롤로그부터 맘에 들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중 멜 깁슨의 용감한 선택 자유! 맞다. 바로 그거다. 그리고 영화 '올드보이'로 이어진다. 한동안 인기를 누렸던 '글래디에이터'도 생각이 난다. 로크의 삶을 살펴보고 간간이 나오는 돋보기(종이의 색깔이 옅은 분홍색이라 나중에 찾기 쉽게 되어있다.)를 통해 종교개혁, 청교도혁명,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영국의 양당 체제의 기원(휘그당과 토리당), 로크의 경험적 인식론, 다수결 원리의 한계, 로크의 관용론, 프랑스인권선언문, 헤겔의 사유재산론,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 인터뷰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연화 노동'까지 아주 알차게 공부를 할 수 있다. 끝에는 더 읽을 책들 네 권의 소개가 개인과외를 받듯 친절하기만 하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저자의 글과 많은 인물 초상화와 그림들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늘날까지 현대 민주주의 통치 기구의 기본 틀이 될 정도로 합리적인 로크의 글은 그 시대엔 대단히 획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많은 생각과 의문을 가져오게 한 좋은 책인데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들자면 돋보기 5에 나온 다수결 원리의 한계이다. 로크 이후 사상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란 책에서 '다수의 폭정'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는데 히틀러는 대다수 국민의 지지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고 가장 참혹한 유대인 대학살 '아우슈비츠'를 자행했다는 예를 들어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위험성을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특히 어디서나 일어나는 '왕따'현상은 목소리 큰 다수의 의견 때문에 달리 생각하는 소심한 개인은 무시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이다. 이럴 땐 다수의 합의보다는 더 높은 선의 추구에 입각하여 결정을 내려야 할텐데 말이다.  

 재산은 자유의 표현이고 인격의 표현이라고 한다는데 그럼 지금 자신이 소유한 것들은 진정 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 219쪽 돋보기9에서는 한 회사에서 일하는 기간이 짧아져 일 속에서 성장할 수 없고 새로운 조건들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인격이 공허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직장에 계속 일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커다란 행복이겠다 싶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었다. 책에 나온 그대로, 나도 동생과 백화점 옷 구경을 하러 가자고 해봤으나 동생은 그 예쁜 옷들을 살 수 없는 현실로 다녀온 후 기분이 나빠진다고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느끼는 빈부의 격차가 사실은 내게도 꿈꾸는 듯 공허하다. 그래서 이제는 백화점 가기가 겁이 난다.ㅠㅠ

 돈을 초월하는 순수한 관계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젠 사랑마저도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많은 상품을 동원해야 가능하다. 자동차와 집부터 꽃 한 송이까지 말이다.(232쪽)아, 또 이 대목을 보니 떠오르는 게 많다. 부부싸움의 첫번째 주제가 돈이라는 것! 돈 없는 가족이 많이 싸운다는 것이다. 우린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면 현실적이 되니 철 들기 전에 사랑하는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동화 속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처럼 성에서 사는 한 나라 왕자의 신부가 아니라서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 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문장엔 그냥 피식 웃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돋보기 10에서 나온 까뮈는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그것이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다시 시작하는 데 있다고 했단다. 매일 아니면 이틀에 한 번씩 청소를 하고 또 밥을 하면서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리 주부들은 항상 다시 쳇바퀴를 돌린다. 바로 주부들이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안다는 것인가 보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또 오늘 하루 아무 일 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이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에필로그, 거인의 정원 이야기, 알고 있지만 이 사회를 사는 가난한 이들이 정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이 인상적이었다. 놀이공원 참 비싸다. 네 명의 가족이 한꺼번에 들어가려면 말이다. 일 년에 한 번씩 가곤 했는데 올해는 힘들어 꾹꾹 참았다. 그래서 그런지 거인의 정원에 나도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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