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카타콤
이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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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남에게 주고, 내가 필요한 위로를 남에게 전하고, 내가 원하는 희망 남에게라도 남기고, 자기만족이라 해도 원래 그러면서 사는 거래. 나를 위한 건지 너를 위한 건지 모르게 되면서 우리를 위한 게 되는 거지. (p 108)

📝 천천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차마 사랑해, 라는 말은 못 해주고, 대신. "안녕." (p 235)

카타콤이란 지하묘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제목만 봐서는 서울 밑 지하무덤이라니, 굉장히 역동적이고 액션이 가득할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진중하면서 잔잔하기도 했던 소설.

'서울 카타콤'이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서울 지하철역 중 가장 깊은 곳은 50m가 넘고 평균 5층깊이 정도로 건설되는데, 그 열차 소리도 아득할 정도로 깊다면 등장인물들은 도대체 어느 깊이에서 살고있는 걸까? 그 깊은 곳에 산소는 충분한 것인지, 쓰레기는 어떻게 유입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또 언제나 그러하듯 서울이 어색하기만 한 지방사람으로서 한강이며, 서울역이며, 강남이며 지리가 잘 체감이 되지 않아 더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불안을 삼키는 블랙홀, 카타콤
카타콤에 발을 들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내면에 크고 작은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꺼질듯 말듯 불씨를 유지하고 있는 촛불처럼 흔들리고, 소설 속 샘물이 흘러나오는 벽처럼 균열이 있어 보인다.
그 불안의 크기는 카타콤과 지상을 드나듦과 카타콤에서 주거지의 깊이로 나타난다고 느껴진다.
어쩌면 서울의 지하무덤, 카타콤은 이러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지고, 존재하는 공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여러 인간의 태도
팍팍하고, 컴컴한 카타콤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온기를 나누기도, 공간을 무기로 더 난폭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퇴보하기도, 누군가는 발전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지상으로 보내야한다 하고, 누군가는 아이들이 갈 곳이 겨우 지상이라는 사실에 절망하고, 누군가는 지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서울, 카타콤》을 통해, 같은 상황에 대한 인간의 여러가지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고,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아이들이 다시는 지하로 가지 않았다는 점을 보아, 그 시절의 고단했던 경험이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길, 앞으로 그들에게 더이상의 불안은 없길 바란다.

자신을 더욱 깊은 곳으로 내몰기만 하던 주인공이 결국 사소한 행복들에 스며드는 모습과 진행될수록 휘몰아치는 전개가 좋았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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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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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찰나가 연장해가는 것이니까 이 순간 아무리 사랑하지마는 다음 순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라지요. (p 47)

📝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외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망하고 계속 망할 뿐이라는 평범한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p 229)

작가정신의 첫 번째 소설, 잇다 시리즈.

책에 소개된 백신애 작가의 작품은 주로 1인칭 시점이다. 주인공의 독백에 가까운 문장들이 이어지는데 당시엔 1인칭 시점이 유행했던 것인지, 작가의 스타일인지 알 수 없으나 요즘 소설들은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대부분이라 나에겐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름다운 노을>.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고뇌가 잘 표현되어있는데,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이입을 많이 했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성별도 없는 거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뭐가 문제야! 싶으면서도..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심란한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그럴까 생각하면서도, 아니야 그건 범죄야! 라는 생각도 든다. 나로서는 끝끝내 결론을 낼 수 없는 주제가 좋았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읽으며 그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들에겐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끝내 남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걸까. 그들은 무엇을 얼마나 사랑하는 걸까. 그 사랑 나에게도 좀 알려주길, 나눠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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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책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앤솔러지
기 드 모파상 외 지음, 최정수 외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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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양한 사랑을 보여주는 책. 로맨스만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기 드 모파상의 <달빛>과
대프니 듀 뮤리에의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
두 작품은 총 17편의 고전 단편소설이 실린 《사랑의 책》에서 첫 번째, 두 번째로 나오는 단편이다.
나에겐 뒤 15편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강렬했던 소설.

특히 <달빛>이 인상적이었는데, 내게 소중한 사람이 자신을 갉아먹는 고뇌에 빠져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 언니,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사랑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그리고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달빛이었던 것 같아. (p 15)

다소 고전적인 문체와 어려운 이름들로 읽기 까다로운 작품들도 많았으나, 고전을 좋아하거나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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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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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쓴다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삶으로 채워 넣는 일이고, 삶을 감각하는 일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풍경과 느낌을 아는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독자를 안아주는 일이다. (p 122)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소설가 23인의 소설 예찬 즈음 되는 에세이집이다.
누구 한 명쯤은 정말 소설 쓰기엔 마진이 얼마나 남는지 알려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며 읽은 책.

23명 중 《0영ZERO零》의 김사과 작가님과 《작은 동네》의 손보미 작가님, 워낙 유명하신 최진영 작가님 세분만 알고 있었는데 다른 작가님들과 그들의 소설까지 궁금해진다.

23편의 작품들 중 최진영 작가님의 <입구도 문도 자물쇠도 비밀번호도 없는 시작>이 가장 인상 깊었다. 아래와 같이 좋았던 문장들을 기록해둔다.

📝 나는 오늘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오늘 쓸 수 있는 글을 씁니다. 나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합니다. (p 193)

📝 만약 십 년 뒤에도 내가 글을 쓰고 있다면, 첫 문장을 고민하며 서너 계절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그때에도 누군가가 당신은 어째서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p 193)

이 작품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문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에세이들을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작가들이 마치 수정 한 번 거치지 않은 것처럼 투박하고 거칠게 글을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와일드한 문체에 집중이 흐려지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산문들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작가들의 개성과 그들의 내밀한 생각을 알 수 있는 책. 다시 말해, 그들의 '작가정신'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책 속 '작가의 말'만 모아둔 것 같은, 아쉬우면서도 충만한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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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원하는 달콤한 꿈을 꾸고 내일 또 만나자
황의정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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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여러 책이 있다. 너무 재밌었지만 두 번 다시 펼쳐보지 않는 책, 잔잔한 여운으로 두고두고 다시 보는 책, 내 취향은 아닌 책 등등..
《각자 원하는 달콤한 꿈을 꾸고 내일 또 만나자》는 흔히 볼 수 없는 인디고블루 색감 때문인지 청량하고 시원한 제주 바람을 맞으며 읽는 느낌이었고, 더불어 줄간격이라든지, 사철제본이라든지 여느 책들과 다른 느낌이 신선하여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나는 이런 책도 있다?!라며 어깨가 으쓱해지는 책.

책의 주된 내용은 두식이라는 반려견과 함께 제주도를 새로운 고향으로 자리잡으며 그 속에서의 에피소드, 새로운 털복숭이 가족들과의 만남이다. 나 역시 그랬듯 제주에서의 삶은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제주살이 선구자가 쓴 글이라 그런지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

나는 '또 만나자'라는 말이 너무 좋다. 불안한 미래에 누군가를 잃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날려주는 말. 나는 다시 보고싶은 사람이구나를 일깨워주는 말. 그래서 이 책이 좋기도 하다.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아버렸으니!

어떤 이야기보다 학대당한 덕천이와 관한 내용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충격적인 내용이라 그런건지.. 읽으면서 눈물이 찔끔났고, 얼굴도 모르는 덕천이를 품에 와락 안아주고싶었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주어는 생략합니다. 부디 유병단명하세요.

읽는 내내 작가님의 어휘력에 감탄했다. 정말 본투비 작가가 아니신지.. 세련되고 몽글몽글한 단어들에 폭 파묻혀 허우적거리며 읽었다. 간결한 문장과 멋진 단어들이 이 책의 매력이라 말할 수 있다.

제주에서 사랑하는 이(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와 함께하는 삶은 누구나 바라거나 바랐던 일일 것이다. 언젠가 꿈꿔본 제주살이를 떠올리며 한껏 기대하며 읽은 책인데 더할나위없이 충족시켜준 책. 다가오는 제주여행을 더욱 기대되게 만들어주는 산문이다. 100점 만점에 10,000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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