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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숲의 동물들 ㅣ 미래그림책 202
강병인 지음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7월
평점 :
한글 숲에서 만난 열다섯 마리의 동물
『한글 숲의 동물들』을 읽고

우리는 매일 한글을 읽고 쓴다.
너무 익숙해서 글자의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볼 일은 많지 않다. ㄱ은 ㄱ이고, ㅏ는 ㅏ이며, ‘닭’은 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일 뿐이다. 우리는 글자를 읽는 순간 의미를 알아차리고 곧바로 다음 글자로 넘어간다.
그런데 『한글 숲의 동물들』은 익숙한 글자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글자는 무엇처럼 보일까?”
강병인 작가는 동물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고, 그 안에 담긴 자음과 모음의 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글자의 획에서 동물의 몸짓과 특징을 발견한다. 그렇게 평범했던 글자들은 붓끝에서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 시작한다. 글자가 동물의 일부가 되고, 동물은 다시 하나의 글자가 된다.
글자를 읽던 눈이 어느 순간 글자를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글자와 동물의 연결이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닭’이라는 글자를 이루는 낱자들은 닭의 볏과 부리, 날갯짓과 발톱으로 변한다. ‘개’에서는 입을 크게 벌린 개의 모습이 글자의 획 속에서 드러나고, ‘말’에서는 힘차게 달려가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 글자에서 동물을 발견했을까?” 싶다가도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도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아, 정말 그렇게 보이네.”
그 순간부터 한글은 더 이상 뜻을 전달하기 위한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글자의 선 하나, 획 하나가 동물의 몸이 되고 움직임이 된다. 우리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한글의 모양 안에 새로운 세계가 숨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한글의 ‘소리’와 ‘모양’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한글은 소리를 담아내는 글자다. 그런데 작가는 그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바꿔 놓는다. 묵직한 ‘황소’의 기운은 글자의 형태에 담기고, 꿈틀거리는 ‘뱀’의 움직임은 붓의 흐름 속에서 살아난다.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일에서 시작된 상상이 글자의 형태를 거쳐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조금 특별하다.
읽는다.
바라본다.
상상한다.
그리고 다시 발견한다.
한글을 배우는 순서와는 정반대의 경험이다.
아이들은 보통 글자를 먼저 배우고, 그 글자를 조합해 단어를 읽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글자를 다시 낯설게 바라본다. 익숙함이 낯섦으로 바뀌는 순간, 한글은 새로운 놀이가 된다.
그림책이라는 형식도 이 책의 매력을 더한다. 일반적인 동물 그림이라면 동물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특징을 알아가는 데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글자 자체가 그림의 재료가 된다. 자음과 모음의 획이 몸통이 되고, 꼬리가 되고, 발톱이 되고, 뿔이 된다. 글자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동물의 특징과 만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책을 보며 문득 아이들의 그림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종종 숫자 2를 오리처럼 그리기도 하고, 동그라미 하나를 얼굴로 만들기도 한다. 어른에게는 단순한 기호인 것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상상력이란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늘 보던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힘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 숲의 동물들』은 한글에 관한 그림책인 동시에 ‘바라보는 법’에 관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글자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글자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뜻을 알아내는 데 익숙해진 눈은 글자의 모양과 움직임을 놓치고 있었다. 이 책은 그 익숙한 시선을 살짝 비틀어 준다.
그리고 그 순간, 한글 숲이 열린다.
그 숲에는 글자 사이에서 태어난 동물들이 있다. 어떤 동물은 힘차게 움직이고, 어떤 동물은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으며, 또 어떤 동물은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한글의 획은 더 이상 종이 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각각의 생명을 얻어 움직인다.
한글이 그림이 되는 순간이다.
2026년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한다.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들어왔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한글의 가치를 보여 준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문자이며 얼마나 배우기 쉬운지를 설명하기보다,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예술적인 문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주변의 글자들이 전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간판에 적힌 글자도, 책 속 문장도, 아이가 쓴 삐뚤빼뚤한 글씨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이 글자는 무엇처럼 보일까?’
어쩌면 『한글 숲의 동물들』이 내게 건넨 가장 재미있는 질문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글자를 읽으며 의미를 찾지만, 때로는 글자를 천천히 바라보며 그 안에 숨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익숙한 한글이 낯선 동물이 되고, 평범한 획 하나가 생명이 되는 세계.
『한글 숲의 동물들』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한글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그리고 책을 덮은 뒤에도 한글 숲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나는 글자를 볼 때마다 그 안에 어떤 동물이 숨어 있을지 한 번쯤 상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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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
★★★★★ (5/5)
한줄평
“매일 읽고 쓰던 한글이 열다섯 마리의 동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익숙한 글자가 새롭게 보인다.”

아!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함께 감상하면 좋을 전시가 떠올라 정보를 함께 올린다.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전인 5월 달에 방문하고 매우 만족했떤 전시인데 <한글 숲의 동물들>을 읽고 나니 전시 기간 중에 한번 더 방문하고 싶어진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특별전시인 "글씨 상점: 당신의 글씨, 당신의 취향"이다.
무료 전시의 수준이 아니라고 할 만큼 흥미진진한 글자그림 작품들과 재미있는 글자계산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전 연령이 만족할 만한 추천 전시다!!
특별전시 <전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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