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랭면
김지안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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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면>
우리나라의 상징같은 동물 호랑이가 나오는 그림책은 많고 많다. 하지만 호랑이가 냉면 먹는 이야기는 처음이지 않을까. 게다가 더운 여름을 쉬원하다못해 추워지게 하는 신성한 능력까지 있다니!! 여름의 한복판에서 만난 이 책이 반가운 까닭은 이런 뻔뻔함에서 오는 환상의 쉬원함을 설정했기 때문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가위바위보 하는 모습도 깨알같은 친숙한 재미를 주는 요소다. 선의로 베푼 일이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서사에 모험을 떠나 펼쳐지는 활동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모든 연령이 즐기기에 좋은 작품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호랭면을 상상하며 얼음 동동 띄운 비빔냉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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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의 얼굴 - 이 사건은 어린이 프로파일러가 맡겠습니다
김다노 지음, 최민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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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가 꿈인 주인공 하나와 두 친구 서진과 바키타의 범인잡기 서사구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노키즈존‘에 대한 의식을 역설하는 ‘온니키즈존‘의 카페 간판과 얼킨 이야기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중간중간 하나의 메모가 그림으로 나와서 정리되는 기분도 든다. 금새 읽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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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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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블루』 / 이희영 / / 창비

 

 

 

인생의 정체기를 극복하는 뭉근한 시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인생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신호도 없이 잘 뚫린 평탄한 길이면 좋겠지만 어느 순간 빨간 신호에 멈춰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길로 진입해 헤매기도 한다. 고속도로라고 정체기가 없는 것은 아니듯이 인생에는 정답이 없지 않는가. 이렇듯 정답이 없기에 인생이 더욱 흥미로운 것일 것이다.

꿈을 꾸고, 가꿔나가야 하는 청소년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을 때 당연한 듯이 바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반면에 어린 시절에 명확한 꿈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희영 작가는 <챌린지 블루>를 통해 꿈에 대해 당연히 여겨왔던 질문에 대한 당연하지 않은 해답을 제시한다. 또한 청소년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지만 ‘인생의 정체기’를 겪는 수많은 꿈꾸는 자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잘 하던 일마저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때가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때이다. 꿈을 찾다 헤매는 인생의 모든 길치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희영 표 꿈길 네비게이션

이희영 작가는 2018년 <페인트>로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챌린지 블루>는 ‘창비교육 성장소설’의 첫 번째 책으로 ‘성장’을 고리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시리즈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이 주요 독자층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은 대놓고 교훈적이거나 훈계를 앞세우지 않는다. 다만 독자가 가고자 하는 꿈길이라는 여정에 신호등을 켜주고 조곤조곤 옳은 길로 가도록 격려한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을 위로하는 것이, 때론 그 주인공을 탄생시킨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모두 참 좋은 일 같아요.”(290쪽)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야 말로 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위로를 받고 행복한 삶의 자양분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주인공 바림은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예비 고3 학생이다. 중요한 시기에 팔을 다쳐 그림을 쉬어야 하는 환경에 놓이면서 심리적인 불안과 혼란에 쌓이게 된다. 깨어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현실에서는 기계적으로 그린 그림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시된 사물을 보면 프로그램 된 기계처럼 구도와 연출과 색감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잘하게 되어서라고 여기면서도 그렇기에 점점 더 그림이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86쪽) 는 심리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바림은 그림 작업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된다. ‘사물을 보면 동전을 넣은 자판기처럼 자연스레 구도와 연출이 튀어나올’(184쪽)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면서 ‘나답게 그리는 그림’에서는 멀어졌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찾아온 부상은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찾아 우회해야 하는 적기임을 깨닫게 된다. 몽롱하고 선명하지 않는 무의식적인 꿈의 기억을 선명하게 바로 잡으려는 바림의 노력이 구체적인 색을 입고 구현되는 전개방식이 인상적이다.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다루는 색

‘만약 인간의 삶이 한 장의 그림이라면, 바림은 문득 자신이 어떤 빛깔로 채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186쪽) 바림의 물음은 색과 연관된 감정 여행을 하며 해결되어 간다. 이 작품은 열 한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는데, 시작하는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열 개의 챕터가 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장마다 색상코드를 해시태그로 명시해 놓은 것이 마치 스와치북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러한 색의 이미지는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대변하는 매칭효과를 갖는다. 일테면 첫 번째 장인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는 무의식의 세계인 ‘꿈’을 표현했기 때문에 아무런 색의 제시가 없다. 여기에 방학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설정하여 현실적 영역에 속하지 않은 꿈의 공간을 무채색으로 강조한다. 두 번째 장의 색인 ‘램프블랙’의 흑색물감 이미지는 팔을 다쳐 그림 작업을 잠시 멈춰야 하는 혼란한 주인공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에 적합하다. ‘페인지 그레이’의 어두운 푸른 회색빛을 따라 주인공의 암울한 심리상태를 따라 가라앉았다가, ‘윈저 바이올렛’과 ‘세피아’에서 ‘카키’로 이동하며 불안한 롤러코스터를 넘나든다. 그리고 온전하지 못한 검정인 ‘미드나이트블루’가 가진 또 다른 모습인 희망적 암흑의 이면은 주인공의 손이 점점 나아지는 동시에 마음의 혼란도 어느정도 정리되어 감을 대변한다. 다음으로 ‘샙그린’과 ‘압생트’가 주는 희망의 여지를 품은 채 ‘더치 오렌지’와 승자를 상징하는 ‘옐로 골드’의 찬란한 빛을 마주하는 에너지를 주인공이 갖게 된 것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색을 통한 심리 여정은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로 돌아와서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선명한 꿈을 꾸는 시간으로 재진입하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서랍에서 발견한 크레파스와 나만의 쉼표

‘서랍은 미련과 무관심의 공간이었다. 유행 지난 고가의 겨울 코트처럼 버리자니 아깝고 다시 사용하기엔 낡은 것들의 집합소였다. 그것이 비단 서랍 속 잡동사니에만 한정된 것일까? 버리자니 아깝고 다시 사용하기엔 낡은 것은 어쩌면 쌓아 올린 시간인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살아온 하루하루의 삶과 헛된 희망 같은 것 말이다.’ (36쪽)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진’은 두부로 연상되는 외할머니의 집이었고 현재는 이모가 사는 시골집이다. 바림은 다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어설프게 서랍 속을 뒤지다가 몽당해진 파란색 크레파스를 발견한다. ‘왜 너 혼자 여기 있냐?’는 바림의 물음은 외면했던 꿈에 대한 물음과 마주하며 인생에 쉼표가 필요함을 인식하게 해준다.

‘파란색 지붕은 순한 초식 동물처럼 앉아 있고 담장 아래 핀 들꽃의 흔적가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집안 어디를 둘러봐도 변한 곳이 없었다. 시간이 이곳만 멈춘 것 같’(71쪽)은 시골집에서 ‘파일을 압축하듯 가슴 깊숙이 꾹꾹 눌러놓았던 추억’이(74쪽)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몽롱하고 가물가물한 꿈에서 만난 맑은 쪽빛을 닮은 아이,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체모를 파란티의 아이, ‘수’와도 경진에서 조우한다. ‘네 눈을 보면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져. 붕대에 감긴 곳이 손이 아니라 내 몸 전체인 것 같거든. 너는 왜 그렇게 답답한 시선으로 나를 보는 거야?’(164쪽) 수와의 만남은 불편한 질문들을 수면위로 올려내는 역할을 한다. ‘물이 흐를 곳은 결국 다시 흐르게 되어 있어. 더 맑은 물이 더 많이 흐를 수도 있고’(166쪽)라고 말하는 수를 통해 바림의 식어버린 열정도 다시 솟구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경진’이라는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공간과 바림이 만들어낸 ‘수’라는 가상 인물이 적절히 가미되어 형성된 쉼표는 바림에게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꿈을 다시 만난다는 심리적 안도감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파고를 넘나드는 뭉근한 시간

바림의 삶을 대하는 방식은 ‘신중한 매미’를 닮았다. 준비 없이 땅을 뚫고 나왔다 개미들의 습격에 대처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성급한 매미’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매미의 행복한 날개짓은 인고의 시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견뎠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짝을 찾기 위한, 혹은 직업으로 향하는 나무오르기가 아니라 행복을 알고 오르는 매미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늦게마나 행복한 삶의 목표를 찾아 생기가 도는 친구 해미를 질투하고, 10년 전 결혼식을 뛰쳐나온 대범한 신부였던 이모의 용기에 큰 인상을 받는다. 또한 어린 나이에 큰 문학상을 받고 정식 등단한 동갑내기의 노력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재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꿈이라곤 없어보이는 엄마에게서도 꿈을 위해 선택과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야 함을 배우고 이해하는 계기를 갖게된다. 그렇게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맺는 시간은 인생의 우회로 작용하여 적절한 시기를 맞아 더욱 가뿐한 날개짓을 가능하게 하는 우화의 단계로 승화하게 될 것이다.

 

우회하는 길에서 만난 삶의 멘토들

이러한 점에서 <챌린지 블루>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서사구조와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 바림이 주변인들을 대하는 질투, 선망, 이해의 감정들은 하나하나의 행성을 이루며 주인공 바림의 잃어버린 열정을 끌어올리고, 외면했던 근본적인 질문들을 이끄는 장치로 작용한다. ‘과감한 시작만큼이나 해미는 끝맺음도 깔끔할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에 괜한 미련을 갖거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과하게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해미는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도, 그만두기엔 이미 늦었다는 소리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148~9쪽)라는 독백에서는 배움의 최적기를 판단하는 기준은 남이 아닌 자신이 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는 이모에게 무책임하다 말했겠지. 제멋대로라 비판하거나, 이기주의라 손가락질했겠지. 그러나 그것도 하나의 선택 아닐까? 바림은 문득 이모의 용기가 부러웠다. (생략) 문제는 일단 해보는 데까지 필요한 용기였다.’(222쪽)에서 보여지듯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잘라 버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과감함을 바림또한 장착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재능만으로 쉽게 성과를 냈다고 오해했던 동갑내기 이레에게도 노력의 시간이 있었음을 깨닫고, 내 문제에서 벗어나 타인을 이해하는 넒은 시야도 확보하게 된다. ‘바림은 자신만 힘들고 괴로운 줄 알았다. 세상에는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고 무거운 것 같았다. 그런데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모두 스스로의 어깨 위에는 무거운 고민 하나씩을 짊어지고 있었다.’(243쪽)이레와 오해를 푸는 대화를 통해 바림은 다시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정했던 진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엄마를 통해서는 꿈이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이 매몰비용 오류가 주는 큰 착각이었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일까? 지도 한 장 없이 정확한 목적지도 모른 채 떠나는 것.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과연 어디로 나를 이끌어 줄지 전혀 알 수 없는 불안한 초행길 말이다.’(62쪽)

인생 계획의 궤도를 극단적으로 수정한 경험이 있는 엄마이기에 철저하게 계획적인 성격이 된 것이고, 이런 성향이 교육자료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경진에서 도시로 돌아오는 두 모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막힌 도로에서 길이 열리기를 기다릴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말이다. ‘더 크고 넒은 곳으로 달려 나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테니까.’(286쪽) 라는 바림의 속마음에는 선택에 대한 책임또한 감수할만한 힘이 생겼음이 느껴진다.

 

미드나이트 블루의 또 다른 이름, 챌린지 블루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바림은 외면했던 내면의 고민거리를 수면으로 올리는 힘을 얻는다. ‘바림은 찬찬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혹여 잘 못 해석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 마음의 진심을 오역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고민했다.’(237쪽) 그리고 ‘이모의 말처럼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을 해석할 수 있는 인생의 언어를 배워나갈 것이다.’(238쪽)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왕, 허영심이 많은 사람, 술꾼, 사업가, 가로등지기, 지리학자, 비행기조종사, 장미, 뱀, 장미와의 관계맺음을 통해 성장을 해나가듯이, 바림도 주변인들을 멘토삼아 삶의 태도를 배우며 행복하게 삶을 개척하는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자신의 꿈을 찾아 헤매고 있는 수많은 인생 길치들의 여정에는 언제나 챌린지 블루 빛 하늘이 떠올라있다고 응원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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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 말 못 하고 혼자 감당해야 할 때 힘이 되는 그림책 심리상담
김영아 지음, 달콩(서은숙) 그림 / 마음책방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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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김영아 /마음책방/2021 (2022년 6월 28일 작성)


안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아플 때 집 안에서 앓아눕는 건 남훈 씨가 평생을 행해 온 자가 치료 방식이었다. 26년 전 쓰러졌을 때 병원에 간 것은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아주 예전부터 그는 의사를 싫어했다. 우선 그는 의사들의 교만한 눈빛이 싫었다. 30초 만에 상대의 문제를 다 안다는 듯 단정하는 것도 싫었고, 대충 주사나 처방한 뒤 사람을 쫒아내는 무례함도 싫었다. 그런 자들에게 한 푼이라도 돈을 벌어주는 건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허태연 <플라멩코 추는 남자> 73쪽 중 )


 허태연의 소설 <플라멩코 추는 남자>에서 주인공 남훈 씨는 의사들의 기계적인 태도가 싫어서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긋하게 들어주면 좋으련만 외상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여유로움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큰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남훈 씨는 노년이 되어 새로운 언어인 스페인어를 학습하고, 플라멩코도 연습한다. 그리고 더 젊었던 시절에 외면했던 첫 번째 딸에게 줄 자서전 집필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첫 번째로 얻은 딸을 버린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큰 딸과의 엃힌 관계를 스스로 풀어낸 과정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에게는 새로운 언어와 타국의 춤이 딸과의 관계를 풀어내는 도구로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앞으로 남은 생 동안 큰 딸 보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만약 가능하다면 그런 남훈 씨와 딸 보연에게 그림책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하고 싶다. 


 그림책은 수많은 아이러니와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물성의 매체이다. 마음의 응어리를 풀기위해서 그림책 작품들을 감상하며 나의 문제와 거리두기를 해보는 것은 해결방식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에서는 다양한 고민거리들을 가진 내담자들이 나온다. 그림책 심리상담을 통해 그들의 삶을 무겁게 누르던 고민들이 한결 간결해 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후 곤란한 습관이 생겼다.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볼 때 마다 내가 아는 어떠한 그림책 제목이 떠오르며 추천해 주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플라멩코 추는 남자>를 읽으면서는 주인공 남훈 씨에게는 딸과의 관계를 그린 그림책이 떠올랐고, 최근에 종영되고도 큰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옵니버스 형식으로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을 보면서 각각의 그림책들이 목록화되어 떠올랐다. 내담자들에게 매치된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림책 큐레이터로 훈련이 되고 있었나 보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의 태도와 성격을 형성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개별적으로 어떻게 녹아들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에서는 열일곱의 내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적이고 개별적인 이야기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담겨있다. 간결하게 정리되어진 상담일지를 훔쳐보며 독자는 애정결핍자의 마음이 되어보기고 하고, 반대로 지면 속의 내담자를 안아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억울한 직장생활을 하는 내담자와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많듯이 이해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엄청 많이 존재하니 힘내요’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소설처럼 특별하고, 드라마 주인공처럼 화려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내담자의 상담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따라 달린 독자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아, 내가 위로받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쳤구나’ 하고 말이다.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먼저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림책을 읽고 그것을 기록해 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내면에 숨겨놓았던 나와 마주하고 해방되는 기분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림책을 통해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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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틀니가 사라졌어요! 마리앤미 그림책 5
로드 클레멘트 지음, 김선희 옮김 / 마리앤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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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틀니가 사라졌어요!> 글·그림_로드 클레멘트, 옮긴이_김선희 /마리앤미/2022

 

지난 주말 친정에서 하루를 보낸 후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에 친정엄마가 전화가 왔다.

 

“돋보기가 없어졌어. 도대체 찾을 수가 없는데 혹시 안경 어디 있는지 아니?”

 

아이들이 다녀가면 집안 풍경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둘째 치고 물건들이 자꾸 사라진다고 말씀하시는 두 손녀의 외할머니. 아이들의 손을 타면 어김없이 물건들은 제자리를 떠나 이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최대한 아이들의 시각으로 기억을 되짚어나가다 결국은 포기하고 아주 단순무식한 방식으로 온 집안을 다 뒤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견되는 어이없음에 기가 찬다.

로드 클레멘트의 그림책 <할아버지의 틀니가 사라졌어요!>에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할아버지의 틀니가 사라지는 사건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할아버지의 틀니는 스위스 장인이 만든 완벽함 때문에 다른 평범한 틀니가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다. 감쪽같이 사라진 틀니를 찾기 위해 가족들은 평소에는 시선이 닿지 않는 서랍장이나 침대 밑의 풍경과 불편한 마주하기를 하기도 하고, 경찰서에서 경찰과 형사가 찾아와 사건 현장에서 하듯이 단서를 찾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익숙했던 집은 낯선 배경이 되고, 평범했던 일상은 긴장감이 감돈다. 심지어 동네 골목에는 틀니 몽타주가 여기저기 붙으면서 틀니는 이제 수배중인 도둑들만큼 중요한 존재감을 갖게 되기 이른다.

동네 사람들은 틀니 도둑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웃어 보이며 결백을 증명해야 했다. 누군가는 한두 개씩 빠진 이가 있고, 누군가는 맞지 않는 틀니를 끼고 있는 것마저 숨기지 못하고 투명하게 밝혀진다. 할아버지의 ‘스위스 장인이 만든 완벽한 틀니’를 찾는 것이 이웃들의 치부를 공개하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활짝 웃어 결백함을 보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틀니를 잃어버린 할아버지는 <그것이 궁금하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틀니 도난 사건에 대한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제 틀니의 주인인 할아버지 본인뿐만 아니라 사건을 알게 된 모두가 사람들의 입을 집중하게 된다. 상실의 아픔을 겪는 할아버지를 기운 나게 해주고 싶은 가족이 간 놀이공원 나들이는 할아버지를 울게 하기도 한다. 놀이공원 정문이 틀니를 연상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웃지못할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는 불편함은 공포로 발전해 외출마저 꺼려지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틀니 소동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기에 이른다. 결국 상황 변화를 위한 결론으로 할아버지가 새로운 ‘완벽한 틀니’를 살 수 있도록 모금을 하기로 결정하고, 할아버지가 새 틀니를 전달받는 날 신문사와 방송국 기자들이 앞다투어 취재를 온다. 틀니가 없어서 웃지도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발음이었던 할아버지가 새로운 틀니를 끼고 가장 처음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하나는 카번클 할머니 거예요. 카번클 할머니 틀니가 잘 맞지 않거든요, 카번클 할머니는 활짝 웃을 때가 참 예뻐요.”(31쪽)

할아버지의 잃어버린 틀니 때문에 떠난 보물찾기 여정은 일상을 모험의 배경으로 바꾸었다. 낯설게 된 풍경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단서가 되어 ‘진정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또한 ‘틀니’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서도 주목해 볼 수 있다. 틀니라는 소통의 도구를 잃어버리고 할아버지는 웃을 수 없게 되고, 마을 사람들도 억지 웃음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새로운 틀니를 갖게 된 할아버지는 이제 활짝 웃을 수 있게 되고 맞지 않는 틀니를 끼고 있던 카번클 할머니도 새 틀니로 활짝 웃게 된다. 억지가 아닌 진정한 웃음을 찾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결말에 대한 가려움증이 몰려온다. 할아버지의 틀니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이대로 끝나도 괜찮은가? 결말을 스포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작가가 의도한 깜찍한 숨은그림찾기를 함께 공유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쉽게나마 힌트를 주자면 이 책은 그림책이다. 한 작가가 글과 그림을 작업했기 때문에 작품의 조합이 아주 훌륭하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려면 우선 글을 잘 읽어보자. 글을 잘 읽었는데도 범인을 알 수 없다면 다음 단계로 그림을 잘 살펴보길 바란다. 이제 틀니도둑이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 웃었던 이웃사람들처럼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초대한 도둑찾기 탐험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우리가 강구한 것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제 책의 첫 장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펴보면 틀니 도둑의 뻔뻔함에 기가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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