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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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얼마 전 '초서독서법'을 읽던 중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팬이 되어버렸다. 18년 동안의 유배기간 동안 무려 500여 권의 책을 펴낸 다산의 놀라운 학문적 성과에 한 번 놀라고, 그러한 성과의 원동력이 '초서 독서법'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며 한동안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총동원해서 다산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바빴다. 정조의 최측근이었고, 경기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적도 있으며, 한때 잠시 빠졌던 서학으로 인해 천주교 신자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결국 귀양까지 가게 되었다는 등 그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역동적이었다. 그렇게 업다운이 심한 삶의 가운데서도 다산은 놓치지 않고 붙든 게 있었으니 바로 독서였다. 그것도 '초서 독서'였다.


정약용에게 초서 독서법은 이미 체질화, 생활화돼

뼛속까지 스며든 독서 습관이었다.

그는 절대 눈으로만 읽지 않았다.

손으로 쉴 새 없이 기록하면서 읽었고,

끊임없이 판단하고 사색하고 비판하면서 읽었다.

스스로에게 꾸준히 질문하고 또 질문하면서

자신의 의식과 생각을 확장시켜나가며 읽었다.

그에게 독서는 단순한 문자 해독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그것을 기록하는

창조 과정이었다.

- [초서 독서법] 中 -


          다산은 책을 효과적으로 빨리 읽는 방법이 초서라고 강조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에게 늘 강조하여 말했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보탬이 될 만한 것은 반드시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어선 안된다며 초서 독서법의 효과와 속도에 대해 강조하곤 했다

      

초서(鈔書)하는 법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미리 정한 다음

만들 책의 규모와 차례를 정하고,

그 후에 책에서 내용을 가려뽑아야만 절묘한 일관성이 있게 된다.

만약 정해진 규모와 찰케 이외의 내용이 있는데

책에 수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는

별도로 한 권을 준비해두고

해당 구절을 만날 때마다 기록해두면 효과적이다.

- 본문 46~47쪽 -


    

         이처럼 다산은 자신이 돌볼 수 없는 가족들을 걱정하며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다산의 가문이 하루 아침에 폐족(廢族)이 되어 두 아들이 과거시험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그 아비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더욱이 가까이에서 날개 꺾인 두 아들을 챙겨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다산은 그 먼 유배지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두 아들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며 애끓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자신의 꿈이 꺾이고, 진로가 막혔으며, 더 이상의 앞날이 내다보이지 않는 다산의 아들들의 상황이 마치 요즘 시대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취준생들의 마음이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다.

정치적 패배자로서의 억울한 심경,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적 빈곤,

그리고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본인 역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는 자식들의 앞날을 항상 걱정했다.

가문을 위기에 빠뜨린 죄책감,

자식들의 교육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그는 자식들에게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려 애를 썼다.

- 본문 7쪽 -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자 편지를 썼으니, 다산이 쓴 편지에는 단순한 소식을 주고받는 내용을 넘어서서 두 아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언 및 격려가 가득 담겨있다. 그 많은 편지들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했던 편지가 있었으니 바로 <하피첩>에 적힌 편지였다. 다산의 아내 홍씨 부인이 유배지에서 힘들게 지내는 남편에게 '힘을 내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아 보낸 30년 전에 결혼할 때 입었던 예복 치마 다섯 폭을 다산은 70여 장으로 자르고 다듬어 작은 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 빳빳하게 만든 후 붓으로 정성껏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그것이 바로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2억 원의 감정가를 받은 <하피첩>이다. 어머니가 결혼식 때 입은 의미있는 치마에 아버지가 정성껏 오리고 다듬고 만들어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내려가서 쓴 편지이니 어느 자식이 그 편지를 그냥 읽을 수 있을까 싶다. 아마 다산의 자식들은 눈물을 흘리며 읽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그 힘든 시기 또한 잘 견뎌냈을 것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한 뛰어난 학자였으며 정조의 최측근이기도 했던 정약용은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였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구구절절 사랑과 가르침을 담아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 애쓴 다산의 부성애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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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인서울 대학 보내기 - 평범엄마의 초등부터 대입까지 자녀 교육 풀스토리
박원주 지음 / 성안당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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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방학 때면 두 딸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꼭 여행을 갔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주로 국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체험학습 위주의 여행이 주를 이루었고,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비행기 타고 가고 싶다는 그들의 희망에 따라 해외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은 좀 달랐다. 3월이면 고1이 되는 큰딸아이를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둘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 겨울방학은 여행을 가지 못하고  예비고 1 준비를 시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중3 기말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학원가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선행과정이 개설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때마침 '중3 겨울방학은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라고 조언해주던 직장 동료의 얘기를 듣고 전혀 무방비 상태로 있던 나는 12월부터 부랴부랴 여기 저기를 알아보며 예비고 과정의 학원을 찾아 아이를 등록시켰다. 큰아이가 아직 사춘기 끄트머리에 있다보니 툴툴 거리긴 하지만 친구들이 이미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감사하게도 고분고분 잘 따라와주고 있다.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 학원에 데려다 주고, 또 데리러 가고, 삼시 세 끼 챙겨먹여가며 서포트를 하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서 나도 좀 지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앞으로 3년간 엄마가 혹은 아빠가 얼마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줘야 하는지를 알고 나니 지금 픽업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싶다.



         고등학교 영어교사 출신의 저자는 본인의 건강상의 문제로 더이상 직장생활을 하기 힘들던 찰나 외동아들을 좀 더 잘 돌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교사직을 그만 두게 된다. 그리고 아들의 더 나은 진학을 위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목동으로 이사를 했고, 다행히 아들은 중학교에서 전교 상위권의 성적을 보이며 그야말로 '엄친아'로 엄마의 기쁨이 되었다. 그런데 중2가 되던 해 사춘기가 오면서 아이는 공부에 소홀하게 되고, 결국 원하는 명문고 진학을 포기하게 되며 다시 강북으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 있는 자사고로 진학을 한다. 마음이 여리고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너무나도 좋아하는 저자의 아들은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고  PC방 출입 뿐 아니라 학원을 빼먹기도 하며 엄마의 애간장을 녹인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저자의 바람대로 재수를 피해 서울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에 합격함으로써 이 책은 마무리가 된다.

         책의 부제가 '평범엄마의 초등부터 대입까지 자녀 교육 풀스토리'인데, 이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보니 저자는 결코 평범엄마가 아님이 확실하다. 교육열 높은 대한민국 서울의 열혈엄마이다. 아들이 초등학생이던 때부터 학원이면 학원, 엄마표 교육이면 엄마표 교육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아주 체계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모습을 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들의 영어공부는 끝까지 엄마가 책임졌으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아무리 아이가 하나라지만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난 그렇게 못하지 싶을 만큼 저자는 전직 교사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아이의 교육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형광펜 하나를 다 썼다. 소주제 하나하나마다 그녀의 경험담이 리얼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소주제 마지막 페이지에는 '여기서 잠깐! 평범엄마의 한 마디'라는 코너를 준비해서 학교 및 학원교육, 자녀의 사춘기, 고입정보, 입시정보 등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그야말로 '꿀팁'들을 마련해두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밑줄 긋기 바빴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는 자녀를 둔 나로서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니 눈에 쏙쏙 들어오는 정보들이라 저자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으로 토씨하나 빠뜨림 없이 열심히 읽었다.


         

          교육적인 정보가 많아 아주 유용하게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특히 사춘기 자녀지도에 관해 참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아이의 그러한 행동들이 왜 그리도 놀랍고 서운하고 분하게 느껴졌을까요? 제가 서툰 엄마여서 그랬다는 변명밖엔 생각나는 말이 없네요.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배우 성동일씨가 연기한 덕선 아빠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아." 저 역시 엄마 역할이 처음이어서 사춘기 때 아이를 잘 다독이지 못하고 잘 품어 주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엄마로서의 모든 일이 처음이었고 매일 매일이 힘겨웠던 것 같아요. 달라진 아이의 태도에 상처 입고, 다시 독한 말로 아이에게 상처 주는 못난 엄마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렇게 못나게 행동하는 엄마였던 제가 후배 어머니들께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부끄러운 실수담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으시고 '저 엄마도 저렇게 힘들었구나.' 하고 마음의 위안도 받으시길 바랍니다.

                                        - 본문 100쪽 인용 -

         이 책을 읽던 중 가장 위안을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큰아이의 긴 사춘기로 인해 많이 힘들었는데, 저자 역시 유난히 긴 아들의 사춘기로 지쳤다고 토로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동병상련이 느껴졌다. 자녀의 사춘기를 함께 보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자의 속이 얼마나 까맣게 탔을지 100% 공감이 갔다. 그리고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책을 쓸 정도의 저자는 나와는 다른 뭔가 특별함이 있었으니까 아들도 인서울 대학에 보냈겠지?'라고 살짝 새침한 시각으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저자의 모습에 어느새 나는 그녀의 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들보다 발빠른 정보력이 주무기였던 저자의 노력 덕분에 책의 곳곳에는 입시관련 정보들이 깨알같이 소개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의 내신관련 정보, 수시와 정시의 개념 설명 및 실제 사례 소개, 생활기록부 기재요령, 학생입장에서의 입시 전략, 부모로서의 입시 전략 등을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알려주어서 나처럼 예비고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에게 그야말로 알짜배기 정보로 가득한 책이다. 사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다소 유난스러운 저자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고, '상대적 열등 학부모'가 된 기분이라 울적해지려고 했는데, 뒤로 갈수록 본인의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저자를 보니 정말 후배엄마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진심이 충분히 느껴지기도 했다. 책에 소개하고 있는 정보만으로도 성에 안 차는지, 저자는 본인의 블로그를 소개하며 필요한 정보들을 참고하라는 친절까지 베푼다. 그야말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다.



          저자는 많은 정보 및 전략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독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자녀와의 원만한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학업 성취를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며, 우리 엄마들이 아이 학업을 지원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모아서 최대한 협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의 노력과 조력자로서의 엄마의 노력 앞에는 항상 원만하고 화목한 관게 유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이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전체 과정에서 제가 얻은 결론은 '자녀와의 갈등을 최대한 줄이면서 교육을 시키자!'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이런 깨달음을 너무 늦게 얻는 바람에 4년 가까이 아이와 갈등하고 가정불화에 시달리면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너무 어리석고 미련했던 탓이지요. 이러한 저의 후회와 안타까움을 담아서,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후배 어머니들은 최대한 마음 고생을 적게 하면서 지혜롭게 자녀와의 갈등을 줄이길 바랍니다.

                                  - 본문 295 ~ 296쪽 인용 -

            저자에게 큰 가르침을 하나 얻은 것 같다. 공부도 성적도 입시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시기를 아이와 함께 지혜롭게 잘 지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학원 끝날 무렵 픽업을 가면 꼭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는 큰아이에게 군것질 많이 한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는데, 이젠 맛있는 간식도 흔쾌히 사주어야겠다. 그게 우리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는 걸 왜 나는 몰랐을까나!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신 '선배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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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 독서법 - 읽고 가려 뽑아 내 글로 정리하는 힘
김병완 지음 / 청림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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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최씨(氏)'다. 예의에 맞게 말하면 '최가(家)'다. 간혹 나의 족보에 관해 궁금한 분들은 열이면 열 "경주 최씨인가요?"라고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경주 최가(家)가 아니라 '탐진 최가(家)'라고 얘기하는데, 또 열이면 열 '탐진'이 어디냐고 질문을 한다. 탐진은 현재 '강진'을 일컫던 옛말이다. 당연히 시조는 경주 최씨의 시조인 최치원이 아니라 그의 후손인 고려 시대 문신이었던 '최사전'이라는 분이다. (어릴 때는 경주 최씨가 아닌 게 왜 그렇게 억울했나 모르겠다) 그랬기에 강진은 내가 가 본 적도 없는 먼 곳이긴 하나 tv나 책에서 '강진'이라는 지명을 보거나 듣게 되면 괜스레 아는 척 하고 싶고, 반가운 게 마치 내 고향인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곳 강진의 유명인사 중 한 분인 '정약용'에 대해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걸 보면 말이다.   



       정약용은 조선시대 학자로서 최한기와 더불어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 유명하다.


      " 우리 선조 중 책을 가장 많이 저술한 사람은 바로 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다. 이 두 사람 모두 초서 독서법을 평생 실천한, 위대한 독서 고수이자 독서 천재다. 나는 이들이 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초서 독서법을 실천함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본문 24쪽 인용 -

        내가 세종대왕, 이순신 다음으로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정약용이라 그 분이 실천했다고 하는 '초서 독서법'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 나도 독서를 즐기고 최근 독서법에 관해서도 관심이 생겨나던 때라 정약용 선생님이 실천하셨다는 이 독서법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나의 호기심이 달아올라서였을까?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갔다. 일단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내용들이기에 충분히 신뢰가 갔으며 이 독서법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정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마치 우연히 맛집을 발견하고는 그 기쁨과 맛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안타까워 열변을 다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 정도로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초서 독서법' 전도사가 되어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초서 독서법'을 간략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 초서 독서법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그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독서법이다. 독서법이라기보다 학습법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실제로 심층 이해 학습법이 포함돼 있으니 말이다.

       초서 독서법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적어 기록하는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매우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좋은 독서법인데,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과정까지 포함돼 있다. 바로 현대 교육학에서 강조하는 메타인지 학습법이다.

       결론적으로 초서 독서법은 자신의 생각과 주관의 변화에 대해 그 근원을 찾아 파헤쳐 기록하고 성찰한 후, 이 모든 과정을 통합해 새로운 견해와 지식을 창조해내는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29쪽 인용 -

        이런 뛰어난 독서법을 깨우친 정약용은 '초서 독서법'을 통해 18년 동안의 유배 기간동안 500여 권의 수준 높은 책들을 펴낼 수 있었다. 1년에 약 28권의 책을 펴냈으니 한 달에 2권 넘게 책을 출판한 셈이다. 한 달에 책을 2권 읽기도 어려운데 2권의 책을 펴낼 정도이니 정약용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이 '초서 독서법'에는 그 정도로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는 게 분명하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표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초서 독서법'이긴 하나, 그의 큰 그림은 '책을 한 권 쓰는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책을 천 권 독파해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책을 한 권 쓰는 것이며 그것이 책을 천 권 읽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독서와 책 쓰기의 중간 과정이 바로 '초서'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책 쓰기의 예비 과정'이 초서인 셈이다.


        정약용은 '독서-초서-저서'의 과정을 강조했다. 즉 초서는 저서에 이르는 중간 과정이라고 했다. 다리가 없으면 절대로 큰 강을 건널 수 없지만, 다리가 있으면 그 어떤 거대한 강도 쉽게 건널 수 있다. 초서 독서법은 독서와 저서 사이에 놓인 큰 강을 쉽게 건널 수 있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 본문 45쪽 인용 -

          저자의 말대로라면 '초서 독서법'을 따라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나만의 정리법으로 채록한다면 언젠가는 나 또한 책을 쓸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갑자기 평소 독서하면서 짬짬이 기록하는 나의 독서노트가 떠올랐다. 서둘러 독서노트를 꺼내들고서는 언젠가 '1천권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고 메모해 두었던 부분을 펼쳐보았다.


       " 에너지 소진과 열등감,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는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고 싶었다. 먼저 100권을 읽었을 때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200권을 읽자 반쯤 포기했던 대학원에 붙었고, 독서 능력을 인정 받아 장학금도 받았다. 300권을 읽자 열등감이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500권을 읽자 일상생활과 업무에 적용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의욕이 차올랐고, 800권을 읽은 뒤에는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독서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읽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리고 1천 권을 읽은 지금 작가가 되었다."

                                    - [1천권 독서법] 에서 인용 -

           1천 권의 책을 읽고 작가가 된 워킹맘 전안나 씨의 [1천권 독서법]을 읽고 그녀를 나의 롤모델로 삼고 싶어서 당시에 메모해 둔 내용인데, '초서 독서법'을 읽고나서 이 메모 부분을 다시 읽으니 사뭇 느낌이 다르다. 당시 독서노트에 기록할 때는 막연한 부러움에 끄적끄적 메모해 둔 내용인데, '초서 독서법'을 제대로 알고 나니 그런 나의 메모들이 그냥 노트 한 켠에 남겨진 메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초서 독서법'의 귀한 재료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 명심할 것은 '필사'로 끝날 게 아니라 '초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독서노트를 작성해야 할 지 알 것 같다. 특히 이 책의 뒤에 있는 실전편인 '초서 독서법 제대로 배우기' 코너를 통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이 실전편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해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독서노트에 필사해볼까 한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는 책을 가까이 하고,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내가 '눈으로만 책을 읽는 ' 헛독서를 를 했음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저자가 설명해 준 '초서 독서법'대로 다소 시간이 좀 걸려도 그 방법대로 도전해볼까 한다. 

            정약용이 그의 둘째에게 쓴 편지에 적힌 내용이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 독서는 뜻을 찾아야 한다.

            그 근원을 찾아내야만 한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초서를 통해, '나'라는 체로 걸러내어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겨진 그것이야 말로 내가 찾은 근원이리라. 이제라도 제대로 된 독서법을 깨닫게 되어 가슴이 참 벅차다. 이런 감동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 감동을 주체하기 힘들어 책으로 쏟아내고 싶어지겠지? 나도 언젠가 '저서'를 할 그 날을 상상해보며 '초서 독서법' 책을 살며시 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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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지도 19 - 기적을 보기 원하는 이들의 꿈의 목록 보물지도 시리즈 19
김도사 외 기획, 이회아 외 지음 / 위닝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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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되기 전 항상 준비하는 게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듯 새해에 쓸 말끔한 다이어리이다. 그런데 그게 참 아이러니한 게,분명히 다이어리를 준비할 때는 발품을 팔아 여기 저기를 다 다녀보고, 손품을 팔아 온갖 사이트를 다 다녀보며 고심끝에 새해에 쓸 나의 다이어리를 간택한다. 그렇게 신중하게 장만한 다이어리이건만 한 두 달 열정적으로 쓰다 보면 어느새 다이어리는 슬슬 잊혀져 가다가 연말이 다가올 무렵 깨끗한 여백으로 남겨진 여름, 가을에 써야 했을 페이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고민하며 심사숙고 한 끝에 골라놓고서는 말이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일기는 커녕 내 삶을 돌아본다던지, 나의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점점 써보기는 커녕 생각조차 않고 살아온 것 같다. 한 예로, 한 때 영어교육 쪽으로 대학원을 진학해보고 싶은 맘이 들어서 알아보다가 아이들도 어리고 이런 저런 상황이 어렵다보니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벌써 5~6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만약 그 때 내가 좀 더 강단있게 준비해서 밀어붙였다면 지금 쯤 나는 석사학위를 받을 수도 있었겠다 싶은 마음에 5~6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버린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내가 뭘 하겠어?', '에이, 그래봤자 안돼.'라는 생각으로 그냥 주저앉은 내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랬기에 이 책에 소개된 14명의 주인공들의 글을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도 되고, 때로는 같이 기뻐하고, 그들의 놀라운 추진력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남편의 도움 하나 없는 상황속에서 두 자녀를 잘 키워내신 분, 자기계발가이자 전업투자자로서 지구촌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여군 출신의 강사, 가정교육과 자녀교육에 관한 노하우를 나누는 1인 기업가,  동남아 선교를 꿈꾸며 베트남에서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노력하는 마사지사,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유명 강사 및 수학 강사 등 다양한 분들의 실제 경험담이 '간증'처럼 와닿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들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 뿐아니라 이 책을 기획한 '김도사, 권마담' 두 분은 서로 부부이며 이 분들은 '한국책쓰기1인창업코칭협회(이하 한책협)'를 운영하며 "성공해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써야 성공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국민 책 쓰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란다. 그래서 여기에 글을 싣게 된 14명의 글쓴이들은 한책협에서 진행하는 특강 참여를 계기로 책 쓰기 과정을 교육받은 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보물지도 19'인지 몹시 궁금했다. 처음에는 책에 19가지의 사례가 담긴 줄 알았다. 그러나 14명의 글이 실려 있으니 그건 아니고, 초판일이 2019년 12월이라 그렇지 않나 유추해본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보물지도 18'이 2019년 10월에 출판된 걸로 봐서 출판되는 순서로 매겨지는 번호인 듯 하다)


    

         14명의 성공담을 읽다보니 갑자기 나도 글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면서 내가 써놓은 글들을 뒤적이며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예전에 쓰던  다이어리에 언젠가 [종이 위의 기적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책을 보고 필사해 둔 내용을 발견했다.

      " 당신이 이루고 싶은 일들을 종이에 쓰는 순간, 삶은 마법으로 빠져든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모든 일들은 실은 자신이 세상을 향해 보낸 무의식적인 메시지들에 의해 일어나는 '필연'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키듯, 열망을 담은 메모 하나가 당신의 인생에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다."

                     - [종이 위의 기적 쓰면 이루어진다] 中 -

         그 때 이 책을 읽고 공책에 나의 소원, 버킷리스트, 확언 등을 빼곡히 쓰던 기억이 난다. 오래 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때 메모해 둔 이 글귀를 읽으니 다시 그 때의 감흥이 떠오르며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뭔가 써야할 것만 같아서 2020년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그것도 2권이나. 올해는 꼭 처음부터 끝까지 채워보길 바라며 [보물지도 19]의 기획자인 김 도사님이 프롤로그에 써놓은 문구를 반복하여 다시 읽어보았다.

        "이 책 <보물지도 19>의 저자들 또한 그동안 마음속에 감춰져 있던 무언가를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나 둘씩 자신의 소망이 담긴 버킷리스트를 기록하며 꿈과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

                               - 프롤로그 인용 -     

      그래서 나도 예년과 달리 2020년 버킷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작성해보았다. '성경 1독 하기', '새벽기상 하기', '독서 200권 하기', '영어원서 10권 읽기' , '1주일에 2번 요가하기' 등 야심차게 적어 보았다. 내 꿈도 꼭 이루어져서  [보물지도 19]의 15번째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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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좀 빌립시다! -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기괴하며 파란만장한 시체 이야기
칼린 베차 지음, 박은영 옮김 / 윌컴퍼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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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뇌'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듯한 분위기다. 서점에만 가보아도 [뇌.신경 구조 교과서], [우울할 땐 뇌 과학, 실천할 땐 워크북], [똑똑해지는 뇌과학 독서법] 등 뇌와 관련해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 읽었던 [똑똑해지는 뇌과학 독서법]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최근 뇌과학, 신경생리학, 인지심리학, 뇌 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신비스럽고 규명하기 어려웠던 뇌의 구조와 기능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뇌는 유연하고 가소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변하고 장기들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지만, 뇌 신경세포 간의 연결은 계속 생성되어 재구조화가 진행된다는 연구결과들은 흥미롭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다.

                     -  [똑똑해지는 뇌과학 독서법] 에서 인용 -

       1.4kg 정도의 무게로서 우리 몸무게의 약 2%를 차지하는 뇌! 단단한 머리뼈와 뇌척수액으로 보호되는 우리의 뇌는 우주의 모든 구조물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얘기한단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하다보니 우리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약 20%를 사용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뇌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많은 영역이기도 하다. 최첨단 의학과 과학 속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도 뇌는 아직 미개척 영역이 많으니, 수백 년 전의 시대에서는 뇌에 대해 얼마나 더 궁금하고 알고 싶었을까?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뇌 좀 빌립시다!'는 이 책에 실린 다양한 신체에 얽힌(좀 더 엄밀히 말하면 '시체들에 얽힌') 에피소드들 중 아인슈타인에 관한 이야기의 제목이다. 1955년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한 아인슈타인은 생전 그의 바람대로 화장되었다. 그런데 화장하기 전 그의 시신들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나눠가지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시신은 이미 추수감사절의 칠면조처럼 꽤 많이 잘려 나간 뒤였던 것이다. 다름 아니라 의사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부위를 차지했던 것인데, 따끈따끈한 갈색 안구는 적출하여 그의 안과 의사였던 헨리 애덤스에게로 보내졌다.

                                   ( 중간 생략)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 아인슈타인의 뇌는 병리학자인 토머스 하비 박사(Dr. Thomas Harvey)에게로 돌아갔다. 동료들 사이에서 '못 말리는 괴짜 녀석'으로 불렸던 하비는 부검 보고서를 완성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중간 생략)

    결국 하비는 뇌를 조각조각 자르기 시작했다. 칠면조 다리만한 크기부터 각설탕만한 크기까지 다양하게 조각내어 뚜껑을 돌려 닫을 수 있는 유리병에 담았다. 그러고는 병을 집으로 가져가 맥주 전용 아이스박스 뒤쪽에 숨겨 두었다.

                      - 본문 194~195쪽 인용 - 

        이 이야기를 보면서 도저히 상상도 알될 뿐더러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세기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천재의 두뇌에 대한 관심은 이해하나 어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신을 함부로 훼손할 수 있는건지 내가 가진 상식으로는 좀처럼 납득이 가질 않았다. 마치 조선시대의 극형 중 하나인 '부관참시'를 보는 기분이었다.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 거리에 내걸었다는 부관참시의 서양식 버전이라고나 할까?

         죽은 시신을 함부로 손을 대거나 훼손하는 것 자체를 화를 부르는 일로 여겨 조상의 묘를 이장할 때도 아주 예를 다하고 최대한 조심조심 다루는 게 우리문화인데 반해 서양의 문화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1832년까지 영국에서는 시체를 훔치는 것이 범법 행위가 아니었다. 실제로 할머니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가는 일은 중죄였지만, 할머니의 손가락을 훔치는 일은 범죄가 아니었다.

                         - 본문 37쪽 인용 -

         시체를 훼손하는 일이 범죄가 아니었다니 살면서 죽은 이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겠다 싶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는 시체를 훔쳐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 의과대학에서 필요한 해부용 시체 공급(?)이 제대로 되질 않으니 시체를 매매하는 일이 암암리에 벌여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체도굴꾼'이라는 직업도 생겨나고 이 직업은 꽤나 많은 수익을 보장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1850년까지만 해도 시체도굴이 너무 성행하여, 뉴욕의 무덤에서 사라지는 시체의 수만 해도 해마다 600~700구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한다.  

         

         베토벤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베토벤이 살던 시대에는 온간 생활물건들 속에 납이 들어있었단다. 그리고 청각장애 치료용으로 납이 함유된 알약을 사용한 것등으로 인해 그는 결국 납중독으로 사망하게 된다. 베토벤의 임종에 수많은 팬들이 몰려왔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베토벤의 머리카락 한 움큼을 원했으며 결국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잘라갔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유명인에게 사인을 받는 것보다 머리카락 한 줌을 더 원했다고 하니 이또한 참 특이하다 싶다. 그러나 그렇게 전해져 온 머리카락들 덕분에 유명인들의 사인 및 DNA, 건강상태와 성격에 관해서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검은 고양이]의 저자로 유명한 애드거 앨런 포는 비소 중독으로 고생했음을 밝혀냈고, 찰스 다윈은 2013년에 다윈의 턱수염에서 채취한 두 개의 모낭을 통해 다윈이 생전에 '크론병(염증성 장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가 유전성 심장장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외에 녹내장, 편두통, 비만을 겪었다는 것 또한 밝혀냈다.



           이 밖에도 목뼈, 다리, 귀, 심장 등등 다양한 신체의 부분들이 주인(?)의 몸에서 분리되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고, 누구의 손에 들어가고 결국 지금은 어디에서 보관되고 있는지 등에 관해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되고 있다.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기괴하며 파란만장한 시체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을 읽는 내내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어디서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기괴한 이야기들이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존 인물들 이야기,  위인들 이야기로 시종일관 독자의 관심을 꽉 붙들고 있는 이 책은 온 가족이 다같이 봐도 좋을 것 같다. 얼핏 보면 잔인하고, 혐오스러우며 자칫 역겨울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시대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 각 에피소드들을 읽으면 좀 더 이해가 되리라 싶다.

          끝으로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채워준 수많은 '시신의 주인'들에게 애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현대 의학 및 법의학, DNA 테스트, 뇌 과학, 장기 기증 및 복제에 관한 연구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으리라!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애도와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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