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 다산은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다
정약용 지음, 오세진 옮김 / 홍익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초서독서법'을 읽던 중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팬이 되어버렸다. 18년 동안의 유배기간 동안 무려 500여 권의 책을 펴낸 다산의 놀라운 학문적 성과에 한 번 놀라고, 그러한 성과의 원동력이 '초서 독서법'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며 한동안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총동원해서 다산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바빴다. 정조의 최측근이었고, 경기도 암행어사로 활동한 적도 있으며, 한때 잠시 빠졌던 서학으로 인해 천주교 신자라는 오해를 받게 되어 결국 귀양까지 가게 되었다는 등 그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역동적이었다. 그렇게 업다운이 심한 삶의 가운데서도 다산은 놓치지 않고 붙든 게 있었으니 바로 독서였다. 그것도 '초서 독서'였다.


정약용에게 초서 독서법은 이미 체질화, 생활화돼

뼛속까지 스며든 독서 습관이었다.

그는 절대 눈으로만 읽지 않았다.

손으로 쉴 새 없이 기록하면서 읽었고,

끊임없이 판단하고 사색하고 비판하면서 읽었다.

스스로에게 꾸준히 질문하고 또 질문하면서

자신의 의식과 생각을 확장시켜나가며 읽었다.

그에게 독서는 단순한 문자 해독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그것을 기록하는

창조 과정이었다.

- [초서 독서법] 中 -


          다산은 책을 효과적으로 빨리 읽는 방법이 초서라고 강조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에게 늘 강조하여 말했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보탬이 될 만한 것은 반드시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어선 안된다며 초서 독서법의 효과와 속도에 대해 강조하곤 했다

      

초서(鈔書)하는 법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미리 정한 다음

만들 책의 규모와 차례를 정하고,

그 후에 책에서 내용을 가려뽑아야만 절묘한 일관성이 있게 된다.

만약 정해진 규모와 찰케 이외의 내용이 있는데

책에 수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는

별도로 한 권을 준비해두고

해당 구절을 만날 때마다 기록해두면 효과적이다.

- 본문 46~47쪽 -


    

         이처럼 다산은 자신이 돌볼 수 없는 가족들을 걱정하며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다산의 가문이 하루 아침에 폐족(廢族)이 되어 두 아들이 과거시험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 그 아비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더욱이 가까이에서 날개 꺾인 두 아들을 챙겨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다산은 그 먼 유배지에서 인생의 선배로서 두 아들에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며 애끓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자신의 꿈이 꺾이고, 진로가 막혔으며, 더 이상의 앞날이 내다보이지 않는 다산의 아들들의 상황이 마치 요즘 시대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취준생들의 마음이 그와 같지 않을까 싶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다.

정치적 패배자로서의 억울한 심경,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적 빈곤,

그리고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본인 역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는 자식들의 앞날을 항상 걱정했다.

가문을 위기에 빠뜨린 죄책감,

자식들의 교육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그는 자식들에게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려 애를 썼다.

- 본문 7쪽 -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고자 편지를 썼으니, 다산이 쓴 편지에는 단순한 소식을 주고받는 내용을 넘어서서 두 아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언 및 격려가 가득 담겨있다. 그 많은 편지들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했던 편지가 있었으니 바로 <하피첩>에 적힌 편지였다. 다산의 아내 홍씨 부인이 유배지에서 힘들게 지내는 남편에게 '힘을 내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아 보낸 30년 전에 결혼할 때 입었던 예복 치마 다섯 폭을 다산은 70여 장으로 자르고 다듬어 작은 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종이를 붙여 빳빳하게 만든 후 붓으로 정성껏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그것이 바로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2억 원의 감정가를 받은 <하피첩>이다. 어머니가 결혼식 때 입은 의미있는 치마에 아버지가 정성껏 오리고 다듬고 만들어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내려가서 쓴 편지이니 어느 자식이 그 편지를 그냥 읽을 수 있을까 싶다. 아마 다산의 자식들은 눈물을 흘리며 읽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그 힘든 시기 또한 잘 견뎌냈을 것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한 뛰어난 학자였으며 정조의 최측근이기도 했던 정약용은 무엇보다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였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구구절절 사랑과 가르침을 담아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편지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려 애쓴 다산의 부성애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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