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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 독서법 - 읽고 가려 뽑아 내 글로 정리하는 힘
김병완 지음 / 청림출판 / 2019년 4월
평점 :
나는 '최씨(氏)'다. 예의에 맞게 말하면 '최가(家)'다. 간혹 나의 족보에 관해 궁금한 분들은 열이면 열 "경주 최씨인가요?"라고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경주 최가(家)가 아니라 '탐진 최가(家)'라고 얘기하는데, 또 열이면 열 '탐진'이 어디냐고 질문을 한다. 탐진은 현재 '강진'을 일컫던 옛말이다. 당연히 시조는 경주 최씨의 시조인 최치원이 아니라 그의 후손인 고려 시대 문신이었던 '최사전'이라는 분이다. (어릴 때는 경주 최씨가 아닌 게 왜 그렇게 억울했나 모르겠다) 그랬기에 강진은 내가 가 본 적도 없는 먼 곳이긴 하나 tv나 책에서 '강진'이라는 지명을 보거나 듣게 되면 괜스레 아는 척 하고 싶고, 반가운 게 마치 내 고향인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곳 강진의 유명인사 중 한 분인 '정약용'에 대해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걸 보면 말이다.
정약용은 조선시대 학자로서 최한기와 더불어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 유명하다.
" 우리 선조 중 책을 가장 많이 저술한 사람은 바로 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다. 이 두 사람 모두 초서 독서법을 평생 실천한, 위대한 독서 고수이자 독서 천재다. 나는 이들이 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초서 독서법을 실천함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본문 24쪽 인용 - |
내가 세종대왕, 이순신 다음으로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정약용이라 그 분이 실천했다고 하는 '초서 독서법'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 나도 독서를 즐기고 최근 독서법에 관해서도 관심이 생겨나던 때라 정약용 선생님이 실천하셨다는 이 독서법에 대해 더욱 궁금해졌다. 나의 호기심이 달아올라서였을까? 책장은 술술 잘 넘어갔다. 일단 저자가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내용들이기에 충분히 신뢰가 갔으며 이 독서법을 전하고자 하는 저자의 열정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마치 우연히 맛집을 발견하고는 그 기쁨과 맛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 안타까워 열변을 다해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 정도로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초서 독서법' 전도사가 되어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초서 독서법'을 간략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 초서 독서법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그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독서법이다. 독서법이라기보다 학습법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실제로 심층 이해 학습법이 포함돼 있으니 말이다. 초서 독서법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 모든 것을 직접 손으로 적어 기록하는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매우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좋은 독서법인데,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과정까지 포함돼 있다. 바로 현대 교육학에서 강조하는 메타인지 학습법이다. 결론적으로 초서 독서법은 자신의 생각과 주관의 변화에 대해 그 근원을 찾아 파헤쳐 기록하고 성찰한 후, 이 모든 과정을 통합해 새로운 견해와 지식을 창조해내는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29쪽 인용 - |
이런 뛰어난 독서법을 깨우친 정약용은 '초서 독서법'을 통해 18년 동안의 유배 기간동안 500여 권의 수준 높은 책들을 펴낼 수 있었다. 1년에 약 28권의 책을 펴냈으니 한 달에 2권 넘게 책을 출판한 셈이다. 한 달에 책을 2권 읽기도 어려운데 2권의 책을 펴낼 정도이니 정약용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이 '초서 독서법'에는 그 정도로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는 게 분명하다.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표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초서 독서법'이긴 하나, 그의 큰 그림은 '책을 한 권 쓰는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책을 천 권 독파해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책을 한 권 쓰는 것이며 그것이 책을 천 권 읽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독서와 책 쓰기의 중간 과정이 바로 '초서'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책 쓰기의 예비 과정'이 초서인 셈이다.
정약용은 '독서-초서-저서'의 과정을 강조했다. 즉 초서는 저서에 이르는 중간 과정이라고 했다. 다리가 없으면 절대로 큰 강을 건널 수 없지만, 다리가 있으면 그 어떤 거대한 강도 쉽게 건널 수 있다. 초서 독서법은 독서와 저서 사이에 놓인 큰 강을 쉽게 건널 수 있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 본문 45쪽 인용 - |
저자의 말대로라면 '초서 독서법'을 따라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나만의 정리법으로 채록한다면 언젠가는 나 또한 책을 쓸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갑자기 평소 독서하면서 짬짬이 기록하는 나의 독서노트가 떠올랐다. 서둘러 독서노트를 꺼내들고서는 언젠가 '1천권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고 메모해 두었던 부분을 펼쳐보았다.
" 에너지 소진과 열등감,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는 독서를 통해 삶을 바꾸고 싶었다. 먼저 100권을 읽었을 때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꼈다. 200권을 읽자 반쯤 포기했던 대학원에 붙었고, 독서 능력을 인정 받아 장학금도 받았다. 300권을 읽자 열등감이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500권을 읽자 일상생활과 업무에 적용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의욕이 차올랐고, 800권을 읽은 뒤에는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독서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읽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리고 1천 권을 읽은 지금 작가가 되었다." - [1천권 독서법] 에서 인용 - |
1천 권의 책을 읽고 작가가 된 워킹맘 전안나 씨의 [1천권 독서법]을 읽고 그녀를 나의 롤모델로 삼고 싶어서 당시에 메모해 둔 내용인데, '초서 독서법'을 읽고나서 이 메모 부분을 다시 읽으니 사뭇 느낌이 다르다. 당시 독서노트에 기록할 때는 막연한 부러움에 끄적끄적 메모해 둔 내용인데, '초서 독서법'을 제대로 알고 나니 그런 나의 메모들이 그냥 노트 한 켠에 남겨진 메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초서 독서법'의 귀한 재료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 명심할 것은 '필사'로 끝날 게 아니라 '초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독서노트를 작성해야 할 지 알 것 같다. 특히 이 책의 뒤에 있는 실전편인 '초서 독서법 제대로 배우기' 코너를 통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이 실전편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해보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독서노트에 필사해볼까 한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는 책을 가까이 하고,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내가 '눈으로만 책을 읽는 ' 헛독서를 를 했음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저자가 설명해 준 '초서 독서법'대로 다소 시간이 좀 걸려도 그 방법대로 도전해볼까 한다.
정약용이 그의 둘째에게 쓴 편지에 적힌 내용이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 독서는 뜻을 찾아야 한다.
그 근원을 찾아내야만 한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초서를 통해, '나'라는 체로 걸러내어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겨진 그것이야 말로 내가 찾은 근원이리라. 이제라도 제대로 된 독서법을 깨닫게 되어 가슴이 참 벅차다. 이런 감동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 감동을 주체하기 힘들어 책으로 쏟아내고 싶어지겠지? 나도 언젠가 '저서'를 할 그 날을 상상해보며 '초서 독서법' 책을 살며시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