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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쇼크 - 인류 재앙의 실체, 알아야 살아남는다, 최신증보판
최강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3월
평점 :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후 곧바로 코로나 19 확진자 현황부터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밤사이 확진자가 몇 명이나 늘었는지, 사망자가 더 발생하진 않았는지 걱정스런 마음에 나처럼 현황부터 찾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만큼 전국민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하루 빨리 코로나 19가 잠잠해져서 '심각'단계가 해제됨일 것이리라.
메르스 때도 그랬지만, '우한 폐렴'이라는 글자를 처음 접한 경로는 TV 뉴스였다. 1월 20일 낮에 우연히 뉴스에서 본 '우한 폐렴'이라는 글자를 보고 '폐렴 이름이 특이하네?'라고만 생각하고 듣지도 않고 지나쳤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감염병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자주 들려오는 특정 단어가 있었으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한 때 '신종 플루'가 유행하던 시기 익히 들었던 '신종'이라는 단어가 붙는 걸로 봐서 어감이 좋진 못했다. 뭔가 새로 돌연변이 된 바이러스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가져보며, 도대체 이 바이러스는 어디서 왔는지, 치사율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던 찰나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바이러스 쇼크'를 읽게 되었다.
책 표지부터 강렬했다.

'VIRUS SHOCK'라고 큰 알파벳들로 적혀있는 제목에서부터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박쥐 그림을 배경으로 적혀있는 '바이러스 쇼크'! 언젠가 언론을 통해 '사스'가 박쥐와 연관이 있다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박쥐와 연관이 있음이 다분할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해주었다.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이 책의 저자인 최강석 연구원은 동물전염병 국제전문가이자 수의바이러스 학자이다. 현재 농림축산검역 본부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며 특히 동물과 사람의 전염병 관련 100여 편의 연구논문과 특허를 발표하는 등 지금도 전염병 연구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직접 발로 뛰며 연구한 경험들이 많아서인지 저자가 쏟아내는 바이러스 지식은 그야말로 폭포수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침없이 쏟아져나온다. 그것도 나 같은 초보자가 읽어도 전혀 어려움이 없을만큼 쉬운 용어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 역시 저자는 알기 쉽게 시나리오 전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단 박쥐가 범인이 분명하다고 전제하고 설명해 보자. 우리는 그럴듯한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이 돈벌이를 위해서 야생 동굴에 서식하는 박쥐들을 마구 포획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진 박쥐가 운이 없게도 사람들의 손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 박쥐 바이러스는 박쥐를 잡아서 재래시장 한 편에 가두고 있는 동안 다른 포유동물과 접촉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을 것이고, 또는 박쥐 고기를 팔기 위해 도축하는 과정에서 시장 상인이나 구매자 등과 긴밀하게 접촉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박쥐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넘어올 수 있는 티켓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이 맞다면, 그것은 인간 스스로 강제적인 푸시&풀 조건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야생박쥐를 포획하지 않았다면, 신종 바이러스 출현 사태 자체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야생박쥐가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마구 뿌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 - 본문 80~81쪽 - |
이렇듯 박쥐를 '주범'으로 의심하는 이유는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03년 사스 바이러스 출현 이후 박쥐는 전 세계 바이러스 학자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사스 바이러스가 '중국관박쥐'로부터 기원했다는 설이 대다수의 견해였기 때문이다. 박쥐는 오래 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이외에도 다양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바이러스가 '광견병 바이러스'라고 한다. 전 세계 수많은 박쥐들이 '광견병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박쥐는 바이러스가 몸에 있는데도 멀쩡히 살아남는지 궁금했다. 면역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가? 감기에 걸려도 면역이 강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면역이 약한 사람들은 독감 앓듯 심하게 앓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의 궁금증을 저자는 역시 쉽게 설명해준다.
" 박쥐가 바이러스에 죽지 않고 공생하면서 전파매개체가 된 것은 박쥐의 독특한 면역체계 때문이다. 박쥐의 체온은 다른 포유류보다 2~3도 정도 높다. 고온에선 바이러스 활동성이 떨어지고 백혈구 등은 활성화된다. 또한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는 바이러스가 체내로 침투하면 안티페론이라는 항바이러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박쥐는 이 인터페론이 항상 활성화돼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 본문 7쪽 - |
즉, 박쥐와 바이러스가 서로 공생하며 사는 공생관계인 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동물 중에서 설치류 동물 다음으로 박쥐류의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하다고 한다. 쉽게 말해 박쥐의 종류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쥐가 바이러스에게 간택된(?) 이유인 것이다. 생물학적 다양성이 풍부한만큼 그 종을 숙주로 삼아 수많은 바이러스 종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에 한 번 꼴로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박쥐'가 왜 자주 거론되나 했더니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늘 궁금해하던 이유였는데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저자는 바이러스 학자인만큼 바이러스에 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설명한다. 그의 설명 덕분에 '바이러스는 나쁜 놈'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
" 그렇다고 사람 바이러스들이 모두 나쁜 바이러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감염되더라도 병을 일으키지 않는 바이러스들도 많다. 그뿐 아니라 적당히 몸속에 들어와서 면역체게를 자극시켜 우리 몸에 항체 같은 면역물질을 만들어내는 착한 바이러스도 많다. 그래서 같은 종류이지만, 착한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치명적인 나쁜 바이러스가 침투할 때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즉 면역을 우리 몸에 부여한다. 백신으로 사용하는 바이러스들이 착한 바이러스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 본문 94쪽 - |
우리가 예방주사를 맞는 그 백신이 바로 착한 바이러스였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렇게 세 종류로 분류되려나? 아무튼 요즘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상한 놈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보니 '이상한 놈'이 되어버린 바이러스가 생겨나게 된 데는 인간의 잘못이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팜유농장을 개간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정글에 산불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터전을 잃은 정글 속 과일박쥐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몰려들어 니파 바이러스를 돼지에게 옮기고, 그 돼지는 사람에게 옮기게 되었다. 또 목재를 얻기 위한 벌목, 광산 개척 등을 위해 밀림을 훼손하고 그 밀림에서 고기를 먹기 위해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신종 바이러스들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애초부터 바이러스는 인간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그야말로 남이었다고 한다.
" 실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99.9% 이상은 우리 인간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서식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들은 사람이 아닌 다른 숙주에 서식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 바이러스들이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 본문 93쪽 - |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가 정설이건만 현실을 그러지 못했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가 그렇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원래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과일박쥐와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간단다. 그런데 먹이를 얻기 위해 과일박쥐의 영역을 뺏는 침팬지와 벌목, 사냥, 관상 채굴 등을 일삼는 인간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과일박쥐가 보균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노출되게 되는 것이다. 즉, 그냥 자연을 그대로 두었다면 아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자연을 훼손한 죄, 인간의 욕심을 채우려고 한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 우리와 상관 없던 그 바이러스들이 그렇게 인간에게까지 넘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임을 저자는 경고하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두 자리 수의 확진자에서 소강상태로 접어들겠다고 생각했건만 어느 종교단체의 집회활동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어가는 모습을 보며 너무 무서웠다. 아이들의 학교도 개학을 연기하고, 여기 저기 가게들이 확진자의 동선에 노출되어 폐쇄하며, 한산해진 거리와 그나마 오가는 사람들마다 다들 마스크를 꼬옥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바이러스와의 전쟁'임을 느꼈다. 예전에 본 영화 '감기', '컨베이젼'이 떠오르기도 했다.
왜 초기에 중국인들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는냐, 정부의 위기 인식 대응이 빠르지 못했다 등등으로 정치계는 연일 시끄럽다. 마치 아이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엄마, 아빠가 서로 상대방 탓이라고 아픈 아이는 뒷전인채 감정싸움만 하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 마음이 답답했다. 저자는 이런 바이러스 쇼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새로운 바이러스 불꽃이 튀어서 들불처럼 활활 타오를지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쇼크는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만큼 강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준다. 그러나 바이러스 쇼크가 주는 충격은 순간적으로 강하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언젠가는 결국 잔불이 되어 소멸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류가 당하고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충격의 후유증은 오래갈 수도, 곧바로 진정될 수도 있다. (중간생략) 신종플루 사태에서 경험했듯, 바이러스는 우리 인간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 자신의 속성대로 숙주 사이에서 순환하고 유행한다. 그래서 효율적인 보건 개입과 더불어, 우리는 공중보건에 대한 사회적 노력을 통해 바이러스 유행 배경이 되는 사회 환경 위험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간생략) 앞으로 공중보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전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잠재적 생활 여건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 본문 350~351쪽 - |
저자의 조언대로 생활 여건들의 개선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위생 안전수칙일 것이다. 본인이 호흡기 관련으로 이상이 느껴질 때는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 가지 말아야 할 것이고, 부득이 가야한다면 마스크 착용은 이제 기본이고 매너이다. 그 밖에 공공장소에서의 기침예절, 손 씻기 등은 당연히 필수수칙이리라.
저자는 우리에게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을 평소에 쌓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나의 신상이 당장 위협받을 수 있는 바이러스에 관한 지식습득은 이제 필수라고 힘주어 얘기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생명보험'이길 바란다며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며 긴긴 바이러스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바이러스에 대해 확실하게 개념정리를 해 준 '바이러스 쇼크'~! 지금 현재 누구보다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여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