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 나의 생존과 용서, 배움에 관한 기록
리즈 머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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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에 코로나19의 시대, 요즘처럼 변화가 필요한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변화가 절실한 시간에는 현재 조명의 시작을 과거에서부터 하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접근일 것이다. 잘게 쪼개진 과거의 기쁘고 그러지 못했던 기억들은 현실의 욕망을 적신다. 오늘과 내일, 현실과 이상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과거를 밟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유독 심각한 이에게는 다시는 영원히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은 공간으로 인도한다. 특히 살갗을 에는 한겨울에 만나는 북서풍 같은 내용 속에 소중한 존재의 기억을 부추기는 이야기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차가움 속의 기억은 배 속이 위산으로 불이 붙은 듯 뜨거워지게 하고 온몸이 떨리게 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한 인간의 과거를 통째로 마주하는 것은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마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록 그가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삶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받아들이는 이는 모든 것을 떠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치 않다. 오로지 이것을 어떻게 세상에 토해낼 것인지의 문제만이 남는다. 상상하고 아는 것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은 천지(天地) 차이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적 에세이는 대안적인 방법으로 개척하려는 야생의 한 젊은이를 통해 삶의 변화에 대한 우리 정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다. 설렐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울 것 같기도 하는 내용은 제목이나 표지에서 얼추 유추할 수 있다. 2년간 노숙 생활 바닥에서 지금은 한 기업의 CEO 되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기까지 인간 승리는 안정된 장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뉴욕 빈민가 유니버시티 애비뉴의 무능력하기 짝이 없으면서 마약 중독으로 시궁창 냄새를 풍기를 환경에서 탈출한 19809월생의 한 소녀가 자신 꿈을 만들어가는 인생 이야기를 담은 현재 진행형이다. 소설로 치면, ‘발단 전개의 과정만 보여 주었다. ‘위기 절정 결말부분은 아직 쓰이지 않은 부분이다. 다만 하버드라는 사회적 이미지가 보여 주는 것에서, 아주 복잡하게 꼬인 부분은 어느 정도 풀린 실타래는 꼬여도 이 정도로 꼬인 부분은 없을 거라 할 수 있기에 해피엔딩(happy ending)의 탄탄대로 꽃길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만들어가는 평생의 이야기 전반부에 보여주는 이야기는 태생적, 구축된 가족이 중심에 있다. 인생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모른다(213페이지)13살 소녀의 생각은 암시가 되고, 나이는 결코 중요 한 것이 아니다. 변화의 최대의 장애물은 오직 자기 자신이다.

 

인생은 한 가지 상황으로만 결정되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내 삶은 어떤 일이 닥치건 발을 앞으로 내디뎌 전진하려는 나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리라.----489페이지

    

엄마는 언제나 네 삶 속에 있을 거야(163페이지). 아무리 현재의 삶이 게차반이라고 하더라도 과거의 뿌리는 망각하고서는 현재를 한 걸음도 진척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은 천륜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모녀지간의 애뜻함은 더 각별한 것 같다. 엄마의 인생을 발목잡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이 더 많았다. 뽕쟁이 엄마와 아빠는 밤마다 코카인을 찾으러 조직폭력배의 구역 그랜드 에비뉴 183번로를 헤맸다. 그러다가 강도를 만나고, 누군가에 맞아서 눈이 까맣게 멍들거나 입술이 찢어진 채로 돌아오곤 했다. 마약상들은 어린 딸의 겨울 코트 같은 온갖 물건을 가지고 와서 마약을 달라고 졸라대는 엄마에게 여자 악마라는 의미로 디아블라라는 별명까지 붙이고, 마약을 사러 오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초등 1년생 딸의 생일 선물 5달러를 몰래 가져가서 마약을 샀다. 그러다가 결국 엄마는 에이즈에 걸렸다. 그런 엄가에게 엄마라는 말은 전혀 쓸모없는 말이었다. 13이라는 나이는 감당하기에 너무 적었다. 그래도 사랑이라는 마음은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함께 하려고 했다. 그때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 말하지 못한 기회의 무게는 두고두고 영원히 마음의 빚으로 남는다.

 

인생은 무엇을 시도하느냐, 시도하지 않느냐의 문제야(403페이지). 상황이 아무리 좋거나 나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는 현상유지다. 변화를 원한다면 뭔가를 해야 한다. 상황이 절망스러울 때는 더욱 그렇다. 집에서는 하수구 냄새가 났다. 무단결석이 잦았다. 강제로 집을 떠나 아동복지국이 운영하는 집으로 보내지기까지 했다. 양육권이 인도되어 남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선택은 떠돌이 생활을 시작이었지만 집이 아닌 곳은 모두가 지옥이었다. 최악과 최선의 삶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자기 나름의 기준은 있다. 두 살 터울의 언니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생각에 젊음의 객기는 있었으나 시간이 자기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방법이 현명한 것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길게 돌고 돌아서 가는 길이기에 처음에는 박수를 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현재 이 공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현재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엄마의 NA 동전과 10대 때 흑백 사진과 자신의 일기장만으로 충분한 짐을 꾸릴 수가 있을 것이다. 친구 부모님 몰래 그들 집을 전전하며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경지에서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본질을 흔들어서 인생의 벽, 세상의 벽을 넘는다. 벽을 넘게 하는 한 가운데에는 육체적, 심리적 유혹의 순간에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선택할 이유가 있었다. 선택에는 의지보다는 동기부여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 시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 올 것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여태 그런 적이 있었다고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이 최악으로 변할 수 있다면, 최선으로 변할 수도 있어(353페이지). 10대 후반의 어린 소녀의 삶은 그들에게서 내가 그동안 알지 못한 어떤 기회가 있을지 궁금했다. 겨우 아홉 살 인생이 주유소에서 하루 동안의 일로 알게 된 인생에 대한 자기반성과 치열한 미래에 대한 꿈은 이미 어른에 가까웠다. 열다섯에 시작된 노숙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역시나 먹는 것이다. 굶주림은 어렸을 때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찾아오던 손님이었지만 여전히 반갑지 않았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그런 공간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함께 할 수 있는 서맨사와 카를로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설득과 울음, 감언이설에 능통하다면 낯선 사람들을 구슬리는 것도 힘이 되어 주었다. 노숙으로 구걸하는 삶은 한심하게 보일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흥미 있는 모험이며, 또 한편으로는 장애물이 많은 마라톤 경주에 뉴욕타임즈 장학금을 받거나 대학 입학에 있어서 자산이 되었다는 것에서는 허투루 경험은 아니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단 넉 자로 말하기에는 쉽지 않은 굴곡이 있다. 삶은 늘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하는 것 같다. 이미 누군가가 걸었던 길처럼 비슷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길이 연출된다. 누구도 직접 가서 해 보기 전까지는 무엇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한순간 모든 것이 이치에 닿다가도 다음 순간 상황이 바뀐다(383페이지). 절망은 알고도 아무도 피하지 못하게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하지만 희망도 이에 만만치 않게 불규칙한 궤적으로 한꺼번에 찾아온다. 마치 운은 그네를 타고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제 운이 다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는 삶의 법칙은 걱정되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는 아주 다양한 상황들이 꼬이고 물리면서 만들어진다. 내게 필요한 것들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변수들이 많아졌다. 이 복잡한 인생의 실타래는 배움에서 풀림의 실마리를 주고 있었다.

 

슬픔에 저항하거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 슬픔을 감추는 대신 스스로에게 슬픔을 경험하도록 허용하자(487페이지). 슬픈 경험은 현재나 미래 기억에서도 전혀 유쾌하지 않다. 인생의 참여자이자 간접적인 목격자는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녀의 기억을 따라가면서 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논픽션이기는 하지만 허구로도 꾸며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 속의 삶은 우리 자신이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노숙이라는 방황은 아슬아슬하다 못해 모든 게 all or nothing의 도박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통념상 허물기 힘들 것 같은 벽을 허물었다는 것은 제3자에게도 유쾌한 간접 경험이 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그 기억들에 의해 제약되지 않게 새로운 기억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영웅담은 아니어도 좋은 기억이 될 수 있는 인생의 한 수는 분명히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기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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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10권 플랫폼 독서법 - 원하는 지식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
김병완 지음 / 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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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만 익히면 백 권의 책을 열흘에 해치울 수 있다. 읽기로 하는 공부, 독서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초서를 통해 그 요령을 익힐 수 있다. 덮어 놓고 읽지 말고 가려서 읽어라.

----------------(정약용. <두 아들에게 답함 答二兒> ; 재인용. 63페이지)

 

다산은 두 아들, 학유, 학연에게 초서(抄書)’를 통한 독서법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 10일 만에 1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초서독서법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써보며 그에 대한 새로운 생각도 창조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읽은 것을 의식 확장의 공간으로 인도하여 자기 고유의 것으로 만드는 메타인지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 사람들이 행하지 않는 방법인데, 독서가 극히 일부 계층에서만 향유되던 200년 전에 비법이 있다고 하니, 역시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비법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정보량이 그 시대보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초서를 능가하는 독서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 사회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정보의 쓰나미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미미한 존재들이 독서를 통한 생존방법을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한다. 대부분은 단순히 유희나 지식을 쌓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독서의 효과가 지식 쌓기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방법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 내용으로 눈 앞에 채워져 있다. 자신의 10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자칭 <플랫폼 독서법>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거기에는 플렛폼 독서법의 바탕이 되는 퀸텀 독서법, 초서 독서법, 편집공학 독서법, 신토피컬 독서법, 에디톨로지 독서법, 커넥토 리딩이 아주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독서의 진정한 가치를 찾게 한다.

 

인생은 독서를 얼마나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인생은 독서를 얼마나 제대로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101페이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혁명적인 독서법이 필요하다(179페이지). 독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지식 폭발의 인공지능 시대에 맞춰서 독서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접근하여 수준 높은 독서를 하자는 것이다. 독서는 글자를 해독하거나 이해만 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생각하기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저 읽고 이해하며 지식을 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다시 발산하는 것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부록에 퀸텀 독서법과 초서 독서법의 예시를 보여 주면서, 뜬구름처럼만 보일 수도 있는 것에 눈을 붙여 놨다.

 

독서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틀을 깨는 독서를 하자.------(166페이지)

 

한 권을 순차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독서 기술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165페이지). 그것은 저자의 프레임을 쫒아가는 것에 급급해 하는 것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창조적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시간 낭비라고 한다. 예전부터 어렴풋하게 들었던 벙법이고, 시간이 촉박한 언어영역 시험 문제 풀이 방법론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1차 산업혁명시대의 전통적인 독서법에 매여 있는 독서 하수들에게는 아주 황당하며, 1층에서 123층의 롯데타워를 보는 것처럼 아찔하게 들린다. 독서 고수들이 들려주는 혁명적 방법론은 전망대에서 고공행진을 한다.

 

연결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 나만의 플랫폼을 만들어라.-----(232페이지)

 

동시에 10여 권의 책을 읽는다. 꼭 필요한 부분, 가장 중요한 부분, 특히 주제와 관련된 부분만을 읽고 추출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플랫폼을 구축한다. 제대로만 된다면 10권만 읽어도 책 한 권을 무리 없이 써 낼 수 있다. 방법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라는 난세스처럼 이론적으로는 아주 명쾌해 보인다. 하지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7단계로 섬세하게 꾸려진 플랫폼 기법도 그렇게 쉬울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용기가 된다. 또한 책의 홍수 속에 살면서, 변화라는 시대의 숙명에 순응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디테일하게 따라 간다.

 

100개의 지식보다 1개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조하라.------(185페이지)

 

플랫폼 리딩은 정보를 연결하고 융합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창조하는 크리에이티브 독서이다. 독서를 통해서 얻은 것을 또 다른 새로운 것의 밑천으로 삼아서 제2, 3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 토머스 에디슨, 워런 버핏,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테슬러의 일론 머스크, 다산 정약용, 에릭 호퍼가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플랫폼 리더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플랫폼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들의 선택은 역사를 바꿀 수 있게 하였다.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연결을 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생각의 연결에 부응하는 것은 독서에 있어서도, 그런 독서가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일만 열심히 하면 잘 사는 시대는 갔다.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만들어 내는 사람이 훨씬 잘 살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가 되었다. 그 공간에는 창조라는 것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고자 하는 존재들에게 새로운 혁명의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앉아서 코로나19가 물러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주 순진한 생각이고, 무대책의 존재밖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에 방점을 찍게 한다. 코로나가 사라져도 1년 전 오늘 같은 생활 패러다임은 오지 않으니, 아주 기초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독서 생활부터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에 도화선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비법이라는 것은 알고만 있다고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행한다고 해서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당장이라도 실천해 봐야 한다는 당위명제를 던진다. 인간은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한다(23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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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E 9 체인지 나인 - 포노 사피엔스 코드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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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의 공간에 코로나19는 더 바른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많은 사람이 고통의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 그 중에 BTS도 속하는 것 같다. 요즘 그들의 노래, <Dynamite>가 뜨겁다. BTS의 노래를 날마다 듣는 이들도 달구고 있다. 몇 년 전에 우연히 듣게 된 , , 눈물에서 꽂히기 시작했다. 7인의 20대 초반의 Z세대들이 보여주는 가락에는 자신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 꿈과 희망을 갖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온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려는 그들의 노래에는 나 자신의 변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그들의 소속사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그 소속사가 곧 코스닥에 상장된다는 소식은 주식시장의 찌라시에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노래를 넘어서 4차산업혁명의 공간에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의 관점, 투자자의 관점으로 변화를 보게도 한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로 갖게 된 슬기로운 인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329페이지). 공학자가 경영학, 인문학의 관점에서 시대의 흐름을 보며,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속에는 메타인지, 이메지네이션, 휴머니티, 다양성,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실력, 팬덤, 진정성. 변화의 시대에 필요한 9가지 키워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들 9가지는 평면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입체적 플롯을 구성하며 팬덤에서 절정을 이루고, 마지막의 진정성은 이미 싸인 팬덤이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간주곡으로 그에 따른 따끈따끈한 화젯거리(아기 상어, 배달의 민족, 무신사, 네이버 웹툰, 당근 마켓, 지평 생막걸리, BTSARMY 그리고 빅히트, 스타일난다, JYP)의 행동 양식, 시대 대응법을 통한 변화의 단상을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변화 방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을 팬덤이라는 사업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서, 완전하게 혁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생각의 표준을 포노사피엔스 문명 기준으로 바꾸어라(327페이지). 코로나 이후, 아니 4차 산업혁명, 지금 이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을 사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내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내일에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 어떤 방향으로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돼 버린 공간에서 시작되는 9가지의 코드를 만나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의 기분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학습의 방식도 대상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새로운 인류의 본질에 대해 탐색하고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해야 합니다.

-------------------------(10페이지)

 

상상력의 그라운드, 메타인지(89페이지). 자신의 내적 역량을 키우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포르노 사피엔스 시대에는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된다. 누구에게나 세계로의 연결이 열리게 되었다. 검색만 할 수 있으면, 나 홀로 스스로 얼마든지 다르게 배우며, 학습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치지 않는 열정과 노력과 그릿(Grit)으로 학습의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거기에서 오는 차이로 문제해결의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메타인지가 달라지게 된다. 이는 곧 표현의 방식이 달라지고 일상의 문제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럼 가장 기본적인 교육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다양한 기준으로 시스템에 접근해야 한다. 모든 것을 공정성에 함몰시키는 것은 진화에 거스르는 구태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목표 유도 장치인 상상력입니다(113페이지). 그 상상력은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서 폭이 결정된다. 상상력은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고, 새로운 경험을 지식과 접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색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 증폭된 상상력은 창의적 문제 해결능력을 뛰어나게 할 수 있다. 이는 나 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 인류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디지털 기술이 아닙니다.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움직이는 소비행동의 변화와 새로운 질서입니다.---(297페이지)

 

혁명은 권력 이동의 또 다른 표현이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는 소비자가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지상파는 가고 유튜브가 왔다. 이 공간에서는 당연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실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컬러 콘텐츠가 핵심이다. 그 실력은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 실력을 키우려는 진정성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은 주어지고 있다. 시대 생존의 기준을 바꾸고 항상 배울 자세를 임하는 ubiqucation(새로 만듦 ; ubiquitous + education)로 매력적인 스토리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만든 결과물은 제3자에게 또다른 놀라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그들에게서 상식과 논리를 뛰어 넘어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열정(286페이지), 팬덤을 지속시킬 수 있다. 이는 다시 피드백이 되어 생존 연장의 길을 연장시켜 준다.

 

나의 마음이 나의 미래를 마들어 갑니다.-----(324페이지)

 

자기 존중감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다(139페이지). 포르노 사피엔스 시대의 디지털 플랫폼은 비대면을 수단으로 한다. 혈연, 학연, 지연, 자본 등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상의 어느 누구와 소통할 수 있다. 심지어 그가 바다 건너에 사는 존재일지라도, 생면부지로 소통하며 다양하게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것도 수 만 명은 기본으로 할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는 내가 나임을 다른 사람에게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더욱 관심과 배려 등의 휴머니티를 품은 공감능력만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자아는 확장되고, 두텁고 다양한 팬덤을 형성하고 협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인류 보편의 감성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늘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자신의 포커스를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에프터 코로나는 위기의 상황은 앞면에 위기뒷면에 기회라고 쓰는 동전과 같습니다(36페이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한다는 것은 그리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의 전환이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있어 왔던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이미 역사적 과정으로 학습하였다. 다만 그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것도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미 역사적으로 예정된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기는 단순한 함정일지도 모른다. 그 함정은 이미 예정된 것이기에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위기가 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꼭 가야 합니다. 그릿으로 무장하고 온라인으로 학습하며 예정된 미래를 향해”(208페이지)라는 말이 버겁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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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이현욱 옮김 /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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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가치관이나 관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책은 꾸준히 읽는다. 그만의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한 순수소설보다는 참여소설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근본적으로 현실의 문제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분이라고 생각에서 연유한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의 작품, 특히 소설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상력을 볼 수 있다는 것에서도 끌림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매력을 드러내는 작품의 세계를 하나의 학위논문처럼 철저한 분석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매우 학구적이고 아카데믹하다, 분석적이라는 것은 당연해햐 하는 형식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를 시작으로 작가로써의 하루키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서, 수십년 동안 그의 책에서 희로애락을 찾았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 단편소설 36, 에세이 23, 기행문 8, 기타 26권의 책을 참고로 하고 있다. 각주만 달고 있었다면, 한편의 석사 학위 논문 수준이 될 정도로 하루키의 작품에 드러난 그만의 독특한 점을 33개의 명제와 14개의 힘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루키의 책을 꾸준히 읽은 독자들이라면 아주 공감을 할 수 있는 명제와 힘이기도 하다. 그저 나열되어만 있는 47개의 특징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그 무언가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여기의 근원에는 상상과 리얼리티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아주 독특한 상상력으로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에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를 만들어 낸다. 조망을 통해서 삶의 혜안을 소소하게라도 챙길 수 있는 여유도 빼놓지 않게 한다.

 

소설가는 문장으로 세계를 규명하는 직업이다. 이런 소설가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하루키는 말하지 않고 소설 속 문장으로 표현한다.----(199페이지)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붙인다. 하루키도 여타의 작가들처럼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등 여러 형식의 글을 쓴다. 그 책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그런다.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호기심과 상상력이 어디를 딛고 서 있어야 할지를 모르게 할 정도이다.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 등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들의 조합이다. 심지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조합은 때로는 조악스러워서 부담스럽게 익힐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야말로 상상력에서 우러나오는 호기심을 재목부터 발동을 걸리게 한다는 측면을 더 강하게 부정할 수 없다. 제목에 달려진 수수께끼를 찾아서, 수수께끼 같은 책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몇 번이고 같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73페이지). 그의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그의 상상력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있다. 특히 <1Q84>에서 그런다. 하지만 그의 다른 에세이를 읽으면, 빠진 연결고리를 찾게 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재나 모티브를 이미 전작에서 다루었다. 여기에서 그가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많이 쓰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소설과 수필은 하나의 궤를 갖고, 하나의 문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단골로 등장하는 두 개의 세계도 결국에는 이어지듯이 물리학의 카오스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것을 확인하고 있다는 작가만의 표현으로 보인다. 아주 독특한 상상력은 한 번의 상상으로 끝나고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조감도를 갖고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진화하고 성장하는 작가인 것 같다.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에서도 숫자들이 등장한다. 연도, 나이, 심지어는 제목에도 구체적 숫자를 달아 준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숫자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가령 ‘4’는 죽음, 특히 ‘12’1, 하루, 예수의 제자, 십이지신 등 전통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숫자의 이런 의미를 십분활용한다. 너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 가고 있는 세상을 마치 수술대의 의사처럼 현실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잘게 잘게 쪼개서 자기만의 입맛으로 보려는 것 같다. 그러면 혼란스럽게 보이는 현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라는 통합으로 나가려는 첫발을 현미경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구체적 숫자를 쓰는 것은 상상의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가장 적절한 기법이다(129페이지).

 

일상의 작은 일과 시간에 의식을 집중하는 생활을 묘사해 본다(61페이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그에게 다림질, 청소, 요리, 세탁 등 일상은 작품세계를 리얼리티하게 하고, 상상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서 빼박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작품에 녹아냄으로써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세계, 그런 세계의 치유는 자기 치유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그의 작품에서 압권이다. 이는 작중 인물과의 관계에서,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읽는 이를 편하게 하면서, 현실에서 같은 방양을 바로 볼 수 있는 현실의 매개체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 눈으로만 상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는데 지루함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지루한 일상은 상상을 급격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과의 대비를 더 강렬하게 만들어 준다(62페이지).

 

내가 대표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대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 오직 나의 신념뿐이다.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품격이다. 소설가는 예술인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한다.----------(59패이지)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해결에까지 상상력을 부여한다. 그의 문장의 백미는 시대정신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다(114페이지). 그가 즐겨하는 안톤 체호프는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과연 작가는 그래야만 하는가? 그는 체호프의 말에 동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일상을 통한 비현실을 보여 주는 날카로운 스토리를 무기 삼아 현재 우리의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세계로의 전진을 제시하려고 한다. 개인의 특수성분만 아니라 인류 보편성의 문제까지 아우르며, 현실, 더 정확히는 진실과 상상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글 세상은 그가 왜 일본을 넘어서 한국과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읽히는 힘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자신의 독한 개성을 독특하게 버무려내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148페이지). 하루키를 처음 접했던 것은 지금은 판권이 바뀌면서 지금은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상실의 시대>였다. 선배들의 추천으로 읽게 된 것이지만, 어찌 그리 현실을 적절히 배합하여 아웃사이더의 감정을 잘 파고들었는지 감탄을 하게 한다. 그 이후로 그가 보여준 매력에 그의 책을 찾아가며 읽게 되었다. 그의 매력을 저자는 리믹스력과 망상력을 처음과 그 다음의 하루키 문체의 힘으로 꼽고 있지만, 그 보다는 리얼리티를 비틀어서 상상력의 공간으로 인도하려는 그만의 노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 마술을 완전히, 100%’ 즐길 수 있는 힘이 되게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의 마술에서 두 바퀴를 꾸준히 중독(?)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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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셰익스피어를 말하다 셰익스피어 에세이 3부작
안경환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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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벌거숭이 시절에 다빈치나 뉴턴처럼 하나의 전문영역을 뛰어넘어서 여러 분야에서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실력을 보여주는 존재들이 엄청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롤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법학자가 법의 눈으로 본 문학으로 세상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 포착되어 그의 덕후가 되었다. 그러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더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관심에는 영어 문화권의 자부심인 셰익스피어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 땅에 현해탄 건너 섬나라의 침입으로 혼돈의 도가니가 정리되고 있을 즈음에, 저 바다 건너 이억만 리 또 다른 섬나라에는 아주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극작가이었다. 그는 희극과 비극, 소네트와 시, 장르를 불문하고 아주 다양한 주제를 이전의 중세와는 다르게 고급스러운 언어로 담아냈다. 알려진 그의 배경, 배움이 짧았던 시골뜨기 청년으로는 쉽지 않은 것들이기에, 진짜 셰익스피어는 따로 있다?(21페이지)는 논쟁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심지어 400년이 지나서 그의 작품으로 판명되는 것이 있을 정도로 그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정되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외적 환경에 대한 논란은 그의 작품 내용에 대한 해석은 획일적으로 다가가기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유동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그의 작품들을 21세기 대중의 색안경으로 본다.

 

 

모든 고전은 끝없는 현재화 작업을 가미하지 않으면 수명을 연장할 수 없다(412페이지). 먼저 내용을 정리하고 나서 핵심 테마를 분석한다. 그리고 법학자는 객관과 주관을 넘나들면서, 그 만의 눈으로 수 백년 전의 고전(classic)대중의 관점에서 현재화를 한다. 그것도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정도로 영미 문화의 자부심을 지닌 공간에서 검은 머리 이국인에게는 어떤 정신적 영감을 줄 것인지를 간접적 체험을 통해서 재창조 공간이 만들어진다. 맥베스, 말괄량이 길들이기, 페리클래스, 사랑의 헛수고, 심벨린, 두 귀족 친척, 소네트,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겁탈, 그리고 존왕, 에드워드 3, 헨리 4, 헨리 6, 헨리 8세와 총강을 통해서 만난다. 고전은 원작의 언어로 읽기는 어렵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오로지 문리적으로만 본다면,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형식은 단순히 희곡이지만, 단순한 그것을 넘어서 종합적인 지적 테스트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분명히 요즘의 시대와는 아주 많이 다른 시대의 산물을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자신만의 색을 입힌다.

 

자전적 스토리?(198페이지) 그의 작품에는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투영되어 있다. 개인적 체험과 시대적 사건이 작품에 투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그에게 시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일상의 머리를 덮고 있는 이불, 날마다 발을 담그고 있는 세숫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연애는 당연히 부정되었고 여성은 남성의 재산에 불과하였다. 과부는 악처였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희곡은 특성상 일반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 매몰비용이 필요하다. 그 비용을 위해서는 당대 권력자의 입맛에 맞아야 했고, 대중의 관심을 위한 것으로 창조되어 지속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흑사병의 확산으로 중세 봉건의 암흑기는 몰락하고 새로운 문예부흥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거기에다가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국교로의 변동은 물적, 정신적 변동은 큰 진폭을 가져왔다. 이는 기회뿐만 아니라 위기도 불러왔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적 욕망의 표현이 강해지자 남성들의 위기의식은 고조되었다(132페이지). 더욱이 정치적으로 명예혁명의 공간으로 넘어가면서 더 많은 정치색은 그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튜더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26페이지)은 약방의 감초일 수밖에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부끄러움 또는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총 334회나 등장한다. 죄의식은 총 33번이 사용되었다(240페이지). 수치심과 죄의식이라는 법과 종교, 도덕의 존재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권력이 법이 되는 절대 권력 시대에는 윤리만이 정당화의 기준이었다.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그 기준으로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특히 비극의 주인공은 고귀한 인물이어야 했던 셰익스피어에게 수치심은 영적 여행의 출발점이다(243페이지). (명예)혁명의 공간에서 법치주의로의 길은 권력자의 모든 행위를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다만 여전히 법은 강자의 편에 서 있지 않다고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약자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노골적으로 나()의 약육강식을 추구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법은 셰익스피어 예술에 심층적으로 다가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머쥐어야 할 중요한 열쇠이다(44페이지). 혼자 사는 것에는 법이 필요 없지만 나 이외의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는 순간 법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도 이를 철저하다. 청춘과 사랑의 유한성은 기한이 정해진 임대차계약이다. 11의 배타적 연인관계는 물권적 효력을 인정받는 전세로 비유할 수 있게 된다. 삶과 죽음, 권력과 사랑의 47정의 모든 오욕에 법적인 관점이 장착되어 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 상실과 결실이 법의 보장 아래 있는 가치이다. 코먼로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전문증거 배제의 법칙도 빼놓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일상이 철저하게 법의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며 상상과 내일로 나아간다.

 

마리나와 심청(124페이지) 순수한 상상력 이상의 것이 여성성에 묻어 나온다. 21세기 한국인이 셰익스피어에 상상력으로 <페리클레스>의 딸 마리나를 고전적 심청이보다는 최인훈과 황석영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심청이와 연결하려는 창조적 과정이다. 딸이 병든 아비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준다는 점에서, 독자로서의 피동적인 상상력 이상의 능동적인 창조과정이 있다. <두 귀족 친척>에서는 감옥에 갇힌 두 주인공이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는 것에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들의 화두에 좀 더 끈끈하게 치밀한 연관성으로 상상의 공간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독자의 독자가 더 창조적으로 접근하여 그 빈틈을 메꿔야 하는 숙제를 남겨 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을 지배하는 자는 세월이다. 세월은 인간의 어버이도 되고 무덤도 되지. 제가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 주면서도 이쪽에서 바라는 건 순순히 주지 않지.----(페리클레스. S.7.45~47; 재인용. 117페이지)

 

우리 세대에게 셰이스피어는 필수 중의 필수이자 상식이었다(8페이지). 우리는 셰익스피어를 왜 읽는가? 그것도 400여 년이 훌쩍 지나서, 완전히 다른 인종, 민족의 고전(classical)을 읽는 것은 그리 가벼운 작업이 아님에도 꼭 상식으로 삼아야 하는가? 여성을 남성의 재산으로 삼던 시대는 고려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시대와 세상을 치밀하게 탐구하고 사색하는 감상하려는 자세는 시대의 한 사람으로서 영원히 간직해야 할 지성의 체계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 세계의 Grund norm이 되는 것이다. 17세기나 21세기나 생존의 근본 방식은 변함이 없다. 문자를 매개로 하는 남성 우위의 20세기를 지나서, 영상의 매개로 남녀평등의 지식 대중화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classic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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