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이렇게 쓴다
나카무라 구니오 지음, 이현욱 옮김 / 밀리언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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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가치관이나 관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키의 책은 꾸준히 읽는다. 그만의 매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한 순수소설보다는 참여소설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과도 관련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근본적으로 현실의 문제에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본분이라고 생각에서 연유한다. 그런 면에서 하루키의 작품, 특히 소설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 누구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상력을 볼 수 있다는 것에서도 끌림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매력을 드러내는 작품의 세계를 하나의 학위논문처럼 철저한 분석의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매우 학구적이고 아카데믹하다, 분석적이라는 것은 당연해햐 하는 형식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를 시작으로 작가로써의 하루키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서, 수십년 동안 그의 책에서 희로애락을 찾았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 단편소설 36, 에세이 23, 기행문 8, 기타 26권의 책을 참고로 하고 있다. 각주만 달고 있었다면, 한편의 석사 학위 논문 수준이 될 정도로 하루키의 작품에 드러난 그만의 독특한 점을 33개의 명제와 14개의 힘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루키의 책을 꾸준히 읽은 독자들이라면 아주 공감을 할 수 있는 명제와 힘이기도 하다. 그저 나열되어만 있는 47개의 특징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그 무언가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 여기의 근원에는 상상과 리얼리티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아주 독특한 상상력으로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것에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를 만들어 낸다. 조망을 통해서 삶의 혜안을 소소하게라도 챙길 수 있는 여유도 빼놓지 않게 한다.

 

소설가는 문장으로 세계를 규명하는 직업이다. 이런 소설가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하루키는 말하지 않고 소설 속 문장으로 표현한다.----(199페이지)

 

수수께끼 같은 제목을 붙인다. 하루키도 여타의 작가들처럼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등 여러 형식의 글을 쓴다. 그 책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제목에서부터 그런다.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호기심과 상상력이 어디를 딛고 서 있어야 할지를 모르게 할 정도이다.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코끼리 공장의 해피앤드> 등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들의 조합이다. 심지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조합은 때로는 조악스러워서 부담스럽게 익힐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야말로 상상력에서 우러나오는 호기심을 재목부터 발동을 걸리게 한다는 측면을 더 강하게 부정할 수 없다. 제목에 달려진 수수께끼를 찾아서, 수수께끼 같은 책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몇 번이고 같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73페이지). 그의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그의 상상력을 따라가기 힘든 경우가 있다. 특히 <1Q84>에서 그런다. 하지만 그의 다른 에세이를 읽으면, 빠진 연결고리를 찾게 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소재나 모티브를 이미 전작에서 다루었다. 여기에서 그가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많이 쓰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소설과 수필은 하나의 궤를 갖고, 하나의 문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단골로 등장하는 두 개의 세계도 결국에는 이어지듯이 물리학의 카오스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것을 확인하고 있다는 작가만의 표현으로 보인다. 아주 독특한 상상력은 한 번의 상상으로 끝나고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조감도를 갖고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진화하고 성장하는 작가인 것 같다.

 

숫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에서도 숫자들이 등장한다. 연도, 나이, 심지어는 제목에도 구체적 숫자를 달아 준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숫자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가령 ‘4’는 죽음, 특히 ‘12’1, 하루, 예수의 제자, 십이지신 등 전통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숫자의 이런 의미를 십분활용한다. 너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 가고 있는 세상을 마치 수술대의 의사처럼 현실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잘게 잘게 쪼개서 자기만의 입맛으로 보려는 것 같다. 그러면 혼란스럽게 보이는 현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라는 통합으로 나가려는 첫발을 현미경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구체적 숫자를 쓰는 것은 상상의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가장 적절한 기법이다(129페이지).

 

일상의 작은 일과 시간에 의식을 집중하는 생활을 묘사해 본다(61페이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그에게 다림질, 청소, 요리, 세탁 등 일상은 작품세계를 리얼리티하게 하고, 상상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서 빼박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작품에 녹아냄으로써 상실과 상처로 얼룩진 세계, 그런 세계의 치유는 자기 치유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그의 작품에서 압권이다. 이는 작중 인물과의 관계에서,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읽는 이를 편하게 하면서, 현실에서 같은 방양을 바로 볼 수 있는 현실의 매개체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 눈으로만 상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아름다운 세계로 나아가는데 지루함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지루한 일상은 상상을 급격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과의 대비를 더 강렬하게 만들어 준다(62페이지).

 

내가 대표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대표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 오직 나의 신념뿐이다.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품격이다. 소설가는 예술인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한다.----------(59패이지)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해결에까지 상상력을 부여한다. 그의 문장의 백미는 시대정신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다(114페이지). 그가 즐겨하는 안톤 체호프는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과연 작가는 그래야만 하는가? 그는 체호프의 말에 동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일상을 통한 비현실을 보여 주는 날카로운 스토리를 무기 삼아 현재 우리의 불안한 심리를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세계로의 전진을 제시하려고 한다. 개인의 특수성분만 아니라 인류 보편성의 문제까지 아우르며, 현실, 더 정확히는 진실과 상상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글 세상은 그가 왜 일본을 넘어서 한국과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읽히는 힘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아무튼 이래저래 자신의 독한 개성을 독특하게 버무려내는 작가가 아닐 수 없다(148페이지). 하루키를 처음 접했던 것은 지금은 판권이 바뀌면서 지금은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상실의 시대>였다. 선배들의 추천으로 읽게 된 것이지만, 어찌 그리 현실을 적절히 배합하여 아웃사이더의 감정을 잘 파고들었는지 감탄을 하게 한다. 그 이후로 그가 보여준 매력에 그의 책을 찾아가며 읽게 되었다. 그의 매력을 저자는 리믹스력과 망상력을 처음과 그 다음의 하루키 문체의 힘으로 꼽고 있지만, 그 보다는 리얼리티를 비틀어서 상상력의 공간으로 인도하려는 그만의 노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 마술을 완전히, 100%’ 즐길 수 있는 힘이 되게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의 마술에서 두 바퀴를 꾸준히 중독(?)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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