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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 전2권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새나 구름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었다. 당신의 일생에 벌어졌던 기억을 글로 쓰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던 세월의 굴레서 벗어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었다. 전생 그리고 동전의 양면인 환생, 이들을 통칭하는 윤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존재는 그저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엄마가 느끼는 인생에 대한 기억이 불러오는 고통을 십분의 일도 짐작하지 못하는 존재는 그저 상상만이라도 해서 감정이입을 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기껏해야 연민 정도일 게다. 말로 들어서 안다고 해도 공감하기 쉽지 않은 기억을 소재로 하여 자신만의 아주 독특한 상상력으로 버무린 이야기가 우리의 앞으로 다가 왔다. 그 흥분의 도가니를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는 르네 톨레나노라는 프랑스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님 기억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밝히는 플롯(plot)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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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나요?----(13페이지)
내가 누구이고, 왜 태어났다가 가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일 것이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패러독스한 인생을 마주하게 될 때에는 ‘어디에서부터 잘 못되었는가’의 인과관계를 찾고 싶어진다. 때로는 전생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정답을 바로 찾기는 어렵고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만이 남게 된다. 그 속에서 수많은 인생의 존재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른다’에 한 표를 찍으며 영원한 숙제로 남긴다. 인생 자체가 모름과 미스테리의 연속이라는 말로 치부하고 마음 편한 것만 생각하려고 한다. 나의 존재 이유를 찾아 가는 길목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여러 나라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비판적으로 역사를 보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상상력에는 인간 본질의 염원이 담겨 있다. 경험이 있고 므네모스라는 흔적을 남긴다. 무의식 뒤편의 기억과 현생의 기억이 굴러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을 만든다.
나는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2권 348페이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의 눈과 몸을 통해서 짜릿한 모험의 순간들을 보여 준다. 112번의 환생, 퇴행적 기억에서 시작하여 자기 최면으로 벌어진 그 속에서 1차 세계대전 프랑스 병사, 레옹틴 백자부인, 갤리선 노잡이, 캄보디아 승려, 마녀로 몰린 인도 처녀, 사무라이, 그리고 환생들의 회합이 있다. 특히 만2천 년 전의 천문학자와 소통하며 각각에 처한 삶에 서로가 도움을 준다. 특히 이집트 신화의 태초의 신 ‘게브’를 자신의 1번은 애착이 가장 많이 가고 기억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모든 상상력이 자리를 차지한다. 한 개인의 존재이유를 찾아 가는 길에는 결국 인간의 존재 이유를 향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진실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꿈꾸게 만드는 그럴듯한 어떤 것을 보여주는 역사와 무지로 인한 공백을 메우는(241페이지) 종교는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길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잊힌 역사를 찾아가는 것은 이미 알려진 기득권에게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빠져나간 상자에 홀로 남겨진 '희망' 같은 것이다. 반복에 반복의 순환적 전생을 거치면서 경험은 불완전함을 극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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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곳 중의 두 곳이 기득권의 기록된 역사와 정신병원이다. 역사는 교육의 이름으로 선택적인 집단 기억을 무장시킨다. 부끄러운 자신들의 역사를 삭제하고 정적들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이집트 이슬람 권력은 파피루스 항아리를 파괴시켜 만2천년을 영원히 기억 속에 묻어 버린다. 정신병원은 전기 충격으로 숲의 뉴런에 불을 질러서 정신을 망가뜨려서 개인의 모든 기억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잊혀진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매우 불교적이라고 생각되는 개념과 최면이라는 수단이 있다. 매우 불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많은 가치 중에 그저 그런 가치라고 생각하여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전생, 그런 얘기를 하면 정신병자 취급될 수 있는 전생과 그를 바탕으로 하는 윤회에 대한 믿음은 정신병과 의식의 확장 사이의 갭을 메꿔줄 수 있는 것은 기억의 증거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기 위해서야-----(276페이지)
나라는 존재, 인간의 존재이유를 밝혀 나가려는 흥미에 나 자신도 해 볼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고 있다. 이 쉽지 않은 철학적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기억’이라는 수단에 엎혀진 상상력은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그것도 ‘심연의 기억’을 통해서 나의 역사, 시간과 존재의 의미를 정면으로 대면하게 하는 일상의 철학을 넘어서는 철학인을 위한 철학, 그런 매우 철학적일 수 있는 내용을 본다. 아주 재미없고 따분하기만한 얘기를 시간과 서사 속에는 흥미진진하고 다음 챕터의 내용이 기다려진다.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 싫증나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등장하는 가게의 이름이 그저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이름들이 아니다. 매우 의미심장하며 복선을 깔고 있다. 퇴행 최면을 처음 했던 ‘판도라의 상자’, 두 남녀가 만났던 ‘세상의 종말을 앞둔 최후의 바’ 술집 이름, 르네가 이집트에 잡힌 거미 감옥, 모든 것이 인연에 인연을 타고 흐르기에 때로는 매우 억지스런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의지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선택이 아닌. 장기판의 알처럼 각본 같은 마무리를 향해서 달려갈지도 모른다는 순간에도 체념은 거부한다.
내 삶의 소명을 꼭 발견하고 나서 죽고 싶어요.----(2권 45페이지)
그냥 이렇게 살다가 허무하게만 보낼 것만 같은 감정이 드는 시간에는 나의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진다. 그것도 간절하게!! 그렇지 못한 삶이 많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것에는 지난날의 경험, 과거의 역사를 찾아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상상력이 많고 특출한 능력이 있다면 전생을 보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일 수 있지만 가히 엄두내기 쉽지 않은 공간이다. 현생의 것이든 전생의 것이든 모든 것은 기억에 남아 있다. 결국 그 기억들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2권 35페이지)’에 나오는 시계처럼 지금까지 수 백 번의 환생과 다난했던 지난 시절의 시간의 변화 속에서 축 늘어져서 내일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 머릿속에 남아서 현재 떠오르는 현상은 때로는 정확하고 때로는 선택적으로 부정확하게 가물가물하고 때로는 에멘탈치즈처럼 구멍난 기억에 자신이 억지로 채워 넣어 거짓 기억을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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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1931) >> 뉴욕 현대미술관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018
우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게 가장 끔찍한 일이죠.----(397페이지)
누구나 존재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미래의 누군가가 내가 누구였는지 어쩌다가 한 번 쯤, 시간의 주눅에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 흔적은 구체적인 것이든 아니든 그 무언가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존재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흔적은 사람들이 ‘기억‘만이라도 존재하기를 원한다. 잊힌 존재, 아무런 흔적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인생이라면, 절망이 죽음 앞에 서는 인생이 된다. 망각의 존재가 되는 것이 더 두렵기에 어떠한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기억의 증거가 확인되어야 흔적의 믿음이 생성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만2천년의 아틀란티스인은 자신들의 흔적을 파피루스로 이집트 동굴에 남기고, 전생의 인연에 대한 인식표를 남긴다. 르네는 그 기억의 증거를 찾는다. 베르나르는 수많은 창조적 상상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면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엄마는 뙤약볕 아래서 남의 논을 일구면서도 자식 교육이라는 흔적을 남기었고, 환생을 꿈은 이루어졌을까? 21세기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무슨 흔적을 남기고, 어떤 인생 대차대조표를 남길 것인가? 생각이 깊어가는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