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고의 나날은 어떻게 찾아오는가(530페이지). 노년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가지 만들어온 젊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때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 지속적으로 그때의 상황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 습득한 지식을 나이와 상관없이 꾸준히 유지하고 키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때의 힘이 되어는 주는 원천으로 제시되는 것이 있다. 수명은 늘어나지만, 그에 비례해서 반드시 정비례해서 노년의 건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상황에서 유년기의 경험과 청, 장년기 시절의 자기 관리가 갈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젊었을 때에는 몰라서, 노년기에 들어서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살 줄 미리 알았더라면 나 자신을 좀 더 잘 보살폈을 테네”(530페이지)라는 100세를 맞이한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운명은 변덕스럽다(498페이지). 그러기에 인생은 더욱 미지의 공간이다.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그 미지의 공간 끄트머리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노화는 인생의 마스터플랜의 한 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흔히 나이를 많이 먹으면 다양한 경험으로 삶의 지혜가 많아져서 현명해진다고 한다. 막상 나 자신이 나이를 먹고,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말만 많아지고, 자식 자랑에, 벤뎅이 소갈딱지 꼰대가 되는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안 그랬던 사람도 나이를 먹으니 이상하게 변하는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많은 연구와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밝혀진 것이 많지만 미지의 것도 많다. 그래도 수많은 정보들을 어렵게 묻고 또 물어서 찾아낸 것들은 마무리를 향한다. 짐이 아닌 사회적 자원이 되는 길에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 가운데에서 개인적으로는 성실함, 사회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초등학교도 못나온 부모님보다 수만 배를 더 읽었고 더 긴 가방끈을 갖고 있는 나는 더 잘 늙어가고 있는가?’로 자문해 본다.

그 어느 시기보다는 빠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공간에서 늙는다는 것은 그 어느 시기의 노년들보다 더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복지사회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효능감을 상실한 채로 늙는다는 것은, 늙음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해도 끔찍한 것이아닐 수 없다. 질병 아닌 질병, 혐오 아닌 혐오로까지 느껴지게 한다. 늙음을 싫게 만드는 이유는 단연코 신체조건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암, 알츠하이머, 치매, 뇌졸중 같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결코 아니다. 이미 대세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병원, 요양원, 실버타운 신세를 지며 인생의 쓸쓸함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 더욱 그렇다. 특히 SNS가 발달한 시대에는 대부분이 홀로 사는 것이 익숙해지는데, 노인들에게는 고립에서 오는 외로움이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아무리 돈이 많거나 자식 모두가 S대를 나오고 검판사가 되어 잘나간다고 하더라도 이젠 하나의 레퍼토리처럼 되어버린 그런 노년은 아름답게도 보인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아침이슬’의 포크송 가수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애절하게 부르지만, 오히려 ‘인생 그 쓸쓸함’이 더 가깝게 다가오게 하는 것 같다. 음악은 동일한 보상 중추를 활성화한다(290페이지)는 결론에서는 아이유(IU) 노래에 빠지게 된다. 자신만의 건강한 노화 궤도를 만들어 성공적인 에이징에 이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며 책을 덮는다. 그리고 산행 준비를 한다. 장수와 삶의 질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