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팅의 영어 - 애플, 스포티파이 그리고 BBC까지 글로벌 브랜드의 영문 카피 레퍼런스
에드워드 포비.다니엘 스보보다 지음, 강주헌 옮김 / 길벗이지톡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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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잘 지은 카피라이팅 문구 하나는 이를 보고 들은 사람들의 기억 안에 오래도록 각인된다. 멘트를 듣자마자 광고 속 장면과 기업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업들은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한 카피라이팅 문구에 심혈을 기울인다. 카피라이팅 문구가 고객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고 간결하면서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대부분 길지 않고 몇 초 안에 기업 이미지와 슬로건이 머릿속에 남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단어 선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한 권의 책에는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내건 글로벌 브랜드의 영문 카피 레퍼런스를 총망라했다. FINACE, RETAIL & CONSUMER GOODS, TRAVEL & SERVICES, MEDIA, UTILITIES & TRANSPORT, ENTERTAINMENT & EDUCATION, HEALTHCARE & MEDICINE, HALLYU & K-WAVE까지 책 구성은 배경, 기업 개요, 마케팅 퍼널, 마케팅 퍼널 프랙티스로 동일하게 짰다. 각 산업군별로 마케팅 관점에 초점을 두고 설명한 뒤 대표적인 기업들에 대한 개요가 이어진다. 마케팅 퍼널은 이 책의 핵심으로 기업 슬로건과 설명을 붙였다. 마케팅 퍼널 프랙티스는 마케팅 문구에서 어떤 단어를 넣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카피라이팅 문구를 보며 영어를 배움과 동시에 기업들의 마케팅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문화 배경부터 뉘앙스 해설까지 각 산업군별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풍부하게 해석했다. 언어에 담긴 그 미묘한 느낌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카피라이팅 문구와 해설을 함께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활용해서 카피라이팅을 위한 아이디어에 적용시켜도 괜찮을 것 같다. 브랜드는 제품 퀄리티에 앞서 잘 만든 카피라이팅 문구가 마케팅과 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어민 영어도 배우고 마케팅과 카피라이팅도 배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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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인생을 묻다 - 그랜드 투어, 세상을 배우는 법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쌤앤파커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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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이 책은 유력 정치인인 체스터필드가 그랜드 투어 중이던 아들 필립에게 쓴 총 448통의 편지들 중에서 1746년 10월 9일부터 1751년 12월 19일에 마지막으로 발송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총 153통의 편지를 기반으로 완성되었다. 부자간의 편지 교환은 5년간의 그랜드 투어 일정 동안 계속되었는데 독일 사우펜하우젠을 시작으로 라이프치히, 베를린, 베네치아, 토리노, 베로나, 로마, 몽펠리에, 파리로 도시를 옮겨 다니는 내내 주고받았다. 대부분 아들에게 애정 어린 인생 조언이 담긴 서간집 형태의 글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귀담아들을만한 내용이 많았다.


어릴 때도 귀가 닳도록 '어른들 말 잘 들어야 한다'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일찍 인생을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내 자식만은 나처럼 바보 같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부모라면 내 아들·딸이 되도록 현명하고 지혜롭게 생각하고 결정해서 올바른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어렸을 적엔 체스터필드가 아들 필립에게 여러 조언을 해줘도 내 좁은 시야로는 그게 왜 필요한 지 몰라서 잔소리로 흘려들을 때가 많았다. 체스터필드는 서두에 항상 '사랑하는 아들에게'라고 붙이며 아들만은 나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 


그러나 지금도 내가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내가 젊었을 때 시간을 낭비하고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젊음의 무분별함이 낳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나는 네가 이것을 가장 조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짧은 시간이라도 잘 활용하면 그 가치는 엄청나지만, 그것을 놓치면 손실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을 잘 활용한다면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p. 107~108


글에서 보듯 아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지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다른 자기 계발서는 '~ 해야 한다'로 귀결되는데 반해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모두 담겨 있다. 이제 막 자라나는 아들·딸에게 선물해서 읽혀도 좋을 만큼 18세기에 쓴 글임에도 전혀 진부하거나 교조적이지 않았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이 되면서 가정교육의 어려움이 매우 큰 시대다. 올바른 판단 기준은 웃어른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고 배우거나 책을 통해 얻을 때가 많은데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이러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속한 언어의 사용은 나쁜 환경과 교육의 결과를 뚜렷이 보여준다. 언어의 저속함은 교양 있는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할 악덕이다. 한물간 속담이나 진부한 격언은 저속한 사람이 말할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버릇이다.

p. 255


알다가도 모를 일이 세상 살아가는 일이다. 그 기준이 모호해지고 목표는 수시로 바뀌기 일쑤다. 황망하게 떠난 사람들을 보면 세상만사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우린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라는 질문만 되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조언을 귀담아듣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책에서 얻을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충분하다. 나가는 글에서 '열 가지 인생 조언'을 따라 혼란하고 번잡스러운 이 시대에 교양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도 좋겠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졌어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남에게 친절과 아량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체스터필드가 필립에게 바랬듯 품위 있고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교양인은 무엇인지 배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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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철학하다 가슴으로 읽는 철학 2
스티븐 루퍼 지음, 조민호 옮김 / 안타레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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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죽음은 참 무겁고도 힘든 주제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자주 듣는 소식이 있다. 누군가가 지병을 앓거나 희귀병에 걸리거나 또는 노환으로 무슨 사건, 사고로 인해 사망했다는 뉴스다. 하루도 빠짐없이 듣지만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에 외딴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친인척, 친구일 경우는 다르다. 살아남은 유가족의 슬픔과 상실감, 트라우마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고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멋모르고 앞만 보고 살던 시기엔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고나니 부모님과 친인척,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이 하나둘 떠나는 걸 보며 죽음은 우리 곁에 훨씬 가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트리니티 대학교 철학 교수이자 1994년부터 현재까지 '죽음의 철학' 강의를 이어오는 저자는 이 책을 2부로 나눠 제1부에서 죽음(Dying)을 다루고 제2부에서 죽임(Killing)을 다뤘다. 삶과 죽음에 관하여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이야기한다는 것부터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분명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나의 죽음을 확정 짓는 것이 쉽지 않은 논쟁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종결 죽음, 임계 죽음, 통합 죽음 등 생명 과정이 완전히 종료되는 시기도 과정마다 다르게 정의한다. 사실 뇌사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면 의학적으로 살아있어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사실상 죽은 것과 다름없다. 근데 사람의 죽음을 판단할 기준을 찾기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죽음을 확정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잘 관리되고 있는 병원 내 의사들 사이에서나 논의될 부분이라는 점이다. 사망 확정 선고를 내리는 것도 담당 의사가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을 의학과 생물학적으로 자세하게 말하는데 일반인이 굳이 알아야 되나 싶기도 했다. 죽음 이후에는 다 부차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위한 논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제2부는 현학적인 철학이 아닌 살아가는 동안 부딪히게 될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제부터가 사건·사고 소식과 연관 지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몰입도가 높았다. 죽인다는 것, 스스로 죽는 것과 남의 손에 죽는 것, 태아 살해의 딜레마 등 죽음에 대한 이러저러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읽고 나서 생각할 지점이 많았다.


애써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는 건 그리 달가운 주제는 아니다. 바쁘게 살아가기도 벅찬데 하면서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는 피하려 든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생명체가 지닌 필연적인 순환의 일종이다. 어차피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소멸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죽음을 알면 알수록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갖게 되고 살아있는 동안 행복을 누릴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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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방, 큰 비즈니스가 되다 - 부업으로 시작해 사업의 틀을 갖추기까지
나혜선 지음 / 몽스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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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후기입니다.


멋모르고 사업에 뛰어들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다. 무턱대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니까 앞으로 잘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사업이 오래갈 수 없다. 작은 공방도 하나의 기업이고 비즈니스 공간이다. 1인 기업 사장으로 다재다능함은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다. 저자도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클레임을 겪었는지를 알고 나면 결코 만만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예전부터 취미생활로 시작해서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점점 사업화시킨 사례에 대해 궁금했는데 듣고 싶었던 대답을 속 시원하게 들을 수 있었다.


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사업을 성장시키기 위한 모델로 저자는 S.O.L.I.D 공식에 따라 운영하면 수익 모델 확장과 차별화된 시장 개척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1단계 S(Structure) : 브랜드의 기반을 다진다.

2단계 O(Opportunity) : 다양한 기회를 창출한다.

3단계 L(Leverage) : 수익 모델을 확장한다.

4단계 I(Impact) : 고객과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5단계 D(Dominate) : 차별화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한다.

<작은 공방, 큰 비즈니스가 되다> p.54


1인 기업 사장은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브랜드를 홍보하려면 온라인 마케팅을 위해 SNS 채널을 운영해야 한다. 글과 사진뿐만 아니라 릴스처럼 영상도 찍어야 한다. 강사로서 수강생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려면 콘텐츠 기획, 영상 편집, 강의 홍보도 직접 해야 한다. '돈이 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을 찾으면 무궁무진한 것 같다. 정기 구독 서비스, 온라인 강의 판매, B2B 시장 확장, 해외 시장 진출 등으로 연결되려면 무엇보다 브랜드 고유의 차별화된 아이템을 개발하여 고객들로부터 브랜드를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단순히 꽃집 공방을 차려서 판매나 원데이 클래스 위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수익화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온라인 마케팅으로 홍보해서 새로운 고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피죤 트리거'로 부르는데 일단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 

· 피죤 트리거 1단계 : 발견 - 수많은 피드 속에서 '한 번 더 보게 만드는' 방법

· 피죤 트리거 2단계 : 유입 - 프로필만 봐도 신뢰를 주는 계정 설계

· 피죤 트리거 3단계 : 신뢰 - 고객이 믿고 첫 결제를 하게 되는 구조

· 피죤 트리거 4단계 : 고객 유도 - 망설이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 피죤 트리거 5단계 : 팬으로 전환 - 자발적으로 다시 찾아오는 구조 만들기


사업이라는 것이 몸을 갈아 넣는다고 표현하지만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맞다. 안 되는 이유를 찾기 보다 브랜드를 성장시키고 발전하기 위해 무엇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지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작은 공방을 비즈니스로 확장시키기 위한 지침서라고 보면 된다. 성공하기 위해선 운도 따라줘야 하지만 치열하게 수익화 모델을 만들어 사업이 되기까지 본인도 한 단계 뛰어넘는 성장을 해줘야 한다. 가만히 정체되지 말고 무얼 할 수 있는가부터 고민하고 어엿한 사장으로 꿈이 확장되는 과정을 담은 예비 창업 지침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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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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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면도날>이 출판된 시기는 1944년으로 저자인 1874년에 태어난 서머싯 몸의 나이 70살이 되던 해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기로 전쟁에 끌려간 수많은 젊은이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국민들이 전쟁 포화에 죽어나가며 혼란이 극도로 치닫던 때다. 주인공인 래리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군 복무를 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사건 이후 삶을 대하는 생각이 달라져 버렸다. 같은 전투기 조종사 래리보다 3살 위지만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그의 후미를 쫓던 적 전투기를 격추시키다 그만 큰 부상을 입고 마는데. 다행히 복귀했지만 래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귀환 후 하릴없이 빈둥대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이사벨이 그런 래리에게 했던 말들은 그 당시나 지금 기준으로 봐도 평범하게 사는 우리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삶이었다.

"잘 생각해 봐, 래리. 남자는 일을 해야 해. 이건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미국은 젊은 나라이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건 남자로서 하나의 의무야. ... 앞으로 미국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1930년쯤 되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될 거래. 정말 가슴 설레는 굉장한 얘기잖아?"

<면도날> p. 81


하지만 겨우 20대 초반이던 가장 친한 친구가 한순간에 죽는 모습을 지켜본 래리에겐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펼쳐질 눈부신 경제 발전도 희망찬 미래도 중요하지 않게 본 것이다. 돈에 관심도 없고 취직해서 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건 단지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걸까? 이 책엔 약혼녀이자 매력적인 여성인 이사벨과 잘나가는 증권회사를 물려받은 그레이, 이사벨의 삼촌이자 사교계의 신사인 엘리엇, 이사벨의 어머니이자 엘리엇의 여동생인 브래들리 부인, 남다른 감수성으로 시를 좋아했던 소피, 화가들의 뮤즈로 활동하다 전업 화가가 된 수잔 등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저자도 소설 속 작가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은 현실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완독하고 난 뒤에 보니 정신없이 읽었던 그 시간 동안 소설 속 이야기에 푹 빠져서 다음이 궁금했던 것도 오랜만이다. 다들 각자의 인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느꼈다. 이사벨은 평균적인 생각을 가진 보통 여자로 대화가 즐겁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래리와 결혼하기엔 지금까지 누려왔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어 약혼을 거절한다. 이후 그레이와 결혼해 딸 둘을 낳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며 상류층 사회 속에 살아간다. 그의 남편이 된 그레이는 호감형 인물로 이사벨과 딸에게 더없이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아빠다. 미국 경제 대공황으로 빈털터리가 되지만 엘리엇으로부터 이사벨이 물려받은 유산과 래리의 두통 치료 덕분에 재기에 성공한다.

여기서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은 소피로 결혼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과부가 된다. 파리의 어느 어두침침한 골목에서 충격적인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때는 문학소녀였고 시를 사랑했는데 정신적인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 곁에 없어서 였을까? 반면 수잔 루비에는 마땅한 직업도 집도 없이 화가들이 사는 집에 얹혀살며 작품 모델이 되어주거나 집안을 도우며 전전하고 다닌다. 사실 누가 보기에도 별 볼 일 없는 일이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을 세우며 끝맺음도 깔끔하다. 작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끝까지 책임지며 나중에는 자신을 인정한 사람과 결혼도 하고 정식 화가로 활동한다.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주인공인 래리가 아닐까 싶다. 미국 시카고에서 프랑스 파리로 거쳐 옮기면서 한동안은 도서관 등을 다니며 책을 읽기만 한다. 그러다 프랑스 북부 탄광에서 일하고 거기서 알게 된 동료와 독일로 가서 농장 일을 돕고 나중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인도 등 십여 년간 깨달음을 얻기 위한 길고 긴 방랑 여행을 다닌다. 20대를 그렇게 보내고 30대 초반에 파리에서 이사벨, 그레이, 작가와 조우한다. 언어 배우는데 소질이 있었던 래리는 독일어도 금방 익히고 인도에 가서도 그들의 언어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나 큰 깨달음은 없지만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가 아닌가 싶다.

다들 각자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간다. 어떤 사건을 만나게 될지 모르고 평범하게 살아왔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될지 미래를 다녀온 것이 아니라면 알 수가 없다. 그저 남의 얘기로만 알던 그 일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 있고 앞 일을 쉽게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작품, <인간의 굴레에서>, <달의 6펜스>와 함께 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

이런 거창한 수식어가 붙는 고전이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고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소설인 것만은 분명하다. 워낙 스토리텔링이 뛰어나서 지루하다는 느낌도 없이 재미있다. 등장인물마다 애정이 가고 인위적이지도 않다. 마치 그 당시에 살았던 실존 인물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예스럽지 않고 현대적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 고전인데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고 한 번쯤은 이들이 선택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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