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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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람과 동물, 식물만 살고 있을까. 다른 존재는 없을까. 사람들이 육신 없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령은 어떨까. 정말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보기도 하고 소리를 듣기도 하고 느끼기도 한다고 하니 어쩌면 이 공간에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유령과 사후세계를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가 어릴 때 심하게 앓은 뒤로 완치되지 못해 줄곧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환각 증세까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소재로 삼아 소설로 실감 나게 표현했으니 작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겠다. 책 속에서 유령은 흐릿한 형체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람과 다름없는 외양을 하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떤 게 진짜 모습일까.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태도를 보고 숨겨진 내용을 상상하기도 하고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추측하기도 하면서 금세 읽고 나니 정말 유령이 있다면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공포영화에서 보듯 끔찍한 모습만 아니라면 별 상관이야 있을까.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로 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령이 실제로 있다고 가정했을 때, 유령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유령을 보거나 느끼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아무튼 소설에는 유령에 대한 내용만 나오지는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다른 이와 갈등을 겪기도 하고 심하게 가책하기도 하고 수수방관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를 보면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으스스한 이야기를 읽었지만 그리 무섭지는 않다.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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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찬이 텅빈이 철학하는 아이 18
크리스티나 벨레모 지음, 리우나 비라르디 그림, 엄혜숙 옮김 / 이마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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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으로 표현한 꽉찬이와 텅빈이가 인상 깊었던 책입니다. 꽉 차 있는 꽉찬이와 텅 비어 있는 텅빈이는 서로를 보고 놀랍니다. 자신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지요. 모든 걸 다 가졌고 외롭지 않은 꽉찬이, 아무것도 잃을 게 없고 너무나 자유로운 텅빈이는 평소에 아쉬울 것 없이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는요. 처음 만났을 때는 장점을 뽐내듯 이야기하다가 미처 생각 못했던 단점까지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궁금해하는 둘은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알아가는지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없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닮고 싶은 모습을 따라 하기도 하고 말투를 흉내 내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더 잘 알게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본받을 만한 점은 본받되 자신의 성향을 억누르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꽉찬이와 텅빈이가 각각 자신의 조각을 떼어내 서로에게 건네면서 둘은 새로움을 맛봅니다. 몸에 텅빈이의 조각이 들어오자 처음으로 그립고 홀가분한 감정을 느낀 꽉찬이는 감격하고 꽉찬이의 조각을 품은 텅빈이는 따뜻한 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감각을 느끼며 많은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상대의 작은 조각을 가진 채 둘은 작별 인사를 합니다. 조금씩 달라진 채로요.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새로움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를 마주하고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영향받게 되지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은 인정하고 나쁜 점은 본받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누군가를 지나치게 부러워할 것도 없고 얕잡아 볼 것도 없습니다. 상대를 받아들이고 알아가면서 조금씩 커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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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토요일에 I LOVE 그림책
오게 모라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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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누구나 기다리는 날이 아닐까요. 토요일에 신나게 놀아도 일요일이 남아 있으니 좀 피곤하더라도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하루 더 놀지 좀 쉴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는 주말이 좀 더 즐거운 날이지요. 부모님과 뭘 할지 생각했다가 토요일이면 평일보다 일찍 일어나 설레는 마음을 한껏 드러내지요. 얼굴엔 웃음을 가득 띠고요. 이 책의 주인공 에이바도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누구보다 더요. 엄마가 일주일에 하루만 쉬거든요. 토요일마다 둘이서 갤러리로, 박물관으로, 공원으로, 미용실로 다니느라 바쁘답니다. 이번에도 토요일이 돌아오자 에이바와 엄마는 준비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입니다. 미처 정리도 못하고 쌩하니 나가네요.


이상하게도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에이바와 엄마의 '특별한 오늘'이 그 날인 것 같아요. 계획한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 나서서 방해하는 것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거든요. 마지막 일정이었던 인형극만 볼 수 있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오늘만 하는 인형극을 놓친 둘의 표정을 보니 너무 안타깝네요. 입장권을 집에 두고 나온 아침 시간으로 돌아가면 하루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까지 드네요. 하지만 에이바는 미안해하는 엄마를 오히려 위로합니다. 계획한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잘 풀리지 않은 하루였지만 집에 돌아와 둘만의 놀이를 하는 장면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소중한 사람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은 법이 아닐까요. 꼭 특별한 뭔가를 해야 특별한 날이 되는 건 아니지요.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좀 더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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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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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머니보다는 가깝지 않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어머니여서일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두 분 다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저자의 신작은 아버지를 그린 소설인데 얼마 읽지도 않고 주인공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다. 말수가 적고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한결같은 아버지, 전화하면 필요한 말만 하시지만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가. 주인공 헌은, 어머니가 입원하러 다른 도시로 떠나자 아버지가 울더라는 말을 듣고 몇 년 동안 가지 않은 고향을 찾는다. 아이를 잃고 모든 게 무의미해져 가족들과 만나지도 않고 살던 그녀는 아버지의 눈물이 마음에 걸려 어머니가 없는 동안 빈자리를 채우기로 하고 심신이 지친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 탄탄했던 몸이 이제는 쇠약해져 어깨는 앙상하고 걸음도 힘겹다.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나이 드셨나 싶은 때가 언젠가는 찾아오는데 헌에게는 이때가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병원을 오가며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을 때도 자식을 잃은 딸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마음을 쓰는데 이 부분이 어찌나 가슴 시렸는지. 아버지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 깊고도 깊은 게 아닌가 싶다.

수면장애를 앓는 아버지, 밤에 깨 밖에 나가 하염없이 우는 아버지를 보며 당황하던 헌은 아버지를 보며 과거를 떠올리며 잊었던 기억을 더듬는다. 아버지, 어머니와 가족들, 고모와 사촌들. 아버지의 한평생을 다시 바라보는 그녀는 아버지와 대화하며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그의 생을 처음으로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어릴 때 이틀 간격으로 부모를 여의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슬픔에 잠겼던 아버지, 누이와 의지하며 생을 이어갔던 아버지, 자신은 학교 문턱도 못 가봤지만 자식들은 모두 대학까지 보내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 은혜 입은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아버지. 가족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었다 고백하는 그의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헌은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일들을 곧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차마 부모님의 집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5년이 얼마나 아쉽게 느껴질까. 나와 가까운 존재, 부모는 너무 가까워 오히려 소중함을 못 느낀다. 언제나 옆에 있을 거라 생각해서일까. 가슴에 맺힌 일이 많지만 꺼낼 방법을 모르고 그저 묵묵히 살았던 헌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모두 소중하다. 한동안 이 소설이 마음속을 뱅뱅 맴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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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다이컷 동화 시리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발렌티나 보나구로 엮음, 루나 스콜테가나 그림, 김지연 옮 / 반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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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이 지은 동화 <눈의 여왕>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재해석되어 나왔어요. 생략된 내용이 있지만 눈의 여왕에게 납치된 카이를 구하기 위해 게르다가 모험하는 내용은 잘 나와 있어요. 위험을 무릅쓰고 카이를 찾아가는 게르다는 정말 멋져요.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며 고난을 극복하는 아이를 보고 사람들은 도움을 마다하지 않아요. 동물들까지 게르다를 도우려고 애쓰고요. 마녀가 게르다의 기억을 지웠지만 아름다운 장미를 보고 카이를 떠올리는 모습에서 간절한 소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장미가 가득한 정원에서 카이와 놀던 기억만큼 행복했던 기억은 없겠죠. 그토록 즐거웠던 날들을 뒤로하고 카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소중한 이를 지키려 하는 마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마녀에게 잡혀도, 도둑들에게 끌려가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은 아이의 모습은 감동을 불러일으켜요. 내 곁의 소중한 이들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게르다처럼 용감하게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악마가 만든 거울이 산산조각 나 사람들의 눈과 심장에 박히면 사람들은 차갑게 변하지요. 현실에서도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보면서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되는데 이들에게도 악마의 거울이 박힌 것만 같아요. 다른 사람을 아프고 괴롭게 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거울이 깨지는 장면, 아름다운 눈의 결정, 활짝 핀 장미 등을 레이스처럼 표현해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 이 책을 아이와 어른들에게 모두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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