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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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속삭인다. 아이는 듣지 못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늘 함께인 머리카락은 누구보다 아이를 잘 안다. 아이의 작은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어떤 기분인지 헤아리는 존재. 부드럽게 흔들리며 소곤대는 머리카락이 사랑스럽다.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점점 굵어지고 풍성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빠지고 가늘어진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다시 아기일 때처럼 보드라워지고. 저자가 헤어 디자이너라 그럴까.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문장이 섬세하다.

주인공이 태어난 순간부터 100세가 될 때까지의 장면이 책에 담겼다. 아이가 자라나는 찬란한 순간,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들이 물 흐르듯 지나간다.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눈물이 고인다. 알아채지 못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함께 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떠오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추억은 덤이다. 봄이 다가온 어느 날, 98세인 주인공이 라일락의 연녹색 가지를 바라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몸피는 앙상한 가지처럼 변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생각이 흐르고 모든 걸 편안하게 사랑하는구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에 만족하는 모습이 그지없이 평온하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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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경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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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투명 인간 이야기를 읽었다.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분을 빼고 얼굴과 손은 붕대로 감고 다녔는데 어느날 옷을 갈아입다가 누군가에게 들켰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투명 인간이 옷을 모두 벗고 도망치다가 얼어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 투명 인간이 되기 보다는 투명 망토를 찾아 두르고 다니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지 않을까. 이 소설에도 투명 인간이 나온다. 제목 그대로 실수로 투명 인간을 죽이는 바람에 일어나는 머리 아픈 사건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투명 인간이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거! 이 정도는 돼야 식상하지 않지. 기존의 투명 인간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오히려 볼 맛이 났다.

투명 인간은 어떻게 만났고 무슨 원한을 졌기에 죽였다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어떻게 죽였다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에 대해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라 문제될 건 없었다. 그보다 투명인간과 처음 만나는 대목이라든가 투명 인간을 실제로 보게 되는 대목이 아주 흥미로웠다. 인간과 투명 인간이 이룬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다 무너지는 내용을 잘 드러내는 내용이 속도감 있어 금세 읽었다. 인간의 욕망은 정말 끝이 없는 걸까 싶기도 했다. 모두가 두루두루 잘 지낼 수는 없는 건지. 작가가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이라 그런지 장면 장면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 숨막히는 추격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반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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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와요! 지양어린이의 세계 명작 그림책 78
프랑수아즈 로지에 지음, 이성엽 옮김 / 지양어린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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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펑펑 쏟아지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요? 물론 아이들이죠.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는 게 얼마나 신나는지 아는 아이들이요. 눈이 쌓이면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눈이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며칠 전부터 들떠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을 내다보곤 하죠. 우리도 다 거친 날들이라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눈이 오는 날, 얼른 나가서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잘 그려낸 그림책을 읽으니 어릴 때가 떠오릅니다. 목도리를 감고 장갑을 끼고 나가서 친구들과 놀던 때가 그립네요. 눈사람을 만들다 보면 장갑이 젖곤 했는데 그래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끝까지 만들었어요. 지금 하라고 하면 손이 시려서 못할 것 같아요. 그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있나 봅니다. 눈사람 팔에 끼고 있던 장갑을 끼워 줬다가 엄마에게 혼나고 다시 가져오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네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지요. 모든 것이 묻히고 깨끗해집니다. 방에서 눈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는 아이는 흰 눈을 밟으며 발자국을 내고 싶고 눈 쌓인 곳에 누워서 뒹굴고 싶기도 할 거예요. 빨리 놀고 싶은 마음에 그대로 나가려는 찰나, 엄마의 말이 들립니다. 옷을 입으라고요. 챙겨 입을 건 또 얼마나 많은가요. 바지, 코트, 장화, 목도리, 모자까지 다 갖춰 입으려니 마음이 급합니다. 멜빵바지를 입다가 꽈당 넘어지기도 하지요. 털모자가 싫다고 투정 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요. 따뜻하게 입어야 감기에 걸리지 않는데요. 겨우 다 입은 후 밖에 나갔는데 사건이 생깁니다. 아이는 원하는 대로 잘 놀 수 있을까요? 귀여운 반전에 웃으면서 끝까지 읽었어요. 올겨울에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네요. 아이와 밖에서 뛰어다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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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도 초능력이 필요해
민제이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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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에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어떨까. 회사 생활이 아주 편해질까. 이 소설에는 초능력을 갖게 된 회사원들이 나온다. 회사도 직급도 각기 다른 4명의 직장 생활이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이들은 실수를 돌이킬 수 있는 명함, 몇 초면 출퇴근 가능한 순간 이동,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독심술, 돈이 솟아나는 비밀 사이트를 이용해 회사 생활을 잘 해보려 한다. 그래서 회사 생활이 꽃길이 되었냐고 한다면 글쎄올시다. 환경을 갑자기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 아니라 그렇지는 못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 그 능력이 되는 대로 마구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약이 걸려 있다고 한다면 수긍이 되지 싶다. 신입사원으로 일하다가 시간이 흘러 직급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무거워지는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든 회사원들이 허허 웃으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어느 회사든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긴장해서 실수하는 신입 사원에게 막말을 퍼붓고 교묘하게 괴롭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처음부터 능력을 발휘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착각 속에 산다.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 그를 조소하는 줄도 모른 채. 소설을 읽으며 질량 보존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곳곳에 배치된 빌런들이 앞으로도 활약하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생각 같아서는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오고 싶지만 차마 실행하지 못하는 회사원들이 아무쪼록 마음을 잘 추스르고 무사히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승진한다면 신입 시절을 기억해 후배들에게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 주기를. 아니, 친절하거나 다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업무를 미루지 말고 좋은 아이디어를 뺏지도 말며 공과 사를 구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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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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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종말하는 소설을 쓰는 아이, 고희망. 등장인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리는 희망은 새로 시작한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낼지 고민이다. 희망을 자신의 희망이라 부르는 삼촌은 그 마음을 알까. 조카가 세상에 기대하는 바가 없다는 걸. 사고로 떠난 동생이 떠오를 때면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무거운 소설을 쓴다는 걸.


제목부터 눈길을 끈 소설이다. 종말과 희망.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닌가. 종말이 오기를 바라는 고희망이 쓰는 소설과 현실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되어 흥미로웠다. 희망과 유대가 돈독한 삼촌이 참 멋지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면 절대 외롭지 않으리라 느꼈기 때문이다. 거기다 희망을 응원하는 친구들도 있으니 눈부신 시절을 제대로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는 종말이 올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을 열심히 산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다시 오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희망의 필명이 떠오른다. 달이 사라지는 짧은 순간을 뜻하는 '삭'. 세상은 온통 검어졌다가 다시 달이 빛을 드리우는 순간 환해진다. 희망에게 '삭'의 시간이 또 올지라도 금세 지나갈 것을 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희망은 어떤 이야기를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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