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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영화에 반전이 있다면 책에도 있다. 책 <미국의 송어낚시>가 대표적이다. 시쳇말로 '낚였다'는 은어(?)가 요즘 유행인데 정말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의 겉표지나 제목만으로는 가벼운 수필집이나 시집, 더 나아가 송어낚시에 대한 내용일 것이라고 미뤄 짐작하기 쉽다. 하얀 책표지에 빨간 볼펜으로 아이가 그렸음직한 '어설픈' 송어가 그려져 있고 그 바로 밑에 역시 빨간색으로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제목이 있다. 책 두께도 얇은 편이라 금세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장부터 의미심장한 내용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다.
"미국의 송어낚시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삼각형 구식모자를 쓴 사람들이 새벽녘에 낚시질하고 있는 모습을 나는 흥미 있는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송어낚시'가 사람처럼 묘사된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말까지 한다?! 또 삼각형 구식모자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 뒤엔 설명도 없다. 이 책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마치 유명 TV드라마 'X-파일'을 보는 듯하다. 결과가 있을 듯한데 찜찜하게 끝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난해하기 때문이다. 책 표지와 달리 매우 난해하다. 마치 암호를 풀어야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끝 부분에 어려운 단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에 대해 주를 달아 두었다. 실은 이 주도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밝혔듯이 '미국의 송어낚시'는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무형의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미국'은 이미 썩을 데로 썩은 현대 미국사회를 의미한다. 또 '송어'는 자연이나 목가(牧歌)를 의미한다. 풀이하면 환경이 파괴된 미국 땅에서 자연을 찾는다는 의미다. 또 더 나아가 피폐한 미국사회에서 인정(人情)을 찾는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이 책은 매우 고리타분하게 보인다. 아니 그렇게 보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매우 해학적인 표현을 사용한 저자의 노력 때문이다. 단어 선택이 매우 절제되어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태양은 누군가 석유를 붓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다음, "신문 가져올 동안 좀 들고 있어"하며 내 손에 놓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아 불타고 있는 거대한 50센트짜리 동전 같았다."
태양을 50센트짜리 동전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가만히 묘사하지 않았다. 불타고 있는 동전으로 표현했다.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엔 보너스가 있는데, 이 책의 저자를 이 책의 번역가가 80년대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 내용 중에 "브라우티건은 헤밍웨이만큼이나 죽음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작가"라는 표현이 있다. 헤밍웨이처럼 이 작가도 지난 1984년 총으로 자살했기 때문이다. 또 작가 자신도 죽음과 상실 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의 문체는 하드보일드인 헤밍웨이 문체와 달리 형용적이고 은유적이다. 사람을 사물로, 사물을 사람으로 바꾼다. 또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는 호수에서 사정하는 행위를 새 생명에 대한 갈증의 제스처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이 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조금...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의미는 크다. 60년대 이 책은 미국 대학생 사이에 바이블로 통했다. 지성인의 교양서였던 셈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당시 이 책을 금서(禁書)로 분류했다. 금서가 풀린 후 이 책은 미국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책으로 추천되어 지금에 이른다. 이 책이 처음 대중에 선을 보인지 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세계적 스테디셀러인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산업화되는 현대사회를 비판한 이 책은 황폐화와 자연파괴를 꼬집는다. 비인간화와 개인주의를 질책한다. 그래서 휴머니즘과 자연회복을 주장한다.
불행히도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에 자신의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묘비엔 죽은 날짜가 없다고 한다. 언제 죽었는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여전히 어디선가 송어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고 한다. 송어는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 중 하나다. 친숙한 생물을 등장시켜 자연주의를 노래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 책은 10년 후 다시 읽고 싶은 책 1순위로 잡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