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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 보기, 읽기, 담기
전영우 지음 / 현암사 / 2003년 5월
평점 :
책 <숲...보기, 읽기, 담기>를 읽으면서 겁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맨발로 숲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은 오래전부터 품어왔지만 선뜻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산성비라는데… 맨발로 숲길을 걷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나만 손해 아닌가. 또 발은 어떻게 닦지?"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결국 겁쟁이인 꼴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을 고쳐 잡았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날씨가 따뜻해지면 꼭 실천해보겠노라고…
사실 어릴 적에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입술 파랗게 질리고도 낄낄대며 좋아했던 추억이 있다.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에는 스르르 졸리기까지 했던 그 추억 말이다.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코를 찡긋했던 그 기억들을 일깨워준 것이 이 책이다.
저자 전영우 국민대 교수는 학생들에게 숲길을 맨발로 걸어보고 그 느낌을 써내라는 숙제를 냈다고 이 책에 썼다.
그 결과 태어나서 한 번도 맨발로 땅을 걸어본 적이 없는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맨발로 땅, 아니 흙을 밟아본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만큼 자연과 멀어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과 숲은 동질감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사람의 날숨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는 나무가 필요로 하는 것이고,
나무가 내뿜는 산소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므로 서로 떼어놓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우 가까워야 하는 둘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상기시킨다.
그냥 "숲이 좋다"가 아니라 "이래서 좋다"라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 저자는 이 책에서 숲을 오감으로 체험하길 권한다.
이름하여 ‘산림학자 전영우가 권하는 숲 오감 체험 10계명’이다.
-장대비 오시는 숲의 흙길을 맨발로 걸어봅니다.
-바람 부는 날에는 숲 속에 발을 고정시키고 숲을 노니는 바람에 온몸을 맡깁니다.
-나무줄기에 귀를 대고(청진기라면 더욱 좋지요) 나무 몸통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어봅니다.
-눈 노는 날에는 숲 속 나무와 함께 머리와 어깨에 눈을 쌓아 봅니다.
-아무런 불빛도 없이 한밤중 숲길을 걸어 봅니다.
-눈을 감은 채 울퉁불퉁한 열매를 만져보고, 가시에 살짝 찔려도 봅니다.
-숲에서 나는 향기를 말로 한 번 표현해 봅니다.
-나무에게, 숲에게, 자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봅니다.
-자연을 예찬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봅니다.
-깊은 숨을 쉬면서 내 들숨에 나무의 날숨이 들어 있고, 나무의 들숨에 내 날숨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무와 숲과 내가 하나입니다.
저자도 이 책에서 강조했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공산품을 사용한다.
깨끗하고 촉감이 좋은 것들만 골라 사용한다.
나무를 만지고 흙을 밟으면서 조금은 울퉁불퉁하고 조금은 거친 자연을 포옹하지 못하고 있다.
패스프푸드 먹지 말고 웰빙푸드를 먹는다고 난리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공산품에 익숙한 우리 감각에도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어떨까.
그 시작을 이 책으로 해도 좋을 듯 하다.
한편, 책 중간 중간 있는 사진은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숲과 나무와 자연을 모습을 담은 사진이지만
너무 무의미하고 활력없게 보인다.
조금 더 다양하고 생동감 있는 사진이었다면 시너지 효과를 냈을 것이다.
또 사진의 나무가 어디에 있는 무슨 나무이고 어떤 시냇물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사진은 중요하지 않으니 글을 읽어라' 또는 '사진은 책 볼륨을 키우기 위한 또는 글을 수식하기 위한 데코레이션일뿐'이라고 한다면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