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한이 담긴 책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제목이 '이순신'이 아니다.
이순신의 삶을 담은 책이지만 제목은 <칼의 노래>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책을 읽었다.
저자 김훈이 의도는 모른다.
느낌으로는 이순신의 한(恨)을 표현한듯하다.

 

이순신은 불행한 삼도수군통제사(해군제독 또는 해군참모총장)이다.
임금(선조)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명나라에 굽실거려야 했다.
왜군은 적이었다.
아군은 없고 적군만 가진 장수였다.
한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한이 어린 '칼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임금은 이순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허위로 보고했다는 혐의이다.
조정은 이순신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그 무렵 이순신의 자리를 대신하던 원균이 왜군과 싸움에서 죽었다.
해군을 이끌 장수가 없다.
임금은 사형을 면해주고 이순신에게 해군을 맡겼다.
죄가 있지만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이순신은 첫 번째 한이 있다.

 

임진왜란으로 선조는 파천했다.
서울을 떠나 의주로 갔다.
명나라의 도움을 받아 귀경했다.
명의 수군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순신의 전과를 가로챘다.
이순신은 명의 장군으로부터 굴욕을 당했다.
명의 장군은 왜군과 짜고 도망갈 수로를 열어주었다.
이순신은 칼로 명의 장군을 베려고 하다가 참았다.
여기에 이순신의 두 번째 한이 있다.

 

왜군은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일대에 거점을 마련했다.
수만 명의 병사를 포진시켰다.
이순신은 왜군을 무찔렀다.
명량해전, 옥포해전, 한산해전에서 이순신은 승리했다.
이순신의 셋째 아들 면이 아산에서 왜군에게 죽었다.
도망가는 왜군과 싸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도 죽었다.
여기에 이순신의 세 번째 한이 있다.

 

이 책에는 이순신의 한이 담겨 있다.
소설이어서 한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날씨가 춥다거나 숨이 버거웠다고 표현하고 있다.
책이 이런 내용이 있다.

 

"의금부에서 풀려난 뒤부터, 추운 날에는 허리가 결렸고 왼쪽 무릎이 시리고 쑤셨다. 무릎이 시릴 때, 두 다리가 땅을 밟지 못하는 것처럼 얼얼했다. 뼛속의 구멍으로 찬 바닷바람이 드나드는 듯싶었다. 뼛속을 드나드는 바람은 내 몸 안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임금의 숨결이며 기침 소리처럼 느껴졌다. 내 어깨에는 적이 들어와 살았고, 허리와 무릎에는 임금이 들어와 살았다. 활을 당겨 표적을 겨눌 때 나는 내 어깨에 들러붙은 적을 느꼈고 칼의 세(勢)를 바꾸려고 몸을 돌릴 때 나는 내 허리와 무릎 속에서 살고 있는 임금을 느꼈다. 시린 무릎으로 땅을 온전히 닫지 못할 때도 내 몸은 무거웠다.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중략)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이순신이 이토록 고단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라의 해군 사령관이 찬 골방에서 잘 정도이다.
식량, 무기, 배가 부족했지만 임금은 도와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백의종군이다.

이순신은 고문과 전투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먼바다 쪽 하늘에서 붉은 노을과 검은 노을이 어지럽게 뒤엉키고 눅눅한 바람이 불어오면 무릎관절이 쑤셨다. 다음날 비가 내렸다. 여름 장마 때는 임진년 율포 싸움에서 총맞은 왼쪽 어깨가 결렸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무릎과 허리가 함께 아팠다. 허리의 통증이 허벅지와 장딴지의 신경을 타고 내려가 발가락 끝까지 저렸다."

 

이순신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삭였다.
왜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둘 때도 알리지 않았다.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이순신의 마지막 명령이다.

 

이 책은 소설이다.
역사를 기반으로 하되 소설을 가미했다.
이순신의 장계나 임금의 교서의 일부는 저자가 지어냈다.
해전 내용 중 일부에도 저자의 상상이 결합했다.
저자는 '일러두기'에 책이 소설인 이유를 밝혀두고 있다.
그러나 내용의 흐름은 역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시대에 이순신 같은 인물이 있을까.
나라를 걱정하는 공무원은 얼마나 있을까.
국민을 섬기는 공무원은 얼마나 있을까.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서울시청앞마당을 시민이 사용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이 책은 큰 의미를 던져준다.

밥은 있지만 반찬이 없는 책

신화가 된 천재들 - 한 시대 한 발 더 앞선 우리 문인 17명의 삶과 예술
윤채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밥은 우리 건강에 좋다.
그러나 밥은 맛이 없다.
그래서 반찬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반찬이 없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한문소설을 정신분석 지평에서 해석한다."
이 말을 이해하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책 읽기를 다음 기회로 미루어도 무방하다.

 

일반인에게 책 <신화가 된 천재들>은 제목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
오히려 논문 초록을 읽는 듯하다.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최치원, 김시습, 황진이, 김만중, 이규모, 임춘, 이언적, 이옥 등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활동했던 문인 17명이 이 책에 등장한다.
저자 유채근은 이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이들이 남긴 시나 글을 그 분석의 도구로 삼는다.
"이런 글을 남겼으니 이런 심리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라는 식이다.
논문을 쓰기 위한 분석이라면 분명 신선한 주제가 될 것 같다.
그러나 대중적이지 않다.

 

저자는 이 책 서문을 통해 "과거에 갇혀 있는 미라나 박물관 한구석에 전설로만 기억되는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처럼 욕망하고 갈등하는 구체적 존재로 되살리고자 했다. 과거의 문인들을 온전히 현실로 소환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한낱 호고(好古) 취미나 역사에 대한 관음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며 이 책을 쓴 의도를 밝혔다.
잊힌 역사를 되살려 놓겠다는 의도는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건조하다. 

철이 덜든 사람에게 권하는 책

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서투르다'라는 말을 기분 좋게 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서투르지 않기를 바란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많은 것을
빨리 능숙하게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투르다는게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령 능수능란하게 키스를 하는 이가
첫 키스의 떨림을 다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어버린 이가
처음 축구화를 사서 고사리손으로 그 끈을 묶을 때의 두근거림을
다시 느끼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서툰 이들이여, 서툰 지금을 창피해 할 필요는 없다.
아니, 후일에는 절대 다시 느낄 수 없는 그 느낌을
지금 충분히 만끽하기 바란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필시
서툰 오늘이 다시 그리워질 터이니 말이다.
 

만화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작가 박광수의 에세이 <참 서툰 사람들>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의 제목은 '서투름의 미학'이다.
저자는 서투르다는 것이 세상살이에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너무 많다.
약삭빠르고 기회를 잘 잡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정말이지 정글 같은 세상에서 서투른 사람은 철이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과연 철이 들어야 좋은 것인가?
그래야 훗날 죽음을 앞둔 날, 인생 잘 살았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
그냥 철 들지 않고 아이처럼 순진하게 사는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산 것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 거리를 던져준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아쉬운 점이 생겼다.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 실패한 때문인지 저자는 사랑에 서툰 자신의 처지를 에세이와 사진과 만화로 그려냈다.
마치 저자가 소주를 마시며 넋두리하는 것 같다.
마치 자신만의 세상에서 니힐리즘을 느끼는 것을 엿보는 기분이다. 

'쿠비인 헤밍웨이'가 궁금하다면...

쿠바의 헤밍웨이
힐러리 헤밍웨이.칼린 브레넌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2월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을 찾았습니다.
세기의 사진가라는 유섭 카쉬(Yousuf Karsh)의 사진전을 둘러보았습니다.
다른 사진 속 인물 중에서 헤밍웨이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참 동안 헤밍웨이 사진을 보고도 성에 차지 않아 거금을 들여 사진을 구입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저에게 영향을 준 인물입니다.
특히 그의 작품에 나타난 문체는 흠모의 대상입니다.
초등학생 전부터 그의 작품을 접했지만 지금도 가끔 그의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문체를 하드 보일드(hard boiled)라고 표현합니다.
불필요한 수식을 빼고 거친 묘사로 사실을 표현하는 문학 기법입니다.
직설적이고 짧은 그의 문체는 저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책 <쿠바의 헤밍웨이>를 최근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헤밍웨이의 조카인 힐러리 헤밍웨이와 사진기자이면서 헤밍웨이 연구가인 칼린 브레넌이 공동 집필한 책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 헤밍웨이의 삶을 녹여넣었습니다.
특히 쿠바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책은 낚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헤밍웨이가 낚시광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황새치잡이에 흥미를 가진 헤밍웨이는 평생 낚시를 즐겼습니다.
사냥을 좋아했던 그의 모습도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량입니다.
당시에는 환경이나 동물보호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사냥과 낚시를 비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의 자유분방한 생활은 비판의 대상입니다.
결혼을 4번이나 했을 정도로 여성 편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술도 좋아했습니다.
물론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이 그의 문학세계의 바탕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삶이 본받을만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의 작품은 20세기를 대표할 만합니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이 책은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헤밍웨이는 생활에서 느낀 점을 작품에 그대로 접목시켰습니다.
그의 생활이 담긴 작품 속 내용이 이 책에 인용되어 있어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미국인이지만 쿠바인이기도 합니다.
반평생을 쿠바에서 보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 <노인과 바다>도 쿠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실제 헤밍웨이는 부상으로 받은 금메달을 쿠바에 바쳤습니다.
이처럼 쿠바가 헤밍웨이에게 영향을 준 사실도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사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헤밍웨이의 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생활했던 호텔과 집은 물론 카페와 보트의 모습도 잘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쓴 책이 아닙니다.
따라서 작가로서의 고민과 희열이 없습니다.
대신 그를 지켜본 사람들의 생각과 시각이 있습니다.
평전(評傳)은 아니지만 대문호 헤밍웨이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참고서입니다.
'쿠바인 헤밍웨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외수식 고민 해결법

청춘불패 - 이외수의 소생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9년 5월

성공, 동기부여, 자기계발 관련 책은 재미가 없다.
죄다 좋은 어구와 그럴듯한 논리를 편다.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재미는 없다.
초등학교 때 접했던 도덕 교과서가 재미가 없었던 이유를 떠올리면 그 까닭을 알 것 같다.
 

그 까닭을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설교이다. 
옳은 말이니 따라하는 식이다.
설득은 땅속에 파묻어 버렸고 강요만 활개치고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성인군자의 삶을 펼쳐놓은 것이 전부다.
찬란한 단어를 동원해서 독자를 붕 뜨게 한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또 다른 이유는 뜬 구름 잡는 소리이다. 
돈 많이 번 사람과 성공한 인물은 위대하다.
모진 고통을 참고 이겨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 인물은 그 인물이고 나는 나일 수 밖에 없다.
시공(時空)이 다르고 현실과 환경이 다르다.

 

이외수 작가의 <청춘불패>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수필이다.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수필이다.
설교가 아니다.
뜬 구름 잡는 소리도 아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이 책에는 대학을 졸업해도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청춘에 이외수가 던지는 말이 담겨 있다.
청춘의 고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취업에 고민하고 절망에 몸부림친다.
이외수는 갖가지 고민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을 던진다.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부모를 증오하는 그대에게"
"왕따로 고민하는 그대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대에게"
"돈을 못 버는 그대에게" 등 16가지 청춘의 고민을 작가도 공유한다.
작가도 젊은 시절 같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자살까지도 생각했다고 한다.
희망을 부여잡았더니 인생은 달라졌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섞어 구체적이고, 실천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그 이유를 설명한다.
설명이 현실적이어서 독자가 공감할 만 하다.

 

이외수식 해법이 정답은 아니다.
다만, 고민하는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해법이다.
한 번쯤은 시도할만한 방법이다.

 

이 작가의 책에는 향기가 난다.
책에 향기가 배어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향기가 피어오른다.
청춘의 고민이 이 책의 향기처럼 아름답게 변하면 좋겠다.
참, 작가의 글은 쉽다.
그렇다고 쉽게 읽으면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곱씹으면서 읽으면 좋다.

 

이 책의 삽화는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