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들
최유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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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들 - 최유수 (지은이) 알에이치코리아(RHK) 2024-10-30>


서평단에 응모할 때는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에 쓰여 있는 작가의 이름 혹은 소개글에 매료되어 신청을 한다.

독립출판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라는 멘트를 보고 작가의 이름은 읽었으나, 기억 속 어딘가에 넣어둔 채로, 그렇게 책을 받았다. 앗, 읽다가 넘 좋았던 #사랑의몽타주 작가였다. 헛!! 몰랐다니!!! 사랑의 몽타주를 디자인이음 출판사의 청춘문고 시리즈로 읽었을 때 너무 좋았다. 그래서 기대 가득 안고 읽어나간 글에는 나의 기대를 역시나 져버리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간혹 어떤 책에는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랬다. 어떤 글을 갓 샤워하고 나온 이의 뒤로 욕실 안에 가득찬 수증기에 구석구석 배어있는 비누향이 뒤따라나온 것 같았다. 어떤 글은 카페의 유리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과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의 향이 느껴졌다. 어떤 글은 오랜 시간 만나지 않은,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온 옛친구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의 편안한 시절이 향이 느껴졌고, 어떤 글은 갈색 딱지가 진 상처를 아플 줄 알면서도 떼어내고 또 연갈색의 딱지가 지면 부리나케 떼어내다가 어느 날 문득 다 나은 걸 알았을 때의 시원섭섭한 후련함이 느껴지는 개운한 박하향이 났다. 이게 무슨 향인지 알 것 같은데, 분명 어디선가 맡아봤던 향인데 대상을 찾을 수 없어 계속 고민하는 이의 뒷모습도 느껴졌다.

이 책 참 좋다. 틈틈히 모아두었던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로 나만의 책을 만들었다. 행복한 독서시간이었다.

✴︎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도 좋다. 그저 마음이 흐르는 쪽으로 꾸준히 흘러가고싶다.

✴︎ 오늘의 내가 앞으로 다신 없을지도 모를 이 순간을, 언젠가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참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구나 하는 그런...... 시간이란 게 다 허구 같다. 그리워할 날에도 내가 있고 그날의 내가 그리워할 오늘에도 내가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동네를 더 많이 걸어다니는 일뿐이다. 걷고 느끼고 호흡하고, 차례대로 밀려나는 순간들을 착실히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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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매일매일 심력 충전
루나(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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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홍인혜(루나) (지은이) 미디어창비 2024-10-30>


또 이렇게 한살을 먹어간다.
어렸을 때 한살 한살 먹는 게 즐겁기까지 했던 철없던 어린 내가 있었는데 말이다. 까마득했던 2025년이, 어렸을 땐 애초에 생각조차 안했던 숫자를 가진 년도를 이제 두달이면 만나게 된다.

잘 몰랐다. 하루 하루가 나이의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간다는 걸, 그럴 땐 이런 달력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지. 심력이라는 주제로, 현대인이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마음의 힘을 북돋아주고 길러주고 웃음을 주는 루나파크의 일력. 좋다.

2025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이 스프링 달력(이라 좋다! 이전에 달력을 좀 늦게 뜯었더니 완전 망가진 달력이 있었어서ㅠㅠ) 선물로도 딱 좋은, 특별한 이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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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밤의 달리기
이지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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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밤의 달리기 - 이지 (지은이) 비채 2024-10-21>


이전의 이 작가의 단편소설집 나이트와 러닝을 매우인상깊게 읽었었다. (호불호가 꽤 있던데, 나는 완전 “호”였다.)

이번 소설. 개인적으로 엄청 좋았다. (또 나오는 방어기제, 개인적으로ㅎㅎㅎㅎ)

읽으면서 얼마나 킥킥댔는지(카페에 들고 가서 읽어서 혼자 키득거리느라 혼났다...웃음의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ㅎㅎㅎㅎ), 읽으면서 얼마나 몽글몽글해졌는지,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가늠해보기도 했다. 필사 포인트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쩜 이렇게 소설을 시처럼 적었는지.

인생을 축제처럼 살으라고 휴일이라고 지어주신 나는 시각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연상의 애인 엘과 사귀고 있고, 작업실의 임대료가 올라갈 때마다 옮겨서 지금은 세운상가에 거처를 마련했다. 구 여친 나리의 sns도 엿보고 말이다. 아빠가 게이인 걸 알고 엄마는 나갔고, 그런 아빠는 사업을 하겠다고 돌아다니고, 함께 예술을 하던 친구들은 점차 현실로 나아가고 있고, 어쩌다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백수 형수 형을 만나기도 하고.

와. 이거 줄거리를 적으려니 어렵다.

[청춘에 관한 소설은 많고 많지만,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는 작품은 귀하다. 《노란 밤의 달리기》는 ‘하루키적 경묘함’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한 소설가 ‘이지’의 신작 장편소설로, 을지로 세운상가에 터 잡은 청년 예술가들의 일상을 그린다._알라딘 책소개]

와! 내가 이 작가의 글이 왜 이리 좋나 했더니, 하루키적 경묘함을 갖췄다고 찬사를 받았구나...!!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들을 사랑하는 나에게 이 작가의 글들이 와 닿지 않을 수가 없었네!!

좋았던 문장이 너무 많아서 플래그가 덕지덕지 붙었다. 청춘이란 게 어떤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니고, 정신이 젊어야 청춘이라 한들, 우리가 정의하는 청춘은 20대의 싱그러움과 열정을 갖추고 있는 걸 청춘이라 일컫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는가. 결혼하고 애를 낳고, 가장의 무게가 짊어진 자리에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을 보살피고, 마음을 연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 중 가장 꼽자면, 나의 그 20대 시절 어딘가를 보는 것 같아서, 지나온 나의 열정과 패기와 무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들이 녹아 있어서 일 것이다. 인생이 어떻게 향해갈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그러니까 모르는 것 투성이니까. 그래서 모르니까 사는 거라고. 가족도, 사랑도, 우정도,일도, 인생도.

좀 모호한 리뷰가 되었지만, 아무튼 이 작가의 글들이 참 좋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볼테다.

✴︎ 잡고 있는 엘의 손에 신경을 집중해봤다. 말랑하고 딱딱한 감촉이 마디마디 느껴졌다. 이건 물렁뼈, 이건 미끈액. 엘의 손에 내 손을 얹고 바라봤다. 우리의 마음은 손에 있을까.

✴︎ 사랑은 그렇다. 하리보 같은 것. 인생도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것.


깨알재미, 작가가 의도했을 거 같은데, “나이트러닝”이 깨알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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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따는 사람들 서사원 영미 소설
아만다 피터스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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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 따는 사람들 - 아만다 피터스 (지은이), 신혜연 (옮긴이) 서사원 2024-11-11>


1962년, 막내 동생 루시를 잃어버린 그 여름, 7월에 블루베리를 따러 온 원주민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빠, 엄마, 벤 형, 찰리 형, 메이 누나, 조, 막내동생 루시. 조와 ‘노마’로 살게 된 잃어버린 루시의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아이의 실종에 경찰도 도와주지 않는 그들. 조는 자신이 루시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었고, 루시가 실종된 후에 작은 형 찰리마저 폭력에서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살고, 노마로 살아가는 루시는 자신을 둘러싼 거짓을 미묘하게 감지하면서 살아낸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여동생의 마지막을 봤던 사람이라면, 그 죄책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어린 조처럼 그 죄책감을 평생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어린 딸은 생사도 알 길이 없고, 셋 중 한명의 아들은 폭력으로 사망하지만, 남은 가족이 있고, 살아야 할 삶이 있기에 슬픔 속에 살아가는 아빠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가족이 박탈당한 일상은 어떻게 복구가 될 것인가? 내 부모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친부모가 아니라는 걸 미묘하게 감지할 때마다 노마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자신의 가정을 꾸렸지만 아이를 잃게 되는 경험을 겪으며 자신이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노마.

묻어버린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튀어나오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안쓰럽다. 노마가 엄마의 언니 준이모와 엄마의 자매애를 부러워할 때, 나는 독자이기에 노마가 형제가 많은 걸 알고 있기에, 애초에 없는 선택지라 여기고 부러워하는 것이랑 있을지 모르는 형제자매가 있다는 선택지를 모르고 사는 건 완벽하게 다른 문제라고. 이 하나의 것만봐도 노마가 느꼈을 박탈과 상실과 배신감이 얼마나 절절할까. 라는 생각마저 했다.

망가지는 조의 모습을 다정하게 붙잡아주고 싶었다. 너 잘못이 아니라고.

이들이 좀 더 부숴지지 않기를 읽는 내내 간절히 바랐다면 과언일까? 내 기준 조금만 더 그들이 행복할 수 있었기를 바랐다. 최근에 읽은 #흐르는강물처럼 과 비슷한 결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 책을 감동깊게 읽었던 이에게는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소설책의 병렬독서를 지양하고 있어서 하루에 쭉 걸쳐서 다 읽었다. 마지막에 가서 눈물을 많이 흘려서 일부러 3일 뒤에 적어 담담한 리뷰로 마친다.

✴︎ 운명은 짖궂은 장난꾸러기다. 모든 단서를 마련해 놓고는 당신이 과연 그것들을 조합해 처음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는지 두고 보길 좋아한다.(91)

✴︎ “눈물이 나면 그냥 흐르게 놔둬. 앨리스가 늘 그랬거든. 눈물을 참는 건 오줌을 참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결국 아픈 상황이 생기게 되니까, 나올 것 같으면 그냥 바로 나오게 두는 게 좋다고.”(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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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대체로 누워 있고 우다다 달린다
전찬민 지음 / 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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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대체로 누워 있고 우다다 달린다 - 전찬민 (지은이) 달 2024-10-04>


수없이 많은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뀔 때마다 타인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떨어지는게 아니라 살면서 축적된 인간관계를 통해 생긴 환멸과 혐오로 인해 타인의 생각을 궁금해 하지 않으려는 내가 있었다. 이런 내가 타인의 생각 덩어리인 에세이를 안 읽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은 관심없다(아니 관심없는 척을 하지만) 소설을 즐겨 읽는 나의 밑바탕에는 누구보다 가장 갈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접체험이 아니라 간접체험으로라도 그걸 메우려는 것일지도. 그리고 에세이가 소설보다 좀 더 직접적으로 날 것으로 내게 주는 충격이 싫어서였다. 그런 내게 이런 나의 어줍잖은 편견을 확 깨부순 책이 이 책이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타인이 이야기하는 자신의 삶과 생각에 위로받고, 웃을 수 있구나 라고. 최근에 읽은 에세이 중 원탑. (올해의 에세이를 고르라고 하면 읽은 게 별로 없기에 주저없이 이 책이다)

이 책, (모든 책에 내 기준이라고 적는 이유는 이 책 별로인데?라고 말할 누군가를 향한 나의 방어기제일 것이다.) 진짜 좋았다. 울다가 웃다가 새벽에 갑자기 깨서 불현듯 든 생각을 메모장에 적을만큼.

타국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겪은 일들. 아버지와의 일화, 결혼하게 된 과정, 엄마가 되서 좀 더 멋진 엄마가 되는 모습,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모습. 타국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글들. 자신의 결핍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 그 치열함. 일본 도쿄에서의 20년 차 된 저자의 글이 너무도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반에 나온 자전거 이야기에 최근에 나는 이 나이를 먹고 자전거를 배웠다! 아이의 낮은 자전거를 비틀비틀 거리면서 타지만 행복했다.

✴︎ 아직도 모두가 나를 흔들기 시작하면 영락없이 휘청인다. 때로는 내 자신이 나를 흔들 때도 있다. 휘청이면 어떤가. 빛이 드는 공원의 나무들처럼 뿌리를 잘 내렸다면, 세상의 기준으로 미달이라고 쏟아지는 비교들 속에서 흔들릴 만큼 다시 내 삶을 찾을 수 있다.(178)

✴︎ 늙는다는 건 점점 낡고 색이 바래는 것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것이 불편하고 번잡스럽게 여겨지면 나이들었다는 방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키라 씨는 시간마다 달라지는 하늘의 색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온도, 새로운 곳으로 내딛는 한 발, 처음 맛보는 쓰디쓴 커피 등등 모든 것이 새로우니 아직도 인생이 너무나 낭만적이라며 소녀같이 웃으신다. 80세, 탄생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나이에 그녀는 낭만을 온몸으로 느낀다.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 가운데 가장 흔하고 황홀한 건 낭만이야.”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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