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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평점 :
<건널목의 유령 - 다카노 가즈아키 (지은이), 박춘상 (옮긴이) 황금가지 2023-07-14>
- 무엇을 하든, 누구와 만나든 딱 한 사람이 빠져나간 세상의 결락을 채워주지 못했다.
- 사람에게 혼 따위가 없다면, 이 세상에 표류하는 영혼 따위를 믿지 않는다면, 고인이 묻힌 묘지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일 때마다 대체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인가.
- 마쓰다는 유령담이 생성되는 기본적인 구조를 학습했다. 사실의 오인, 지어낸 이야기, 공포심에서 유래한 집단 심리나 출처를 알 수 없는 헛소문.
- 명품 옷과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한 저 여성에게는 애정이나 안심감, 혹은 도덕, 어쩌면 금전일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한 사람의 삶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왠지 결여된 듯 보였다. 그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닐 테지만, 틀림없이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양지보다는 음지로, 낮보다는 밤으로.
- 마쓰다는 오로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만 소모해 왔던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봤다. “인생은 좀 더 재밌을 줄 알았어.”
- 그녀들이 웃는 이유는 그곳이 웃을 수 밖에 없는 거리이기 때문이리라. 웃음을 지워버리면 더는 살아갈 곳이 없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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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노리오는 한때 잘나가는 전국 일간지 사회부 기자였지만, 2년 전 병으로 아내를 떠나 보낸 후, 월간지 계약기자로 일하고 있다. 아내의 빈자리에 슬퍼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편집장은 이제 계약이 앞으로 두 달 남았으며, 교통사고를 당한 젊은 기자가 낸 기획을 이어 받는다. 소재는 심령특집으로 “유령담” 대학교 철도 동아리에 소속된 학생이 시모키타자와역 승강장을 촬영한 영상으로 유령이 등장했다고 한다. 취재를 시작하는 마쓰다. 그 곳은 건널목에 신원 미상자가 출현해 비상 정지를 자주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여자의 정체를 밝히면서 거대한 뒷배경이 드러나고 실상을 파헤쳐간다.
일본은 사회파 추리라는 분야가 좀 강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은근히 사회파라는 걸 붙힌 소설들이 꽤나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읽어본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로 호불호가 조금 갈릴 것 같긴 한데, 나는 유령의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를 따진다면 믿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있을 때가 있다. 과학이나 팩트를 기반으로 취재하는 이들에게 심령괴담이라니 이건 말도 안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을 중심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 마쓰다가 아내를 병으로 잃고 나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 유령이라도 좋으니까 함께 있고 싶어하는 마음과 유령이라고 생각한 사건을 조사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가능한 것들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마쓰다에게 나는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유령의 실체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추악하고 더러운 사회의 내밀한 속내를 엿보게 되는 마쓰다.한때 사회부 기자였기에 더 구역질 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는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서늘함보다는 개인이 무너져가는 환경과 구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유령의 슬픔이 오래도록 남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