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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지구 산책 - 제15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수상작 ㅣ 웅진책마을 120
정현혜 지음, 김상욱 그림 / 웅진주니어 / 2024년 6월
평점 :
아뜨레토리모, 넌 사랑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알게 됐구나. 너는 특별해서 늘 걱정이 됐었지. (128쪽)
◈ 열두 살 소녀 도예리는 사실 ‘지구에서 10년 형’이라는 죗값을 치루고 있는 외계인 아뜨레토리모 다. 잔잔한 호수 같은 행성 스카우르나에서의 삶은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평온한 삶이었으나, 지구에서 삶은 매일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충동과 함께한다. 예리는 죗값을 채우고 지구를 떠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 이런 예리의 생활에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난다. 강아지 이름은 모리. 예리는 모리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예리에게 늘 조언을 해주는 리스토는 지구에서 지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모리에게 더 이상 감정을 품지 말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예리는 이미 사랑이란 감정을 알아 버렸다.
◈ 제 15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분 우수상인 ‘지구와 모리 산책’은 외계인의 시점이라는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어린이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열두 살 소녀이지만 외계인의 기억을 가진 예리의 목소리는 책을 읽는 독자들과 주인공의 거리를 멀찍이 떨어트려 놓는다. 이 책의 주인공과 독자는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타자이다.
◈ 그러나 멀찍이 시작한 주인공과 독자의 관계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점차 가까워지고 만다. 친구 관계, 부모와의 갈등 문제로 지구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예리, 즉 아뜨레토리모의 모습에 현실의 고민과 갈등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어린이의 목소리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외계인이지 지구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나’가 중심인 어린이의 세상을 만난다.
◈ 독자적이고 타인과의 감정 교류가 없는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려던 예리의 계획은 아주 작은 강아지 모리로 인해 깨어지고 만다. ‘나’가 중심인 평온한 세상에서 벗어나 타자를 인식하고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 세상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예리는 결국 고향인 스카우르나가 아닌 지구에서 사는 삶을 선택한다. 예리의 선택은 갈수록 타인과의 교류를 줄이고 혼자인 삶을 선호하는 오늘 날 시대에 유의미한 물음을 던진다.
◈ 독특한 화법으로 기존의 SF 동화의 목소리를 벗어던진 이 책은 타인의 목소리가 점차 나의 목소리로 전환되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담아냈다. 타자의 눈으로 바라본 시선이 어느새 나의 시선과 닿을 때, 우리는 나의 삶을 타자의 시선처럼 더욱 깊이 있게 볼 수 있다.
◈ 독특한 화법과 신선한 이야기로 독자의 흥미를 일으키는 이 책, 눈 여겨 볼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