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이에요
지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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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만 살이에요.
백만 년 일 일. 어? 콩이 변했어요.
백만 년 십구 일. 일곱 개의 콩잎이 나던 날 알이 깨졌어요.
나는 새에게 인사해요. 안녕.

◈ 돌 하나가 있다. 돌은 백만 년 동안 한 자리에 머물렀다. 그런 돌 곁에 콩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일곱 개의 콩잎이 나던 날, 돌의 다른 한 쪽에선 알이 깨지고 새가 태어났다. 콩이 무럭무럭 자라고, 새가 날아가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동안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 지우 작가의 감각적인 그림책이다. 오랜 시간이 쌓여 생긴 돌과 땅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이 책은 색과 패턴, 질감의 표현이 남다르다. 마치 실제 지층과 화석을 연상시키는 듯한 그래픽의 표현은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의 입에서 연이은 감탄을 이끌어낸다. 단순한 그림과 대조되는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질감과 패턴은 이 책을 쉽고도 깊이 있게 만들었다.

"발끝에 차이는 돌들 중에 저보다 짧은 생을 산 돌은 없습니다. " - 작가의 말 중-

◈ 지우 작가님은 발끝에 채는 돌의 시간을 떠올리며 이 책을 만드셨다고 한다. 오랜 시간 묵묵히 한 자리에서 변하지 않고 머무르는 존재. 그러한 존재가 바라보는 변화의 이야기가 무척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와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기에 어려움이 없다. 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재미만으로도 아이들의 눈빛은 충분히 반짝거린다.

◈ 백만 살의 돌이 본 세상은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여름 장대비에 떨어진 떡갈나무 이파리, 어느 소년의 물수제비, 이백 삼십 번째 고사리 포자, 세차게 땅을 치던 아이들의 줄넘기 줄, 태어난 지 십일 된 애벌레의 꿈틀거림. 옆 산에서 날아온 민들레 홀씨.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존재의 곁에선 늘 꿈틀거리는 생명의 역동이 있었다. 이렇게 쉼 없이 변하고 움직이는 모든 시간이 쌓이고 쌓여 변하지 않는 가치에 쌓여간다. 길을 가다 문득 눈에 보이는 돌 하나를 가만히 집어 보자. 이 돌에 쌓인 시간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이 돌은 무엇을 보았을까. 돌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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