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적 사랑은 수평적 사랑으로 돌려드려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새 계명에는 하나님 사랑이라는 수직적 계명이 빠져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수직적 계명의 자리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십니다. 하나님 께 받은 사랑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리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수직적 계명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 드리는 사랑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고, 그 사랑을 받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받은 수직적 사랑을 수평적 사랑("서로 사랑")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 전체의 방향 전환을 선언하는 대목입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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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선행과 정의는 수직적 거룩의 필수요건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이사야 1:16- 17). 여기서 "선행"과 "정의"는 단지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로 제시됩니다. 수평적 관계의 온전함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에게 요청되는 특질입니다
이사야는 거룩의 본질을 수평적 정의 회복에서 찾습니다. 예배가 이웃을 외면한 채 이루어질 수 없음을, 수직적 예배의 진정성은 타자와의 수평적 관계 속에서 입증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분명히 거룩의 수평성을 강하게 외치는 예언자입니다. 그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다. 정의를 회복하라. 그래야만 너희의 예배가, 너희의 기도가 다시 들릴 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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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를 환대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열린 수평적 태도는 수직적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나 고대 가나안에서의 ‘환대‘(hospitalisy)란 타인의 인정을 받고 공동체 안에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이 아니다. 낯선 이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던 환경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의 생명을 살리려는 것이 환대였다. 환대의 문화가 신적 명령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약육강식 세계가 된다 성경은 낯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태도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명확히 구분한다. 타인에게 열린 수평적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믿음의 표현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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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동성애이기 전에 폭력이다. 이방인에 대한 거부감, 환대의 결여였다.


창세기 18장의 아브라함은 낮의 열기를 무릅쓰고 달려 나가 낯선 이를 맞이하고, 창세기 19장의 롯은 밤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방인 을 지켜 내며, 사사기 19장의 노인은 아무 연고 없는 나그네를 위 해 자기 집을 개방합니다. 반면 소돔 사람들(그리고 베냐민 지파)은 외부인을 배척하고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진노하신 진정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예언자 에스겔 과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비판한 ‘소돔의 죄‘가 바로 이것이기도 합 니다. 환대를 거부한 사회, 타인을 항해 문을 닫고 폭력을 정당화 한 공동체는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고발입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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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을 보는 새로운 시각. 퍼져나가길 원하셨던 하나님, 한곳에 모여 하나 되길 원했던 인간.

그러나 이 이야기를 수평적으로 읽으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하나의 언어 사용이 오히려 문제였다고 읽힙니다. 하나의 언어는 인간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됨은 땅을 가득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홀어지지 않기 위해 도시를 만들고, 성을 세우고, 탑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어를 섞으십니다. 언어를 섞으심으로써 사람들을 흩으십니다. 그 흘어짐은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실현되는 방식이었고, 언어를 다양하게 만드신 것은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었습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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