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게놈 스릴러.
태반의 주연 단백질이 바이러스의 자식이었다니..

태아와 모체의 경계에 해당하는 태반에서는 어떤 단백질이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신사이틴syncytin이라는 그 단백질은 이 접경지대에 진을 치고 분자 교통경찰로 일하면서 모체와 태 아가 영양분과 노폐물을 교환하는 것을 돕는다. 여러 연구가 보 여 주듯이 이 단백질은 태아의 건강에 필수적이다.

(유전 코드) 데이터베이스 와 대조해 보니 신사이틴은 어떤 동물에 있는 어떤 단백질과도 비슷하지 않았다. 식물이나 박테리아에도 비슷한 단백질이 없었 다. 컴퓨터상에 일치한다고 나온 서열은 놀라운 한편으로 당혹 스러운 것이었다. 신사이틴 서열은 바이러스의 서열과 비슷했 고,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와 여러 군데가 동일했다. 도대체 왜 HIV와 같은 바이러스가 포유류의 단백질, 그것도임신에 필수적인 단백질과 비슷할까?
신사이틴을 조사하기에 앞서 연구자들은 먼저 바이러스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었다. 바이러스는 분자 크기의 기생자로 숙주를 속인다. 그것의 게놈은 감염과 번식에 필요한 장치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제거되어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침입하면 핵으로 들어가 숙주의 게놈에 끼어든다. DNA에 잠입하면 숙주의 게놈을 접수해 자신의 사본을 만들고, 숙주의 단백질 대신바이러스 단백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감염된 숙주 세포는 수백만 개의 바이러스를 생산하는 공장이 된다. HIV 같은 바이러스는 한 세포에서 옆에 있는 다른 세포로 퍼져 나가기 위해 숙주세포들을 이어 붙이는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의 역할은 세포들을 서로 붙여서 바이러스가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것이다. 이를 위해 그 단백질은 세포 사이의 접경지대에 자리 잡고 교통정리를 한다. 어디서 들어 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그럴것이다. 신사이틴이 인간의 태반에서 똑같은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신사이틴은 태반에서 세포들을 이어 붙여 태아 세포와 모체 세포 사이를 오가는 분자들의 교통을 정리한다.
조사하면 할수록 신사이틴은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는 능력을 잃은 바이러스 단백질처럼 보였다. 포유류 단백질과 바이러스 단백질이 비슷하다는 이 사실에서 새로운 가설이 도출되었다. 아주 먼 옛날 한 바이러스가 우리 조상들의 게놈에 침입했고, 그 바이러스는 신사이틴의 원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
이러스는 우리 조상들의 게놈을 탈취해 자신의 사본을 무한히 만드는 대신 무력화되어 감염 능력을 잃고 새 주인이 시키는 일 을 하게 되었다. 우리 게놈은 바이러스와의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사례의 경우,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바이러스에서 감염에 필요한 부위가 무력화되 었고 이에 따라 바이러스는 태반을 위해 신사이틴을 만드는 일 을 하게 되었다. 즉, 숙주의 게놈으로 신사이틴 단백질을 들여온 바이러스가 숙주의 게놈을 탈취하는 대신 반대로 자신의 게놈을 해킹당해 숙주를 위해 일하게 된 것이다.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