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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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한마디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호메로스로 건져 올리는 삶의 해답"
오디세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와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그는 10여년 간의 트로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승전고를 울린 후 고향길에 오르던중 키클롭스, 세이렌, 키르케, 칼립소 등을 만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무려 20년이라는 한 세기를 그의 왕국을 떠나 있다 비로서 고향길에 오른다.
우리가 오디세우스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신들과의 전쟁에서 그가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영웅담을 듣기 위함도 아니다. 수천년의 세월의 시간속 그의 지혜(철학)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뚜렷하고도 명확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핫한 영화와 책 그리고 많은 이야기로 화자되고 있다. 나는 이번에 서평에 당첨되어 글을 남기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 책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세 권을 서점에서 구입해서 딸 남자친구와 그리고 지인의 자녀에게 줄 생각으로 포장까지 하고 있다.
한 인간인 오디세우스를 통한 삶의 지혜는 어디서든 엿볼 수 있다. 가족과도 같은 전우를 잃었을 때 그 패배 속 상실과, 좌초된 배 안에서의 순간적인 지혜,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결단의 번뇌, 그리고 홀로남겨져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기기까지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칼림소와 7년이란 시간동안 달콤한 유혹과 안락함의 평안을 뒤로 한채 자신이 가야할 목표의 방향을 잃지 않은 것은 불멸의 삶이 아닌 유한한 인간의 삶으로 진정한 나다움과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왕궁을 지키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단순한 진리에 불과했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들에 맞서 한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갖고도 위대한 통찰력과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초라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며 살고 있나... ...
무한한 능력을 가진 포세이돈, 아테나, 제우스, 헤르메스 등의 신은 목젖이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곤 하나뿐인 목숨을 가진 인간을 단숨에 집어 삼키려 한다. 세상은 이렇듯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들과 같이 두렵고 무섭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와 같은 지혜의 통찰력만 있다면 어떠한 재앙 앞에서든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이다.


PART :1. 고난을 수용하라
인간의 삶이 언제나 승리만이, 평화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삶은 고난도 찾아온다. 그 고난이 찾아 왔을때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난다. 고난은 분노를 일으키며 분노는 언제나 화를 자초한다. 그래서 패망의 선봉이 되고만다. 분노 또한 한 인간의 감정이기에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난으로 인한 분노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용이란, 항복이 아니다. 자세이다. 잠시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왜 분노하고 이 고난이 왜 찾아왔는지를 생각하면 그 고난가운데 피할 길이 보이고, 해결책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 누구도 나의 분노에 동참할 수 없다. 나의 감정일 뿐 내 손에 있는 노를 절대 놓지말고 폭풍우속 나침판을 두눈 똑바로 뜨고 처다보며 나아가야할 방향을 잘 알아야 한다.


PART :2. 유혹을 경계하라
오디세우스는 한 나라의 왕이었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보좌진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 앞에는 폭풍우와 거대한 거인인 여섯개이 목을 가진 괴물이 있다. 과거의 왕관과 귀금속이 지금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상실의 아픔속 과거에 얽메어 있지말고 파멸을 부르는 그 노랫소리에 귀를 다시금 뜰어막고 환상에서 깨어나충동질 하는 유혹의 결박가운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유혹을 경계하려면 철저히 고독해져야 한다. 자기 인생의 선장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갖고 유혹을 경계해 달콤한 유혹의 손길에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지를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PART :3. 희생을 감수하라
무엇에든지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면 그에 따르는 희생, 상실, 두려움은 잊어야 한다. 지나간 것에, 버려진 것에, 두고온 것에 미련을 두면 목표가 흐려지고 앞으로 한 걸음 전진이 아닌, 퇴보이다. 희생을 감수하라는 말이 매섭게 들릴 수도 있다. 그 희생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않고 잊기 힘들다면 그러면 침묵으로 일관하면 된다. 침묵은 금보다 무겁다. 그 기나긴 침묵소 그 깊은 밑바닥에서 다시금 샘솟는 희망과 열정은 자신의 것이 되어 다시 살아날 것이다. '희생할 것을 감수하라'


PART : 4. 심연을 응시하라
심연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깊이를 모른다. 그 깊이는 어딘지 모르게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그 심연의 깊이만큼의 울림과 진동은 굴직한 내면으로 흘러나온다. 대부분의 사람을 힘든시기가 찾아오면 그 무언가로 덮고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러다 엉뚱한 방향으로 그 화살이 돌아가곤 한다. 그러나 외부와의 단절된 심연의 깊이에 빠져본 사람은 진짜 위기의 순간, 헐벗고 초라한 순간, 인간의 한게에 도달한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비로소 용기있게 그 문제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
우리 내면애도 저마다의 하데스가 있다. 그 치유되지 않은 슬픔과 마주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슬픔을 통과한 웃음은 그렇게 얕지 않다. 심연을 똑바로 정확하게 응시한 자만이 천천히 그리고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다. 어떠한 폭풍우 속에서도... ...


PART : 5. 이타카를 탈환하라
'이타카'는 오디세우스의 고향이자 그의 왕국이다. 얼마나 돌아가고 싶었을까... ..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이뤘다 그러나 20년 이라는 세월속 늙고 병든 걸인 노인의 모습으로 그의 이타카로 발을 옯겼다. 그러나 그는 치욕적으로 그의 이타카로 향하지 않았다. 그의 조용한 위장 속 거짓이 아닌 전술로 그는 그의 반역자들을 맞이한 것이다.
승리를 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소란스럽게 해명한다든지 변명하며 시시비비를 가릴 시간이 없다. 비록 치욕적인 상황이지만 반격의 화살을 당길 타이밍은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자신을 반겨주리라 생각했다면 그는 왕실 문앞에서 반격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지만 치명적인 귤욕은 그 감정을 잠시 삼키고 복수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에서는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그 물음에 일일이 답하고 또는 묵상하면서 나의 '이타카'는 무엇이며, 어디인지를 그리고 트로이 전쟁중 승리를 얻은 후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리고 고향으로의 귀향길에서 순탄하지 않은 인생에 과연 나는 나만의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는지에 관한 끝없는 질문에 삶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내 삶의 키를 쥐고 있는 그 분을 많이 묵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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