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15 - 고려시대 강종~공양왕 편 맹꽁이 서당 15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안녕하세요. 마침내! 맹꽁이 서당의 15권만쓰면 맹꽁이 서당 책을 마스터!! 하지만 이런 한국사는 다시 못볼수도 있는데.... 암튼 힘차게 오늘은 충선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충선왕 : 초명 원(謜), 휘 장(). 자 중앙(). 충렬왕의 아들. 어머니는 원나라 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 비는 원나라 진왕() 감마라(刺)의 딸 계국대장공주(薊  ), 조인규()의 딸 조비(), 서원후(西) 영()의 딸 정비(), 홍규()의 딸 순화원비() 등이었다.

1277년(충렬왕 3)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 원나라로부터 특진상주국 고려국왕세자()의 호()를 받았다. 1297년(충렬왕 23) 충렬왕의 총애를 빙자, 횡포가 심하던 궁인 무비()와 환관() 도성기()·최세연() 등 40여 명을 죽여 궁중의 기강확립을 기도했다.

이 때 충렬왕은 정치에 흥미를 잃고 있었으므로, 무비 등을 죽인 사건을 계기로 1298년 충선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즉위하자 정방()을 폐하는 등 관제를 혁신하고, 권신이 소유한 광대한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군제()·세제()를 정비하고 원나라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로 원나라와의 사이가 원만치 못하였고, 곧 이어 원나라 사신에게 국새()를 빼앗기는 사태가 벌어져 선위 7개월 만에 왕위는 다시 충렬왕에게로 돌아갔다. 충선왕은 원나라에 소환되었는데, 이 때 간신 왕유소() 등이 충선왕을 아주 폐하고, 그 대신 서흥후() 전()을 그 후사()로 삼으려는 공작을 했다.

1305년(충렬왕 31) 원나라의 성종()이 죽고, 그 후 황위() 쟁탈전이 일어났는데, 충선왕은 승자가 된 무종()을 도왔으므로 그 세력의 힘으로 왕유소 일당과 서흥후 등을 제거하였다. 1308년 심양왕()에 봉해졌고, 같은 해에 충렬왕이 죽자, 귀국하여 다시 왕위에 올랐다. 복위 후 기강의 확립, 조세의 공평, 인재 등용과 공신자제()의 중용, 농·잠업의 장려, 동성결혼의 금지, 귀족의 횡포 억제 등 과단성 있는 혁신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정치에 싫증을 느껴, 제안대군() 숙()에게 정치를 대행하게 하고 원나라로 가 전지()로써 국정을 처리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각염법(榷  )을 제정하여 소금의 전매를 단행하여, 그때까지 사원()과 권문세가()에서 소금을 독점하여 폭리를 취하는 것을 막았다.

1313년(충선왕 5) 아들 강릉대군(:충숙왕)에게 전위하고 계속해서 연경()에 머물러 만권당()을 지은 뒤 내외의 고금서적을 수집하였으며, 이제현(:고려인) ·조맹부(頫:원나라 사람) 등 대학자를 초빙하여 고전 연구에 몰두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원나라의 환관 임파이엔토그스[禿]와 틈이 생겨 그의 참소로 토번()에 귀양갔다가 이제현 등의 간절한 소청으로 3년 만에 풀려나 돌아왔다. 1325년(충숙왕 12) 5월에 원나라에서 죽었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능은 덕릉(:)이다. 


아하! 성종이 고려 제 26대 왕이었구나! 나는 오늘 이 책을 읽고 충선왕이 고려 제 26대 왕인 것 을 알아서 기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나도 이런 책들말고 다른 한국사책들을 읽고 싶어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1-26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잖아, 지희 15개야!

납득이되여? 2011-01-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가 쓴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