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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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받아들이기 조심스러운 내용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런 내용이 담긴 책도 선뜻 뽑아들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언제나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좀 더 죽음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창비 소설Q 프로젝트의 마지막 미션으로 이 책을 받아 첫 장을 넘겼을 때, 나는 익숙한 서늘함을 느꼈다.

혹 가볍고 유쾌한 소설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덮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은 누군가의 끝없는 절규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짧은 호흡이지만 쉴 틈 없이 연속적으로 나열되는 문장들, 그 안에는 모순이 가득하지만

완전히 모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성적인 두뇌로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다 보면

머릿속을 가득 채워오는 물음표에 나까지 미쳐버릴 것처럼 괴롭다.

작가가 말하려는 게 뭘까? 하고 한 발짝 물러서니 그제야 읽혔다.

안에 담긴 건 '괴로움'이었다. '고통'이고 '절규'였으며 독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구조 신호였다.

끝없이 그녀를 잠식해오는 슬픔과 우울, 고통에 '죽음'이라는 끝없는 연주를 하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다고, 누군가 이 죽음의 연주를 멈춰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연주를 멈춘 것은 누구였을까? 무엇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그녀는 살아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예술',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채 죽은 예술가들이 나중에야 유명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슬픔과 어둠, 고통이 가득한 작품을 두고 아름답다고, 멋있다고 말하는 것이

묘하게 잔인하면서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그게 맞는 걸까?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잘은 모르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그렇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이 훌륭하다, 잘 쓴 책이다를 논하기보다

당신 주위에도 이렇게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그리고 그 사람들의 마음엔 이런 생각들이 가득 차 있기도 하다는 걸 알고 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멈추기를, 그리고 당신이 그 사람들의 죽음을 멈춰주기를 바라지 않았나 생각한다.

본문 중에서 마음에 확 꽂혔던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그리고 기적은, 내가 배우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을 단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언젠가 당신에게 '기적'이라는 단어가 일상이 되고,

그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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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싱고(신미나)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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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수필보다 짧은 것이 시인데, 어쩐지 가장 거리감이 느껴지던 것도 시인 것 같아요.

시라고 하면 시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의미 이상의 것들을 찾아내야만 할 것 같았고, 짧은 내용 안에 많은 것들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는 것도 부담이 됐죠.

물론! 이 모든 게 다 시에 대한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청소년"이라는 시절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특히 그 친구들의 "마음"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인지 창비에서 이 책의 서평단을 뽑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꼭 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청소년과 마음, 거기에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가 더해지면 어떨지 정말 궁금했어요!

책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 학교에 다니게 된 잔디와 천상계의 영물 해태의 만남 이후로 이루어지는 잔디의 학교생활을 담고 있어요.

매 챕터, 시 한 편과 어우러지는 소주제들이 풍성히 담긴 이 책은

마치 직접 이 시를 쓰기라도 한 것처럼 시의 내용들을

다정하고 편안하게 담아내고 있어요!

처음 사귀게 된 친구와 실내화 한 짝을 바꿔 신은 것 뿐인데 마치 구름 위에라도 올라탄 것처럼 마음이 들뜨고 더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아마 느껴본 분들은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담은 시가 있었다니?!

'내가 정말 시를 어렵게 생각했었구나' 했답니다~

사랑에 빠져 마음이 콩콩 뛰는 걸

마음 속에 요정이 들어와 작은북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풋풋한 중학생 잔디의 첫사랑과 요정의 북소리라는 표현이 만나 한층 더 동화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예요!

중간중간 등장하는 해태의 이야기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길고양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해태의 바람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고 번번히 거절 당하는 해태. 거리의 냥아치(?) 무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속이 잔뜩 상한 해태와 '해도 지고 나도 졌다'는 표현이 너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는

내 마음의 문장성분에 대한 스토리예요!

잔디의 주변인물들을 각각 주어, 서술어, 관형어, 부사어, 보어, 독립어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데 하나하나가 너무 주옥같이 아름답고 공감이 됐어요!

문법으로 배웠던 문장성분은 무지 골치 아팠던 것 같은데 이렇게 만나니 굉장히 새롭고 좋더라고요~

국어시간에 내 마음의 문장성분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찾아보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도 참 재미있을 것 같아요!'안녕, 해태'는 제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고 즐거웠던 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저처럼 '시'라는 것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시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도 내 마음 속에 있는 시를 찾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시간이 되었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런 분들께 시가 어렵지 않다는 걸!

이렇게 재밌고 가볍게도 읽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당.

우리 같이 내 마음의 시를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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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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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을 뛰게 만들던 이름이 있다.

나에겐 샤이니가 그랬고 여기 소설 속 파인캐럿에겐 제로캐럿이 그랬다.

'그랬다'는 말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내게 이미 지나간 사랑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의 무대와 그들의 노래를 사랑했던 그 시간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 대체 어떤 식의 이야기를 맞이하게 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에 대한 팬픽작가의 팬픽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고?

이런 식의 글도 있을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만난 이 소설은 기대 이상이었고

앞으로 더 진행될 창비의 소설Q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 멤버의 탈퇴와 한 멤버의 영입으로 4명이 된 제로캐럿.

멤버들 중 두 명만 알고 있는 제로캐럿의 완전한 해체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된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이야기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그들의 오랜 팬인 파인캐럿의 시점에서

콘서트를 맞이하고 그 콘서트가 진행되어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총 7편으로 구성된 팬픽은 언뜻 보면 소설의 메인 줄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이 보인다.

같은 이름과 외형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형태로 존재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사랑을 담고 있는 그 이야기들은 제로캐럿 멤버들을 향한

파인캐럿의 애정이 느껴지는 캐릭터 묘사와 문체가 인상적이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달까?

하지만 소설<라스트 러브>의 메인 이벤트는 역시 제로캐럿의 단독 콘서트이다.

원년 멤버 중 유일하게 재계약을 하게 된 다인, 뒤늦게 제로캐럿에 합류하여 계약기간이 남은 마린,

그리고 콘서트가 막을 내리면 제로캐럿의 이름과 함께 사라질 준과 루비나.

그들이 꿈꾸던 모습과는 다른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각 멤버들의 서사와,

그런 제로캐럿의 처음과 끝을 함께 맞이하게 된 오랜 팬 파인캐럿의 이야기는

멤버 마린의 극성팬 온리마린의 극단적인 행보와 만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 7편의 팬픽은 서로 다른 걸그룹 혹은 솔로 여성 보컬의 노래를 제목으로 하여

그 가사를 첫 장에서 일부 인용하고 있는데

같은 노래를 들어도 이런 스토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새삼 노래가 가진 힘에 대해 실감하게 한다.

한편,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라스트 러브"는 제로캐럿의 데뷔곡이기도 하면서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주 의미있는 곡이다.

"혹시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내 이름을. 우리의 이름을"

로 시작하는 가사는 수많은 아이돌들이 대중을 향해 묻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 자신이 마지막 사랑이길 바라듯이

그들도 그렇지 않을까?

시간이 오래 오래 흘러

우리가 지난 날의 반짝임을 잃고, 희미해져 갈 때

끝까지 나를 기다리고 기억해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아주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말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사랑을 가벼이 여기며 조롱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누구도 그 사랑의 무게며 가치를 함부로 매길 수 없다고.

파인캐럿의 마지막 팬픽 속 주인공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게 파인캐럿 자신이라는 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나의 욕심이 아닌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내가 더 아픈 길을 택하고,

상대방의 사랑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랑.

누군가는 그런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건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던

아이돌 팬의 사랑일 때도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샤이니 생각이 났다.

아이돌은 커녕 연예인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게 친구가 우연히 들려준 노래 하나가 내 삶을 바꿔 놓았었다.

들었을 때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마음이 찡해

눈물이 날 것 같은 노래를 부르던 그 빛나던 사람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놓아 외치던 그 이름, 그 노래들.

그때 그 사람들은

나에게 세상 누구보다 반짝였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들, 나의 라스트 러브.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 때문에

종종 마음이 슬플 때도 있지만, 아마 그는 내 마음 한 구석에서만큼은 오래도록 살아있을 것이다.

이 책 라스트 러브가 당신에게 그런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어떤 이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그들의 사랑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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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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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제목을 보고 막연히 추측한 책의 내용은 언니에게 무언가를 잘못한 동생이 뒤늦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스토리였다.



물론 완벽하게 틀렸다.



첫 장을 펼쳐 책의 주인공들이 제니, 제야인 걸 머릿속에 입력하고 그 책을 덮기까지 나는 제목의 '이제야'가 '이제서야'의 의미만이 아니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 정도로 이 책은 흡인력이 있어서 다른 잡생각은 할 수도 없게 만들어 버린다.



분명 자기 전, 잠깐 읽다 잘까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던 책인데, 지독하게 아프고 슬프면서 담담한 제야의 이야기는 마치 그녀가 내 앞에 있는 양 생생해서 감히 그녀의 말을 끊을 수 없게 했고 결국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제야에게 벌어진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누구에게도 없었으면 하는 일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믿었던 가까운 사람의 배신.

성폭행.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향한 질책.



왜 항상 상처 입는 건 피해자일까?

왜 사과를 하는 건 진정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사과하지 않아도 될 사람일까?



소설 속에서 제야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들은

고요히 다가와 심장에 꽂힌다.



일기라는 틀 안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줄줄이

이어진 현실감 있는 문장들은 그래서인지 더더욱 부드럽게 읽히고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장면이 그려졌다.



읽어낸 양이 읽을 양보다 많아질수록

마음이 애달파오고 보이지 않는 제야를 응원하게 되었다.



부디 주변의 말들이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알았으면..

제야마저 자신을 상처 입히지 않았으면,

제야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그 생각을 놓지 말았으면

자신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제야는 강해지고 싶다고 했다.

수도 없이 흔들렸고 무너졌지만

끝끝내 일어섰고 그녀가 강하다는 걸 증명해냈다.



마지막 제야의 편지를 읽고 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 혼자 아파하고 있을 수많은 이제야들이

이 책을 만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들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괜찮은 어른이 되어 이런 끔찍한 일을

아무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싶다.

상처 입은 제야들의 피난처가 되어주고 싶다.



실은 나는 사회복지사 1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고통 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만 쉽지 않다.

재미있다고 보긴 많이 어려운 내용들을 매일같이 마주하느라 힘들고 지쳐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사명감이 타올랐다.



나도 그녀처럼 애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제야를 위해.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어쩌면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는

이제야 당신에게 말한다.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예요.

당신이 행복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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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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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재난과 관련된 작품들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꽤 많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좀비물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조금 달랐다.

구독해 놓은 창비 블로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표지부터 강렬했다.

더군다나 이 작가가 인류로부터 빼앗아간 것은 다름 아닌 '물'이었다.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인 물을 건드릴 생각을 했다는 것은

그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해 상당히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 보였다.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갔고 이런 기대감을 담아 응모한 것이 당첨되어 발 빠르게 이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사람이 물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끽해야 1주일.

그 시간에 대한 내용으로 이만큼이나 쓸 수 있다고? 더 기대가 커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는 데도 1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들 때문에 비는 시간 짬짬이 읽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정도 걸렸지만,

마음 잡고 읽으면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 얼른 다 읽고 싶을 정도로 뒷 내용이 궁금하기 때문에.



이 책의 메인 캐릭터들은 10대이다. 10대와 생존은 어쩌면 굉장히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흔히들 10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감정적인 모습, 충동적인 모습,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모습은 생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만한 덕목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런 아이들의 성격적 특징을 활용하여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얼리사이다.

고교 축구팀에 속해 있는 여고생. 통상적으로 그려지는 여고생 캐릭터랑 다른 점이 인상적인 캐릭터이다.

여성, 특히 10대인 경우 굉징히 감정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얼리사의 경우엔 오히려 이성적이고 차분한 캐릭터라는 점이 특별하다. 그러면서도 10대 생존 멤버들 중 가장 인간성이 남아 있어, 생명과도 같은 물을

나눠 주고 본인이 목말라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동생을 위해 물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다. 경계심이 높고,

개릿에 대한 보호 본능이 투철하며 집단의 정신적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



얼리사의 남동생인 개릿은 소설 속에서 가장 순수한 캐릭터이다. 멤버 중 가장 어려서 간혹 철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정이 많다. 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높은 편이다. 개릿은 겁이 많은 편인데,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 나쁜 자식의 팔 정도는 물어뜯을 줄 아는 용감한 아이이다.



켈턴은 전형적인 너드 스타일이다. 단수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재난을 준비해온 특이한 집안의 막내 아들이어서도 있지만, 다방면으로 박식한 두뇌파 캐릭터이다. 그러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투른 타입. 얼리사를 좋아한다. 평소 부모님의 말을 잘 거스르지 않는 켈턴임에도 불구하고, 얼리사 남매를 돕기 위해 위험과 부모님의 질타를 무릅쓰는 의리 있는 캐릭터이다. 한편, 본인은 본인이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철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나, 사람들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는 편이다. 조심성이 많은 편이지만, 가끔 중요한 상황에서 실수해버리는 허당 캐릭터.



재키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분량이 한정적이어서인지 재키에 대한 사연이 많이 나오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울 정도이다. 얼리사와 켈턴이 다니는 미션비에호 고등학교 중퇴자로 대학 입학시험 고득점자 중 만점에 가까워 교무실에 상패가 있을 정도로 뛰어난 두뇌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방탕한 생활 중.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사는 것, 차 훔치기 등의 불법행위를 일삼고 있다. 멤버의 최연장자이지만 실질적 주도권을 잡고 있지는 않다.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 스타일. 멤버 중 가장 매정했던 캐릭터이지만 아이들과 지내면서 인간성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헨리는 가장 뒤늦게 합류한 캐릭터이다. 마침 휴가를 떠난 부모님을 대신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철없는 막내 아들로 엄마가 다단계를 하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주문해 쌓아두었던 비싼 물을 팔며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그러다 삼촌과 그의 사륜 구동 트럭을 찾아 헨리의 집 근처에 오게 된 얼리사 무리를 만나 그들과 합류하게 된다. 잠깐동안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였으나 뒤통수를 아주 세게 때린다. 굉장히 기회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이며 배신의 아이콘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얄밉고 재수 없지만 끝까지 생존하는 타입의 캐릭터이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론 단수사태로 인해 사라져 버린 물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작가는 그 재난 상황 속에서 마찬가지로 점점 사라져 가는 인간성과 그 가운데서도 인간성을 유지하는 놀라운 사람들, 그리고 결국 그 적은 사람들을 통해 희망의 불씨를 피워내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과연 벼랑 끝에 몰린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책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였다면 인간성을 저버리고 오로지 물을 원하는 본능에 사로잡힌 워터좀비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교훈적인 시간이었다.

성장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후속작을 만들어 주면 나는 또 이 책을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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