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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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을 뛰게 만들던 이름이 있다.

나에겐 샤이니가 그랬고 여기 소설 속 파인캐럿에겐 제로캐럿이 그랬다.

'그랬다'는 말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내게 이미 지나간 사랑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의 무대와 그들의 노래를 사랑했던 그 시간은 여전히 나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 대체 어떤 식의 이야기를 맞이하게 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에 대한 팬픽작가의 팬픽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고?

이런 식의 글도 있을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만난 이 소설은 기대 이상이었고

앞으로 더 진행될 창비의 소설Q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두 멤버의 탈퇴와 한 멤버의 영입으로 4명이 된 제로캐럿.

멤버들 중 두 명만 알고 있는 제로캐럿의 완전한 해체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된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이야기의 또다른 주인공이자 그들의 오랜 팬인 파인캐럿의 시점에서

콘서트를 맞이하고 그 콘서트가 진행되어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총 7편으로 구성된 팬픽은 언뜻 보면 소설의 메인 줄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이 보인다.

같은 이름과 외형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형태로 존재해,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사랑을 담고 있는 그 이야기들은 제로캐럿 멤버들을 향한

파인캐럿의 애정이 느껴지는 캐릭터 묘사와 문체가 인상적이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달까?

하지만 소설<라스트 러브>의 메인 이벤트는 역시 제로캐럿의 단독 콘서트이다.

원년 멤버 중 유일하게 재계약을 하게 된 다인, 뒤늦게 제로캐럿에 합류하여 계약기간이 남은 마린,

그리고 콘서트가 막을 내리면 제로캐럿의 이름과 함께 사라질 준과 루비나.

그들이 꿈꾸던 모습과는 다른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각 멤버들의 서사와,

그런 제로캐럿의 처음과 끝을 함께 맞이하게 된 오랜 팬 파인캐럿의 이야기는

멤버 마린의 극성팬 온리마린의 극단적인 행보와 만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또 7편의 팬픽은 서로 다른 걸그룹 혹은 솔로 여성 보컬의 노래를 제목으로 하여

그 가사를 첫 장에서 일부 인용하고 있는데

같은 노래를 들어도 이런 스토리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새삼 노래가 가진 힘에 대해 실감하게 한다.

한편,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라스트 러브"는 제로캐럿의 데뷔곡이기도 하면서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주 의미있는 곡이다.

"혹시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내 이름을. 우리의 이름을"

로 시작하는 가사는 수많은 아이돌들이 대중을 향해 묻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 자신이 마지막 사랑이길 바라듯이

그들도 그렇지 않을까?

시간이 오래 오래 흘러

우리가 지난 날의 반짝임을 잃고, 희미해져 갈 때

끝까지 나를 기다리고 기억해줄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만으로도 아주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게 단 한 명일지라도 말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사랑을 가벼이 여기며 조롱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누구도 그 사랑의 무게며 가치를 함부로 매길 수 없다고.

파인캐럿의 마지막 팬픽 속 주인공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게 파인캐럿 자신이라는 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나의 욕심이 아닌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내가 더 아픈 길을 택하고,

상대방의 사랑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랑.

누군가는 그런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건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던

아이돌 팬의 사랑일 때도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샤이니 생각이 났다.

아이돌은 커녕 연예인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게 친구가 우연히 들려준 노래 하나가 내 삶을 바꿔 놓았었다.

들었을 때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마음이 찡해

눈물이 날 것 같은 노래를 부르던 그 빛나던 사람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놓아 외치던 그 이름, 그 노래들.

그때 그 사람들은

나에게 세상 누구보다 반짝였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사람들, 나의 라스트 러브.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 때문에

종종 마음이 슬플 때도 있지만, 아마 그는 내 마음 한 구석에서만큼은 오래도록 살아있을 것이다.

이 책 라스트 러브가 당신에게 그런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어떤 이에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그들의 사랑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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