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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리투스 1 - 시간과 모래의 미궁
민소영 지음 / 제우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바람의 시간은 길고 길었을 거요. 하지만 바람의 실현이 눈앞에 있을 때야 말로 가장 큰 고통의 시간이지.
 인간으로서의 삶은 아주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간이 언제 고통 받는지만은 잘 기억하고 있어."
체레반은 고개를 저었다.
"쟝은 절대로, 그 누구도 되찾아 줄 수 없소. 그건 내가 알아."
"그럼 왜 아직도 슬퍼하지?"
"슬픔은 자기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오."

 
스피리투스 1권을 읽었다. 여느 책의 첫권이 그렇듯 정말 큰 무대를 위해 준비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인물의 성격을 말하고, 사건의 모습을 보여줄까말까 하다가 결국은 그림자만 보여준다. 네 나라(셋 이기도 한)를 둘러싼 묘한 안개가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 '팡'하고 터질 듯한 분위기도 흐른다.
주인공은 카힐(소설 도중에 카히 라고 애칭이 나오는데, 난 이게 오타인지 애칭인지 너무 헷갈린다ㄱ-), 모든 사건의 중심이다. 정말 중요한 것과 이 아이는 연결이 안 되고, 정말 쌩뚱맞게 이어진 듯하면서도 끝에 다다르면 이 아이가 나온다. 그래서 이 아이가 주인공이 아닐까. 이 아이의 관점에서 서술되어지는 스피리투스는 내가 처음 이 소설을 보고 느꼈을 '거친 항해 이야기'과는 달리 제법 서정성이 깊다. 물론 그렇다고 이 이야기의 주요 소재인 '정치'가 중심이 아니게 될 정도는 아니다. 그냥 메인 요리에 나오는 밑반찬같은 약간의 서정성이랄까... 이 느낌을 아예 주 소재로 파고들어 또 다른 작품을 쓴다면 괜찮을 것 같다. 여하튼 그 서정성때문에 스피리투스가 다른 항해소설과는 차별을 이루며, 더 좋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정치 이야기는 스피리투스의 중심소재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제국과 이미 먹혀버린 달카마스 라는 나라. 제국과 전쟁중인 왕국, 얌전한 것을 좋아하고 일단 둘을 지켜보지만 왕국 편에 붙을 것같은 공화국. 이렇게 4개의 나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내용으로 봐선 2, 3권에선 제국이 끝없는 욕심을 부르다 결국은 몰락하게 되는 것이 소설의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제국은 몰락하고 달카마스가 다시 재건될 것 같다(어디까지나 예측). 흔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도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구조다.

영혼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소설의 주요인물 중 하나인 '나단'은 영혼을 다룬다. 이 소설이 판타지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단은 배에 영혼을 집어넣어 영혼이 배를 이끌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는 강하다. 이렇게 보면 나단은 전지전능한 존재인 것 같지만 결국은 황제의 꼭두각시랄까. 하지만 꼭두각시로만 머물러있지 않고 자신을 조종하는 주인에게 반기를 들 준비를 한다

이 소설은 정말 다양한 색깔을 지녔다. 언제 누구한테 이런 소리 들었다. 이 책 표지가 미스터리 같다고.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 했었다. 근데 그 속을 보면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좀... 외람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예쁘지만 결론적으론 이 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차가운 이미지다. 그래서 난 좀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스피리투스는 많은 것을 정말 알록달록하게 담고 있는데, 이 표지는 이미지를 하나로 딱 잡아버리는 느낌이다. 물론 소설의 아기자기하고 모험적인 이미지는 닮았지만... 흠. 아마 2권은 이거랑 똑같은 것에 색깔과 중앙에 조그마한 그림만 조금 바뀌어서 나오겠지. 여하튼 표지는 조금 별로라고 생각한다.

민소영 작가님 소설은 스피리투스가 처음이다. 이 책, 사실 처음에 약간의 지루함이 없잖아 있었지만 뒷내용이 궁금해서 읽었는데, 비앙카가 등장할 때부터 재미가 붙었다. 가끔 정신이 없을 때도 있지만 스토리 라인은 훌륭했다. 결론적으로 즐거웠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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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조금 전에 덮고 나서 노블레스 클럽 013번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이름을 바탕으로 이룬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는 한번 잡으면 일정 시간 동안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람이 새로운 것에 대해 익혀 나가는 것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듯, 이 책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로움"으로 포장한 듯한 느낌으로 술술 읽혀나갔다. 저 표지에 덮여 있는 띄지의 자랑스러운 듯한 문구 "<반지의 제왕>은 지루하다 ! " 라는 멘트에서도 볼 수 있 듯이, 이미 평론화된 반지의 제왕의 엘프나 오크와 같은 것(당시에는 참신함 그 자체였겠지만)에 대해 "도전"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다.


● 참신 ?  아무리 새로워도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로울까 ?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의 가장 처음 부분인 프롤로그 부분의 창조 신화 中을 대충 요약하자면 '창조신이 일곱개의 달과, 그중에 어여쁜 것을 골라내어 일명 '선택받은 자들의 세계(=가이아)를 "창조"하고 일곱 번째 달을 만들었는데, 가이아를 제외한 다른 달들에 반발이 너무 심하여 가이아로 통하는 하나의 문을 지어내었다. 하지만 가이아의 생명체들은 달에서 내려오는 생물체들을 미워하고, 두려워 하여 쳐죽였다'이다. 이 내용 자체가 스포일러가 되진 않으니 안심하라. 그냥 이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를 이해하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배경 지식의 일부일 뿐이다. 여하튼, 저 내용에서 보자면 작가는 창조주라는 대변인으로 하여 일곱 개의 달과 가이아라는 새로운 세계를 지어내었다. 일단 저 스포일러 자체에서도 이 소설이 "새로운 것에 대한 반발"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섭렵하기 어려운 소설인지를 알려준다.
또 이곳저곳 뒤집자면, 진짜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다양한 종족. 소설 중에 찾아보면 일흔 두 개의 종족이 이 소설 속에 존재한다고 한다(그것도 8개의 세계 중에서 일곱 번째 달에서만-_-). 대충 주로 나오는 이들만 살피면, 무르무르·자간·단탈리온·할파스·세레·시트리·플라우로스·글라샬라볼라스·키메리에스·고모리... 등(찾아보면 더 나올 듯) 난 진짜 저 종족 중 몇 개가 한꺼번에 나오는 부분이 있어서 그때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 막, 할파스의 누구누구는 어떻게 생겼다는 둥, 단탈리온의 누구누구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하지만 처음만 그럴 뿐이지 읽다보면 자동으로 종족에 대해 "외우게" 되고 이젠 그 종족의 생김새까지 기억해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헷갈리는게 몇 개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럴 정도로,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는 새로운게 많다.
 

● 의미 심장하게 끝나는 결말 ! 뒤끝이 너무 많도다 !

후우. 솔직하게 십 여 분 전에 이 책을 덮고나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소설의 흥미진진한 전개와 더불어 점점 뒤가 궁금해지는 이야기들.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이어나가고 있고, 이내 한 두 장 남았을 때 속으로 '...남는 장 수가 왜 이렇게 짧을까. 남는 장수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걸로 뒷이야기 설명이 다 되나?'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다가 "에잇, 어떻게든 끝나겠지"하고 소설에 다시 집중했었는데, 설마 나는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 날 줄은 몰랐다.
작가는 전혀 끝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았다.
분명 중간중간 있는 플롯에 대해서는 설명은 끝 마추었지만, 작가는 아마 "다음 이야기에 대한 가능성"만은 남겨두고 간 듯 싶다. 처음과 마지막에 딱 1번 출현한 수수께끼의 물건에 대한 정체도, 그리고 주인공의 뒷이야기도,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는 의미심장한 말만이 남돌 뿐이다.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는 끝이 났지만 제 세상은 아직도 살아있음을 말씀드리며 이제 이곳 가이아의 일곱 개의 달에 대한 '첫' 이야기를 조용히 덮습니다.'

............응? 이건 바로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는 말일까. 외면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아니, 두번째 이야기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아마 기다림을 참지 못하는 이에겐 절대 이 소설을 권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출간이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상태에서 기다림을 참지 모사는 이가 본다면 아마 일곱 번째 달의 대지가 솓아 방출하는 뜨끈뜨끈한 화염과도 같은 상태가 되지 않을까 나지막이 상상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간격을 둠에 따라 상상을 할 시간을 주기도 한다. 난 분명 단권이라 생각하고 들었는데, 읽어보니 장권이라니. 더군다나 출간 예정은 미정. 이건 정말, 언제 나올 지 모르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마치 연재 소설을 쓰다가 도중에 절필한 작가가 다시 복귀하는 심정......은 좀 강한 거 같다. 어쨌든 이 <잊혀진 달의 무르무르>는 언젠가 꼭 나오게 될 것이니까.


그래도 난 이 뒷 이야기가 궁금하므로, 살짝 기다려볼까 한다. 그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 지를 조금씩 그려내가면서.
약간의 기다림 뒤에는 그만큼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독자를 이렇게 무기한으로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에게, 앞으로 나올 작품을 기다리면서 살짝 재촉을, 또는 압박을 가해보기로 하자. 참신한 것도 참신한 지라, 그리고 참신하기에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한 지라, 더욱 기다리게 된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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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의 그물 Nobless Club 12
문형진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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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드라의 그물을 조금 읽어나갔을 때, 뒷 표지에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자가 인간의 사랑을 할 수 있는가'라는 멘트와 살짝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얼까 저 광고맨트는, 책에 손을 대게 만들면서도 어려운 책이라는 인상을 준달까. 그래서 책을 잡기 까진 좀 오랜 시간이 들었는데 읽어보고 나니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의미를 가진 재밌는 책이었다.

● 인드라망, 인그라의 그물

소설에는 우리 시대의 "인터넷"과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대충 인드라 그물의 시대적 배경은... 대충 나루토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여하튼, 그 시대에 인터넷? 하면 우습겠지만 이 시대의 인터넷=인드라망(=단말기)로 통하는 이것은 '모뎀'이라 불리는 새를 매개로 작동되며, 들어가면 간단한 메일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 인터넷 통신의 렉과 비슷한 걸로 "강림"이라는 것이 내리는데, 보통 이와 함께 무슨 멘트가 내려온다고 한다. 이 멘트는 그냥 아무 멘트일 수도, 미래를 예견한 멘트일 수도, 아주 다양하다고 한다. 소설 인드라의 그물에서 이 인드라망에서 내려오는 이 '강림', 이 강림의 멘트와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참 참신한 발상이다.

● 인법, 차크라, '인간, 아수라, 마호라가, 아귀, 간다르바', 천인

소설 속에는 아주 다양한 것이 존재한다. 어릴 적(아니면 현재)에 자주 보았던 나루토 라는 소설에서도 인법과 차크라 라는 개념이 있다. 대충 소설에서 인법을 사용하거나 그런 건 나루토를 상상하면서 보면 된다. 마법 대신 인법이랄까. 이게 꽤 흥미를 이끌었다. 그리고 다양한 종족이 존재한다. 더 많은게 존재하는 거 같지만, 일단 소설에 직접적으로 나타난 건 저 다섯 종족들. 대충 인간은 인간, 아수라는 전투에 능한 종족들, 마호라가는 (...까먹었다), 아귀는 대충 하녀나 시녀 따위로 많이 나오는 걸 보아서는 대충 지능이나 권위가 약한 종족인 것 같다. 그리고 간다르바. 대충 요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소엔 금빛으로 자신을 칠하고 다니며 남편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또 염력으로 갸냘픈 몸을 커버하는 아름다운 종족. 천인의 개념은 잘 모르겠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 (보통 아수라는 전투를 좋아한다)전투를 싫어하는 아수라와 (기본적으로 간다르바는 다른 종족을 꺼려한다)다른 종족과 잘 어울리는 간다르바, 또 천인이 만들어낸 그의 화신과 천인의 사랑, 그리고 화신과 아수라의 사랑. 마지막으로 인간과 깨달음에 이른 자의 "사랑".
많은 전개가 이루어지며, 정말 재미있다. 가끔 수업시간에 불교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불교 속 해탈을 이룬, 즉 "깨달음에 이른 자"가 행동하는 걸 보면 그들은 오직 선행만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른다는 걸 아는데, 그들도 사실은 해탈에 이르기 전이나 해탈을 한 후에나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걸 잘 볼 수 있었다.


이미 많은 걸 이야기 한 듯 싶은데, 지금 이 리뷰를 보고 하는 것도 꽤 소설의 흥미를 떨어뜨릴 게 확실하니 기본정보는 이 정도만 알고 인드라의 그물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작가가 신인이라기 믿기 어려울 만큼 굉장히 재밌다(상관없나?). 추천 팡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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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Nobless Club 10
김이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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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시의 외계인 - 김이환 / 노블레스 클럽 / 334p)


오후 다섯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갈 곳이 없는 나는 골목에서 운다. 나는 세상에 홀로 남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사이에 절대 섞일 수 없는 외로운 외계인 같은 존재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골목에서 운다.


예전에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산 것은 있는데, 그 책의 제목이 <희망을 찾아서 7>이라는 소설이다. 꽤 어릴 적에 읽은 책인데 꽤 깔끔하고 조화로운 표지에 어우러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멘트가 마음에 들어 읽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결과 참담. 아직 어리고 세상물정에 익지 않았던 나는 그 책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그런 용사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이 든다. 어찌 이처럼 곤혹스럽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내용은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정도로 쉽고 눈높이가 낮다. 한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외게인과 FBI. 서로 이중간첩을 하다가, 결국은 서로의 편이 되는 성우의 이야기는 어둡고도 발랄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말 참된 뜻을 끌어내려면 그건 어른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고, 세상을 경험할 대로 경험한 어른. 이미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청소년들보다는, 그 희망에서 하나의 결과를 이미 내어 버린 어른이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을 읽는다면 그 기분은 많이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그냥 세상에서 만난 일상의 괴로움을 한 순간만큼은 도피할 수 있는 명랑한 상상력의 결정체가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서투르기 이를 데없는 성우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을 이끌고 꼬이게 만드는 용관을 보면서 조금은 슬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다만 해볼 뿐이다. 나라면 그럴텐데(-_-)

 김이환 작가의 전작 <양말 줍는 소년>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읽어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이 <양말 줍는 소년>보다는 많이 모자란다고 한다. 그래서 별 다섯개 중에, 세개가 태반이고, 즐거웠던 사람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고 한다. 단지 즐거웠을 뿐이라고 한다. 개연성이나, 플롯 같은 게 자리자리 깔려있지도 않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즐겁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아직 학생이고, 계속 공부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계속 나아가야 할 길이 막막하기만 하고, 재미없다만, 혹시 우리 동네에도 사람으로 변해 있지만 외계인이 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것으로도 나는 이 책에서 건질 것은 건졌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 의문 자체가 발칙하고 지루한 삶에 대한 즐거움을 깨워주니까. 그런 의문을 알려준 <오후 다섯시의 외계인>에게 나는 감사한다. 읽는동안,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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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새 - 상 - 나무를 죽이는 화랑 Nobless Club 8
김근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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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근우 장편 소설로, 로크미디어-노블레스 클럽 제 08, 09번으로 출간된 상하로 구성된 소설이다. 내용은 대체로 서사무가인 바리데기의 서사와 비슷한 구성이지만 약간, 보는 견해의 차이에 따라서는 상당히 다르다. 알다시피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간단히 말해서, 버려진 일곱째 공주 바리데기가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서 부모도 살리고 나라도 살리고 세상도 살려서 하늘과 땅을 잇는 무당이 되는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이런 이야기지만, '피리새'는? 그 차이는 뭘까.
그건 단언 신화를 다시 각색하면서 (빠지고)추가된 내용들에 있다. 흔히 바리데기는 엉멍이라 생각한다. 그냥 딸만 일곱을 나았다고, 한 나라의 임금이 화가 나 딸을 아무데나 버리고, 그걸 또 스님이 줍어가 할멈할아범이 키울 수 있게 친히 연을 만들어 주고, 시련을 닥칠 것을 미리 예비해서 도움을 주는 둥, 옛날 이야기인 것이 지당한 것으로 허구성이 상당하다. 그러니까, 이건 왜 이랬느냐, 저건 또 왜 그랬느냐 하는 거다. 하지만 피리새는 다르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던 것이 원작 바리데기 이야기 속에서는 묻힌 역활로 나온 바리데기 외의 여섯 공주(중 일부)의 캐릭터가 생생히 살아 피리새에서는 움직여 하나의 개연성을 창조하고 있던 것이다. 이쯤 보면 작가가 이 피리새를 쓰면서 얼마나 고뇌를 했는 지를 생각했다. 어디선가 보았던 작가 서문에서도 보았듯이, 원작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 왜 그랬느냐는 논리를 부여하는 데에도 상당히 힘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심히 든다.


하지만 원작을 보았다한들 피리새도 본 느낌이 들까? 전혀 아니다. 이건 새로운 소설이다. 왜냐하면 우선 주인공의 이름도 다를 뿐더러 내용 자체도 대충 뼈대만 그대로 살아 있을 뿐, 누구 손에서 살아남았네, 누구때문에 살 수 있었네, 이런 원작 속 이야기는 거의 빠지고 새로 들어간 내용이 상당하다. 일단 '화랑'이라는 것 그 자체, 그리고 살아 숨쉬는 피리새 속의 고유한 세계들.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는 한국적 소재들. 상당히 재미있다. 필자 역시 바리데기 원작을 읽었지만 비교해보아도 공통점이 거의 없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피리새는 바리데기를 새로 각색한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바리데기 공주의 서사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있다. 생각나지도, 생각나지도 않는 원작을 각색한 혹은 재구성한 피리새. 한국 구비문학 바리데기의 바탕을 두고 내려온 피리새. 무당이 신내림을 받는 순간의 느낌을 알고 싶다면 한 번 권해보겠다, 김근우의 피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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