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 영국과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와 그 메커니즘 역사도서관 교양 6
월리엄 엥달 지음, 서미석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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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을 아예 모르고 사는 분위기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영화의 '영향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떠돈 바 있다. 허나 빠리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전혀 미국과 다름을 알 수 있다. 널찍함과 광대함 이것이 미국의 시가지 특징이다. 아담하고 작고 다양함 이것이 빠리의 시가지 특징이다. 프랑스는 한마디로 '미국 나는 너희들 잘 몰라'이다. 물론 영어도 거의 모른다.

프랑스는 하지만 미국과 밀접한 '운명'으로 엮여져 있기도 하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 무렵, 프랑스는 영국과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미 '전세기'에 세계 패권 다툼에서 밀려났고 물론 멕시코와 남미에서는 영향력이 여전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북미에서 주로 식미지 쟁패전을 벌였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가령 캐나다 퀘벡주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 쟁패전은 프랑스에서 '혁명'이 발발하면서 영국의 대부분 승리로 끝난다. 이 와중에 미국의 '독립군'은 프랑스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1776년은 '아직' 프랑스 대혁명 발발까지 13년을 남긴 시점이었고 루이 15세 사망 2년전이다. 루이 15세는 선친이 해놓은 것을 다 '말아먹는' 정치를 했다는데 매우 난봉적인 사생활을 했나 보다. 영국과의 쟁패전에 과도한 재정을 쏟아 부어 프랑스 혁명의 '원인'을 만든 왕이었다. 바로 이 루이 15세가 미국에 많은 재정을 지원해서 '독립전쟁'을 도왔는데 당연히 '영국'에 대한 간접견제였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의 미국에 대한 도움은 제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를 두번이나 미국이 '군사적으로' 구출하는 '극적인 보답'으로 나타난다. 나는 사실 다음 얘기를 위해 여기까지 말을 이어왔다. 드골 때문이다. 이 드골이 미국과 영국에 대한 태도이다. 특히 미국에 대하여 그러했다는 것. 미국의 프랑스에 대한 도움을 나는 잘 알지만, 허나, 당신들은 언제나 프랑스가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나타났다는 것. 그래서 완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다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드골은, 미국과 영국의 '도움'으로 프랑스를 독일로부터 '되찾았고' 그의 '역사적 포지션'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운'이 엄청나게 따른 것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는 5백만의 '육군'을 거느렸지만, 1차 세계대전의 엄청난 '충격'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전쟁을 혐오했고, '마지노선'에 쳐박혀 나와 싸우려 들지 않았다. 아르덴을 돌파당하면서 5백만 육군은 두동강이 난채 거의 '흩어져 버렸다.' 덩케르크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10여만명이 전부였다. '드골'은 바로 이런 프랑스군의 희망이고 등불이었으며, 무기력한 '제1차 세계대전 세대'의 비시 같은 사람들이 독일에 굴복해 버렸을때도 무릎꿇지 않았다. 처질과 로우즈벨트에게도 결코 고분고분하지 않은 프랑스 특유의 기질을 남김없이 갖춘 사람이었던 것. 바로 이런 이유로, 캐나다를 방문한 드골은 '앵글로 색슨'을 마음껏 비웃는 '유머'까지 구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만큼, 앵글로 색슨의 세계구도에 동의 하지 않는 역할을 했다. 요컨대 유럽 독자노선의 진원이 드골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럽에서 포지션은 사실, 1800년대 초반 하더라도, 나폴레옹을 앞세워 유럽을 석권하고 있었다. 1940년대는 독일의 히틀러가 그러했듯, 당대 나폴레옹은 유럽 석권과 동시에 '영국침공'을 꿈꿨다. 말하자면 18세기의 영국과 프랑스 항쟁이 19세기 초반에도 이어진 셈이다. 이렇게 된데는 '절대적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독일'은 산산히 분열된 '공국'으로 흩어져 있었고, 미국은 '아직' 인디언과 '변경'에서 전투를 벌이는 '초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구도는 곧 바뀌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러시아 침략의 처참한 실패로 종료된 그 시점부터 그랬다. 1830년과 1848년 두차례의 '자유주의 혁명'을 겪은 유럽대륙은 특히 그 '물결'속에서 석탄기반 산업화를 급속 추진해 나갔는데, 다른 곳 보다도 '독일'이 엄청나게 비약적이었다. 1835년 독일의 철도는 불과 6,km 였는데 이로부터 20년 후에는 5000km로 유럽에서 최고로 올라섰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부터가 '보호무역주의'와 '국가주의'를 앞세운 독일의 '영국과 프랑스를 추격하는 산업혁명'과 '통일 독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1871년 통일독일이 출현하므로서 이제 유럽정세와 이후 세계사 '전개'의 기본 구도가 바뀌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항쟁이 이제 강대한 독일을 견제하는 '항쟁'으로 바뀌어가게 되는 것이다. 

"석유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 이 책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풀어가기 시작한다. 1871년 통일 독일이 출현하여 바로 이웃 프랑스는 이제 항상적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독일이 분열되어 있던 시점에서는 '프로이센'이 강한 상대였지만 허나 '통일된 독일'만큼 두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바로 이때 '접근'해 온 나라가 프랑스의 오래된 '숙적' 영국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세력균형'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제1차, 2차 세계대전의 싹이 이 시점부터 발아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1887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선견지명'있는 한 군인의 예언부터 출발한다. 당대는 여전히 '증기기관'의 시대였고, 모든 배의 엔진도 그러했다. 허나 증기기관은 매우 불편했는데 바로 '석탄'의 부피 때문이었다. 대기오염물질을 엄청나게 내뿜는 문제도 있었고, 특히 군사적으로는 10km 거리에서도 육안으로 탐지되는 '연기'가 문제였다. 즉 군사적 관점에서 증기기관은 전략전술적으로 약점이 많았던 것이다. 이럴때 늘 '선견지명'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는데, 석탄을 '석유'로 바꿔쓰자는 전략가가 나타난 것이다. 아주 쉬운일이었는데, 증기기관은 물을 끓이면 되니, 그 연료를 석유로 바꾸고 연소장치를 '석유보일러'로 바꾸면 그만이었다. 연기도 적게 나서 군사 전략상 최적이었다. 바로 이때부터 석유는 '전략적 가치'가 몇 사람들에 의해 인정되기 시작된 것이고 이런 이유로 '석유의 지정학'이 세계 전략의 핵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일반의 상식을 뒤집어 엎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온다.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는, '신맬더스주의' 출현에 대한 것. 지정학적 석유 전략 세력들이 '펀딩'하여 환경운동 단체들이 움직였다는 이런 얘기보다, 1970년대 초반 미국의 정책담당 관료들이 스스로를 '신맬더스주의자'라고 자칭했다는 사실이었다. '석유와 달러'를 앞세운 '영미' 주축 세계 지배 세력들이, '원자력'과 같은 당대의 대체에너지 세력을 '견제'하고 무너뜨리기 위해서 형성된 구도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가령 독일에서 '원자력'발전이 포기된 것도 영미의 석유패권 추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음모론적 시각이기는 하지만 아주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곳 저곳에서 정황증거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하여튼 '신맬더스주의'를 폭발시킨 '성장의 한계' 출간 로마클럽에도 바로 그런 세력들이 포함되어 있고 여기도 그들의 펀딩이 들어 갔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 충격적이다. 심지어 1972년의 유엔인간환경회의까지 석유자본의 음모가 끼워져 있다니 정말 충격이다. 이렇게 되면 '환경교육'도 석유자본 얘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맬더스주의와 신맬더스주의에 그런 관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그 배경이 되는 '펀딩'얘기까지 이 책에서 알아차리게 되니, 미국과 유럽의 환경운동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했는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독일과 프랑스의 '오래된 꿈'이 어떻게 영미의 달러와 석유패권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있으며 지금도 그러한지 잘 밝혀준다. 이 점을 알면, 왜 미군의 '주둔기지'가 이라크를 포함 카스피해 지역의 나라들에 새롭게 생겨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예전에 잘 몰랐던 '코소보 폭격'의 이유가 아주 명백해 지며, 유고슬라비아 해체의 '이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카스피해 지역의 예상되는 엄청난 석유와 가스 매장량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에 추가하여, 왜 100년전에는 영국군이 쿠웨이트와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기지를 두고 주둔했었는지 알게 되며 그자리에 왜 미군이 주둔하는지도 명백해 진다. 

우리는 세계사 시간에 '독일의 3B 정책'이라고 배웠다. 베를린, 베오그라드, 바그다드인가 그러하다. 요컨대 베를린에서 바그다드를 잇는 '철도'를 통해 독일이 중부유럽과 중동을 자국과 연동되는 경제지역으로 만드는 구상이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것을 독일의 '제국주의적 야망'으로 묘사한다. 저자는 이 계획의 초기단계에서 독일이, 자신들만의 '자금'으로 부족하기에 영국을 끌어 들이려 애썼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렇게 되면 독일보다는 영미가 더 제국주의적 야심을 지닌 것으로 보이게 되는데 실제로도 그러하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은 많은 병력을 '대륙'에 보내 프랑스와 함께 독일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무려 100만 가까운 병력을 지금의 '쿠웨이트' 지역에 보내 주둔 시켰다고 하지 않은가? 물론 당시 쿠웨이트는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고 터키는 '3B'의 철도가 지나가는 핵심국이었으니 독일과 한묶음 동맹이었다. 이런 '핑게'로 영국은 쿠웨이트 지역을 선점했는데 이미 '석유'의 엄청난 매장 가능성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쿠웨이트와 이라크를 점령하여, 독일의 '시도'를 좌절시키고 마는데 물론 독일은 이라크와 협정을 맺어서 석유를 개발하고 이것을 철도를 통해 수송하려 했던 것이다. 바다는 영국해군이 장악하고 있으니 '3B'는 후발 산업국이자 거의 내륙국인 독일이 뻗어나가는 유일한 활로였던 셈이다. 그래서 이후 세계사는 이 독일의 오래된 꿈을 번번히 좌절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전부 '석유'와 관련된 '지정학적' 전략 때문이다. 가령 지금 이라크에는 미군이 들어가 있고, 1999년 코소보 폭격이후 그곳에도 '미군기지'가 생겨서 주둔해있다. 바로, 독일의 3B 철도가 지나가는 길이다. 게다가 폴란드를 포함 동유럽 나라에도 소규모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독일'과 '러시아'를 '차단'하는 모양새다. 여기에도 많은 사연이 들어 있다. 

영국의 프랑스와 손잡고 독일에 대항한다는 이런 '구도'는 두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속에서 빈번한 '동맹'과 '연합'이 이루어졌다. 가령 영일동맹은 '러시아'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견제'였고 실제 일본은 러시아를 전쟁을 통해 물리쳤다. 하지만 그 러시아는 양차례 세계대전에서 '영미'와 늘 함께하는 구도속에 있었다. 이런 구도는 아주 단순한데, 중유럽의 강자 독일과 그 관련국들을 동과 서에서 '짜부러뜨리는' 구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늘 '압박'을 당하는 처지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골이 '위대'하다는 점은 바로 이런 구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는 영국과의 '겨루기'에서 대부분 영국에 양보하거나 밀렸다. 대륙에서는 독일과 늘 '전쟁'을 벌이면서 자국 영토를 '전쟁터'로 내줬다. 반면 영국은 프랑스에 '원정군'을 보내는 방식으로 자국 영토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런 구도가 된 것은 영국인이 프랑스인을 끌어들이는 '수완'도 있지만 통일독일에 대한 프랑스인의 지나친 두려움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하게 말해서 프랑스는 늘 영국의 '앞잡이' 비슷한 노릇으로 전락해 갔는데, 드골이 그런 구도에 종지부를 찍어 버린 것이다. '앵그로 색슨'을 놀려댈 정도로 그런 구도에 그는 익숙했는데,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서독'의 아데나워와 '독프협정'을 맺는 그런 방법이었다. 

오늘날 '통합유럽'의 출범은 바로 드골의 결단에 기원한다. 이 구도에서 영국은 언제나 대륙과 떨어져, 미국과 함께하는 모양이 된다. 물론 드골은 다른 '원대한 꿈'으로 나아가는데, 빠리에서 모스크바까지 '철도'를 연결하는 이런 구상이다. 이것의 핵심은 '영국'에 개의치 않고, '대륙 유럽' 중심으로 경제적 '공진화'를 이룩한다는 발상이다. 19세기 후반 이후, 바로, 영미의 '석유지정학'과 '파운드-달러' 패권체제에 휘말려 유럽에서는 늘 독일을 '동서에서 짜부러뜨리는' 이런 전쟁구도가 전쟁의 참화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드골의 이런 구상은 영미의 견제를 받게 되었고 이런 구상의 핵심 인물들은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는 것으로 '빠리에서 모스크바까지' 철도 연결 구상은 드골이 물러나면서 종료되고 말았다.

이러한 구도는 소련이 무너지는 시점까지 지속되었다. 저자의 묘사에 의하면 영미의 파운드-달러와 '석유'를 중심에 놓은 지정학적 패권 추구는 정말 집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시 쿠웨이트를 영국군이 점령했던 것이 1990년에는 미군과 다국적군의 이라크 침공으로 재현되었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독일의 오래된 '3B'에 대한 견제와 무력화이다. 여기에 끼워든 사건은 소련의 몰락이다. 이제 독일이 소련과 동부유럽에 접근하여 원전을 포함 산업시설에 대한 '지도'와 확산을 꾀할 경우 자신들의 패권이 약화되니 이것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놀라운 사실은 당시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포함 - 우리나라까지도 - 여러 나라에서 병력과 물자 및 전비용 '달러화'를 갹출했는데 교묘한 회계를 통해 190억 달러를 남겼다는 이런 얘기를 한다. 이런 얘기들은 전부 충격적이면서도 어디에서 전혀 들어본 바 없는 얘기들이다. 그리하여 1999년에 이르면 발칸에 진출하여 유고를 완전히 해체하고 여기 반발하는 밀로세비치를 '학살 주범'으로 만들어 국제사회에서 매장시키면서 폭격을 통해 무력화 시킨후 군사기지를 두고 주둔했다고 한다.

이 책은 '석유'와 '달러'를 묶어서 세계의 정세를 읽는 시각을 제공한다. 저자의 얘기는 바로 '지금'까지 닿아 있다. 1897년 영국은 '대공황'을 맞이하는데 바로 이때부터 '스털링-파운드'를 지키기 위한 대책으로 돌입했다는 것이다. 후발주자 독일의 맹렬한 추격이 영국의 지위를 내려 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것은 지금 미국에도 해당한다. 저자의 얘기는 아주 쉬운데, 가령 미국은 1957년 종전 이후 첫 경제 위기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투자를 한지 30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요컨대 '재투자'를 하여 생산적 산업의 '갱신'을 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금융화'의 길로 이때부터 나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변화된 조건에 맞게 생산력을 더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경제를 바꿀 시점이었는데, '국내투자'보다 더 수익률이 높은 '해외투자'에 눈을 돌려서, 바로 이 시점부터 주로 '유럽지역' 중심으로 달러화 자본이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은 영국이 갔던 바로 그길이기도 했고 저자의 핵심 주장에 해당한다. 바로, 시티와 월가를 한묶음으로 하는 '금융자본'의 출현인데, 이것이 '석유 지정학적 전략'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의 설명력은 매우 뛰어나다. 가령 2001년의 캘리포니아 전력대란 같은 사건은 아주 간단히 해석가능하다. '금융화'덕분에 그러하다. 물론 여기 '사유화'까지 겹쳤으니 더 심각하다. 미국은 레이건 시대에 볼커의 고금리 정책으로 제3세계 외채위기를 불렀는데, 저자에 의하면 이런 것도 '국내적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것 보다는 다른 나라의 '산업성장'을 고사 시키기 위한 수단이 된다. 약간은 심한 해석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고금리가 제3세계 외채위기를 유발하면서 원래 의도했던 성과를 더 거두었다고 생각한 순간, 볼커는 레이건 임기 말 무렵에 금리를 아주 크게 내리는데 바로 이때부터 미국의 제1차 금융거품 형성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런 점은 더 자세히 연할 부분이지만, 이 시점은 오늘날 세계 금융 '규제완화'의 원형이 거의 뉴욕 월가에서 이루어진 시점이었던 듯 하다. 모든 금융규제가 다 해제되었고 이런 와중에 '밀켄'과 같은 사람이 출현했다. 물론 이 사람은  초저금리와 대출에 기초하여 멀쩡한 기업을 인수한 다음 팔아서 주주들끼리 나눠먹는 이런 '적대적 엠앤에이'의 길을 연 사람이다. 바로 이런 길로 가버렸으니 미국의 생산적 산업은 물론 '갱신'이 필요한 기간 산업으로서 전력이나 도로, 철도에 대한 투자가 멈춰버린 것이다. 주목할 점은 바로 이렇다. 캘리포니아 전력대란도 그렇지만 가령 뉴올리언즈 해일 참사때 미국정부의 대응은 사실 제3세계의 어떤 정부만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런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외환외기 포함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나아가 일본의 '금융거품 형성과 꺼짐'가지도 같은 시각에서 들여다본다. 굉장히 설득력 있다. 특히 일본에 대하여는 그러하다. 플라자 합의 자체가 말도 안되는 '강제'였기도 했지만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사태들을 보아도 그러하다. 일본은 아주 충실한 미국의 '달러화 환류' 국가였고 최고급 전자제품의 수출국이었지만 결국 '당'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물론 애초 소련의 '방파제'로 경제성장을 용인했는데 너무도 커서 '아시아 지역'의 맹주로 떠오를 것이 두려워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란 아주 간단한 것인데, 투기금융 자본이 '개방'을 하긴 했지만 아무런 '제어' 방책이 없는 초기를 틈타 '공략'에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연 7%의 고성장 활력을 잃은 것은 물론, 금융자본이 언제 빠져나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이런 상태로 10년을 보냈다. 이 과정속에서 '대응책'이라는 것이 '금융허브'였던 셈이다. 물론 제대로된 대응인지 어떤지 아직도 '검증' 중에 가로 놓여 있고 '자본시장통합법'이 올해 시행되면 본격 검증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은 한국인의 상식을 싹 뒤집는 얘기를 담고 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인 어떻게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이책은 담고 있다. 바로, 일본의 이웃에 있었고 중국의 턱밑에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때문이다. '전략 기동군'으로 개편한다면서도 미군이 왜 한반도에 머물려 하는지 대답도 가능하다. 석유 지정학에 의한다면 다음 라이벌이 중국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1조를 넘는 달러 외환을 적절히 사용하여 전세계 곳곳에서 '석유'를 얻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미국 석유기업 유노칼을 인수하려다 미국 정치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성공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아프리카건 남미건 석유찾아 삼만리를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이 와중에 이란과 협정을 맺고, 이란은 미국과 '적대'하면서 '석유결제통화'를 유로화로 바꾸겠다고 한다. 석유 덕분에 다시금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러시아는 루블화로 결제하는 석유시장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영미의 '스털링-파운드, 달러' 패권 체제는 중국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티베트 사태도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전략'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영국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던 무렵 재정적으로 파탄상태였다고 한다. 미국이 지금 재무장관이 연거푸 '적자재정 한도액'을 증액하는 '법개정'을 요구하는 이런 상황으로 가 있다. 과연 어찌될 것인가? 미국이 지목한 악의 축 중에서 이라크는 지금 점령중이고 북한과는 평화적 해결 단계로 진입했고 남은 나라는 이란이다. 그리고 약 보름전에 이란의 함정에 '발포'했다는 뉴스가 나온 바 있다. 과연 다음 차례는 중국까지도 함께 겨냥 가능한 이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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