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환경의 세기'라는 말이 운위된다. 그만큼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화석연료'가 문제다. 누구나 다 안다. 허나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자동차는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가전제품'도 또한 '종류'가 크게 늘어난다. 특히 '전열기'를 보면 그렇다. 요즘은 화장실에도 '전열기'를 설치한다. '전기'를 '열기구'에 사용하는 것은 열효율이 가장 낮다. 발전연료를 그냥 '난방연료'로 쓰는게 낫다. 그런데 반대방향으로 나간다. 물론 그만큼 태양열이나 풍력등 대체에너지 개발은 더딘게 우리나라다.

'역사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내게는 이제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르쳐주는 분야가 생겼다. '문명사'라고 불리우는 분야다. 한국사람에게 생소한 분야다. '생소'하나 아예 깜깜하지는 않다. '문명사'는 '과학사'하고 또 다르다. 무엇보다도, '시간대'가 다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사 분야에서 활약하는 미국의 과학자이다. 그에게 역사적 시긴대는 약 1만년 정도이다,

보통 '역사'의 시간대는 고작해 보아야 5천년 정도이다. 1만년 정도의 시간대를 잡으면 '고고학'이란 학문 영역이 들어온다. 물론 여기에 '미래학'이라는 것도 가세한다. 그리고 '문화사'가 아니라 '문명사'가 되는데,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시대까지 다루기 때문이다. '문명사'의 관점에 서게 되면 '환경의 영향'을 당연히 결정적 요인으로 고려하게 된다. '환경결정론'의 관점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연환경속에서 생존했는가가 주 관심사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런 '영역'에서 그의 장기를 발휘한다. 사실 기본적인 관점은 '청동기'칼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철기'를 발명한 사람에게 지는가 이런 것이긴 하다. 허나 다음 문제는 대체 어떤 이유로 '철기'를 먼저 갖게 되었는가이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른 바 '생태적 사유'라는 것의 근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수렵과 채집생활을 했다. '총'을 얻을 수 없어서 결국 유럽 이주민들에게 거의 '멸종'으로 나아갔다. 이들이 남긴 문서중에 '인디언 추장이 워싱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여기에는 생태적 사유의 '핵심'이 담겨 있다. 어떻게 어머니인 대지를 '쟁기날'로 갈라낼 수 있는가이다. 이들에게는 '농업' 조차도 '어머니의 대지'를 훼손하는 행위였다. 오늘날 '생태적 사유'가 이미 있었단 얘기다.

달리 보게 되면, 당시 북미대륙은 이미 '채집과 사냥'생활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농업으로의 '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다른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의 요인중 '인구압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수렵과 채집생활민의 '인구압력'은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점점 커져갔고 이에 대한 '우려'가 생태적 사유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인구론'의 저자 맬더스가 관찰한 당대의 '영국'도 맬더스에게 그러했던 것으로 비춰진 것이다. 맬더스는 좀 '편견'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지만 '농업생산력'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나무'와 같은 연료의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산업과 생산양식의 '전환'에는 인구압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때 '인구압력'은 곧바로 '환경'에 작용한다. 산업혁명은 당대의 '인구압력'을 극복하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지구는 60억을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하고 약 30여년간의 '대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에 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했다. 1960년에 30억이었던 인구는 불과 30여년 만에 그 두배인 60억으로 증가한 것이다.

현 시기의 '인구압력'은 다름아닌 '석유'와 석탄으로 대표되는 '화석연료' 산업시대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논하면서 '자유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영구한 승리'를 이룩했다고 찬양했다. 허나 그가 '숨쉬는' 공기는 이미 '영구한 승리'같은 것을 위협하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맑스는 맬더스의 인구론을 시대에 뒤떨어진 '토지 귀족'의 '농업'에 정체된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으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진군하는' 노동자 계급을 목격했다. 그는 19세기 '산업혁명'의 엄청난 진군과 더불어, 프랑스 혁명에서 촉발되어 19세기를 내내 관통한 '사회혁명'의 대폭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가 당연히 '생태주의적 사유'를 함축한 맬더스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어쩌면 바로 이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환경오염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맑스' 그로부터 연유한 '환경적 문맹'은 지금도 결코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은 그런 '수백년 정도를 고려하는' '역사의식'을 하찮게 만든다. 역사의 시간대를 1만년 정도로 늘리는 것만으로도 그러하다. 물론 이 시간대를 약 1천만년 정도로 늘려 놓으면 '기후변화'가 나타난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포착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환경문제'를 자원과 '생산양식'의 문제로 좁혀 살피면 약 1만년 시간대의 '문명사'가 들어오고,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로 넓혀 살피면 1천만년 정도의 시간대에 걸친 '기후변동의 역사'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들은 우리 한국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하지만, 적어도 한반도에서 제대로 살아 남으려 한다면 반드시 가져야할 새로운 '역사의식'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 책은 이러한 '문명사적 역사의식'을 잘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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