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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1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3년 10월
평점 :
최상희 - 칸트의 집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셔서 벼르고 벼르다 읽게 된 책입니다. 건축과 철학은 일견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분야인데 제목 하나로
철학자와 건축이 어우러져 조화롭습니다. 귀여운 사이즈에 은은한 파스텔톤의 표지가 잘 어울립니다. 입체적으로 보이는 제목과 자잘한
그림들, 파스텔톤의 제목이 내용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보통의 책보다 작고 가벼워 휴대성이 아주 좋았습니다.
맙소사!! 몽환적이고 불안하지만 안전한 아이들의 성장기 이야기에서 시작해 눈물을 쏙 빼내는 잔잔한 격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버스에서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읽었습니다. ㅠㅠ 익숙한 분위기에 너무 안심하며 방심하다가 일시에 당한 기분입니다.
^^; 솔직히 이 정도에서 책이 마감되면 정말 신비롭고 상상의 여지를 남겨줘 좋겠다 싶은 부분을 넘기자 마자 눈물을 터트려 작가가
여기저기 미리 설치해 둔 함정에 빠진 듯 속수무책으로 공공 장소에서 창피하게 콧물을 흘려봅니다. ㅠㅠ
자폐증이
있는 형과 주인공, 그리고 칸트로 불리는 해변을 산책하는 은발의 아저씨. 일견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부류들이 만나
서로에게 익숙한 침묵으로 뭉쳐집니다. 그들의 소리없는 대화, 눈빛이 만들어 내는 비현실적인 공감대는 저같은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너무도 부러운 것이였습니다. 서늘하고 넓고 바람이 부는 바다, 주인공들은 쓸쓸한 바닷가에서 주인공인 열무의 독백으로 짧지만 깊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고독에서 오는 진지한 자기 성찰, 그로 인한 깊이감 있는 대화 내용이 칸트라는 별명과 어울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정말 이렇게 철학자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목소리와 소설속 칸트처럼 까칠하면서 제가 아는
유일한 철학자가 내내 떠올랐습니다. 게다가 내성적이진 않으신 거 같지만 내면의 감성에 귀를 열어두고 인문학에 애착이 있는 건축가도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철학과 건축 두 가지 모두에 깊숙이 빠진 분은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역시 두 분야 모두 오랜 공부가 필요한
전문 분야다 보니 그럴까요. 그래서인지 흰머리의 칸트가 더욱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 또래의 아들을 추억하며 싸늘한 관에 자신을 가두던 남자가 두 남자아이를 자신의 세계로 들이는 순간 순간이 그 남자의 사정을 모르는 상황에서도 왠지 뭉클했습니다.
동생으로 태어난 열무의 희생이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 눌렀습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누가 더 힘드냐 따질 문제도 아니였습니다.
자폐증을 가진 채 태어난 형, 그런 형을 돌보며 남편과 갈등을 겪는 엄마, 그리고 언제나 형과 함께여야 하고 돌봐야 하는 동생.
무거운 마음으로 바닷가 작은 마음으로 온 그들에게 그들보다 더 무거운 침묵으로 무장한 칸트가 정해진 시간에 새를 몰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형과 함께 칸트의 외양과 습관에 매료되어 그의 집을 매일 방문하게 되면서 칸트와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깊이를
더해 갑니다. 신비롭게만 보이던 주인공들의 사정이 하나하나 들어나고 칸트는 이들 형제에 의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게 되고
이런저런 위기들로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자신의 세상에 빠진 열무가 관찰하고 사랑하는 두 명의
칸트. 그들의 비정상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세계에 매료되어 가며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세상이 오히려 정상이라 말하는
우리보다 더 옳고 바르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현실과 타협합니다. 그 타협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타인을 비정상과 정상으로 나눗는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건축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하게
됩니다. ^^ 건축에도 절제된 디자인, 미니멈함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혹시 저자가 만나고 싶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건축가가
누구인지... 1, 2년 전에 그분의 영화가 나왔던 그 분은 아닌지 상상해 봅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왠지 로맨틱하고 감성적이면서도 건축과 철학이라는 지성까지 만족시키는 제게는 훌륭한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쪽팔린
줄도 모르고 공공 장소에서 크게 울게 만든 감사한;; 책이에요. 그만큼 크게 운 건 정말 오랜만이여서 더더욱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도시에 길들여져 자연을 그리워하는 우리 현대인의 감성을 긁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절제된 분위기로 감동까지 주는
복선들, 억지스럽지 않게 자연스레 올라오는 호기심. 아름다우면서 황량한 바닷가를 상상하게 만들며 억지스런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연스럽게 소설에 빠지게 만드는 흡입력이 강한 소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