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앨리스 먼로 -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빈티지한 표지가 눈길을 확 끌었고 노벨상 수상작가인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이라 읽게 되었습니다. ^^ 예전엔 작품 하나의 작품성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여했고 그래서 그 작품이 크게 부각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얼마전에 읽은 마광수 교수의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에서는 요즘엔 노벨상의 판도가 바뀌어 그 작가의 작품 전체에 대한 평가로 바뀌어 작품에 집중되던 스포트라이트가 없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단편집이라 읽기 쉽고 작가를 파악하는 데 좋은 거 같아 편히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책은 두껍지만 그립감이 좋은 아담한 사이즈로 휴대성이 좋았으며 줄간도 넉넉해 가독성도 좋았습니다.

    

 

 

 

 

 

  흐름이 긴 소설을 좋아하지만 먼로의 소설은 단편을 읽어도 호흡이 길어 마치 장편을 읽은 것처럼 만족감이 느껴집니다. 호흡이 길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지만 정확히 딱 어떤 느낌인지 명확하지 않았는데 먼로의 책이 딱 그런 책입니다. ^^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책이 떠오르게 합니다. 먼로도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됩니다. 게다가 서술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관된 화제로 이어져 호흡이 길어지는 걸 느낄 수 있지만 워낙 자연스러워 깃털이 바람에 부드럽게 흘러내리 듯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장편이라 꽤 재미있었지만 그 만큼 또 읽기가 힘들었는데요, 다행히 단편이라 읽기가 비교적 좋았습니다.

  이런 흐름은 저자의 수다로 독자들의 머리 마비되고 ^^; 생각은 느려져 소설에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화제들에 언제 끊어 읽어야 될까 슬슬 저자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읽고 나선 시원하다는 느낌보다 저자가 전해주려는 교훈?을 내가 제대로 받아들였는지 되씹게 되는 작품입니다. 이런 느낌은 마광수 교수의 책을 읽고 더 확실히 와 닿았습니다. 마광수 교수는 소설은 소설을 즐길 뿐 시대와 사회의 요구대로 교훈을 집어 넣고 유교의식에 찌들어 잔소리를 담아내면 안된다는 생각을 강조하고 저도 어느 정도 생각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뇌를 마비시키는 구체적인 묘사와 다양한 등장 인물들은 많은 복선과 함축된 의미들을 다양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표면에 담지 않고 내면에 담는 글, 마광수 교수가 찬미하는 글이지요. 그리고 재미와 흥미를 위해 인간의 연애, 사랑이 빠져선 안된다고도 합니다. 좋은 소설의 조건에도 부합되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

  2007년에 찍어나온 작품임에도 마치 먼로가 노벨상을 받아 급하게 작품을 찍어낸 듯한 서두르고 미흡한 북디자인이 아쉽습니다. 번역도 광범위하게 북디자인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새비서'라는 이름은 그대로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자꾸 뇌리에 남습니다. 총 9개 작품 중 첫 작품인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에서의 등장 인물인 '새비서'를 저는 중반까지 계속 새로온 비서로 알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ㅠㅠ ㅋㅋ 얼마나 억울하고 황당하던지요. 왜 새로온 비서가 짜꾸 이름없이 새비서로 지칭될까 의문을 갖고 상상하게 되고 내용을 더 복잡하게 뒤엉키게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로 제게는 작동되었거든요. 뒤편에서는 시기부 라는 주인공이 담배를 지칭하는 단어에는 옆에 원어를 써주는 센스를 보여주고 있어 번역이 점점 더 세련되어 집니다. ㅠㅠ






  조정래의 <유형의 땅>이라는 단편집에선 작가의 천재성, 즉 본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끼와 내공이 느껴졌다면, 먼로는 차분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얻은 깊은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모두 깊이감 있는 내공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작품성을 볼 줄 모르는 초보자의 눈에는 조정래님의 이야기가 더 쉽고 더 오래 생각할 수 이끄는 힘이 있다 느껴집니다. 작품의 흐름이 조정래님처럼 꽤 빠른 편이지만 묘사가 많고 흐름이 길어 짧고 길게 읽는 흐름에 익숙한 저에겐 좀 힘든 작품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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