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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275 - 계윤식 시나리오집
계윤식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3월
평점 :
계윤식 - 이철호 275
책을 다양하게 읽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어떤 기준에서 읽을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책을 보는 시선에 긴장이 풀려 느슨해질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랜시간 판타지만 읽었고 이념, 정치, 경제 등 딱딱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들어간 것들을 읽을 때면 항상 바짝 긴장한 채 이해하려 노력했고 항상 그 노력이 실패해 좌절을 겪곤 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는데요. 인문학과 조금 친해지고 그것이 제 지능이 모자란 것보다 글에 대한 포용력 부족으로 인해 생긴 난독증의 일종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깨달음 이후 어째서인지 더 마음이 편해졌고 점점 더 난독을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는데요. 북한과 이념 문제는 오래 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피해왔고 되도록이면 북한과 완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글만 찾아 읽어온 편입니다. 이 책도 그런 식으로 북한이란 딱딱하고 막막한 테마에 접근하는 거 같아 호감을 갖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영화가 무산되어 나오게 된 책이라 호기심도 강하게 일었습니다.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는 듯 시각화를 염두에 둔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전개가 빠르고 디테일한 묘사가 부족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등장인물이 많고 관계가 복잡한 편이며 초반에는 빠른 전개에 적응하지 못해 난독증에 시달려 쉬다 읽다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감에 적응하고 주인공들의 이름은 외우지 못해도 캐릭터들의 분위기가 파악되며 누가 누구인지 머리에 그 캐릭터의 그림이 그려지며 점점 난독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보드를 연상케 하는 각 장만마다 구도를 그린 그림이 한컷씩 만화처럼 들어가 있어 카메라 움직임과 함께 관객이 보여질 화면을 상상하도록 하게 합니다.
책을 읽을 수록 속도감, 캐릭터의 쓰임새, 그리고 한컷씩 들어간 그림으로 인해 생기는 구도감?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소설을 이런 식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엄청난 장편을 쓸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캐릭터를 더 깊이감 있게 표현해 낸다면 더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화 되었다면 흥행은 보장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 왜 우리 나라의 영화는 중국, 미국, 영국, 인도 등 영화대국들처럼 판타지가 부족한 걸까요. 사실에 근거해 상상이 가능한 소재를 쓰되 영화대국들의 작품들은 판타지의 영역을 무한히 넓힐 수 있는 인문력과 상상력을 갖추었다 보여집니다. 우리 나라의 작가들은 그런게 부족한 걸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다기보다 '이런게 되겠어?', '이런 상상을 찍어내려는 감독이 있을까?' 등의 의문이 공식처럼 작가들의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현실적인 한계에 순응한 작가들. 그걸 깨부수려는 날날이 작가들이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영화들을 검색하기를 부추깁니다. 엄청난 상상력을 자랑하는 '괴물', '올드보이', '설국열차' 등은 감독이 각본에도 참여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놀라운 속도감과 캐릭터들에 감탄하면서도 이 영화는 흥행은 안될거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에 막혀 제대로 뻗어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뭔가가 부족했는데 있음직한 275 종자라는 주요 테마에 이런저런 희생을 강요당하는 남북한 사람들을 보며 드는 깨림찍한 느낌이였습니다. 독자나 관객을 흡입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 중요하게 여겨질만한 주제인가 라는 의문이였습니다. 캐릭터가 아무리 강력해도 관객을 이끄는 큰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다면 관객은 매 순간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 의심하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중간 중간에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엄청난 돈이 투자되고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이는 영화는 오죽할까요. 많은 제작진과 관계자들의 의심을 받으며 찍는 영상이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일 거 같습니다.
재미있는 책입니다. 소설과 다른 색다른 전개법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적응하면 금새 속독이 되는 잘 읽히는 책이였습니다. 좋은 소설이든 영화든 읽고 보는 사람들을 이끄는 큰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였습니다. 관건은 불특정 다수인 그들을 설득하는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 그 점에선 조금 아쉬움이 남는 책이였던 거 같습니다.